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9.25

잡초 같은 사람, 넝쿨 같은 사람, 앉은 자리에 풀 한 포기 안 날 사람

입력 2026-09-25 06:00

[전원일기] 잡초같은 사람을 만나면 피하고 보는 것이 상책

“맨날 나와서 일하는 것 같은디 밭은 왜 늘 그 모양인겨? 풀들이 지 세상 만났다고 잔치를 벌이고 있구먼.” 동네 어른들로부터 가장 자주 듣는 꾸지람이다. 블루베리 끝물을 정리하고 나면 본격적으로 잡초를 관리하는데, 15년 농사 생활 중 풀과의 전쟁에선 백번 싸워 백번 모두 지고 말았다.


(이미지=AI 생성)
(이미지=AI 생성)


“농사는 풀과의 전쟁이란다.” 일찍이 경기도 광주시 곤지암읍 인근에서 남편과 함께 농사에 뛰어들었던 절친이 가장 먼저 들려준 말이다. 가능하면 제초제 뿌리는 걸 삼가려던 친구는 “신문지를 펴서 풀 위에 덮어두기도 하는데 그렇게 효과적이진 않은 것 같다”며 아쉬움을 표하기도 했다.

나 역시 풀 관리를 위해 화분이나 묘목 위에 멀칭도 해주고 고랑마다 부직포를 깔아주기도 했지만, 풀의 왕성한 기운을 당해내는 데는 역부족이었다. 오죽하면 요즘 블루베리 농장에서는 커다란 화분을 빽빽하고 촘촘하게 배치한 후, 화분 아래 두꺼운 고무 매트를 깔아 풀을 원천 봉쇄하는 방법까지 등장했다지 않던가. 특히나 우리 블루베리밭에서는 영양분 가득한 물을 점적관수 시설을 통해 수시로 공급하니, 풀 입장에선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며 덩달아 춤을 추는 것 같다.

그간 ‘큰물도 큰 가뭄도 없다’ 했던 충청도 일대에 최근 들어 제법 큰물 피해가 났다. 우리는 직접 피해를 면하긴 했지만 하늘에서 비가 며칠간 퍼붓고 난 후 블루베리밭은 이름 모를 잡초로 밀림(?)을 이루기 시작했다. “풀은 요만치(5~10㎝ 정도) 자랐을 때, 아직 풀씨 맺히기 전에 예초를 해주거나 풀약(제초제)을 해줘야 혀. 비 오신 다음 날 뿌리가 흐물흐물해졌을 때 살살 잡아당겨도 되구”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었건만,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실천을 못 해 생긴 일이니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올해도 키가 훌쩍 큰 바랭이풀, 어린 시절 동네에서 흔히 보았던 강아지풀, 뽑아도 뽑아도 다시 나오는 쇠뜨기, 고운 보랏빛 꽃을 피우는 제비꽃, 노란색 꽃이 앙증맞은 새앙, 동글동글한 잎이 배추 포기처럼 자라는 풀, 씨가 옷에 척척 달라붙는 도깨비풀…. 종류도 다양하고 모양도 다채로운 풀들이 밭을 장식했다.

잡초의 뜻풀이를 찾아보니 ‘주로 산과 들판에 알아서 번식하는 잡다한 풀. 인간에 의해 재배되는 식물이 아니라는 뜻이지 특정한 식물종을 분류하는 용어는 아니다. ‘잡풀’, ‘풀때기’라고도 한다’라는 설명이 나와 있다. 당산마을 어르신들은 “배추밭에 인삼이 올라오면 아무리 귀한 삼도 잡초”라며, 목적한 작물 이외의 것은 모조리 잡초라 하신다.


때로는 잡초보다 더 미운 게 사람

해마다 싱싱하게 자라는 풀과 혹독한 전쟁을 치르던 중 “쯧쯧쯧, 거 앉은 자리에 풀 한 포기 안 날 사람”이 정말 최고로 지독한 욕임을 알게 됐다. 하기야 척박한 땅에선 풀도 잘 나지 않는다. 행여 풀이 나오더라도 쑥쑥 자라지 않는다. 우리 소나무밭에는 다 쓰러져가는 집이 한 채 있었는데, 집을 헐고 나서도 그 자리엔 거의 2년 동안 풀 한 포기 나지 않았다. 동네 어른들 말씀으로는 “사람이 원래 독한 동물인지라” 사람이 자주 다니는 길엔 풀도 마음껏 자라지 않는 법이라며, 집터는 “말하면 잔소리(말할 필요도 없다는 뜻)”라고 했다.

