초고령사회 일본, 드론 띄워 ‘쇼핑난민·의료 공백’ 메운다

입력 2025-12-03 07:00

인구절벽·지역소멸 대비 인프라로 ‘하늘 길 물류’ 실험… 지역 맞춤형 활용 방안 고심

▲아이치현 신시로시 지역 농협 주차장에서 물류 전용 드론 ‘에어트럭(AirTruck)’이 이륙하는 모습.(에어로넥스트 제공)
▲아이치현 신시로시 지역 농협 주차장에서 물류 전용 드론 ‘에어트럭(AirTruck)’이 이륙하는 모습.(에어로넥스트 제공)

일본 지방 곳곳에서 인구 감소와 고령화로 인한 ‘지역 소멸’ 위기가 심화되는 가운데, 지자체와 민간 기업이 드론을 활용해 생활물자와 의약품을 배송하는 실험을 잇따라 진행하고 있다. 산간 지역과 섬 마을에서 마트와 병원이 사라지며 생긴 ‘쇼핑 난민’, 의료 서비스 공백을 사람이 아닌 드론이 메우는 ‘하늘 길 인프라’를 현실 모델로 만들겠다는 시도다.


농협 상품 드론으로 산길 넘어 배달

대표적인 사례가 아이치현 신시로의 ‘신 스마트 물류’ 실증 사업이다. 에어로넥스트는 지난 2일, 아이치현과 신시로시, 자회사 넥스트 딜리버리, 물류기업 세이노홀딩스, 의료·의약품 물류기업 그린서비스, 지역 농협(JA 아이치히가시)이 함께 지난달 17일부터 오는 19일까지 약 한 달간 농촌 산간 지역인 호라이 일대에서 장기 사업화를 가정한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핵심은 트럭과 드론을 잇는 ‘드론 집하장’를 세우는 것이다. 지역 마트 주차장 안에 드론 집하장을 설치하고, 택배회사와 지역 상점, 온라인 주문 상품 등을 한곳에 모은 뒤, 목적지와 배송 시간에 따라 트럭 또는 드론으로 나눠 보내는 구조다. 산간 마을 곳곳에는 드론이 착륙해 물건을 내려놓는 드론 정거장 6곳이 마련됐다.

지난달 28일 언론을 대상으로 한 공개 시연에선 물류 전용 드론 ‘에어트럭’이 지역 농협 주차장에서 이륙해 약 5.6㎞ 떨어진 경로당까지 약 13분간 비행했다. 자동차로는 구불구불한 산길을 25분가량 달려야 하는 거리다. 마트 상품과 택배 화물을 함께 실은 드론은 현지 드론 스탠드에 물건을 내려놓았다. 지역 관계자는 “비가 많이 오면 산사태로 도로가 막혀 고립되는 곳이어서, 그런 때 드론으로 식료품과 의약품을 운반해 준다면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나가사키현 가미고토병원 옥상에 의약품을 실은 드론이 착륙하고 있다.(메디팔홀딩스 제공)
▲나가사키현 가미고토병원 옥상에 의약품을 실은 드론이 착륙하고 있다.(메디팔홀딩스 제공)

도서 지역 의약품 배송도 드론으로 해결

의료 공백 해소를 겨냥한 실험도 속도를 내고 있다. 메디팔홀딩스는 지난달 20일, 자회사 ‘토우시치’와 드론 물류 서비스 회사 ‘소라 이이나’가 나가사키현 아오카타 지역에서 일본 최초로 ‘에어리어 포괄’ 레벨4 비행을 적용한 의료용 의약품 배송 실증을 실시했다고 발표했다.

이번 실험에서 소라 이이나는 국토교통성 항공국으로부터 비가시권 비행(레벨4) 허가를 받고, 고정익(비행기형) 드론과 회전익 드론을 조합했다. 비가시권 비행은 드론 조종사가 눈으로 드론을 보지 않고, 관제시스템으로 원격 조정하는 것을 뜻한다. 먼저 고정익 드론으로 아오카타의 중계 지점까지 의약품을 운반한 뒤, 같은 지점에서 회전익 드론으로 갈아 태워 시가지를 가로질러 인근 병원 옥상까지 배송하는 방식이다. 메디팜홀딩스 관계자는 “바다로 둘러싸인 도서 지역에서 병원까지 가는 것 자체가 부담인 고령 환자들을 위해, ‘하늘 길 약국’을 만들려는 시도”라고 설명했다.


