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에게 보낸 500년 전의 편지

기사입력 2016-09-01 14:58 기사수정 2016-09-01 14:58

▲1490년대에 나신걸이 아내인 신창 맹씨에게 보낸 편지로 부부 간의 애틋한 사랑을 알 수 있는  유물이다. 2016년 8월 대전시립박물관에 전시된 한글편지. (김영선 동년기자)
▲1490년대에 나신걸이 아내인 신창 맹씨에게 보낸 편지로 부부 간의 애틋한 사랑을 알 수 있는 유물이다. 2016년 8월 대전시립박물관에 전시된 한글편지. (김영선 동년기자)
2011년 대전 유성구 금고동 ‘안정 나씨’ 종중 묘를 이장하는 과정에서 조선시대 미라 4기가 발견돼 학계의 큰 관심을 모았다. ‘안정 나씨’ 묘에서 출토된 미라 4기는 나신걸(1461~1524)과 부인 신창 맹씨(15세기 말~16세기 초), 그리고 나부와 부인, 용인 이씨가 각각 합장된 부부의 미라다. 이때, 무덤 안에 있던 조선시대 복식 150여점과 다양한 부장품이 함께 출토되었는데, 16세기 초의 의생활을 알 수 있어서 복식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가치가 크다.

그런데, 당시 출토된 것 중에 아주 중요한 유물이 또 있다. 바로 나신걸이 부인인 신창 맹씨 묘에서 나온 편지인데, 이 편지는 현재까지 발견된 편지 중에서 가장 오래된 ‘한글편지’다. 한글이 1446년에 창제, 반포되었고, 한글을 반포한지 얼마 안 되었는데도, 한글로 편지를 주고받았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중요한 자료로서 가치가 매우 크다.

편지는 군관으로 영안도에 나가있는 남편 나신걸(1461~1524)이 고향에 있는 부인에게 보낸 것인데, 영안도는 1470년부터 1498년까지 사용한 함경도의 옛 지명으로, 이 편지를 쓴 시점은 적어도 1498년 이전으로 추정되고 있다. 편지 내용은, 군관 등 남성들이 입던 철릭(조선시대 무관이 입던 공복)을 보내달라는 이야기와 부인을 위해 분과 바늘을 사서 보낸다는 것, 그리고 “너무 농사에 힘쓰지 말라”는 부인을 생각하는 마음은 물론, 편지를 고이 간직해온 것으로 봐서, 부부간의 애틋한 사랑을 알 수 있다. 다음은 편지의 일부분이다.

‘안부를 끝이 없이, 수없이 하네,

집에 가서 어머님이랑 아기랑 다 반가이 보고자 하다가

장수가 혼자 가시며 날 못 가게 하시니 못 다녀가네.

이런 민망하고 서러운 일이 어디에 있을꼬.

또 내 삼베 철릭이랑 모시 철릭이랑

성한 것으로 가리어 다 보내소.

또, 분하고 바늘 여섯을 사서 보내네.

집에 못 다녀가니 이런 민망한 일이 어디 있을꼬.

울고 가네. 어머님과 아기를 모시고 다 잘 계시소.

내년 가을에 나오고자 하네.’

필자의 남편도 ‘안정 나씨 문중’의 한 사람이다. 그런데, 500년 전의 조상도 이렇듯 아내에게 애틋한데, 필자의 남편은 그런 조상의 피를 물려받았을 만도 하건만, 무뚝뚝하기가 한이 없다. 남편에게 지금까지 편지는커녕, 메모 한 장도 받아 본 적 없는 필자의 입장에서는 ‘나씨 부인’ 맹씨가 한 없이 부럽기만 하다. 그래도 더 기다려 보면 필자도 남편에게 연서(戀書) 한 장 받아 볼 수 있을까? 혹시 연서(戀書)라도 한 장 받게 되면 액자에 넣어서 거실에 걸어 두었다가 무덤에 넣어 달라고 해야겠다. 누가 알겠는가! 혹시 500년 뒤에 출토 될지!

‘나씨 부인 김영선, 묘에서 연서(戀書) 나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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