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7.27

발전하는 돌봄 AI, ‘지켜보는 기술’에서 ‘돕는 기술’로

입력 2026-07-27 07:00

기억 자극부터 인력 운영까지… 해외 돌봄 현장, AI 활용 범위 넓혀

▲일본 니치이학관의 돌봄시설 이용자들이 생성형 AI 기반 ‘라디오 타임머신’을 들으며 대화를 나누고 있다. 이 기기는 이용자가 선택한 연도의 뉴스와 당시 유행가를 라디오 방송 형식으로 제공한다.(니치이학관 제공)
▲일본 니치이학관의 돌봄시설 이용자들이 생성형 AI 기반 ‘라디오 타임머신’을 들으며 대화를 나누고 있다. 이 기기는 이용자가 선택한 연도의 뉴스와 당시 유행가를 라디오 방송 형식으로 제공한다.(니치이학관 제공)

사회 모든 분야의 변화를 촉발시키고 있는 인공지능(AI)가 돌봄의 방식도 변화시키고 있다. 그동안 돌봄 현장에 도입된 AI는 낙상이나 배회, 이상 행동을 감지하고 고령자의 상태를 원격으로 확인하는 ‘감시형 기술’에 가까웠다. 그러나 최근 일본과 미국에서 공개된 사례들은 AI가 고령자의 기억과 정서를 자극하고, 부족한 돌봄 인력을 효율적으로 배치하며, 종사자의 행정 부담을 줄이는 단계로 확대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전성기 시절 떠올리는 라디오

대표적인 사례가 일본 니치이학관(ニチイ学館)이 돌봄시설에서 도입 검증을 진행하고 있는 ‘라디오 타임머신’이다. 일본 광고회사 TBWA하쿠호도가 개발한 이 기기는 1950∼1960년대 라디오를 본뜬 외형에 생성형 AI 기술을 결합했다.

이용자가 다이얼을 돌려 1950년부터 2025년 사이의 연도를 선택하면, 선택한 해의 오늘과 같은 날짜에 있었던 뉴스와 당시 히트곡을 라디오 방송 형식으로 들려준다. 뉴스 사이에는 실제 유행곡이 재생되며, 음성 콘텐츠는 매일 자동으로 바뀐다.

니치이학관은 올해 1월 하순부터 자사 돌봄시설 이용자들을 대상으로 사전 실증을 진행한 뒤, 3월부터 치매 고령자가 생활하는 그룹홈과 데이서비스 등에서 정식 도입 검증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사전 실증에서는 이용자들이 젊은 시절의 뉴스와 음악을 들으며 부모의 이름이나 과거 근무했던 회사 등 바로 전까지 떠올리지 못했던 기억을 이야기하는 모습이 관찰됐다. 이용자들은 자신의 경험을 다른 사람에게 설명하며 대화와 신체 움직임도 늘렸다.

기기를 이용할 때와 이용하지 않을 때를 비교한 결과, 표정 분석에서 웃는 표정 지표가 평균 8.7% 높게 나타났다. 일부 이용자는 이 지표가 23.8% 높아졌다. 몸짓과 손짓은 10% 증가했고, 1분당 발화량도 10.8단어 늘었다.

이 같은 접근은 하버드대 심리학자 엘렌 랭어의 ‘시계 거꾸로 돌리기’ 실험을 연상시킨다. 젊은 시절의 환경과 문화를 재현해 고령자의 기억과 행동을 자극하는 방식은 오래전부터 알려져 있었지만, 돌봄 현장에서 시대별 뉴스와 음악을 매일 준비하는 데는 상당한 인력과 시간이 필요했다.

라디오 타임머신은 생성형 AI를 이용해 이 같은 콘텐츠를 자동으로 갱신함으로써, 현장에서 지속하기 어려웠던 기억 회상과 대화 촉진 활동을 일상적인 돌봄 프로그램으로 구현하려는 사례로 볼 수 있다.

니치이학관은 올해 봄부터 개발사인 TBWA하쿠호도, 기타사토대 연구진과 공동으로 라디오 타임머신이 치매 고령자의 불안, 분노, 의욕 저하 등 행동·심리 증상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할 계획이다. 치매 증상이 없는 이용자를 대상으로도 정서 안정과 적극성의 변화를 검증한다. 연구 결과에 따라 보급형 기기를 제작하고 여러 시설로 도입 검증을 확대할 방침이다.

