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공지능(AI)이 일자리를 없앨 것이라는 우려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가 본격화되고 AI 확산까지 맞물리면서, 중장년이 경력을 살려 다시 일할 자리를 찾는 문제가 사회적 과제로 떠올랐다. 이런 가운데 AI 때문에 권고사직을 당했다가 AI를 활용해 재취업에 성공한 중장년의 사례가 눈길을 끌었다.
이철원(54) 씨는 1일 수원 차세대융합기술연구원에서 경기중장년내일센터 등이 연 '중장년과 기업의 미래 고용 포럼'에서 자신의 재취업 경험을 공유했다. 25년간 정보기술(IT)·교육 분야에서 일한 그는 10개월의 구직 끝에 지난 6월 보건복지부 산하기관 경영지원부에 입사했다.
개발자 양성 교육을 맡았던 이 씨는 AI 확산으로 초급 개발자 채용이 줄고 교육 수요도 감소하면서 권고사직을 당했다고 설명했다. "AI 때문에 실직해서 앞으로는 AI를 쓰지 않겠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는 그는, 전직을 준비하며 들은 시설관리 직무교육에서 AI를 활용하는 모습을 보고 생각을 바꾸게 됐다고 털어놨다.
이후 이 씨는 AI의 도움으로 프로그램과 웹사이트를 만드는 '바이브코딩'을 독학했다. 과거 개발자 교육 내용을 AI와 함께 재구성하고, 직원 관리 프로그램도 제작했다. 그는 "몇 달 걸리던 일을 AI가 일주일 만에 끝내는 것을 보면서 개발비도 줄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재취업 면접에서는 이 경험을 바탕으로 비용 절감을 제안했다. "그동안 쌓은 노하우에 AI 기술을 접목해 홈페이지를 직접 구축하고 외주 비용을 줄이겠다"는 내용이었다. 이 씨는 입사 후 면접관으로부터 이 제안이 인상 깊었다는 말을 들었다고 전했다.
실제로 그는 기관의 신사업 홈페이지와 웹진 사이트를 제작하고, 직원들을 대상으로 AI 실무 활용 교육을 진행했다. 이 씨는 "면접 때 했던 약속을 지켰다는 것을 보여드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 씨는 처음에 25년간 쌓은 IT·교육 경력과 새로 취득한 자격증을 이력서 한 장에 모두 몰아넣었지만, 이후 좋은 전략이 아니었다는 걸 깨달았다고 했다. "과거 경력을 모두 나열하지 말고, 지금 도전하는 직무에 필요한 자격과 역량을 앞세우라"는 센터 컨설턴트의 조언을 듣고 생각을 바꿨다는 것이다. 그는 상담 뒤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전면 수정하고, 프로그램 개발직·시설관리직·경비직 등 지원 직무별로 이력서를 따로 만들었다. 각 이력서에는 해당 업무와 관련된 경력과 자격만 추려 넣어, 지원한 일을 곧바로 맡을 수 있다는 점을 드러내려 했다.
면접 전략도 밝혔다. 자신보다 나이 어린 상급자와 원활하게 협업했던 전 직장의 경험을 소개하며 면접 평가자에게 좋은 인상을 심으려 했다고 한다. 그는 "나이를 앞세우지 않고, 아는 것과 할 수 있는 것으로 먼저 다가가 자발적으로 돕는 것"을 조직 생활의 중요한 태도로 꼽았다.
이 씨는 전직에 대비해 8개월 동안 소방안전관리자와 지게차운전기능사 등 7종의 자격을 취득했고, 내일배움카드와 연계한 시설운영 직무교육에서 전기·기계·소방 실무를 익혔다. 그는 자격증이 지금 업무에 직접 쓰이지는 않지만 "자격증 취득 과정이 새로운 일을 배울 의지와 성실함을 보여주는 근거가 됐다"고 평가했다. 또 "자격증을 나중에 어디에 쓸 수 있을지 걱정도 했지만, 새로운 분야를 공부하는 게 너무 재미있었다"고 말했다.
이 씨는 중장년 구직자들에게 "경력의 끈은 놓지 말라"고 강조했다. 그는 시설관리 분야로 옮기려고 준비했지만, 실제 재취업에 힘이 된 것은 기존 IT·교육 경력에 AI 활용 능력을 더한 것이었다. 그는 "경력을 놓고 전직하려고 했는데, 생각해 보니 나에게 가장 유리한 것은 그동안 쌓아온 경력이었다"며, 전직 준비와 기존 경력을 활용한 구직을 함께 시도할 것을 권했다.
이 씨는 실업급여 교육장에서 센터의 안내를 들은 뒤 직접 상담을 신청했고, 이후에도 면접 결과와 자격증 취득 소식을 꾸준히 알리며 도움을 받았다. 그는 "애써 혼자 버티려고 하지 말고 주변의 도움을 받으라"고 조언하고, "컨설턴트 등 취업 지원 인력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라"고 당부했다.
이철원 씨는 올해 고용노동부와 노사발전재단이 실시한 '다시 시작하는 중장년 우수사례 공모전'에서 노사발전재단 사무총장상을 수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