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대 A 씨는 요즘 은행에 가는 일이 예전처럼 쉽지 않다. 병원에 다녀오는 것만으로도 힘이 부치는데 통장을 정리하거나 금융거래를 처리하려면 직접 은행을 찾아가야 하는 경우가 생긴다. 결국 A 씨는 아들에게 통장을 건네며 말했다. “네가 대신 좀 해줘. 가족인데 뭐가 어렵겠니.” 아들도 별다른 고민 없이 통장을 받았다. 부모님을 돕는 일이고 신분증도 받았으니 별문제가 없어 보였다.
하지만 부모님이 통장과 신분증을 맡겼다고 해서 자녀가 모든 금융거래를 대신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가족이라는 사실과 금융거래를 대신할 권한은 별개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통장을 가지고 있으면 마음대로 돈을 찾을 수 있을까
통장을 가지고 있는 것과 통장 명의자, 즉 예금주를 대신해 금융거래를 하는 것은 다르다. 부모가 자녀에게 “돈을 대신 찾아 달라”고 부탁했더라도 금융회사 입장에서 계좌의 주인은 여전히 부모다. 거래 종류에 따라 본인 확인이나 별도의 대리 절차가 필요할 수 있다.
특히 부모가 자녀에게 통장이나 현금카드를 건네며 돈을 대신 찾아달라고 하더라도 금융회사 입장에서는 해당 계좌의 명의자는 부모다. 거래의 종류에 따라 본인 확인이나 별도의 대리 위임 절차가 필요할 수 있다.
특히 단순한 현금 인출인지, 예·적금 해지인지, 계좌 변경이나 다른 금융상품 관련 업무인지에 따라 처리 방법이 달라진다. 대리거래가 가능한 업무인지부터 확인해야 하고, 가능하더라도 위임장이나 본인서명사실확인서·인감증명서, 대리인 신분증 등 필요한 서류가 금융회사와 업무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따라서 부모님의 금융 업무를 대신해야 한다면 통장부터 받아두기보다 어떤 거래를 대신할 것인지 정한 뒤 해당 금융회사에 대리 가능 여부와 필요서류를 확인하는 것이 먼저다.
부모님이 병원에 입원하게 된다면....
부모님이 병원에 입원하거나 거동이 불편해 직접 금융회사를 방문하기 어려워지는 경우도 있다. 여기서 중요한 부분은 ‘몸이 불편해 은행에 갈 수 없는 것’과 ‘스스로 금융거래에 관한 의사를 결정하기 어려운 상황’은 다르다는 점이다.
부모님이 입원해 있더라도 의사 표현이 가능하고 금융거래 내용을 이해해 자녀에게 업무를 맡길 수 있다면 금융회사와 상의해 적절한 위임 절차를 밟을 수 있다.
반면 치매나 중증 질환 등으로 본인이 금융거래의 의미를 판단하거나 의사를 표시하기 어려워진 경우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단순히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대신 처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며, 상황에 따라 성년후견 등 별도의 법적 절차를 검토해야 할 수 있다.
그래서 부모님의 건강이 좋지 않다면 통장이나 비밀번호만 넘겨받아 관리하기보다 부모님이 의사를 명확하게 밝힐 수 있을 때 필요한 금융업무와 관리 방법을 미리 정해두는 것이 좋다.
부모님 계좌에서 거액을 인출한다면… 추후 상속세도 살펴야
부모님의 재산을 대신 관리하다 보면 병원비나 간병비, 생활비 등으로 큰돈을 사용해야 할 때도 있다. 이때 중요한 일은 돈을 어디에 썼는지 객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기록을 남기는 일이다. 부모 생전에 계좌에서 큰돈이 인출됐는데 나중에 그 사용처를 설명하지 못하면 상속세 신고 과정에서 문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현행 세법에서는 상속개시일 전 1년 이내에 재산 종류별로 처분하거나 인출한 금액이 2억 원 이상이거나, 2년 이내에 5억 원 이상이고 그 사용처가 객관적으로 명백하지 않은 경우 이를 상속받은 재산으로 추정해 상속세 과세가액에 포함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계좌 하나만 따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현금·예금·유가증권 등 같은 종류의 재산을 기준으로 금액을 따진다.
그렇다고 사용처를 설명하지 못한 인출액 전부가 곧바로 상속재산이 되지는 않는다. 추정상속재산은 사용처를 입증하지 못한 금액에서 ‘처분·인출액의 20%와 2억원 가운데 적은 금액’을 뺀 금액으로 계산한다.
따라서 부모님의 치료비나 병원비, 간병비, 생활비 등으로 돈을 사용했다면 영수증과 계좌이체 내역, 카드결제 내역 등 실제 사용처를 확인할 수 있는 자료를 남겨두는 것이 좋다. 가능하면 현금을 한꺼번에 찾아 사용하는 것보다 병원이나 요양기관에 직접 계좌이체하거나 카드로 결제해 거래 기록을 남기는 것도 방법이다.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모든 금융거래를 대신할 수 있지는 않다. 부모님의 의사가 분명할 때 적절한 대리 절차를 확인하고, 돈을 사용했다면 그 내역을 남겨두는 것이 중요하다. 부모님의 뜻과 재산이 제대로 지켜지도록 필요한 금융업무를 안전하게 돕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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