당산마을에도 앉은 자리에 풀 한 포기 안 날 공공의 적(?)들이 있다. “저눔, 나라에서 땅 수용한다니께 갑작스레 비닐하우스 맨들어서 보상금 받아 쳐먹고는 도와준 사람들 나 몰라라 하고 입 싹 씻어부리더라구.” “벼룩의 간을 빼먹어도 유분수지, 그 할머니가 그동안 저한테 을매나 잘했는디. 손바닥만 한 땅뙈기에다 관리기 몇 번 왔다 갔다 했다고 돈을 달라는구먼.” “남편이 부인 땜시 욕을 바가지로 먹고 있구먼. 서로 품앗이를 해야 쓰는디 만날 자기만 쏙 빠지면 되는겨?” 당산마을에서 근래 인심 잃은 분들 이야기다.

농촌은 원래 주고받고 되돌려주는 일이 일상 속에 자연스레 녹아 있던 곳 아니던가. 올여름 복숭아가 풍년인 집에서 이웃에 복숭아를 돌리면, 가을엔 감이 주렁주렁 달린 집에서 감을 따서 보답하는 걸 종종 보았다. 겨울 김장철이 돌아오면 서로의 집을 돌아가며 품앗이하는 풍습도 여전히 남아 있다. 무·배추 농사가 유난히 잘 된 집에선 잘생긴 무·배추를 나누고, 고추 농사가 풍년인 집에선 햇볕에 잘 말린 태양초를 나누기도 한다. 정말 그랬는데, 주고받고 되돌려주는 관계의 가치가 점차 희미해져 가는 것 같아 안타깝다.

어린 시절엔 온실의 화초처럼 키우지 말고 들판의 잡초처럼 키우라는 말에 귀가 솔깃했는데, 농부의 입장이 되고 보니 생각이 바뀌었다. 잡초의 왕성한 생명력에 감탄하기 앞서 잡초의 무수한 폐해에 더 마음이 쓰이기 때문이다. 수단 방법 안 가리고 자신의 잇속만 챙기는 사람, 자신은 흙수저임을 앞세우며 책임과 의무는 나 몰라라 하고 권리와 이해득실만 따지는 사람, 무례하기 이를 데 없음을 대단한 용기라 착각하며 이유 없이 당당해하는 사람, 이런 ‘잡초 같은 사람’을 만나면 일단 피하고 보는 것이 상책일 듯하다.


(이미지=AI 생성)
(이미지=AI 생성)


홀로 서지 못하나, 생명력 질긴 ‘넝쿨’

잡초 중에 만만히 보았다가 큰코다치기 십상인 건 누가 뭐래도 넝쿨식물류다. 넝쿨을 떠올리면 넝쿨째 굴러 들어오는 호박이나, 아름답게 뻗어가는 장미넝쿨, 싱그러운 운치를 더해주는 담쟁이넝쿨이 눈앞에 삼삼하게 그려질 게다. 하지만 농부라면 장소 가리지 않고 무섭게 올라오는 넝쿨식물이야말로 두려움의 대상이다.

이 넝쿨식물, 만만히 보았다가 큰코다친 경험이 여러 번 있다 . 작년 이맘때쯤 세종특별자치시 전동면 청송리에 있는 소나무밭에 가봤다. 내 키보다 두어 뼘이나 큰 15년생 반송 위로 넝쿨식물이 두껍게 뒤덮인 광경이 여기저기 펼쳐지고 있었다. 이미 촘촘히 뻗어나간 넝쿨식물 잎사귀 때문에 볕이 통하지 않아 말라죽어 가는 가지도 여럿 발견했다. 그대로 두었다간 소나무 다 죽이겠다 싶어 무작정 넝쿨을 당기려다 보니 그만 넝쿨 줄기에 살이 베이는 상처를 입기도 했고, 넝쿨을 잘못 당겨 소나무 가지를 우두둑 부러뜨리기도 했다.

