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즈 엄마의 미국 이민 이야기] (18)멕시코 미국 영사관

기사입력 2016-08-22 18:32 기사수정 2016-08-22 18:32

▲멕시코 미국 영사관에서 어렵게 얻어낸 필자의 E2비자. (양복희 동년기자)
▲멕시코 미국 영사관에서 어렵게 얻어낸 필자의 E2비자. (양복희 동년기자)
제3국, 멕시코를 향하여 가는 길은 긴장의 연속이었다. 한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서 비자를 받기 위한 과정은 상상을 초월했다. 그러나 사람이 막상 닥치고 나면 없던 힘도 생기는 것 같았다. 살기 위한 투쟁은 참으로 위대한 것 같았다.

필자는 미국 비자를 얻기 위해 멕시코로 향했다.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제3국을 향해, 두려운 마음은 있었지만, 일단은 아무 생각이 없이 따라나섰다. 유능한 변호사가 곁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여러 사람들이 함께하니 크게 걱정은 되지 않았지만, 역시 혼자라는 것에 조용히 떨려오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드디어 작고 허름한 건물이 눈앞에 보였다. 멕시코의 변두리에 위치한 미국 영사관이라고 했다. 마치 한국의 간이역 건물 같은 느낌이 들었다. 주변의 모습도 미국과는 확연하게 다르고, 누가 봐도 후진국의 형편없는 일면을 보여주고 있었다. 일행은 상기된 표정으로 변호사를 따라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다행히도 에어컨은 켜져 있는 듯했으나 실내에서는 특유의 이상한 향수 냄새가 나고, 썩 시원하지도 않았다.

변호사는 구석진 한가한 곳으로 일행들을 데려갔다. 긴 의자에 앉아 모두 조용히 기다리라고 명령을 하고는 두툼한 서류들을 가지고 어디론가 향했다. 일행들은 서로가 침묵으로 긴장을 하며, 미리 적어준 몇 가지 질문에 대한 영어 쪽지 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1시간쯤이나 지난 후에야, 변호사는 밝은 표정으로 돌아왔다. 약속대로 모든 것들이 잘 진행이 되고 있는 모양이었다.

어쨌든 나쁜 일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변호사는 사람들을 가까이로 불러 모았다. 오는 내내 차 안에서도 연습을 단행했지만, 또다시 중요한 몇 가지 질문에 대한 예행연습을 영어로 시켰다. 예를 들면 “왜 당신은 이곳에 와서 비자를 만들려고 하느냐?” 라고 물으면, “비즈니스(세탁소)를 하느라고 한국까지 갈 시간이 없다. 가장 가까운 이곳이 가장 적합해서 왔다.” 라고, 대답해야 한다.

다른 질문들도 아주 사소한 것들이었다. 그러나 말 한번 잘못하면, 그야말로 비자는커녕 오히려 수습해야 할, 더 힘든 일이 생길 수도 있다. 때문에 변호사는 사전에 어떻게든 입단속을 시켜야만 했다. 더구나 영어가 부족한 한국 사람에게는 무조건 외우라고 했다. 그들이 형식적으로라도 묻는 질문에 가장 합당하고 어느 정도 타당성이 있어야만 했다.

물론, 사전에 모든 과정은 다 준비를 해놓고 오는 것만 같았다. 여기저기 연결고리를 통해서, 아주 잘 아는 영사관이 근무를 하는 날짜에 꼭 맞추어서, 암암리에 짜고 접수를 하고 오는 것이었다. 그곳도 사람 사는 곳이었기에 돈만 집어주면, 다 눈 감고 하는 일이 서로 통하고 있었다. 어쩌면 더 잘 통하는지도 모른다.

단지 변호사에게 가장 큰 문제는 불시에 담당영사관이 바뀐다는 것이다. 그러면 모든 것들은 수포로 돌아간다. 아니 시작도 할 수가 없다. 당연히 미국에서부터 연결 통로가 있어서, 단단한 조직으로 통해야만 거의 실수가 없다. 그러므로 모든 것들이 끝날 때까지는 마음을 조아릴 수밖에 없다.

영사관 창구에서 이름을 부르기 시작했다. 일대일로 달려가 무조건 대면을 해야 했다. 대체로 가족의 경우에는 다 같이 함께 부르기도 했다. 앞사람이 동그랗게 원을 그렸고, 결과는 무사히 통과했다는 뜻을 전해왔다. 더 긴장이 됐다. 순간, 필자의 이름을 불러 정신없이 달려갔다. 역시 변호사가 시킨 대로 똑같은 질문을 해왔다. 아마도 공식이었나 보다.

필자는 마구 떨려왔지만, 최대한 미소를 지으며 여유 있고 경쾌하게 대답을 해 나갔다. 미국 영사는 두꺼운 유리 벽 안에서 필자를 위아래로 한번 훑어보더니, 의외로 쉽게 도장을 꽝꽝 찍어준다. 이윽고 비자를 만들기 위한 사진을 찍으라고 했다. 안도의 한숨이 크게 나왔다. 생각보다 쉽게 일행 모두가 한 번에 다 통과를 했다. 영사관과 딱 맞아떨어진 것이다. 변호사는 그제야 환하게 웃음을 지었다.

비록 5년짜리 비자를 받았지만, 5년 후에 일은 그때 가서 또 고민하면 되는 것이다. 모든 일행은 어렵게 얻어낸 감격의 기쁨으로 환희에 차 있었다. 사람들은 무어라 표현할 수 없는 실마리를 풀어 낸 것만 같아 하늘로 날아갈 것 같다고 했다. 그러나 이제, 또 하나의 문제는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걱정이 되기는 했지만, 일행들은 일단 늦은 점심을 하기 위해 변두리 시내로 향했다.

산다는 것이 참으로 쉬운 일은 없고, 또 겪어야 할 상황은 여전히 남아있었지만, 힘겨운 제3국에서 미국 비자를 취득한 일은 대단한 업적이었다. 그것도 멕시코 영사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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