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연둣빛 새순이 한층 짙어지고 따스한 햇볕은 열기를 더하며 세상은 왕성한 생명력을 뿜어낸다. 하지만 ‘일본의 지붕’ 도야마현으로 시선을 돌리면 전혀 다른 차원의 세상이 여행자를 기다리고 있다.
해발 3000m급 고봉들이 병풍처럼 이어진 일본의 ‘다테야마 구로베 알펜루트’. 일 년 중 절반 가까운 시간을 아득한 눈 속에 파묻혀 있던 이 거대한 산맥은 제설 작업을 마친 직후인 4월 하순부터 6월까지 극적이고 장엄한 풍경을 쏟아낸다.
계절의 경계를 허무는 특별한 여정. 여름 초입에 선 산 아래 풍경과 달리 고도가 높아질수록 겨울의 한 장면으로 걸어 들어가는 경이로운 시간은 오직 이곳에서만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하늘과 맞닿은 진입로, 비조타이라
일본 다테야마 구로베 알펜루트는 ‘루트’라는 이름에 힌트가 숨겨져 있다. 즉 이번 여행은 단 한 곳의 목적지를 향하는 것이 아니다. 도야마현의 다테야마역에서 나가노현의 오기자와역까지, 총 37.2㎞에 달하는 험준한 산악 구간을 다양한 교통수단을 갈아타며 횡단하는 거대한 여정 그 자체다.
여정의 시작점인 다테야마역에서 케이블카에 몸을 싣고 약 7분간 가파른 경사를 오르면, 해발 977m의 ‘비조타이라’에 닿는다. 산 아래의 포근한 날씨와 달리, 이곳에 내리는 순간 공기의 결이 달라짐을 체감할 수 있다. 수천 년의 시간을 품은 원시림 비조타이라 일대는 봄이 되면 짙어지는 녹음 사이사이로 아직 다 녹지 않은 맑은 잔설이 융단처럼 깔려 있다.
비조타이라에서 알펜루트의 최고(最高) 지점인 ‘무로도’로 향하는 고원 버스는 여정 중 손에 꼽을 만큼 극적인 시각적 변화를 경험하는 구간이다. 해발고도가 높아질수록 차창 밖 풍경은 신록의 푸른빛에서 옅은 회색으로, 이내 눈이 시리도록 완벽한 무채색의 흰색으로 변모해간다.
50분간 버스 이동의 백미는 인근에 있는 350m 아래로 곤두박질치는 ‘소묘 폭포’다. 일본 제일의 낙차를 자랑하는 이 폭포는 본격적인 해빙기를 맞는 5월부터 다테야마 연봉에서 녹아내린 어마어마한 양의 물을 쏟아낸다. 맹렬하고 웅장한 물줄기는 해빙기가 빚어낸 오케스트라라고 할 만하다.

비현실적인 거대한 설벽, 유키노오타니
해발 2450m, 구름 위의 평원이라 불리는 ‘무로도 고원’은 알펜루트를 횡단하는 모든 여행자의 감동이 최고조에 달하는 구간이다. 무로도에는 전 세계 여행자들이 이곳을 찾는 단 하나의 이유, ‘유키노오타니(雪の大谷, 눈의 대계곡)’가 있다.
4월이면 겨우내 쌓인 다테야마의 눈을 깎아내고 파낸다. 그렇게 아스팔트 포장도로를 열면 도로 양옆으로 거대한 설벽이 세워진다. 버스 높이를 아득히 뛰어넘어 건물 6~7층 높이에 육박하는 거대한 눈의 협곡. 그 사이로 난 500m 남짓한 보행자 전용도로를 직접 걷는 경험은 경이로움을 넘어 비현실적인 감각을 일깨운다.
개통 직후인 4월은 아직 날이 흐린 경우가 많다. 날씨가 맑고 청명한 5월 이후 이곳을 찾아야 깎아지른 새하얀 눈벽과 그 위로 열린 짙푸른 하늘의 강렬한 대비를 제대로 즐길 수 있다. 다만 고산 지역의 특성상 날씨 변동이 크므로 맑은 날을 만나는 것은 대단한 행운이다. 본격적으로 기온이 올라 설벽이 다 녹으면 이곳은 들꽃이 가득 피어나는 천상의 화원이 된다.

인공물과 대자연의 묵직한 조화, 구로베댐
무로도 고원에서 전기버스를 타면 다이칸보역에 도착한다. 절벽에 제비집처럼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있는 다이칸보역 옥상 전망대에 서면, 눈앞에 구로베 호수와 우시로 다테야마 연봉의 장대한 파노라마가 거침없이 펼쳐진다.
이곳에서 다음 코스까지는 ‘다테야마 로프웨이’를 타고 이동한다. 발아래로 눈 덮인 거대한 계곡이 파도처럼 일렁이고, 정면으로는 뾰족하게 솟은 영봉들이 여행자를 맞이한다. 7분간의 이 공중 산책은 알펜루트 횡단에 역동적이고 입체적인 시각적 쾌감을 선사한다.
눈부신 북알프스 산세를 뒤로하고 이어지는 여정 끝자락에는 인간의 성취를 보여주는 ‘구로베댐’이 자리하고 있다. 1963년 완공된 이 댐은 무려 7년의 시간과 1000만 명의 인력을 동원한 건축물로, 일본 최대 규모인 168m의 높이를 자랑한다. 자연의 험난함에 맞선 인간의 끈기가 녹아 있는 장소다.
구로베 호수는 이 시기에 두 가지 얼굴을 가지고 있다. 따스한 봄 햇살을 받아 서서히 녹아내린 눈은 깊은 호수에 고여 잔잔한 수면을 자랑한다. 그러다가도 본격적인 방류 시기인 6월 하순부터 10월이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 거센 물줄기를 뿜어낸다. 새하얀 얼음과 짙푸른 호수, 고요함과 역동성, 대자연과 인공물이 공존하는 풍경은 6월에만 엿볼 수 있는 비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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