이 넝쿨식물을 동네분들은 ‛며느리 밑씻개’ 혹은 그냥 ‛밑씻개’라고 부르는데, 검색을 해보니 진짜 며느리 밑씻개 풀과는 모양이 다르게 생겼다. 어쨌거나 스치기만 해도 살갗에 상처를 내는 못된 풀에 그런 민망한 이름을 붙인 시어머니 마음을 생각하니, 이해가 될 듯 말 듯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이제는 넝쿨을 만만히 보지 않을 정도의 연차는 쌓였기에, 전지가위로 넝쿨을 툭툭 잘라 볕이 통하게 해준 다음 넝쿨 뿌리를 찾아 나섰다. 풀은 아무리 작고 여린 뿌리라도 제거하지 않으면 넝쿨을 당겨도 잘 뽑히지 않는다. 넝쿨을 당길 때는 요령이 필요하다. 방향을 잘 잡아야 함은 물론이고, 당기는 힘을 적당히 조절해야 한다. 넝쿨이 뻗어나가기 시작한 곳에서 당겨야지 행여라도 반대 방향에서 당기면 넝쿨이 잘 따라오지 않고 툭 끊어지는 경우가 다반사다. 세기도 억센 힘으로 너무 강하게 당기면 나뭇가지가 부러지고, 거꾸로 연약한 힘으로 흉내만 냈다가는 당기나 마나니, 적당히 힘을 주어야 한다. 20㎏ 비료 포대 너끈히 들 수 있는 힘 정도면 넝쿨 당기는 데 제격이다.

넝쿨을 걷어내다 보면 땅에서 뻗어나가던 넝쿨식물이 큰 나무를 타고 올라가도록 도와주는 녀석들이 꼭 있다. 우리 소나무밭에는 여기저기 들깨가 올라와 있는데, 그 들깨를 매개로 넝쿨을 감고 올라간 후 소나무로 돌진하는 거다.

넝쿨식물의 정의도 궁금해서 찾아보니 ‘다른 물체나 구조물에 기대어 자라는 덩굴성 식물’이란다. 홀로 서는 데 필요한 에너지를 절약하고자 다른 물체에 의지하는 것이라 한다. 그러다 보니 블루베리밭에선 방조망 위로 칡넝쿨이 올라오고, 녹색 울타리는 종류도 다양한 넝쿨식물로 뒤덮이기 일쑤다. 넝쿨의 습격을 받고 나면 방조망 사이에 틈이 생겨 이듬해 새들이 들락날락하는 통로가 만들어지기도 하고, 넝쿨에 덮여 울타리가 부식되기도 하니 넝쿨식물과 좋은 사이를 유지하려야 할 수가 없다.

본인은 손끝 하나 까딱하지 않은 채 남의 손 빌려 코 푸는 얌체 같은 사람, 밖에서 굴러 들어온 처지에 박힌 돌이 버티지 못하도록 내쫓는 무서운 사람,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다 차려놓은 밥상에 숟가락 들고 덤비는 사람, 모두 넝쿨족이다.



풀 같은 사람, 나무 같은 사람으로 산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나 자신이 풀 뽑기를 무척 즐긴다는 사실이다. 풀을 뽑는 동안은 정말 무념, 무상, 무아의 경지에 이른다. 그러다 가끔씩 깨달음의 순간이 오기도 한다. 올해는 불현듯 나무가 클수록 잡초의 습격을 덜 받는다는 사실(남들은 다 아는 상식)이 새삼 가슴에 와닿았다. 확실히 큰 나무 아래서 자라는 풀은 햇볕을 충분히 받지 못하고 뿌리도 깊게 내리지 못하는 반면, 작은 나무 아래서 올라온 풀은 자신이 주인인 양 영양분까지 빼앗아 먹으며 승승장구하고 있다.

‘나도 나무였다면 살아오는 동안 이런저런 잡초의 습격을 적게 받았을 텐데, 이제라도 큰 나무처럼 의연히 살아야겠다.’ ‘풀은 발본색원(拔本塞源)해야 함을 금과옥조(金科玉條)로 삼고, 쓸모는커녕 부담만 주는 잡초 같은 사람은 피해야 할 테지.’ ‘자기 힘 들이지 않고 큰 나무에 올라타서 햇볕 빼앗는 얌체 넝쿨식물 같은 사람은 되지 말아야지.’ ‘넝쿨 제거할 때 요령처럼, 사는 동안 장애물을 만나면 적당한 방향에서 적절히 힘을 주어 제거해야지.’ 시답지 않은 잡생각에 빠져드는 동안, 가을이 성큼 깊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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