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ML 칼럼] 유혹은 삶의 에너지다

기사입력 2016-06-01 10:13 기사수정 2016-06-01 10:13

▲프리드리히 구스타프 슐릭 작 ‘산책하는 파우스트와 제자 바그너’. 메피스토펠레스는 개의 모습으로 나타났다.
▲프리드리히 구스타프 슐릭 작 ‘산책하는 파우스트와 제자 바그너’. 메피스토펠레스는 개의 모습으로 나타났다.

인간은 누구나 유혹과 충동 속에서 세상을 살아갑니다. 본능과 욕구를 자극하고 부추기는 것들을 어떻게 슬기롭게 제어하고 다스리면서 남들과 잘 어울릴 수 있느냐가 인생의 가장 큰 과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고혹 곤혹 매혹 미혹 유혹, 이런 말에 들어 있는 惑(혹)은 정신이 헷갈리는 상태를 말합니다. 의미상 헤맨다는 뜻인 迷(미)와 같습니다. 인간은 정신이 헷갈리는 상태인 채 아득한 미망(迷妄)의 바다에서 발전과 구원을 지향하며 노력하는 존재입니다. 괴테의 <파우스트>는 바로 지식과 학문에 절망한 노학자 파우스트의 미망과 구원의 노정을 그린 작품이 아닙니까.

<파우스트>에는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하기 마련”(Es irrt der Mensch, solange er strebt)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그러니 유혹에 흔들리고, 곤혹을 겪고, 미혹을 이기지 못하는 것은 선한 인간이 더 나아지기 위해 모색하는 온갖 행동이거나 징표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공자는 나이 마흔을 일컬어 ‘세상일에 정신을 빼앗겨 갈팡질팡하거나 판단을 흐리는 일이 없게 된다’는 뜻의 불혹(不惑)이라고 했습니다. 나이 열다섯 살에 학문에 대한 뜻을 세우고[志于學], 삼십에 일어서고[而立], 그리고 마흔이 되면 불혹이 된다는 거지요.

그런데, 불혹이란 공자님 말씀처럼 그렇게 학문에 뜻을 세운 뒤 문자와 글에 대해 품었던 여러 가지 의문이나 의심을 치열한 궁구(窮究)를 통해 풀어 나가는 과정에 불과한 것일까? 글이나 책 속에 온갖 유혹이 있고, 그 온갖 유혹을 공부를 통해 해결하는 것이 과연 불혹의 경지인 것일까? 불혹을 지나면 지천명(知天命), 즉 자신의 천명을 아는 쉰 살이 되고, 또 더 지나면 누가 무슨 말을 하든 거슬리지 않는 이순(耳順)의 예순 살이 되고, 좀 더 지나면 자기 마음대로 해도 걸릴 것 없고 거리낄 게 없는 불유구(不踰矩)의 경지에 오를 수 있는 것일까?

이런 ‘고전의 상식’에 동의하기 어렵고, 오래된 가르침을 배반하고 싶은 것이 오늘날 시니어들의 새로운 유혹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헤르만 헤세는 한 편지에 “모든 유혹 중에서 가장 강한 유혹은 본래의 자기와는 아주 딴판인 것이 되고 싶다고 바라고, 자기의 도달할 수 없는, 또 도달해서는 안 되는 모범이나 이상을 좇는 것”이라고 썼습니다.

알베르 카뮈의 유고에도 “가장 위험한 유혹, 그것은 무엇과 닮지 않겠다는 유혹이다”라는 말이 나옵니다. 말의 색깔이 약간 다르지만 헤세나 카뮈의 말은 자아 정체성의 확립, 독자적 자율성, 단독자로서의 삶, 이런 것에 관한 언급이 아닐까 싶습니다. 다른 사람들이나 스승, 역사적 인물들과 다르게 자신만의 얼굴과 특성을 만들어가는 건 쉽지 않은 일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현재의 자기와 다른 모습을 추구합니다. 남들이 알고 있는 모습이 아닌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고 싶은 욕구가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지킬 박사의 다른 얼굴이 하이드입니다. ‘동방의 주자(朱子)’ 또는 해동공자(海東孔子)라는 말을 들었던 퇴계 이황 선생은 남들에게 알려진 모습과 전혀 다른 면이 있어 ‘낮 퇴계, 밤 퇴계’라는 말을 듣기도 했습니다. 로마의 신 중에서 야누스의 얼굴은 전쟁과 평화를 다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 신의 얼굴을 보는 사람들이 어느 한쪽만 이야기할 뿐입니다.

