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간정원 ‘들꽃마당’이 출생한 건 30여 년 전이다. 당시 이웃들은 입을 모아 핀잔했다지. “벼농사라도 지어 먹을 걸 생산하지 않고 웬 정원을?” 그들은 정원주가 정신 나간 짓을 한다며 혀를 찼다. 여론이란 때론 헛다리를 짚는 법. 시절은 변전해 이제 정원의 전성기가 도래했다. “야, 정원주가 세상을 미리 영리하게 내다봤구나!” 이웃들의 촌평이 이렇게 바뀌었다.
정원이 하나의 트렌드로 부상한 요즘, 성황을 누리는 민간정원이 많다. 물론 난항을 겪는 곳도 있다. ‘들꽃마당’은 잔잔한 수면 위를 미끄러지듯이 나아가는 배처럼 경쾌하게 내달린다. 공휴일이면 연락부절(連絡不絕)로 사람들이 드나든다. 재방문객도 숱하다.

정원으로 들어선다. 꽃향기가 먼저 콧등을 치며 객을 맞이한다. 달짝지근한 공기가 폐부 깊숙이 스민다. 크리스털처럼 투명한 햇살의 대열은 연신 하강한다. 그것은 식물들이 내장한 광합성 공장을 힘차게 돌아가게 하는 한편, 태양광의 강렬한 조명효과로 수목의 자태를 또렷이 부각한다. 덕분에 정원이 시리도록 눈부시다. 절정에 오른 기운생동이 공간에 가득하다. 햇살과 식물이 합작한 ‘태양의 축제’가 펼쳐지는 중이다. 이 순간을 붙들어 말뚝에 묶어두고 싶다.
정원엔 나무들이 가득하다. 그런데 첫눈에 다가오는 경관이 평범치 않다. 눈길을 고정하고 유심히 들여다볼 만한 장면이 많다. 정교한 기획과 치밀한 연출로 수목이라는 오브제의 기량을 극대화해 무대에 올린 걸 알 만하다. 식물들의 재기발랄한 경연을 목도할 수 있는 정원이다. 인위와 인공으로 창의적 미를 구현한 게 예술일 텐데, 이곳의 경관엔 예술적인 요소가 풍부하게 녹아들어 있다. 정원주 전천만의 심혈과 장인정신이 곧바로 엿보이는 정원이다.

정원수의 주류는 화초류보다 목본식물이다. 특히 상록수가 많다. 소나무·향나무·편백·진백(향나무의 일종)·꽝꽝나무 등을 적재적소에 골고루 배치, 전체 경관의 균형과 안정감을 도모했다. 건축물의 기둥처럼 정원의 뼈대 노릇을 하는 이 상록수들 일부의 형상은 저마다 독특해 두드러진다. 줄기부터 잔가지까지 자르고 비틀고 굽혀 야릇한 조형미를 빚어낸 게 아닌가.
이는 전지(가지치기)의 고수이자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실력파 가드너인 정원주의 고독하고 집요한 열정의 산물이다. 주로 화분에 심은 식물에 쓰이는 전통 분재 기법을, 그는 과감하게 조경수에 적용했다. 예술에 맞먹을 아이디어와 미학을 나무에 쏟아부었다. 분재 기술을 자연에 역행하는 행위로 봐 거북하게 여기는 이들도 있으리라. 하지만 예부터 ‘살아 있는 예술’로 널리 인정된 장르다. 분재 타입 조경수들이 드러내는 작품성에 관람객들은 매료되게 마련이다. 특히 보석 세공처럼 꼼꼼하게 다듬은 몇몇 소나무의 수려한 모습에 찬탄한다.

