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양원 물리·작업치료사, 위법 걱정에 재활 대신 체조만

입력 2025-12-09 12:00

의료행위·기능회복훈련 경계 모호… 재활 받으러 외부 병원행 "돌봄 부담 키워"

▲경기도의 한 요양원에 설치된 보행 훈련 장비 '워킹레일'. 의료 현장에서 주로 쓰이던 전문 기기이지만, 최근 요양원의 고급화 추세에 따라 이를 도입하는 시설이 늘고 있다.(이준호 기자)
▲경기도의 한 요양원에 설치된 보행 훈련 장비 '워킹레일'. 의료 현장에서 주로 쓰이던 전문 기기이지만, 최근 요양원의 고급화 추세에 따라 이를 도입하는 시설이 늘고 있다.(이준호 기자)

노인복지법상 노인요양시설의 물리·작업치료사 의무 고용을 법제화하고 있지만, 정작 이들의 업무 범위가 불확실해 노인들의 재활이 ‘골든타임’을 놓치고 있다는 지적이 늘고 있다.

현행 노인복지법 시행규칙은 입소자 30명 이상 노인요양시설(이하 요양원)에 물리치료사 또는 작업치료사를 1명 이상 의무 배치하도록 하고, 100명을 초과할 때마다 1명씩 추가하도록 규정한다. 고령·다질환 어르신의 신체 기능을 유지하고, 요양원에서도 일정 수준의 재활을 보장하겠다는 취지다. 문제는 이 조항이 의료기사법과 만나면서 발생한다.


“요양원에선 잠재적 위법자 돼”

요양원에는 의사를 상근직으로 둘 의무가 없다. 대개 월 2회 안팎으로 외부 의사가 방문하는 ‘촉탁의’ 제도로 의료 공백을 메운다. 반면 의료기사 등에 관한 법률은 물리·작업치료사가 의사의 ‘지도’ 하에 업무를 수행해야 한다고 정하고 있다. 원칙대로라면 의사가 상주하지 않는 요양원에서 할 수 있는 재활 치료는 극히 제한적이다. 보건당국이 요양원에서 이들의 치료를 노인장기요양보험 체계의 ‘기능회복훈련’으로 해석해 일정 부분 허용해 왔지만, 어디까지가 기능회복훈련이고 어디서부터가 의료행위인지를 둘러싼 경계는 여전히 모호하다.

양대림 대한물리치료사협회장은 “우리나라 물리치료 교육과 면허 체계는 미국이나 OECD 국가들과 동일한데, 유독 한국만 ‘의사의 지도’를 의무화해 병원 밖 재활을 사실상 불법으로 만들어 놓았다”며 “노인요양시설이나 방문재활 현장 등에서 열심히 일하는 물리치료사들이 모두 잠재적 의료법 위반자로 남아 있는 모순된 구조”라고 지적했다.

요양원을 방문하는 촉탁의의 모호함도 장애물이다. 촉탁의 상당수는 고혈압·당뇨 등을 관리하는 내과·가정의학과 전문의여서 근골격계·신경계 등 재활에 대한 전문적인 처방과 지시는 기대하기 어렵다. 요양원 물리치료사가 촉탁의에게 구체적인 재활 지도를 요청한다고 해도, 상근하지 않는 의사가 의료사고 위험을 떠안으면서까지 적극적인 재활 계획을 세우기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물리·작업치료사 식사 보조, 잡무에 내몰려

인력 구조도 문제를 키운다. 물리·작업치료사 1명이 60~70명의 입소자를 담당해야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담당 어르신은 많은데 전문적인 치료는 법·제도상 제약이 크다 보니, 실제 요양원 치료 프로그램은 단체 체조와 간단한 맨손 운동 위주로 운영될 수밖에 없다. 현장의 한 물리치료사는 “스스로 걷거나 식사하는 기능을 회복하는 것에 대한 어르신들의 욕구는 매우 높은편”이라고 설명하고, “현재로선 적극적인 개입이 어려워 안타깝다”고 말했다.