2천년 교회 역사를 통틀어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위대한 스승이라는 고대 서양철학자 아우렐리우스 아우구스티누스(354~430)는 성인으로 존경받는 사람이지만 젊어서는 정욕의 노예였습니다. 결혼하지 않은 채 15년이나 동거하던 여자에게 아들을 낳게 하고 도둑질도 했던 그는 “눈을 뜨고 있을 때에는 이성에 의하여, 눈앞에 주어지는 정욕의 유혹에도 마음이 움직이지 않지만 잠잘 때에는 거짓된 환상이 나를 유혹한다”고 썼습니다.

그러나 그는 인간과 죄에 관한 질문을 통해 자신을 개조하고, 질문 속에서 새로운 삶을 완성해갔습니다. 그는 질문으로 가득 찬 <고백록>에서 이렇게 묻습니다. “하느님, 태어나기 전에 나는 어디에 있었으며 무엇이었습니까?” “하느님은 선이신데 왜 악이 존재하며 그 악은 어떻게 생겨났습니까?” 그는 일생동안 ‘죄는 어디에서 오는가?’ 하는 실존적 문제의식을 지니고 살았습니다.

유혹은 어떤 내용의 것이든 거역하기 어려울 만큼 강력하고 치명적입니다. 유방의 군사(軍師) 장량이 받았다는 <황석공소서(黃石公素書)>에는 ‘고막고어다원 비막비어정산(苦莫苦於多願 悲莫悲於精散)’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원하는 게 많은 것보다 더 괴로운 게 없고 늙는 것보다 더 슬픈 게 없다는 뜻입니다. 다원(多願)을 다욕(多慾)이라고 쓴 자료도 있습니다. 구약성서의 잠언에도 “훔친 물이 더 달고 몰래 먹는 떡이 더 맛이 있다 하는도다”(9:17)고 하지 않았습니까?

프란시스 베이컨(1561~1626)은 인간에게는 세 가지 유혹이 있다고 했습니다. 거친 육체의 욕망, 제 잘났다고 거들먹거리는 교만, 졸렬하고 불손한 이기심입니다. 베이컨에 의하면 이 무서운 병에 대해 취해야 할 수단이란 제각기 자기 자신에게 가해야 하는 수양 이외에는 없습니다. 인간의 마음이란 때로는 가장 완성된 상태에 있으며, 또 때로는 가장 부패한 상태에 있으니 좋은 상태에 있을 때 조심하고 그 상태를 지탱해 악한 것을 몰아내라는 게 그의 충고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이 대체 얼마나 되겠습니까? 파우스트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 가슴 속엔 아아! 두 개의 영혼이 깃들어서/하나가 다른 하나와 떨어지려고 하네./하나는 음탕한 애욕에 빠져/현세에 매달려 관능적 쾌락을 추구하고,/다른 하나는 과감히 세속의 티끌을 떠나/숭고한 선인들의 영역에 오르려고 하네.”

그러니 아무런 잘못이나 죄도 저지르지 않고, 어떤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으면서 남의 모범이 되는 삶을 영위한 사람보다는 아우구스티누스처럼 온갖 유혹과 정신적 방황을 겪고 인격을 완성해 나간 사람이 더 훌륭하지 않겠습니까?

<파우스트>에서 메피스토펠레스라는 악마는 자신이 “항상 악을 원하면서도 항상 선을 창조해 내는 힘의 일부분”이라고 말합니다. 악마에 대한 내면의 저항은 선을 지키려는 의지를 강화시켜 주기 때문일 것입니다. 메피스토펠레스가 하느님에게 파우스트를 타락의 길로 이끌 수 있다고 자신하며 내기를 제의하자 하느님은 “착한 인간은 잠시 유혹에 빠질 수 있지만, 비록 어두운 충동 속에서도 무엇이 올바른 길인지 잘 알고 있다”고 말합니다.

글쓰기이든 운동이든 여행이든 인간의 삶 도처에 유혹이 있고, 가지 않은 길일수록, 해보지 않은 일일수록 손짓해 부르는 게 많습니다. 유혹이나 욕망이란 인간을 발전시키고 인격이 완성되도록 돕고 자극하는 삶의 에너지이며 촉매제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런 믿음을 토대로 지금 자신이 처한 유혹에 정면으로 맞서 잘 이겨나가도록 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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