나무를 인위적으로 다듬어 동물이나 기하학적 형상을 꾀한 걸 토피어리(Topiary)라고 한다. 사뭇 독특한 모습을 지닌 ‘들꽃마당’의 일부 나무들이 바로 토피어리다. 가령 곳곳에 산재한 진백은 과격한 전정으로 잎과 가지의 대부분을 털어낸 나머지 추상적인 조각작품을 연상시킨다. 껑충한 줄기 끝에 간신히 남은 잎들이 뭉쳐 이룬 구형(球形)을 보라. 초록색 구름 한 덩어리 내려앉은 듯 몽환적이다. 절규를 토하며 달리는 사람의 산발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이렇게 진백의 토피어리가 흥미롭다. 조각가 자코메티의 길고 가늘고 심플한 작품을 떠올리게 한다. 차이가 있다면 화가의 작품은 박제처럼 고착됐지만, 나무의 예술은 살아 숨을 쉰다는 점일 터다.
나무는 신기하고 유쾌한 종족이다. 그들의 창조적 재능엔 한계가 없다. 그러나 때로 농담을 건네듯 우스꽝스러운 짓을 한다. 돌연변이가 바로 그렇다. 유전자의 버그가 유발한 일종의 질병인 이 기이한 변형에 애호가들은 반색하며 팔짝팔짝 뛴다. 변이된 나무의 파격과 이색에 엄청 비싼 값이 매겨지기도 하고. 그런데 ‘들꽃마당’엔 진기한 변이종이 있다. 희귀한 나무를 찾아 전국을 뒤진 정원주는 변이 소나무 5종, 즉 해송·남송·여송·황금송·금피오엽송을 수집했다. 놀라운 건 따로 있다. 정원주가 5종을 접목해 하나로 합성시켰다는 게 아닌가.

정원주에 따르면, 저 기적적인 합체 소나무는 지구상에 유일무이한 특이 수목이다. 이상한 나무는 더 있다. 돌연변이를 일으킨 두송·진백·황금진백을 하나로 접목한 나무가 있으며, 변이종 황피단풍도 있다. 이쯤이면 돌연변이들이 활갯짓을 하는 형국이다. 그러나 간과하고 휘익 스쳐가기 십상이다.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잎의 컬러와 무늬, 수피의 질감을 식별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들꽃마당’의 각별한 개성은 산책로에서도 환히 비친다. 정원의 전체적 지형은 호리병을 닮았다. 입구 쪽은 좁아 옹색하지만 안으로 들어갈수록 넓어지는 구조를 지녔다. 반전의 묘미를 느끼게 하는 형국이다. 산책로는 비좁다. 그러나 총연장은 1㎞에 육박할 정도로 길다. 따라서 구불구불 연속적으로 휘고 돌며 줄기차게 이어지는 동선을 따라 걷다 보면 대형 정원을 걷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고 만다. 사실은 약 3306㎡(약 1000평)에 불과한 면적인데도 말이다.
이 유난한 산책로는 정원주의 의도가 명민한 것임을 웅변한다. 그는 복잡한 미로처럼 극적으로 전개되는 다량의 통행로를 구사해 공간 확장 효과를 거두었다. 아울러 사람들로 하여금 좀 더 오래 걷게 해 정원의 들꽃과 관상수들을 빠짐없이 관람할 수 있게 유도했다. 아무리 좋아하는 사이라도 두 사람이 팔짱 끼고 나란히 걸을 수 없게끔 폭을 좁힌 데에도 뜻이 있다. 개별적으로 각자 거닐며 식물과 대화하라는 권장의 표식이다.
이래저래 이채(異彩)로 도드라지는 정원이다. 그렇다면 이곳의 명물은? 성형을 딱 부러지게 했음에도 억지 꾸밈이 보이지 않는 정원수들의 예술미? 답은 푹 익은 가드닝 기술의 보유자인 정원주 전천만 선생이지 싶다. 그는 초기 한때 “난데없는 정원을 꾸민답시고 미치광이 놀음을 한다”는 소리까지 들었다. 생계도 고단했다. 그러나 나무뿌리 같은 강단을 가지고 뛰어 원하던 걸 얻었다. 나무에서 익힌 순리와 지혜 역시 그를 밀어주었으리라.
“‘작지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정원’을 만들자는 꿈을 품고 살았다. 이제 어느 정도 빛을 보게 됐다. 나무를 나의 분신으로 여기고 동고동락한 덕분이다. 남은 꿈도 있다.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나무를 가꾸고 싶다. 나무를 생각하며, 웃으면서 가볍게 떠나고 싶다.”
그는 행복한 것이다. 알고 보면 사람보다 더 따뜻하고, 더 순수하고, 더 굳센 나무들과 노닌 일생에 안도할 수 있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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