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초청강연을 위해 한국을 찾은 무라키 타다시 사회복지법인 협동복지회 전 이사장을 만났다. 그는 일본 지역포괄케어 현장에서 오랜 시간 제도와 현실의 간극을 메워온 실천가로, 현재는 협동복지회뿐만 아니라 전국 생협 복지사업 연대기구와 주식회사 CWS의 자문으로 활동 중이다.
그는 강연을 통해 한국 돌봄 현황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보여줬는데, “한국 사정에 밝은 일본 내 학자들과 교류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알게 됐다”며, "한일 양국을 오가며 고령자의 삶과 복지 증진을 위한 연구와 실천에 매진했던 故 사사키 노리코 전 강남대학교 교수와의 인연으로 한국의 연금 제도 등에 대해 익혔다"고 말했다. 또 무라키 전 이사장은 한류를 즐기는 '친한파'로 한국의 역사를 다룬 영화나 드라마를 즐겨본다고.
그는 양국의 돌봄 제도를 비교하면서 “한국이 일본의 제도를 그대로 따를 필요는 없다”고 조언했다. 그는 일본도 개호(돌봄의 일본식 표현) 보험을 포함해 여러 제도를 운영해 왔지만, 모두 성공한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성공과 실패를 함께 놓고 의견을 나누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무라키 전 이사장이 강조한 것은 제도의 이름보다 돌봄 수요의 변화였다. 그는 초고령사회로 접어들수록 75세 이상의 후기 고령자와 치매 환자, 노인 1인 가구의 증가가 돌봄의 판을 흔들 것이라고 경고했다.
“고령층을 하나의 집단으로 봐서는 안 됩니다. 65~74세와 75세 이상은 같은 집단이 아니에요. 74세까지의 전기고령자 가운데 치매가 있는 사람은 20명 중 1명, 5% 정도이지만 75세를 넘기면 급격히 올라갑니다. 전혀 다른 집단이죠. 앞으로 돌봄은 단순한 신체 기능 지원이 아니라 인지 저하와 장기요양 수요에 대응하는 방향으로 옮겨갈 겁니다. 이를 대비해야 합니다.”
“고령자 전부를 하나의 집단으로 봐선 안돼”
그는 이 문제를 독거와 빈곤의 문제와도 연결해 설명했다. 무라키 전 이사장은 “혼자 사는 고령자가 늘고 있고, 그 절반 이상이 여성”이라며 한국의 높은 노인빈곤율을 우려했다. 이어 “앞으로 고령자 주거가 더 중요해지더라도 현실적으로 들어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가격 문제도 있고, 이주 문제도 있다”며 “결국 지역에서 어떻게 받쳐줄 것인가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시설과 주택 공급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치매 돌봄에 대해 그는 지역에서 감당하는 구조가 필요하다고 봤다. 그는 가족이 있다고 해서 반드시 더 쉬운 것은 아니라고 했다. 무라키 전 이사장은 “가족돌봄을 할 때 어느 쪽이 더 쉬우냐고 하면 가족이 없는 편이 더 쉬운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가족이 돌봄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채 여러 방식으로 개입하면 조정이 더 어려워질 수 있다는 취지다. 결국 핵심은 가족 유무보다 지역이 실제로 돌봄을 떠받칠 수 있느냐는 데 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일본의 한 사례를 들어 치매 고령자가 지역 안에서 생활을 이어가는 구조를 소개했다. 무라키 전 이사장은 “치매가 있어도 자택에서 살 수 있고, 그룹홈에서 나갔다 해도 지역이 함께 보고 있는 곳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배회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목적 없는 배회는 거의 없다”며 “길을 잃은 것 같아도 집으로 돌아가 있는 경우가 많고, 주민이 연락해 주기도 한다”고 했다. 치매를 지역사회가 어떻게 받아들이느냐가 중요하다는 설명이다.