니치이학관은 이 프로젝트가 ‘칸 라이언즈 국제 크리에이티비티 페스티벌 2026’ 이노베이션 부문 초기단계 기술 카테고리에서 은상을 받았다고 지난 17일 발표했다.

돌봄 분야 인력난도 AI가 지원

미국에서는 부족한 돌봄 인력을 입주자의 실제 돌봄 수요에 맞게 배분하는 데 AI가 활용되고 있다. 미국 돌봄기술 기업 세이지는 지난 23일 고령자 주거시설과 전문간호시설을 위한 인력관리 솔루션 ‘레이버(Labor)’를 출시했다.

레이버는 세이지의 돌봄 플랫폼에 축적되는 실시간 데이터를 바탕으로 입주자의 돌봄 필요도와 현재 인력 배치 상황을 분석한다. 입주자의 돌봄 수요가 배치된 인력 수준을 넘어설 경우 이를 관리자에게 알리고, 목표 인력시간과 실제 투입시간을 비교해 인력 운용을 조정할 수 있도록 돕는다. 기관별 인건비 예산에 맞춘 권고도 제공한다.

근무조 안에서 직원별 업무량이 어떻게 분포돼 있는지도 분석한다. 특정 종사자에게 업무가 과도하게 몰린 경우 관리자가 인력을 재배치할 수 있도록 정보를 제공해 업무 부담과 소진을 줄이는 방식이다. 보도자료상 레이버는 근무표를 자동으로 결정하기보다 관리자가 입주자의 돌봄 필요도와 현장의 업무량을 근거로 배치 결정을 내리도록 지원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레이버는 미국 시니어 주거시설 운영사 소니다 시니어리빙과의 공동 작업을 바탕으로 개발됐다. 소니다 측에 따르면 당초 전체 인건비를 기존 수준으로 유지하는 것을 목표로 시스템을 적용했으나, 그 과정에서 입주자 1명당 월 110달러의 비용을 줄이면서 돌봄 인력에 대한 지원도 강화했다.

세이지의 사례는 인력 부족 문제를 단순히 직원 수를 늘리는 방식으로만 해결하지 않고, 제한된 인력을 돌봄이 필요한 입주자에게 필요한 시점에 배분하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

“AI, 인력 대체재 아닌 지원 도구 돼야”

AI 도입이 확대되면서 효과뿐 아니라 위험과 안전장치를 함께 검토하려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미국 전미노인협의회(NCOA)는 지난달 16일 재가·지역사회 기반 돌봄 분야의 AI 활용을 분석한 3부작 연구 보고서 ‘돌봄의 새로운 시대’를 발표했다.

보고서는 미국에서 약 6300만 명의 가족돌봄자와 320만 명 이상의 유급 재가돌봄 종사자가 돌봄을 담당하고 있지만, 낮은 임금과 높은 이직률이 서비스의 질을 위협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AI가 반복적인 행정업무를 줄이고 종사자가 이용자를 직접 돌보는 시간을 확보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봤다.

현재 활용 분야도 분석했는데, 방문 일정 관리, 안전 모니터링, 센서와 낙상 감지, 예측 분석, 종사자 채용과 교육, 돌봄팀 간 의사소통, 보고서 작성, 급여·보험 청구 처리, 규정 준수 등을 언급했다. 이용자의 상태를 감시하는 기능뿐 아니라 돌봄기관의 운영과 행정업무 전반으로 AI 적용 범위가 넓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보고서는 AI 도입 과정에서 개인정보와 이용자 동의, 결과의 정확성, 데이터 편향, 법적 책임 등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장애인이나 고령자, 농촌 지역 이용자에게 AI가 상대적으로 부정확하게 작동할 가능성도 제기했다.

과도한 자동화가 돌봄 종사자의 판단과 이용자의 자율성을 약화하고, 사람 사이의 관계를 중심으로 이뤄지는 돌봄의 성격을 훼손할 수 있다는 우려도 담겼다. 현장 업무와 맞지 않는 AI는 오히려 새로운 업무를 만들고 종사자의 스트레스를 높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마지막으로 전미노인협의회는 AI가 돌봄 인력을 대체하는 수단이 아니라 종사자가 서류 작업보다 사람에게 집중하도록 돕는 수단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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