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스키장

기사입력 2016-12-22 16:07 기사수정 2016-12-22 16:07

▲한창 스키에 열광했던 시절의 필자 모습(박혜경 동년기자)
▲한창 스키에 열광했던 시절의 필자 모습(박혜경 동년기자)
한 때 겨울의 꽃이라는 스키에 열광한 적이 있다.

가까운 곳은 양지스키장부터 천마산, 베어스타운으로 갔고 좀 멀리로는 강원도의 아주 예뻐서 인상적이었던 알프스스키장과 용평스키장을 다녔다.

백설의 슬로프를 멋진 11자 포즈로 스키 폴 대를 짚어가며 질주해 내려오는 그런 그림이 그려지지만 그건 잘 타는 사람들의 모습이고 나는 A자형으로 간신히 타는 수준으로 시작했다.

나는 참 용감한 편이었나보다. 특별한 강습도 받지 않고 처음부터 무식하게 리프트를 타고 중급자 코스로 올라갔다.

남편과 아들의 도움으로 벌벌 떨면서도 슬로프를 다 내려왔을 때의 그 기분이 생생하다.

너무 재미있어서 다들 중간 슬로프쯤에 있는 간이 쉼터에서 커피와 스낵을 즐길 때도 나는 열심히 이, 삼십 분 씩 줄을 서서 리프트를 기다렸다가 올라가서는 5 분 만에 미끄러져 내려와 또 줄을 서길 반복하며 정말 열심히 탔다.

리프트를 타고 올라가면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멋지게 활강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활기찬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는 게 참 좋았고 나도 저렇게 탈 수 있겠지 하는 기대감에 마음이 부풀었었다.

스키장 가는 횟수가 늘어남에 따라 몸이 스키에 적응 돼가는 느낌이 들었다.

A자로 스키를 벌리고 타는 것에서 약간 다리를 붙일 수 있었으며 언제인가는 모굴 이라고 하는 울퉁불퉁한 눈길도 리듬 있게 즐길 수 있는 정도가 되었다.

또 재미있는 건 처음부터 스키를 식구대로 준비하고 스키복도 갖추었다는 점이다.

미국에 사는 시누이 가족이 방학이라 한국에 왔다.

큰집 작은집이랑 시누이 가족 모두 용평으로 스키 여행을 가기로 했다.

다들 모였을 때 시누이가 어쩌면 하나같이 스키복을 차려입었냐면서 박장대소를 했다.

외국에서는 청바지 차림으로 타는 게 보통이라면서. 세련된 시누이 눈으로 볼 때 울긋불긋 차려입은 우리가 좀 우습게 보인 듯했다.

이제 좀 리듬 있게 탈 수 있겠다고 즐거워하던 어느 날 사고를 당했다.

스키를 타다가 넘어졌는데 내 무릎 위로 어떤 아가씨가 엉덩이로 누르며 덧 넘어진 것이다.

순간 나는 찌익 하는 소리를 들었다. 아니 그냥 느낌인데 그런 소리가 난 것처럼 생각된 것 같다.

미안해요, 하고 그 아가씨는 내려가 버렸지만 나는 그 자리에서 일어날 수가 없었다.

구조 요원이 와서 인대가 늘어 난 것 같다며 나를 들것에 눕게 하고 모포로 얼굴까지 덮어주며 스키를 타고 나를 끌고 내려가기 시작했다.

누워서 거꾸로 미끄러져 내려가는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모포를 살짝 내리고 옆의 풍경을 보았는데 너무 재밌고 신났다. 참 철없었던 시절이다.

그 후 두 달 동안 깁스를 해야 했지만, 스키를 그만둘 생각은 없었다.

그 후로도 오랫동안 겨울철만 되면 스키를 즐겼는데 아이가 성인이 되니 자기 친구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자연스럽게 스키장 가는 일이 줄어들었다.

지금도 집 구석에 스키가 장식품처럼 세워져 있다.

안탄지 오래 되었지만, 추억을 생각하니 버릴 수가 없어서 그렇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이제는 다시 스키를 타라면 못 탈 것 같다.

이 나이에 넘어져서 어디 한군데 부러지기라도 하면 회복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이라 슬프다.

겨울이면 하얀 눈밭에서 멋지게 스키나 보드를 타는 사람들을 보면서 그냥 나도 한 때 다 해 보았다고 만족을 하며 외면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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