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거 땜에 친구와 의 상한다] 수다쟁이는 못 참아

기사입력 2016-07-06 15:47 기사수정 2016-07-27 10:30

▲산악회 회원 박대문씨가 서울대 관악수목원에서 산행하다가 촬영한 싸리나무 꽃. (백외섭 동년기자)
▲산악회 회원 박대문씨가 서울대 관악수목원에서 산행하다가 촬영한 싸리나무 꽃. (백외섭 동년기자)

사람들은 어려서부터 ‘말 잘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인다. 하지만 시니어가 되면 반대 상황이 도래한다. “한 번 말하고, 두 번 경청하며, 세 번 감명하라!” 한마디로 말 씀씀이를 확 줄이라는 이야기다. 그런데 이런 격언을 무시하고 말만 해대는 친구와 의가 상할 뻔한 적이 있다.

또래 친구로 구성된 산악회는 매달 가족동반 산행을 20년 넘게 하고 있다. 맛난 도시락과 간식, ‘정상주’가 어우러져 1급 호텔 뷔페가 부럽지 않은 산상 오찬이 포인트다. 산상 오찬엔 오순도순 이야기까지 있으니 금상첨화.

그런데 은퇴자가 늘어난 몇 년 전부터 모임에 변화가 시작되었다. 동반하였던 부인들은 늙은 남자 냄새가 싫어 거의 빠지고 시간 여유가 많은 남자만 남아 산에 갔다. 나이가 나이인지라 산행을 힘들어하는 친구가 증가하면서 걷기 쉬운 둘레길을 찾는 횟수가 많아졌다. 도시락 싸기 귀찮아지고 남는 게 시간이니 산상 오찬은 사라지고 하산 후 뒤풀이가 풍성해졌다. 대신 만찬에선 고삐 풀린 망아지들이 ‘무림의 자유’를 차지하여 말 많은 친구가 늘기 시작했다. 그중에서 술을 즐기는 A는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를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계속 읊어대 모두의 원성을 샀다.

대다수 친구가 고개를 내저었고 분위기는 썰렁해졌다. 알아듣도록 설명하면 고개를 끄덕였다가도 말을 시작하면 제 버릇 남 못 주고 ‘말 폭탄’으로 변하였다. 그렇다고 이를 계속 말리기도 곤란하였다. 사람 숫자가 줄어들면 모임 유지가 안 되기 때문이다. 친구들의 고민이 깊어졌다.

‘말 폭탄’ A에게 시달리던 중 외국생활을 마치고 역이민을 한 B가 나타났다. 외국 이야기를 몇 번 들어줬더니 녹음기가 되었다. 말쟁이가 하나 늘어난 것이다. 그는 조용한 다수가 자기 이야기에 열광하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었다.

할 수 없이 대책을 찾아 나섰다. 뒤풀이 때면 A·B와 주사파 몇 명을 한자리로 모아서 실컷 떠들도록 멍석을 깔아줬다. 좌석분리 작전은 효과가 있었다. 자리가 떨어져 있는 다른 친구들은 조금이나마 소음 공해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더구나 몇 번의 모임에서 ‘말 많이 하기’에 승부가 났다. A가 “저 친구에게는 안 되겠다”고 꼬리를 내린 것이다. 소재가 부족한 자기 이야기는 잘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그때부터 B가 이야기를 주도하고 A는 묵묵히 들으면서 별로 대꾸도 하지 않았다.

A의 변하는 모습에 친구들은 “세상 많이 달라졌다”고 감탄하였다. 그러나 밀림의 왕좌만 바뀌었을 뿐 시끄러움은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몇 달 전 이른바 자칭 예술가 C가 모임에 나오기 시작하였다. 고리타분한 이야기보다 노래방에서 1차 승부를 벌였다. 노래 실력에 밀리던 B는 슬그머니 뒤로 빠지기 시작하였다. 부질없는 논쟁보다 C처럼 노는 것을 친구들이 훨씬 좋아하고 있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때부터 B도 말 씀씀이가 확 줄었다.

결국 느긋하게 기다려주는 방법이 주효했다. 말 많은 친구를 책망할 필요가 없어졌고, 멀리할 이유도 사라졌다. ‘동물의 세계’처럼 질서가 잡혔다.

그래서 좀 발전적인 대안을 만들었다. 각자의 장기를 살려 ‘대장’을 삼은 것이다. 발바리처럼 잘 걷고 지리를 잘 아는 친구는 산행대장이, 카리스마투성이인 친구는 군기반장이 되었다. 그랬더니 최근 서울대 수목원 산행에서도 도토리 키 재기 말다툼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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