때문에 통증 조절과 본격적인 재활 치료는 외부 정형외과에 의존하게 되고, 어르신들은 병원과 시설을 오가는 ‘원정 진료’에 내몰린다. 동행 부담과 비용은 결국 가족의 몫이다. 집에서 모실 수 없어 요양원에 모셨지만, 재활을 둘러싼 부담만큼은 여전히 가족 어깨에 남아 있는 셈이다.

기능회복훈련의 현실을 보여주는 연구 결과도 있다. 2023년 발표된 ‘요양시설의 기능회복훈련 서비스 제공에 관한 연구’는 전국 요양시설 73곳, 입소자 454명을 표본으로 삼아 1주일 동안의 기능회복훈련 시간과 횟수를 조사했다. 그 결과, 입소자 1인당 주당 신체활동훈련 시간은 평균 9.56분(3.34회), 이동·보행훈련은 6분(4회), 옷 갈아입기·배설·목욕·식사 등 일상생활동작훈련은 12.04분(4회)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재활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신체·보행 훈련조차 주당 10분 안팎에 불과한 셈이다.

물리·작업치료사의 고용만 의무화됐을 뿐, 구체적인 업무 범위가 법률로 명시돼 있지 않은 점도 구조적인 문제다. 요양원 입장에서는 이들에게 모호한 재활 업무를 부여할 바엔, 식사 보조나 송영, 각종 행정 업무를 맡겨도 제재할 근거가 마땅치 않다.

최근 몇 년 사이 대형 자본을 앞세운 고급 요양원이 잇따라 등장하고 요양원간 경쟁이 심화되면서 일부 요양원은 개원 단계부터 물리치료실 등 다양한 시설을 고급화된 서비스로 삼고 있다. 그러나 현 시점에선 제공할 수 있는 서비스는 ‘가정용 안마기’ 제공 수준이어서, 장비와 인프라는 고급화되는데, 제도가 발목을 잡아, 손해는 소비자들에게 돌아가는 것 아니냐는 의견도 나온다.


돌봄통합 앞두고 제도 개선 요구 커

제도 개선 논의는 의료계 직역 갈등과도 맞물려 있다. 대한물리치료사협회는 의사의 ‘지도’를 ‘처방’으로 바꾸자는 입장이다. 의사가 약을 처방하면 약사가 조제하듯, 의사가 필요한 치료를 처방하면 물리·작업치료사가 그에 따라 독립적으로 치료를 수행할 수 있게 해 달라는 것이다. 반면 대한의사협회는 환자 안전과 책임 소재, 장차 물리·작업치료사의 단독 개원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이유로 반대하고 있다.

현장의 요구를 반영해 정치권도 일부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남인순 의원과 국민의힘 최보윤 의원은 지난 10월 ‘의료기사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을 공동 발의했다. 개정안은 의료기사의 업무 근거를 기존 ‘의사 또는 치과의사의 지도’에서 ‘의사 또는 치과의사의 지도 또는 처방·의뢰’로 넓히고, 처방에 따라 업무를 수행한 경우 그 내용을 서면으로 보존하도록 해 안전성을 담보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현장의 현실을 법률에 반영해, 방문재활·방문 물리치료 등 지역사회 기반 재활 서비스를 제도권 안으로 끌어들이자는 취지다.

이에 대해 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한국노인복지중앙회·한국환자단체연합회·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대한의료기사단체총연합회 등 27개 단체는 공동 지지성명을 내고 조속한 통과를 촉구했다. 이들은 “지역사회 통합돌봄·돌봄통합지원법의 성공과 장애인·노인의 건강권 보장을 위해, 거동이 어려운 환자가 가정에서 방문 재활·방문 물리치료를 더 쉽게, 안전하게 받을 수 있는 법적 기반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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