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세대는 화려한 영화의 시대였다. 종로, 을지로, 충무로는 물론이고 프랑스 영화를 보기 위해 반은 겉멋으로 프랑스문화관을 드나들던 추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중에 지금도 필자의 기억 속에 선명하게 남아 있는 영화 두 편이 있다. 하나는 알랭 들롱이 주연한 <태양은 가득히>이고, 또 한 편은 라이언 오닐과 알리 맥그로우가 함께 나온 <러브 스토리>다.
풋풋했던 젊은 시절의 알랭 들롱은 바다를 닮은 푸른 눈동자가 매우 인상적이었다. 선과 악의 분위기가 교차하는 미묘한 눈빛으로 푸른 바다 위 하얀 요트에서 작열하는 태양을 올려다보는 장면은 아직도 눈에 선하다. <러브 스토리>는 뭐니 뭐니 해도 역시 눈이 오는 하버드대학 교정에서 아이들처럼 눈싸움을 하며 즐거워하던 장면과 배경 음악을 잊을 수 없다.
<태양은 가득히>는 훗날 훈남 배우 맷 데이먼을 내세워 <리플리>라는 제목으로 리메이크됐지만, 가슴에 새겨진 알랭 들롱의 강렬한 눈빛을 이길 수는 없었다. 얼마 전 <러브 스토리>의 실재 인물의 거짓이 드러났다. 알리 맥그로우가 연기한 그녀는 래드클리프 여대를 나온 적이 없다고 한다. 그러나 <러브 스토리>는 필자 마음속에서 여전히 아름다운 영화로 남아 있다.
첫사랑은 그런 것이다. 만해 한용운 시인은 ‘님의 침묵’에서 마음에 각인되어 잊을 수 없는 첫사랑의 기억을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이라고 읊었다. 서정주 시인도 ‘국화 옆에서’라는 시를 통해 국화를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라고 노래했다. 첫사랑은 알랭 들롱의 눈빛처럼 강렬하고, <러브 스토리>의 눈싸움처럼 다정하고, 국화꽃처럼 향기롭게 필자 마음속에 남아 있다.
첫사랑은 마치 우두 자국과 같다. 어린 시절 우리는 몇 가지 예방주사를 맞곤 했다. 지금은 그럴 리 없지만, 의료기술이 낙후했던 시절에는 우두 주사가 제일 말썽이었다. 그래서 대부분 어깨에 희미한 우두 자국을 낙인처럼 지니게 되었다. 첫사랑도 우리 마음에 흔적을 남긴다. 어떤 흔적도 남아 있지 않다면 그것은 첫사랑이 아니다.
첫사랑은 대개 일방적이다. 그래서 첫사랑은 늘 안타깝고 수줍어서 다가갈 수 없는 그 어디쯤에 있다. 물론 쌍방통행의 무르익은 사랑이 어쩔 수 없는 저항에 부딪혀 이루지 못한 첫사랑도 있다. 첫사랑은 신이 인간에게 번성의 필요충분조건인 사랑의 마법을 알게 하려고 놓아준 사랑의 예방주사다. 예방주사를 맞으면 병에 걸리지 않듯이 첫사랑의 열병이 진짜 사랑으로 번지면 그것은 이미 첫사랑이 아니다.
어린 시절에는 거의 모르고 지나가버린 정유년을 60년 만에 다시 맞았다. 김용택 시인은 ‘첫사랑’이라는 시를 통해 “인생은, 사랑은 시든 게 아니라네/ 다만 우린 놀라움을 잊었네/ 우린 사랑을 잃었을 뿐이네”라고 읊었다.
정월 아침 새해라는 새하얀 눈길에 첫 발자국을 찍으며 마음속에서 희미해진 첫사랑의 우두 자국을 찾아보자. 풋풋했던 시절 수줍은 첫사랑의 설렘이 사그라져가는 우리 삶의 열정을 되살려줄지 누가 알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