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대 여성 이 모 씨는 “어릴 적에는 엄마를 따라 동네 시장에서 옷과 신발, 먹거리를 샀다. 동대문이나 남대문처럼 큰 시장을 가는 일은 특별한 이벤트였다”며 “그 뒤로 대형마트나 온라인 쇼핑을 주로 이용했는데, 요즘은 SNS에서 시장에서만 구할 수 있는 아이템을 자주 본다. 친구들과도 ‘시장 한번 가볼까?’라는 이야기하고, 조만간 남대문시장에 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 씨에게 시장은 어린 시절의 생활 공간이자 특별한 나들이 장소였다. 한동안 대형마트와 온라인 쇼핑에 자리를 내줬던 시장이 다시 관심 목록에 들어왔다. 이번에는 엄마의 장바구니가 아니라 SNS 저장 목록이 길을 안내한다.
젊은 세대가 찾는 시장도 달라졌다. 반찬과 채소를 사는 동네 시장에서 남대문의 그릇·꽃·수입품 상가, 동대문의 원단·액세서리 부자재 상가로 관심이 넓어진다. 광장시장과 망원시장, 신당 중앙시장, 경동시장을 돌며 먹거리 여행을 즐기는 모습도 익숙해졌다. 시장은 장을 보는 장소에서 취향을 찾고 시간을 보내는 목적지로 영역을 넓히고 있다.
장 보는 곳에서 구경하러 가는 곳으로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가 지난해 2월, 수도권 만 19~59세 1000명을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81.2%가 최근 6개월 안에 전통시장을 방문한 경험이 있었다. 방문 목적 가운데 가장 높은 응답은 ‘단순히 구경하기 위해서’로 48.2%였다. 명절 준비나 반찬 구매보다 높았다.
시장 이용 방식의 세대 차이도 나타났다. 20대는 관광명소 방문 30.0%, 나들이·데이트 26.8%, 음식과 주류를 즐기기 위한 방문 22.4%로 다른 연령대보다 여가 목적이 두드러졌다. 20대의 41.0%는 SNS에서 시장 관련 콘텐츠나 방문 후기를 많이 접했다고 답했다.

응답자의 56.5%는 전통시장이 젊은이들도 찾는 ‘힙한 공간’이 돼가고 있다고 봤다. 새로운 핫플레이스가 돼간다는 응답도 53.6%였다. 다만 앞으로 전통시장 이용자가 전반적으로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은 37.4%에 머물렀다. 반면 최근 핫플레이스로 떠오른 시장에 가보고 싶다는 응답은 63.1%에 달했다.
모든 시장이 고르게 젊어지고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먹거리와 볼거리, 개성 있는 상품을 갖춘 일부 시장이 선택받고 있다. ‘전통시장’이라는 업태보다 그 시장에 가야만 만날 수 있는 경험이 방문을 이끈다.
가격은 싸지만 뻔하지 않은 쇼핑
시장 인기를 소비 위축만으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2025년 가구당 실질 소비지출은 전년보다 0.4% 감소했고, 2026년 1분기에는 전년 동기보다 3.1% 증가했다. 소비가 계속 줄고 있다기보다 고물가를 거치며 지출액이 커지는 요즘, 어디에 돈을 쓸지 까다롭게 고르는 성향이 강해졌다고 보는 편이 가깝다.
대한상공회의소가 2025년 발표한 ‘세대별 소비성향 변화와 시사점’에서도 30대 이하 가구는 식료품·음료 지출 비중을 3.9%포인트 줄인 반면 음식·숙박과 오락·문화 지출 비중은 각각 3.1%포인트 늘렸다. 생활비에는 민감하지만 외식과 여행, 문화처럼 경험이 남는 소비에는 지갑을 여는 흐름이다.
다이소를 비롯한 균일가 매장은 저가 소비를 일상의 영역으로 끌어왔다. 필요한 물건을 정해진 진열대에서 빠르게 찾을 수 있고, 가격도 예상하기 쉽다. 시장은 같은 저가 소비 안에서도 다른 즐거움을 제공한다. 상점마다 취급하는 물건과 가격, 재고가 달라 직접 걸으며 비교해야 한다.

남대문시장 공식 홈페이지는 주요 상품군을 의류·패션잡화, 액세서리, 주방·그릇, 수입품·문구, 꽃·공예품, 귀금속·카메라 등으로 나눈다. 한 장소 안에서 서로 연관성이 낮은 물건들이 뒤섞여 있다. 무엇을 살지 정하지 않고 들어가도 예상하지 못한 상품을 만날 가능성이 크다.
동대문종합시장의 재미는 완제품보다 재료에 있다. 한국관광공사는 이곳을 ‘원단과 의류 부자재, 액세서리, 혼수용품이 모인 의류재료 전문상가’로 소개한다. 소비자는 수많은 색과 모양의 파츠, 리본, 비즈, 단추 가운데 필요한 만큼 골라 자신만의 조합을 만든다. 남대문에서 취향에 맞는 물건을 발굴한다면, 동대문에서는 취향을 직접 완성한다.
온라인 쇼핑에서는 검색어를 먼저 입력해야 한다. 시장에서는 무엇을 찾는지 정확히 모르는 상태에서도 쇼핑을 시작할 수 있다. 발품을 팔아 마음에 드는 물건을 찾아냈다는 성취감도 따라온다. 적은 돈으로 오래 구경할 수 있고, 구매에 실패하더라도 부담이 크지 않다. 젊은 세대가 시장에서 얻는 만족은 가격표만으로 계산하기 어렵다.

SNS로 익히고, 우연을 발견하다
복잡한 시장은 초보 방문자에게 불편한 공간이기도 하다. 어느 건물 몇 층으로 가야 하는지, 무엇을 살 만한지, 가격을 물어봐도 되는지 알기 어렵다. 스타와 인플루언서의 시장 콘텐츠는 이 막막함을 줄여준다.
최화정은 공식 유튜브 채널에서 경동시장과 남대문 시장에서 백반, 갈치조림, 떡볶이 등을 먹고 시장에서 판매하는 의류와 사우나 용품까지 소개했다. 먹거리와 쇼핑을 묶어 시장에서 하루를 보내는 방법을 보여준다. 이지혜의 공식 유튜브 채널에는 ‘관종언니의 전통시장투어’라는 별도의 재생목록이 있다. 여러 지역의 시장을 찾아 음식과 상점, 가족 나들이 장면을 반복적으로 다룬다.

전문가가 시장을 고르는 장면도 콘텐츠가 된다. 중식당을 운영하는 정지선 셰프는 남대문 그릇상가에서 식기를 살펴보고 선택하는 과정을 공식 채널에 공개했다. 홍석천과 이원일 셰프는 ‘시장을 꼬시장’ 시리즈를 통해 전국 전통시장의 먹거리를 찾아다닌다. 시장 방문을 일회성 방송 소재가 아니라 반복 가능한 콘텐츠로 만든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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