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 주거공동체, 이웃과 함께 늙다

입력 2026-03-09 06:00

[어디서 살고 싶은가] 건물이 아닌 관계를 짓다

(그래픽 이은숙 기자)
(그래픽 이은숙 기자)

집에서 건강하게 잘 늙어가는 삶, 이른바 ‘에이징 인 플레이스(Aging in Place, AIP)’는 신체적 자립은 물론, 사회적으로 단절되지 않고 관계 속에서 나이 드는 삶까지 아우른다. 초고령사회에서는 이웃과 지역사회의 역할이 다시 재조명되며, 노인 주거공동체가 새로운 주거 대안으로 떠올랐다.

공동체(Community)는 공동의 생활공간 안에서 상호작용하며 유대감을 형성하는 집단을 의미한다. 주거공동체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단순히 집을 공유하는 구조가 아니라, 주거 공간을 매개로 가치와 관심을 나누며 정서적 연결을 이어가는 삶의 방식에 가깝다.

이 개념이 노년기에 더욱 중요해지는 이유는 분명하다. 인구구조가 빠르게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배우자와의 사별과 비혼 증가로 고령 1인 가구는 꾸준히 늘고 있다. 여기에 신체 기능 저하와 사회적 역할 축소가 겹치면 고립의 위험은 더욱 커진다. 돌봄은 필요하지만 관계는 줄어드는 시기, 노후는 그 사이에서 흔들린다.

‘노인 주거공동체’가 제도적으로 명확히 규정된 개념은 아니다. 그러나 집을 중심으로 이웃과 연결되고, 일상과 돌봄을 함께 나누며 외로움의 위험에 대응하려는 주거 방식으로 이해할 수 있다. 노년을 머무는 시간이 아니라 이어가는 시간으로 전환하려는 시도이기도 하다.

▲서울 도봉구의 노인 주거공동체 ‘해심당’.
▲서울 도봉구의 노인 주거공동체 ‘해심당’.

▲서울 도봉구의 노인 주거공동체 ‘해심당’.
▲서울 도봉구의 노인 주거공동체 ‘해심당’.

해외에서 시작, 한국은 아직

노인 주거공동체 모델은 해외에서 먼저 확산됐다. 대표적인 형태가 코하우징(Co-housing)이다. 개인 주거의 자율성을 유지하면서도 공유 공간과 공동 활동을 결합한 주거 방식을 말한다. 각자의 집은 분리돼 있지만, 공동 식사 공간이나 커뮤니티 시설을 중심으로 자연스러운 교류가 이뤄지도록 구성한다.

코하우징의 핵심은 공동체 참여다. 개발과 설계 단계부터 입주민이 의견을 내고, 입주 이후에도 공동체 운영에 자발적으로 참여한다. 공간 역시 상호작용을 촉진하도록 설계된다. 노인만 거주하는 시니어 코하우징뿐아니라 다양한 세대가 함께 사는 다세대 코하우징도 확산되고 있다.

미국에서는 지역사회 기반 노인 돌봄 공동체(빌리지 모델), 코하우징, 셰어하우스, 자립형 다세대주택 등 여러 형태의시니어(주거 공동체) 공존한다. 반면 한국에서는 ‘함께 사는 노후’ 개념이 아직 낯설다. 건강을 잃으면 요양시설로, 비교적 건강하면 일반 주택이나 공공임대주택, 또는 노인 주거복지시설(양로원·실버타운)을 선택하는 방식이 일반적이다.

국내에서 대표적인 노인 주거공동체 사례로 언급되는 곳은 서울 도봉구의 ‘해심당’이다. 2021년 문을 연 이곳은 한국토지주택공사(LH)와 도봉구청, 유니버설하우징협동조합이 협력해 조성한 공공임대주택이다. 21가구의 소규모 고령자 맞춤형 주거 공간으로, 국내 최초 소규모 주택 배리어프리 인증을 받았다.

1층에는 실버 바리스타 카페와 공유 공간, 옥상에는 키친가든을 마련해 입주민들이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교류할 수 있는 장을 마련했다. 입주민들은 개별 공간에서 생활하면서도 서로를 마주하는 일상을 이어간다.

다만 해심당 같은 모델은 공공임대라는 성격상 주 대상이 저소득층과 취약계층 고령자에 한정된다. 즉 정부 지원을 기반으로 한 공동체형 주거 형태는 일부 구현되고 있지만, 비교적 경제적 여력이 있고 독립적인 생활이 가능한 중산층 고령자를 위한 선택지는 여전히 제한적이다.

현재 이들이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은 사실상 실버타운(노인복지주택)에 집중돼 있다. 그러나 2024년 기준 전국 노인복지주택은 40여 곳에 불과하고, 수용 인원은 1만 명이 채 되지 않는다. 급격히 늘어나는 고령 인구를 고려하면 충분한 공급이라고 보기 어렵다.

