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컬처 찾는 산레모 가요제, 한국 시니어 모델 무대 올라

입력 2026-02-13 10:39 수정 2026-02-13 13:49

산레모에서 한복 패션쇼, 밀라노선 런웨이… “나이든 모델 아닌 프로 되고파”

▲백연희 씨(오른쪽)와 윤한나 씨가 산레모·밀라노 무대를 앞두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두 사람은 “나이 든 모델이 아니라 당당한 프로로 인정받고 싶다”고 말했다.(이준호 기자)
▲백연희 씨(오른쪽)와 윤한나 씨가 산레모·밀라노 무대를 앞두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두 사람은 “나이 든 모델이 아니라 당당한 프로로 인정받고 싶다”고 말했다.(이준호 기자)

시니어들에게 이탈리아 가요 칸초네는 익숙한 곡이 많고, 덕분에 그 중심에 서 있는 산레모 가요제 역시 잘 알려져 있다. 칸초네의 고향으로 꼽히는 곳은 이탈리아 해안도시 산레모에선 매년 이 가요제가 열린다. 1951년 시작해 올해 76회째를 맞는다.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이 음악축제 역시 전 세계를 휩쓴 K-컬처 열풍을 비켜가진 못한 듯하다. 이탈리아 언론사 인포마 프레스(Informa Press)의 한국문화 전문 자매 매체 KoreaME는 이달 25일, 산레모 가요제의 부대행사 가운데 하나로 한국을 알리는 무대를 준비하고 있다. 그 무대에 한국의 시니어 모델 두 사람이 오른다. 주인공은 백연희 씨와 윤한나 씨. 현지 무대를 앞둔 두 사람을 만났다.

(이준호 기자)
(이준호 기자)

“시니어 모델 활동의 전환점 삼고파”

백연희 씨는 20대 시절 스타일리스트로 패션 현장을 먼저 경험했다. 이후 결혼과 공백을 거쳐 지금은 비영리재단에서 후원사업을 맡아 일하고 있다. “모델이 되고 싶다고 마음먹은 건 좀 됐는데, 아이 대학 보내면서 시작하게 됐어요.” 모델 경력은 1년 반. 그는 “아직 모델이라고 하기보다는 배우러 가는 과정”이라고 자신을 낮춰 말했지만, “조금 느려지더라도 나만의 색깔을 내며 천천히 가고 싶다”고 각오를 밝혔다.

윤한나 씨는 외국계 기업에서 무역·해외영업을 20년 넘게 했다. 퇴직 후에는 스터디카페를 운영 중이다. 그러다 ‘서울문화예술대학교 모델학과’에 들어가 1학년부터 다시 시작했다. 단순히 모델 생활을 원했던 것이 아니라 시니어 산업에 직접 들어가 체험해보고, 기회를 모색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한 때 무용가를 지망했던 학창시절의 경험도 반영됐다.

두 사람은 이번 이탈리아에서의 활동에 기대가 크다. 이들은 엘리트모델에이전시(EMA)와 함께 산레모에서 열리는 K-컬처 행사에서 한국한복진흥원이 후원하는 한복 패션쇼를 선다. 이후 밀라노로 건너가 3월 2일, ‘밀라노 패션위크’ 기간에는 주밀라노 대한민국 총영사관이 후원하는 ‘밀란 러브스 서울’ 패션행사에서 다른 모델들과 런웨이를 걷게 된다. 젊고 유명한 톱모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예정이다.

윤한나 씨는 이번 무대에 임하는 자세가 남다르다. 과거 해외에서 한복을 입고 거닐었을 때 받았던 현지인들의 뜨거운 반응을 기억하기 때문이다. 그녀는 "단순한 개인의 무대를 넘어, 한국 문화를 알린다는 사명감과 책임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무용을 공부하며 익혔던 한국 무용의 선을 살려, 정적이면서도 우아한 한복의 포즈를 소화하기 위해 지금도 개인 교습 선생님과 함께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백연희 씨 역시 ‘국가대표’라는 마음가짐으로 유튜브를 통해 과거 이탈리아 한복쇼 영상을 찾아보며, 현지 분위기에 맞는 연출을 고심 중에 있다고.

