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년기자 칼럼] 내친김에 1년은 잘 견디어 봐야지

기사입력 2016-05-23 15:37 기사수정 2016-06-22 12:41

▲친구 권유로 한 공장에서 일하고 있는 필자. (김종억 동년기자)
▲친구 권유로 한 공장에서 일하고 있는 필자. (김종억 동년기자)
정년퇴직하고 약 1년을 쉬었다. 43년이라는 길다면 긴 세월을 한결같이 직장에 몸담아왔던 필자f에게 ‘정년퇴직’이라는 단어는 처음에는 생경하기조차 했지만 길고 지루했던 그 세월에서 해방된다는 느낌은 처음에는 아쉬움보다는 홀가분함으로 다가왔다. 그동안 직장생활로 인해 하고 싶어도 못했던 취미활동 시간도 늘리고 친구들과 어울려 산과 강을 찾아 마음껏 자유를 누리고 싶다는 생각에 다소 설레기도 했다.

그렇게 1년이 훅~지나가 버렸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알수 없는 공허함이 점차 마음속에서 자리를 넓혀갔고 삶의 현장에서 살짝 비켜 앉았다는 느낌은 마음 한구석이 뻥 뚫린 듯 한 소외감과 허전함으로 다가왔다.

사실, 정년퇴직 직전에 가끔씩 이런 기도를 했다. 만약에 다시 어떤 직장을 갖게 된다면, “그냥 몸으로 때우는 일이라면 어떤 것도 괜찮을 것같으니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다” 라는 염원을 담았다.

퇴직 후, 채 1년도 못 놀고 각별한 지인을 만날 때마다 일 타령을 했더니 어느 날, 느닷없이 출근을 권고 받았다. 고등학교 동창생이 콜을 한 것이다. 젊은 시절, 제조업에 뛰어들어 고생을 낙으로 삼으면서 열심히 살아온 그 친구가 이제는 분당에서 제법 규모를 갖춘 공장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집에서 답답하게 있지 말고 바람도 쏘일 겸 1주일 2~3번씩 공장에 나와서 일을 하면 어떨까?” 라는 제안을 받게 된 것이었다. 그야말로 “아~드디어 기도가 하늘에 닿아 이루어졌구나”라고 하면서 기뻐하였다. 의료기 제품을 생산하면서 작지만 알차게 성장해온 그 친구의 공장에 출근한 날, 나는 온종일 서서 일해야 했다.

달랑 점심시간 50분을 빼고는 규정된 휴식시간도 없이 온종일 서서 일을 해야만 했다. 제조업의 현실이었다. 1년간 푹 쉬었던 필자의 근육과 뼈들이 아우성을 치기 시작했다. 각종 관절보호대를 제조하는 작업장에서 필자는 가장 힘들다는 다리미실로 처음에 투입되었다. 스팀다리미실에서 후끈후끈한 스팀열기를 얼굴에 받으며 온종일 서서 작업을 해야 했기에 팔도 아프지만 허리와 척추가 가장 뻐근하고 아팠다. 생소한 막일이 안 쓰던 근육의 경련을 일으켰다. 하루는 저녁에 잠을 자다가 척추경련이 일어나 한밤중에 아내가 주무르고 맛사지 하고 요란법석을 떨면서도 결코 포기할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그 공장에 출근하는 첫 날, 전철안에서 이런 기도를 했다. 반드시 3개월은 견디어 내고 그 다음엔 꼭 1년을 견디면서 자신의 의지를 실험해 보겠다는 굳은 다짐이었다. 퇴근하는 전철안에서 필자도 모르게 스르르 눈이 감겨 졸다가 한 역을 지나쳐 되돌아오는 경우도 있었다. “아! 정신 차려야지!”

헌데, 참으로 놀라운 변화가 내 몸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3일이 지나고 1주일이 지나고 한 달이 지나다 보니 서서히 적응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아주 힘이 안 드는 것은 아니지만 그럭저럭 견딜 만 했다. 출근하는 전철과 버스안에서도 비로소 여유로운 생각을 하게되었다. 지하철과 버스를 갈아타야 직장에 도착하는 상황이었는데, 많은 젊은이들이 출근하는 콩나물시루 같은 마을버스 안에서 이리 밀리고 저리 밀리면서 하루를 시작하는데, 나도 그 속에서 버들가지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이제 3개월을 눈앞에 두고 있다. 월급도 두 번이나 받았다. 힘들게 일을 하고 받은 돈이니 만치 쉽게 쓸 수도 없었다.

하지만, 그 바쁜 세상 속으로 다시 들어가 그들과 부대끼고 호흡하면서 예전의 그 허전함이 조금씩 채워져 가고 있음을 실감할 수가 있었다. “필자가 이 나이에 언제 다시 이렇게 리얼한 세상속의 삶을 몸으로 부딪치면서 살아갈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해 본다.

오늘도 변함없이 그 콩나물시루 같은 마을버스 안에서 격하게 부대끼면서 출근하는 이 시간이 내 마음에 행복의 근원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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