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상 묘를 관리하는 후손의 갈등

기사입력 2016-09-19 09:43 기사수정 2016-09-20 09:13

증조할아버님 때부터 우리 집은 장남 집안이 되었다. 증조할아버님은 본래 차남인데, 형님이 큰댁에 양자로 가는 바람에 졸지에 장남이 되었다. 그런데, 할아버님도 증조할아버님과 똑같이 형님이 큰댁에 양자로 가게 되어 장남이 되고 말았다. 시아버님은 5형제의 장남이고, 남편도 5남매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거기다가 아들은 외아들이다. 이렇게 해서 5대째 장남인 집안이 되었다.

종부의 자리

시아버님의 형제들과 그분들에게서 태어난 자손들까지 모두들 우리 집으로 다 모인다. 시집와보니 처음에는, 기본이 27명이었다. 사촌 시동생들이 차츰 결혼들을 하고 아이들을 낳으니 숫자가 늘기 시작했다. 증조할아버님이 장남이 되어서 부모님의 제사를 지내다가 할아버님이 물려받고, 또 시아버님이 물려받았는데, 일찍 돌아가셔서 남편이 물려받고 내리내리 하다보니까 우리는 8분의 제사를 지내게 되었다. 처음에는, 제사와 명절이 돌아 올 때면 두 달 전부터 걱정되고, 끝나고 나면 한 달씩 앓아누웠다. 막내로 자라 아무것도 할 줄 모르고 있다가 얼떨결에 종부가 되어버린 필자는 종부의 자리가 겁이 났다. 종부의 자리는 아무나 앉는 자리가 아닌데, 자격도 없이 덜컥 앉아버렸으니, 몸 고생과 마음고생이 자심하다. 작은 종부자리도 이렇게 어려운데, 대종가집의 종부는 얼마나 어려울까! 가늠조차 안 된다.

2대에 걸친 개혁 단행

새 할머님도 어머님도 모두, 2대에 걸쳐서 집안을 위해 획기적인 개혁을 단행하셨다.

새할머님은 제사를 하나로 통합 하셨고, 어머님은 제사를 아예 없애고, 시아버님의 묘를 ‘아내의 권한’으로 폐장 하셨다.

할머님이 일찍 돌아가셔서, 할아버님이 재혼을 하는 바람에 새 할머님이 계시는데, 그 제사를 평생 모두 받들었다. 돌아가실 때는, 후손들을 위해서 ‘바쁜 세상에 젊은 사람들이 일해야지, 어떻게 제삿날 일일이 다 모일 수 있겠느냐, 시대에 맞게 고쳐가면서 살아야 한다’시며 제사를 모두 모아 합쳐서 할아버님 제삿날에 합동으로, 일 년에 딱 한번만 제사 받들라고 유언하셨다. 당시로서는 매우 획기적인 개혁이었다. 그 덕분에 손부인 필자가 좀 편해졌다.

어머님도 돌아가시기 몇 년 전, 윤달을 택해서 남편의 묘를 ‘폐장’ 하셨다. 그리고는 ‘내가 죽으면 화장을 해서 성당에 납골을 하라’고 하셨다. 어머님은 천주교 신자이시다. 시누이들도 모두 천주교 신자인데, 어머님의 납골 관리는 딸들에게 맡기셨고, 고향에 있는 산소들은 맏아들인 우리에게 맡겨졌다. 전부터 우리가 관리해 오던 것이니 당연한 일이다.

또, 몇 년 전 어머님이 돌아가실 때쯤에는, 제사를 아예 없앴다. 작은 아버님이 돌아가신 분도 있고 하니까, 각각들 개인적으로 집에서 제사를 따로 지내고, 우리 집에서 모두 모이는 건 이제 그만 하자고 하셨다. 우리에게도 윗대 조부모님들 제사는 집에서 지내지 말고, 그 대신 성묘 가서 간단하게 지내라고 평소에 늘 말씀하셨다. 그래서 어머님이 돌아가신 후로는 제사도 폐하고, 조상 묘가 있는 남편 고향에, 일 년에 두 번, 한식 때와 추석 때에 성묘만 다녀온다.

개혁에 대한 갈등

이제는 우리 차례다. 새 할머님이나 어머님처럼, 세상 떠나기 전에 집안의 마지막 남은 폐단을, 개혁하고 떠나야 할 사명이 남편과 내게 있다. 그것은 남은 조상들의 묘를 윤달마다 하나씩 폐장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부부가 요즘 갈등하는 문제가 바로 ‘조상의 산소 폐장’이다.

조상의 묘를 폐장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집안의 어른들이 동의해 주어야 하고, 형제들과 사촌들의 동의도 있어야 한다. 동의라는 것이 본시 한 사람의 동의도 얻어내기가 어려운 것인데, 여러 사람의 동의를 얻어야 하는 일이니 이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풍수지리를 공부한 사람들이 입을 모아 말 하는 것 중에 하나가 ‘동기감응’이라는 말이다. 조상과의 동기감응으로 인한 ‘후손 발복’을 기대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화장’을 하면 ‘동기감응’은 없다.‘무해무득’ 즉, 아무런 영향이 없다는 뜻이니 ‘후손 발복’ 자체를 바랄 수가 없다. 그러므로 납골을 하는 것은 의미가 없는 것이다. 흙으로 돌아가도록 놔 주어야 한다.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을 붙잡고, 후손에게 물려줄 산천을 훼손하는 일은 해서는 안 되겠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어머님도 조상들의 산소 폐장을 유언하셨고, 필자도 어머님과 같은 생각이다. 그런데, 2017년에 윤달이 온다. 어떻게 해야 하나? 다만, 지금은 시기적으로 너무 이른 것 같아서 남편과 필자가 고민하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폐장은 언제고간에 꼭 해야 할 일이다. 산은 가까이서 보면 잘 모른다. 멀리서 바라봐야 그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있다. 고속도로를 지나다 보면, 아름다운 산천이 군데군데 후벼 파헤쳐져 흉측하기 이루 말 할 수가 없다. 무분별한 개발 때문이기도 하지만, 또, 산을 깎아서 모두 산소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후손들에게 물려주어야 할 이 땅이 자꾸만 훼손되고 자원이 고갈되어가고 있다. 이러다가는 산천이 모두 산소로 뒤덮이고 말 것만 같다. 후손에게 물려 줄 것이 없다는 건 후손의 미래가 어려워진다는 것과 같다. 이 땅은 살아있는 사람들을 위해서 남겨져야 한다. 죽은 사람은 깨끗이 퇴장하는 것이 아름답지 않을까 생각한다. 후손들은 조상의 훌륭한 일들을 기억하고, 배워서 훌륭한 조상들의 행실을 본받고, 또 다음세대에 알리고 가르치고 하는 일들을 이어가면서 한 집안의 전통과 문화를 만들어 가면 족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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