“지역포괄케어가 성공적으로 이뤄지려면, 지역민들이 합심해 돌봄에 참여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인식의 개선이 필요한데 일본도 처음부터 주민들이 협조적인 것은 아니었어요. 처음에는 밭을 망치면 어떻게 하느냐, 불이 나면 누가 책임지냐고 했었죠. 이를 개선하기 위해 지역 학습회와 치매 공부모임 등을 통해 우리가 돌봄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고, 왜 필요한지 끊임없이 알렸습니다.”
무라키 전 이사장은 지역포괄케어의 핵심을 “안심하고 살 수 있는 마을 만들기”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건 행정만으로도 안 되고, 사업자만으로도 안 된다. 마지막에는 주민의 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통합돌봄이 제도 설계에 그치지 않고 지역사회 차원의 기반과 참여를 필요로 한다는 뜻이다.

“의료, 사회복지 직역 간 갈등 일본도 마찬가지”
돌봄의 통합을 앞둔 우리 사회의 현안 중 하나는 의료와 사회복지 분야의 직역 간 갈등이다. 사업의 주도권에 대한 입장 차이와 상호 협조 과정 등에서 파열음이 발생하고 있다. 그 역시 의료와 돌봄 사이의 분절을 중요한 문제로 봤다. 무라키 전 이사장은 “의사가 생각하는 지역포괄케어와 우리(사회복지 기관)가 생각하는 지역포괄케어는 꽤 다르다”며 “누가 중간에서 연계시킬 것이냐고 하면, 역시 행정의 역할에 기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의사나 의료기관이 스스로 자각해서 협조해 주면 좋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돌봄 쪽에서는 의사에게 말을 걸기 쉽지 않죠. 문턱이 높아요. 그래서 협동복지회의 경우 지역 의료기관과 직접 소통하며 긴밀하게 협조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일본에서도 의료와 돌봄 사이 벽은 여전히 존재합니다.”
그는 결국 통합돌봄에서 필요한 것은 제도 명칭보다 실제 연결 기능이라고 봤다. 이용자의 욕구를 파악해 의료와 돌봄, 가족과 기관을 이어 붙이는 역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무라키 전 이사장은 “케어매니저 중에서도 의료기관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간호사 출신들이 중요한데, 제도 도입 이후 낮은 대우와 과중한 잡무 등으로 모두 병원으로 돌아가 버렸다”며 “이들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크게 공감하지만, 일본의 케어매니저 제도나 운영도 허점이 많아 그대로 가져다 쓸 필요는 없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돌봄 노동자에 대한 인식, 처우 개선 우선 돼야”
외국인 돌봄인력에 대해 무라키 전 이사장은 “충분히 역할을 할 수 있지만 제도와 운영에서 주의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일본은 외국인 돌봄인력 수급을 민간에 맡겨버리니 값싼 노동력으로만 보는 사업자들도 적지 않아요. 그런 식으로 인력을 다루면 일본에 오지 않죠. 정책의 성패는 송출기관과 수용기관의 운영 수준, 그리고 돌봄 노동의 사회적 지위에 달려 있다고 생각합니다. 현장에서 만난 외국인 돌봄인력들은 성실하고 동기부여도 돼 있어 일본인보다 더 큰 역할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일본의 복지 노동자의 사회적 지위도 지적했다. 그는 “인식과 급여 수준이 낮아 외국인 근로자들도 우수 인력은 서비스 등 다른 산업으로 빠진다”며 “이를 끌어올리고 전문성을 높이며 급여와 자부심을 함께 보장하지 않으면 상황은 더 어려워질 것”이라고 진단했다.
무라키 전 이사장은 인터뷰를 통해 시설 확충만으로는 초고령사회의 돌봄 수요에 대응하기 어렵고, 신체 기능 지원 중심의 접근도 한계가 있다고 반복해서 강조했다. 치매, 독거, 후기고령, 의료와 돌봄의 분절, 돌봄 노동의 위상 같은 문제를 함께 다뤄야 한다는 얘기다.
그는 마지막으로 일본의 제도를 정답으로 보지 않기를 당부했다. 한국은 중앙정부 주도의 사업 추진이나 전국적으로 동일한 보험제도 등 강점이 있기 때문에, 통합돌봄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일본의 시행착오를 반면교사로 삼아 주기를 부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