인구밀집지역 상공도 한 번에 비행

와카야마현 와카야마시에서는 인구가 밀집한 도시 상공을 통과하는 ‘레벨 3.5’ 드론 비행 실증이 이뤄졌다. 드론 업체 에어로넥스트는 지난달 6일, 넥스트 딜리버리와 함께 와카야마시에서 인구밀집지역을 포함한 루트로 레벨 3.5 비행을 실시했다고 밝혔다.

레벨 3.5는 2023년 12월 규제 완화 방침에 따라 신설된 비행 구분으로, 산간·도서 등 무인지대에서의 비가시권 비행(레벨3)에 기체 탑재 카메라 등 디지털 감시 시스템을 결합해, 일정 조건 아래에서 지상 보조 인력과 통제선 설치 의무를 완화해 주는 제도다. 실증에서 드론은 와카야마 시내 인구 밀집 구역에 위치한 지역 병원 부지에서 이륙해, 교외 산간 지역의 공원까지 약 4.3㎞를 10분가량 비행하며 도시락을 배송했다. 이 노선 중 약 250m 구간이 인구밀집지역 상공이다. 병원 조리실에서 만든 도시락은 원래 고령층에 인기가 높았지만, 인력 부족으로 산간 판매 거점까지 운반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사업 주체들은 병원을 거점으로 한 이 물류 모델이 향후 왕진용 의약품, 혈액·검체, 처방약 등 의료 물류 전반으로 확장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일본에서 이런 드론을 활용한 다양한 사업이 추진되고 있는 것은 인구 감소와 고령화로 기존 트럭·택배 물류망을 유지하기 어려운 지역에서 드론이 생활 인프라를 떠받치는 실질적 수단으로 떠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이와 유사한 노력이 진행되고 있다. 국토교통부는 ‘K-드론배송 상용화 사업’을 통해 도서 지역을 중심으로 드론 기반 배송 서비스를 전국적으로 확산하기 위한 실증 도시를 구축하고 있다. 2024년에는 섬·공원·항만 등 50개 지역에서 2993회 배송 실증을 성공적으로 마쳤으며, 올해에는 배달 거점을 전국적으로 150여 개, 500여 곳 수준으로 확대해 사업을 추진 중이다.

일본의 경우 단순히 트럭이나 선박을 드론으로 대체하는 데 그치지 않고, 기존 물류 수단과의 연계, 지역 유통 기업과의 협업, 관련 규제의 적극적인 개선을 함께 추진하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하늘길’을 어떻게 설계하느냐가 고령자의 일상과 지역의 생존을 가르는 새로운 변수가 되고 있다.

  • 좋아요0
  • 화나요0
  • 슬퍼요0
  • 더 궁금해요0

관련 뉴스

  • [카드뉴스] 달라지는 국민연금 추납기준, 핵심 Q&A
    [카드뉴스] 달라지는 국민연금 추납기준, 핵심 Q&A
  • KB골든라이프 치매안심신탁, 자격조건·사후수익자 지정 방법은?
    KB골든라이프 치매안심신탁, 자격조건·사후수익자 지정 방법은?
  • “치매 바로 알자” 하나은행 PB 전원 ‘기억친구’ 교육 이수
    “치매 바로 알자” 하나은행 PB 전원 ‘기억친구’ 교육 이수
  • 국민연금 감액 기준 완화…초과소득 200만 원 미만 감액 폐지
    국민연금 감액 기준 완화…초과소득 200만 원 미만 감액 폐지
  • 국민연금 추납 꼼수 차단…내년부터 ‘납부기한 기준’ 적용
    국민연금 추납 꼼수 차단…내년부터 ‘납부기한 기준’ 적용
저작권자 ⓒ 브라보마이라이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브라보 스페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