▲모델 백연희 씨.(이준호 기자)
▲모델 백연희 씨.(이준호 기자)

백연희 씨는 이번 이탈리아에서의 도전이 꿈을 실현하는 무대가 된다. 백연희 씨는 “모델을 시작할 때10년 안에 명품 쇼의 모델로 서자가 목표였다”며, “이번 기회를 계기로 그 꿈이 생각보다 빨리 이뤄질 수도 있겠다”고 기대했다.

윤한나 씨는 “국내에서는 시니어 모델 업계가 젊음을 흉내 내는 듯한 방향으로 흐르는 게 아쉽다”며, “시니어 모델들이 비슷비슷한 무대에 한정되는 것 같다”고 밀라노를 선택한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해외 런웨이에서 나이 든 모델들이 ‘시니어’라는 지칭 없이 프로로 일하는 장면을 목격할 수 있다”며 “해외에서 직접 경험하고, 국내에서 활동하는 분들에게도 ‘다른 방향’이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모델 윤한나 씨. (이준호 기자)
▲모델 윤한나 씨. (이준호 기자)

“매일 2만 보씩 걸으며 무대 준비해”

그래서 두 사람에게 산레모와 밀라노의 무대는 ‘다음’을 위한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공짜 점심’ 같은 성과를 기대하진 않는다. 백연희 씨는 완성도 높은 쇼를 위해 스트레칭과 마사지로 하루를 시작하고, 매일 1만 보 이상 걷는 루틴을 지키고 있다고 말했다.

“매일 두 시간 가까이 걸으며 잡념을 떨쳐냅니다. 명상하듯 걷고, 조금이라도 나아지려 애씁니다. 올해는 ‘모멘텀의 해’로 정했어요. 늘 ‘이 정도는 해야 나설 수 있다’는 마음에 스스로를 묶어두곤 했는데, 이제는 그 틀에서 빠져나와 방향을 바꿨습니다. 뭐든 시도해 보고, 도전해보자는 쪽으로요.”

윤한나 씨는 이번 경험을 통한 목표를 ‘시야와 경험치’라고 불렀다. 다녀오고 나면 더 부족한 게 보일 것이고, 그 부족함을 학교 수업과 현장 경험으로 채우면서 좀 더 다양하게 활동을 해 나가고 싶다고 했다. “시니어 모델 업계에서 휩쓸려 다니는 많은 사람 중 한 명이 아니라, 정말 모델로써 지명도를 높이고 프로로서 활동하는 한 사람이 되고 싶어요.“

시니어 모델로서의 활동은 업계의 다른 구성원들처럼 고되고 힘든 순간이 있다. 백연희 씨는 “현장에서 오래 버티는 게 어렵다”고 털어놓았다. “아침부터 6~7시간씩 기다려야 하는 시간들, 그 낯선 시간을 견디는 법이 아직은 익숙하지 않아요.”

윤한나 씨는 조언을 얻을 롤모델이 많지 않다는 점도 아쉬움으로 꼽았다. “시니어 모델로 활동하면서 ‘이럴 땐 이렇게 해야 한다’고 말해주는 선배를 만나기가 쉽지 않아요. 결국 누군가가 길을 알려주지 않는 자리에서, 스스로 부딪치며 배우는 셈이죠.”

그럼에도 두 사람이 이 세계를 떠나지 않는 이유는 분명했다. ‘진지함’을 지키고 싶어서다. ‘나이든’ 모델이 아닌 한 사람의 모델로 인정받고 싶다고 입을 모았다.

백연희 씨를 붙드는 건 대중의 ‘안목’이었다. “사람들은 눈이 있어요. 결국 멋있는 걸 원해요. 멋있는 시니어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언젠가는 그 멋을 찾는 시간이 올 거고, 그날을 위해 노력하는 일이 필요하다고 봐요.”

윤한나 씨의 꿈은 프로로 인정받는 일이다. “현장에서 느끼는 부족함을 학교와 수업을 통해 꾸준히 채워가며, 나만의 길을 가고 싶어요. 시니어 모델 시장에서도 아마추어가 아니라 ‘프로 모델’로서 인지도를 높여가는 사람들이 분명히 나올 거라고 믿어요. 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제가 가진 경험치를 차근차근 쌓아갈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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