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대학 동창을 만났다. 충무로에서 만난 친구는 예전에 비해 살이 조금 찌고, 얼굴에 잔주름이 늘어난 것 외에는 걸음걸이도 말투도 달라진 것이 별로 없었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더치페이를 하던 대학 시절과는 달리 자기가 먼저 달려가서 계산을 했다는 점이다. 우리는 점심식사를 마치고 커피 전문점으로 자리를 옮겼다.
“뭐 마실래?”
“으~~음. 오늘은 달달한 카푸치노.”
“엉? 그런 커피도 마셔?”
카푸치노를 마시는 일이 무슨 큰일이라고 놀란 눈으로 필자를 바라보는 친구를 향해 “응 그때그때 달라” 하고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카푸치노와 아메리카노 한 잔씩 시켜놓고 철없던 대학 시절 얘기를 했다. 궁금했던 옛날 일들을 들추며 “그땐 왜 그랬어?” 하고 묻기도 하고 당시에는 몰랐던 이야기를 듣고는 “아~ 그랬었구나” 하며 놀라기도 했다. 그러다가 자연스럽게 그 시절 누가 누구를 좋아했고, 어떤 남학생이 어느 여학생을 집까지 바래다줬는지, 그러다가 결혼에 골인한 커플이 요즘에는 어떻게 지지고 볶으며 살고 있는지, 실타래 풀리듯 이야기는 끝이 없었다. 학과 일에 적극적이었던 친구 덕분에 몰랐던 관계들도 많이 알게 돼 놀랍고 신기했다.
“난 그때 왜 아무것도 몰랐을까?”
필자의 말에 친구가 배시시 웃었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이젠 좀 자주 보고 살자는 말을 주고받은 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친구가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보았다.
오늘, 드디어 첫사랑을 만났다. 10여 년 만에 만났지만 워낙 친하게 지냈던 터라 어색함이 없었다. 점심 먹고 커피 한잔하며 학교 때 이야기와 친구들 근황으로 수다를 떨고 다음번에는 선배들과 보기로 하고 헤어졌다.
대학 1학년 영어시간에, 옆자리에 앉아 대학노트에 장 콕토와 김춘수의 시를 적어주던 그녀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리고 그 밑에 적어준 한 귀절이 생각난다.‘까만 커피 좋아하는 사람, 내가 좋아하는 사람’. 난 갓 스물의 나이에 커피 맛도 제대로 모르면서 블랙만 마셨다. 그때나 지금이나 모르겠다. 그 사람이 누군지….
모르는 사이에 필자는 누군가의 첫사랑이었다. 그가 맛도 제대로 모르는 까만 커피를 마시며 가슴을 졸이는 동안에, 필자 또한 까만 커피를 좋아하던 첫사랑을 가슴 깊이 간직하고 있었다. 우리는 서로 다른 첫사랑앓이를 하고 있었지만 우리에게는 청춘을 함께한, 찬란히 아름답게 남아 있는 그날들이 있다는 걸 그 친구에게 말해줄 날이 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