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거 땜에 친구와 의 상한다] 동창과 친구사이에서

기사입력 2016-07-06 14:20 기사수정 2016-07-12 12:53

▲1977년 고등학교 3학년 졸업사진. (손웅익 동년기자)
▲1977년 고등학교 3학년 졸업사진. (손웅익 동년기자)
필자는 고등학교 졸업 후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고등학교 졸업반 반창회 대표를 맡아왔다. 그동안 졸업 10주년, 20주년, 30주년, 35주년 행사를 치렀다. 그 행사 때마다 반 친구들에게서 회비를 걷고 행사 안내 확인 전화를 수차례씩 돌렸다.

그뿐 아니다. 매년 봄에 한 차례 반모임을 가졌고 연말에는 송년회를 했다. 그때마다 날짜와 장소를 잡고 회비를 거두었다. 정기 모임 외에 경조사가 생기면 동기들에게 연락하고 경조사에 쫓아다녔다.

동기회장을 하는 친구 중에는 명예욕에 사로잡힌 인사들이 있다. 더러는 몇 회 동기회장이라고 명함에 넣고 선·후배 찾아다니면서 사업에 활용하기도 한다. 가만히 따지고 보면 동기회장은 회비 조금 더 내는 거밖에 없다. 할 일도 없다. 총무나 반창회 대표들이 고생 다 해서 만들어 놓은 행사에 폼 잡고 나타나서 마이크만 잡으면 된다. 다만 참석해야 할 경조사가 좀 많다는 것이 동기회장이라는 자리가 갖는 유일한 불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고등학교 동기회의 모든 행사와 모임은 반창회 대표의 역할로 이루어진다고 할 수 있다. 그 역할 중에도 가장 중요한 것이 회비를 걷는 일이다. 회비는 자발적으로 내는 경우가 별로 없다. 빚쟁이처럼 수차례 전화하고 사정해야 받아낼 수 있다. 행사 참석 인원 파악도 힘들다. 오랜 세월 동안의 행사 경험을 바탕으로 내린 결론은 전화로 파악한 행사 참석 예상 인원 중 실제 참석하는 인원은 70% 정도라는 것이다. 그나마 피치 못할 사정이 있다고 행사 전에라도 연락하는 친구는 용서가 된다. 철석같이 참석을 약속해 놓고 연락도 없이 참석하지 않는 동기들에게서 상처를 듬뿍 받는다. 그러나 반창회 대표는 이런 섭섭함을 내색해서는 안 된다. 다음 번 행사가 또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행사 연락을 하면서 매번 심하게 자존심이 상하는 경우가 있다. “시간 되면 참석할게”라는 밑도 끝도 없는 답변을 들을 때이다. 이런 무성의한 답변을 삼십 년 넘게 반복하면서 한 번도 모임에 참석하지 않았던 동기들이 있다.

최근에 그들 중에 여럿이 동기회에 나타난다. 다들 은퇴해서 심심하다고 했다. 이제 시간이 남아도니까 나타나서 설쳐대는 그들을 보면서 그동안 차곡차곡 쌓아 두었던 증오의 감정이 한꺼번에 올라왔다. 그 감정을 참을 수 없어 이제 반창회 대표를 그만하겠다고 했더니 다들 종신 대표를 하라고 한다. 대답도 하기 싫어 침묵을 지켰다. 곁에서 필자 고생하는 거 오랜 세월 봐 왔던 동기 하나가 이제부터 자기가 짐을 맡겠다고 나섰다.

반창회 대표를 그만둔 지 2년 동안 필자는 모든 고등학교 모임에 발길을 끊었다. “신상에 무슨 일이 있냐”고 걱정해서 전화하거나 찾아오는 친구들이 더러 있다. 하지만 “시간 되면 참석하겠다”던 동창 중에 필자에게 전화한 사람은 하나도 없다. 그동안 동기동창과 친구의 구별 없이 살았다. 억울하지는 않지만 이제 잠시 멈추어 인간관계를 차분히 정리하는 시간을 갖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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