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홍의 와인 여행] 보졸레 누보 이야기- ‘봄 마케팅’이 ‘通’했다

기사입력 2016-03-03 09:43 기사수정 2016-03-03 09:43

<글> 장 홍

매해 11월 셋째 주 목요일 0시를 기해 전 세계가 보졸레 누보의 동시 출시로 한바탕 난리를 친다. 나라마다 그리고 지역마다 축제가 없는 곳이 없지만, 보졸레 누보처럼 전 세계에서 정해진 시간에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지는 축제는 아마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새 와인’(vin primeur)에 대한 기대와 기다림은 일찍이 로마 시대부터 있어왔다. 그 시대에는 와인의 보관이 어려워 지난해 생산된 와인은 새 와인이 출시하기 전에 동이 나기 일쑤였다. 그만큼 사람들은 새 와인에 목말라 있었다. 보졸레 누보는 기발한 마케팅으로 성공한, 역사상 가장 눈길을 끄는 새 와인임에 틀림없다.

보졸레 누보의 역사는 1951년부터 시작된다. 1950년대까지만 해도 보졸레 누보는 생소한 와인이었다. 당시만 해도 그해 생산된 모든 와인은 12월 15일 이전에는 출시를 하지 못하도록 법으로 엄격하게 규정하고 있었다. 1951년 11월 13일 프랑스 정부는 일정한 조건 하에 일부 와인은 이 날짜부터 판매를 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데, 이 조치가 바로 보졸레 누보의 탄생을 알리는 신호탄이 된다. 이후 15년간 보졸레 누보는 해마다 11월의 다른 날짜에 출시되다가, 1967년부터는 매해 11월 15일 출시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11월 셋째 주 목요일 판매는 1985년 이후부터 시작되었다. 11월 셋째 주 목요일 0시를 기해 전 세계에 동시 출시를 하니, 시차 덕으로 한국이 프랑스보다 8시간 앞서 보졸레 누보를 맛볼 수 있는 셈이다.

보졸레 누보가 본격적으로 상업적 성공을 거두기 시작한 것은 1975년부터다. 같은 해에 르네 팔레(Rene Fallet)라는 작가의 소설 <새 보졸레가 도착했다(Le Beaujolais nouveau est arrive)>가 출간되었으며, 프랑스 국회에서도 보졸레 누보의 출시를 기념하는 공식 행사가 국회의장인 에드가 포르(Edgar Faure)와 유명 가수인 조르주 브라상스(Georges Brassens) 등이 참가한 가운데 성대히 거행되었다. 이로부터 보졸레 누보의 본격적인 파리 진출이 시작되었다.

보졸레 누보의 성공은 무엇보다도 마케팅의 성공이다. 프랑스의 방송인이자 작가이며 보졸레 출신이기도 한 베르나르 피보(Bernard Pivot)는 “보졸레의 놀라운 성공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와인전문가보다 심리학자가 되어야 한다”고 재치 있는 설명을 한다. 그만큼 보졸레 누보의 대대적인 성공에는 와인 이외의 요소가 크게 작용했다는 뜻이다. 사실 프랑스의 11월은 우울하다. 해는 짧아지고, 날씨는 춥고 비도 자주 내린다. 게다가 지난 여름휴가는 아득한 추억이고, 다음 여름은 아득히 멀다. 크리스마스도 아직은 먼 훗날이다. 이때 11월 셋째 주 목요일, 봄처럼 젊고 루비빛에 신선한 과일 향이 나는 보졸레 누보가 기적처럼, 구원처럼 도착하는 것이다. 그러니 보졸레 누보는 무엇보다도 적절히 때맞춰 출시해 히트한 와인이다. 모든 식당과 술집의 탁자 위에는 (새 보졸레 도착)이라는 팻말이 놓이고, 사람들은 술집과 식당은 물론 사무실이나 집에 모여서 보졸레 누보 잔을 기울이며 우울한 11월 하순을 자위하는 축제를 벌인다.