이미 한국은 초고령사회에 들어섰다. 특히 베이비부머(1955~1974년생) 세대는 이전 노인 세대와 다른 특성을 지닌다. 교육 수준이 높고 비교적 건강하며, 경제적 기반도 안정적인 편이다. 이들이 원하는 것은 단순한 거주 공간이 아니다. 유대감과 소속감을 느낄 수 있는 삶이다. 돌봄은 필요하지만, 고립은 원치 않는다. 결국 중산층 액티브 시니어를 위한 새로운 주거 모델이 필요하다. 그래서 ‘주거공동체’가 대안으로 거론된다.

▲경기도 시흥 배곧신도시의 ‘더네이버스타운’ 조감도.(굿네이버스 미래재단)
▲경기도 시흥 배곧신도시의 ‘더네이버스타운’ 조감도.(굿네이버스 미래재단)

좋은 이웃과 함께하는 미래형 주거

이 같은 문제의식 속에서 굿네이버스 미래재단이 추진 중인 ‘더네이버스타운’은 중산층 시니어를 위한 새로운 주거 모델로 주목받고 있다. 올해 상반기 문을 열 예정인 경기도 시흥 배곧신도시의 더네이버스타운은 ‘좋은 이웃과 함께 살아가는 삶’을 모토로 내세웠다. 58세대의 소규모 운영을 통해 입주민 간 자연스러운 관계 형성이 가능하도록 설계한 점이 특징이다.

기존 실버타운이 편의시설과 생활 지원 서비스 중심으로 운영됐다면, 더네이버스타운은 ‘관계의 질’과 ‘주체적 삶’을 핵심 가치로 삼는다. 보건·돌봄 서비스는 필요에 따라 유연하게 제공하되, 개인의 생활 방식에 맞춘 사회 활동과 지역 연계 프로그램을 통해 능동적인 일상을 지원한다.

양진옥 굿네이버스 미래재단 대표는 “초기 기획 단계부터 기존 실버타운과는 다른 관점을 설정했다”며 “시니어들이 존중받으며 이웃과 어울리고, 의미 있는 일상을 지속할 수 있는 구조를 고민했다”고 설명했다.

더네이버스타운은 충분한 사전조사와 연구를 거쳐 구체화됐다. 굿네이버스는 시니어 회원을 대상으로 3년간 설문조사를 실시했고, 총 1만여 명이 참여했다. 사회복지·의료·건축 등 20여 명의 전문가가 설계 과정에 참여했으며, 비영리기관이 주도하는 공익형 모델로 합리적 비용과 지속가능성을 우선했다.

연구에 참여한 박소정 워싱턴대학교 세인트루이스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건강하고 행복하게 나이 듦(Healthy & Happy Aging)’을 비전으로 제시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한 과제로 △입주자 욕구 기반 서비스 △지역사회 협력체계 구축 △디지털 기반 맞춤·예방 중심 관리 △리빙랩 기반 운영 모델을 도출했다. 즉 단순한 공간 제공이 아니라 삶의 전 과정을 지원하는 구조다.

타운 내부에는 생활상담실, 프로그램실, 요가실, 헬스장, 정원, 옥상가든 등이 조성된다. 입주자는 월 이용료 범위 안에서 문화·여가·건강관리 프로그램을 이용할 수 있으며, 사회복지사와 간호사가 예방 중심의 건강관리와 상담을 지원한다. 일상적 활동과 전문적 케어가 한 공간에서 결합되는 구조다.

양진옥 대표는 “시니어들은 건강과 활력, 그리고 보람 있는 삶을 원한다”며 “함께 배우고 활동하는 환경 속에서 삶의 에너지를 유지하도록 돕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박소정 교수는 “공동체는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결과가 아니라 의도적 설계와 구조적 지원을 통해 유지된다”며 “노년은 나이가 아니라 관계의 질에서 출발한다. 지나치게 밀착되지도, 지나치게 고립되지도 않는 균형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결국 초고령사회에서 노후 주거는 ‘어디에 사는가’를 넘어 ‘어떻게 연결되어 사는가’의 문제로 확장되고 있다. 이제 남은 과제는 분명하다. 시니어가 원하는 삶의 방식은 이미 드러났다. 그 가능성을 어떻게 확장할 것인지는 우리 사회의 몫이다.

(그래픽 이은숙 기자)
(그래픽 이은숙 기자)

도움말 박소정 워싱턴대학교 세인트루이스 사회복지학과 교수

환경 노년학자로서 물리적·사회적 환경 자원을 활용해 사회계층 간 건강과 웰빙 격차를 완화하는 방안을 연구하고 있다. 또한 비영리 연구 법인 ‘Aging Together(함께 늙어가기)’ 대표로 활동하며, 국내외 연구자들과 협력해 노년기 주거 환경과 공동체 기반 모델을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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