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보 라이프]60년의 이야기가 담겨 있는 장충체육회를 아십니까?

기사입력 2014-04-15 09:32 기사수정 2014-04-15 10:58

▲장충체육회 운동장의 맞은편 장충체육회의 2층짜리 건물이 자리잡고 있다. 양용비 기자 dragonfly@

서울 도심의 산자락에 많은 사람들이 갖가지 운동기구로 운동을 한다는 내용을 듣고 찾아간 곳은 서울 남산의 중턱 국립극장 뒤편에 위치한 장충체육회. 장충체육회는 마치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비밀병기를 만드는 것처럼 산 속에 숨어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굵은 땀방울을 흘리며 열심히 운동을 하고 있었다. 약 20여 가지의 운동기구와 다양한 무게의 덤벨과 바벨이 깨끗하게 정비돼 있었다. 장충체육회가 생기고 60여년의 세월이 흘렀음에도 운동기구의 상태는 깔끔했다.

봄의 기운을 받아 화려한 옷으로 갈아입은 산 중턱에 많은 사람들이 거친 숨을 토해내고 있었다. 누구에게 지도를 받지 않아 각자가 터득한 운동법만으로 몸을 단련하고 있었지만 제법 다부진 몸을 자랑하는 이들도 있었다.

등산복을 입은 사람, 티셔츠에 청바지를 입은 사람, 긴 챙이 달린 모자로 한 치의 자외선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여인까지 운동을 하는 이들의 모습도 각양각색이다. 물론 이곳을 이용하는 것에는 제약이 없다. 이곳에서 운동을 한다고 해서 돈을 받는 이도 없고, 몸짱이 아니라고 해서 눈치를 주는 사람도 없다.

장충체육회는 값진 땀방울을 흘릴 사람들에게 항상 열려있는 실외 헬스장이었다.

▲장충체육회 운동장. 오래된 기구임에도 기구 관리 상태가 꽤나 깔끔하다. 양용비 기자 dragonfly@

참으로 묘한 분위기다. 한쪽에서는 젊은 연인들이 벚꽃 속에 파 뭍혀 사진을 찍고 있다. 다른 한쪽 정자에서는 대학생들의 과자파티가 열렸다. 그 가운데 얼굴에 주름이 움푹 파인 사람들이 쇠뭉치 파티(?)를 하는 것이 묘한 광경을 연출해낸다. 비록 얼굴의 주름은 주위의 젊은이들에 비해 깊을지 몰라도 무거운 쇠뭉치 덕에 팽팽하게 펴진 이두박근은 여느 젊은이 못지않다.

장충체육회를 찾는 이들 대부분은 운동을 하며 연을 맺었다. 새로운 사람이 운동을 하면 텃새를 부릴 법도 하지만 그런 법도 없다. 새로운 사람을 알고 함께 운동하는 것이 그들이 이곳을 찾는 이유기 때문이다.

66세의 김모 씨도 그렇다. 김씨는 일주일에 네 번 이상 장충체육회를 찾는다고 했다. 이곳을 찾는다고 해서 매일 운동을 하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운동도 하고 때로는 운동기구 옆 벤치에 앉아 또래와 사는 이야기를 나눈다고 했다.

“이곳에서 운동하는 사람들은 계절을 가리지 않아요. 추운 겨울에도 나와 입김 불어 가면서 운동을 하죠. 그 사람들이랑 얘기하면 시간 가는 줄 모르죠.”

운동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니 그의 말이 어떤 뜻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차가운 얼음도 단숨에 녹여버릴 만한 열기가 가득했기 때문이다.

▲장충체육회에서 운동을 하는 사람들. 양용비 기자 dragonfly@

육군 소장, 전직 권투선수, 대학교수, 6·25 참전용사 등. 이곳을 찾는 이들의 젊은 시절 이력은 화려하다. 이러한 화려한 시절을 성취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흘린 땀방울이 때문이 아니었을까. 깊은 신음, 흐르는 땀방울에서 그들이 화려한 시절을 어떻게 거머쥘 수 있었을지 짐작할 수 있었다.

1980년대 우리나라에 ‘스트레스’라는 말을 처음 정립 시켰다는 사람이 있었다. 80세의 신영식씨다. 헬스클럽보다 부담이 없고, 비슷한 연령대 친구들이 많아 이곳을 자주 찾는다는 그는 젊은 시절 스포츠 심리학 교수였다. 한 때는 노태우 전 대통령의 테니스 상대도 하기도 했다. 노 전 대통령의 부탁을 받아 88 서울 올림픽 유치를 위해 같이 힘썼던 적도 있다고 했다. 신씨는 여전하다. 전직 스포츠 심리학 교수답게 운동의 고삐를 늦추지 않는다. 이곳에서 쇠뭉치를 들지 않을 때는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 시니어 테니스 클럽을 찾는다. 스포츠 마니아답다. 대학교수라는 번쩍번쩍한 명함을 들고 있었던 그에게도 고민이 있다. 일자리다. 대학교수에서 은퇴한뒤 지난해까지 직장생활을 했지만 이제는 그마저도 할 수 없는 형편이다.

“나도 그렇고 여기 있는 사람들 모두 그럴 거야. 일하고 싶지. 그런데 일자리가 없어. 젊은 친구들한테 자꾸 밀리니까. 아직까지 그 친구들보다 더 일을 잘 할 자신이 있는데 말이야.” 테니스 클럽, 운동 등 다양한 취미생활을 하는 그는 활동적으로 보였지만 일자리 얘기에서는 아쉬움이 묻어났다.

▲바벨을 들고 있는 김영철(58) 지도위원. 다부진 몸매가 인상적이다. 양용비 기자 dragonfly@

60년의 역사 중 40년을 이곳에서 운동을 한 사람도 있다. 그는 장충체육회의 김영철(58) 지도위원이다. 빨간 티셔츠에 목장갑을 끼고 운동을 하고 있는 그를 보니 예사롭지 않다. 웬만한 프로 운동선수 부럽지 않은 몸의 소유자였다. 단단했고 다부졌다. 목소리 또한 우렁찼고 자신감이 넘쳤다. 40년이 넘게 이곳에서 운동을 한 그는 장충체육회의 산 증인이다. 그의 말에 따르면 이곳은 한국 스포츠의 산실이다. 장충체육회를 거친 스포츠스타는 굵직굵직한 인물로 가득했다.

“프로복서 황준석과 배석철 등이 이곳에 회원이었어요. 또 아실만한 분은 다 아는 김응룡 프로야구 감독도 매일 이곳에서 운동을 했죠. 새벽 4시 전후로 해서 전문 운동선수들이 많이 왔어요.”

그도 운동선수였다. 젊은 시절 복서의 꿈을 꿨다. 젊은 시절은 복서로서 원대한 꿈을 키웠던 장충체육회. 이제 그는 이곳 때문에 중구를 떠나지 못한다고 했다. 그만큼 이곳은 김씨의 삶과 추억이 배어있는 곳이다.

장충체육회는 60년 동안 다양한 이야기를 만들었다. 굵직한 스타를 배출하기도 했고,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스쳐갔다. 그것은 화려했던 화려하지 않았던 그것은 모두 우리의 인생이야기였다. 크지 않은 실외 헬스장에는 많은 이야기가 있다.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 소박하지만 화려한. 화려하지만 소박한 장충체육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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