보졸레 누보는 단일 포도 품종으로 빚는다. 즉 가메이(gamay)만으로 주조하며, 출시 후 6개월 내에 마셔야 한다. 그 이상은 보관이 어렵기 때문이다. 연간 생산량은 45만~50만 헥토리터(1헥토리터 = 100리터) 정도며, 그중 절반은 세계 곳곳으로 수출된다. 산딸기·딸기·바나나·푸른 사과 등 과일 향이 특징인 보졸레 누보는 루비빛을 띠는 옅은 붉은 색에, 타닌이 적어 몸체가 매우 가벼운 와인이다. 또한 프랑스에서는 병당 1~2유로로 부담 없이 누구나 편하게 마실 수 있는 대중적이며 민주적인 와인이기도 하다. 이처럼 보졸레 누보가 대단한 상업적 성공을 거두자 프랑스의 다른 와인 생산지역에서도 새 와인을 출시하기 시작했고, 다른 나라로까지 그 영향이 전파되었다. 이탈리아의 비노 노벨로(vino novello)가 대표적이라 하겠다.

솔직히 보졸레 누보는 와인의 진미를 느끼기 위해 마시는 와인이 아니다. 호기심으로, 기분으로, 분위기로 그 순간을 마시고 즐기는 와인이다. 그리고 흔히 보졸레 하면 누보만 생각하는데, 사실은 그렇지가 않다. 보졸레 누보는 전체 보졸레 생산량의 약 40퍼센트에 해당하며, 보졸레·보졸레 빌라주(village)와 10개 크뤼가 있다. 전체 생산량의 1퍼센트 정도에 해당하는 지극히 적은 양이긴 하지만, 샤르도네로 주조한 보졸레 화이트도 존재한다. 특히 10대 크뤼에는 들지 못했지만 성 베랑(Saint Verand)의 화이트 와인은 산도와 향이 일품이다. 일부 보졸레 빌라주와 특히 10개의 크뤼 중에는 몸체가 균형 잡히고, 작고 붉은 과일 향이 일품이며 10년 이상 보관이 가능한 것들도 있다. 심지어 병당 100유로 이상 가는 것도 있을 정도다. 그러니 ‘보졸레 누보가 보졸레를 죽였다’는 불만이 나올 만도 하다. 독자들은 보졸레 누보에만 눈길을 두지 말고, 다양한 그 밖의 보졸레에도 관심을 가져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보졸레와 관련해서 흔히 잘못 알고 있는 것들이 있다. 우선 많은 사람들은 ‘보졸레는 역사가 짧은 와인’이라고 생각한다. 아마도 보졸레 누보의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닌가 한다. 기록으로 보면 보졸레가 생산되기 시작한 것은 최소한 10세기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물론 프랑스의 다른 주요 와인 생산지역에 비하면 가장 역사가 짧다고 하겠지만, 그래도 1000년이 넘는 장구한 세월이지 않은가! 18세기에는 운송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파리까지 판매되었으며, 특히 지리적으로 인접한 리용이 가장 큰 시장이었다. 하여 레옹 도데(Leon Daudet)는 “론 강과 손 강 이외에도 리옹엔 세 번째 강이 흐르는데, 그건 레드 와인으로 보졸레”라고 할 정도였다.

다음으로 보졸레를 부르고뉴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보졸레는 지리적으로 마꽁(Macon) 밑에서 시작하여 리옹 북쪽까지 위치한다. 행정구역상으로도 부르고뉴가 아니라 론(Le Rhone)에 속한다. 그러니 부르고뉴와 보졸레는 행정구역상으로나 주조에 사용하는 포도 품종으로나 와인의 특성상 아무런 연관이 없다. 맛과 향에 있어서도 서로 판이하다. 하지만 1930년 법원 판결에 따라 보졸레는 부르고뉴 포도재배지역으로 분류된다. 행정 편의상 이렇게 분류했다고 해서 보졸레가 부르고뉴가 되는 것은 아니다. 다시 말해서 보졸레에 부르고뉴 와인이란 레이블을 사용할 수 없다. 다만 보졸레의 10개 크뤼- 부루이(brouilly)·꼬뜨-드-부루이(cote-de-brouilly)·쉐나스(chenas)·쉬루블(chiroubles)·플레리(fleurie)·줄리에나스(julienas)·모르공(morgon)·물랭-아-방(Moulin-a-vent)·레뉘에(regnie)·셍-타무르(saint-amour)- 는 상식적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지만 레이블에 부르고뉴란 명칭을 사용할 권리가 있다. 이래저래 보졸레는 좀 색다른 와인이다.


△ 장 홍

성균관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프랑스에서 국제관계학으로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프랑스 알자르 소믈리에협회 준회원이며, <와인, 문화를 만나다> 등 다수의 저서를 펴냈다. 사회학적 측면에서 살펴본 와인, 인류역사 속 와인의 의미와 파워, 예술 인문학을 통해 본 와인 등에 대해 강의도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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