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 선생님이 아이들을 향해 묻자 시끌벅적하던 교실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아이들은 누가 손을 들까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아무도 손드는 사람이 없었다.
“내가 그 책 빌리러 도서관에 갔더니 어느 학생이 빌려갔는지 대출 중이더라. 그 학생이 누군지 알게 되면 칭찬 해주려고 했는데 이 반 학생은 아니었구나”
필자는 부끄러운 생각에 손을 들지 못하고 얼굴만 빨개졌다.
필자가 책을 좋아하게 된 건 고등학교 1학년 때 윤리를 담당하던 선생님 덕분이었다. 두꺼운 검은테 안경을 쓰고 늘 진지한 태도로 수업을 하셨다. 재미없는 선생님 중 한 분으로 꼽혔지만, 선생님은 수업 시간에 재미난 책을 종종 소개해 주셨다. 가장 기억에 남는 책은 피터 빅셀의 ‘책상은 책상이다’ 였다. 세상에 이렇게 재미있는 책도 있구나 하며 순식간에 읽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이 책을 읽은 후 필자는 책 읽는 재미를 알게 됐다.텅 빈 도서관에서 책을 읽기도 하고,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을 밤늦도록 읽느라 불 끄고 그만 좀 자자는 동생의 원성도 들어야 했지만 그 조차 즐거웠다.
당시 필자는 좁은문이나 마담 보봐리, 주홍글씨와 같은 고전들을 주로 읽었다. 때로는 니체나 키에르케고르의 책을 골라들고 끙끙거렸지만, 무슨 말인지 도대체 알아들을 수가 없어서 읽기를 포기하기도 했다. 좌와 벌을 읽은 후엔 도스토예프스키에 매료돼 도서관에서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빌렸다. 그러나 등장인물들의 이름이 너무 복잡하고 내용이 어려워서 책장이 넘어가지 않았다. 그런 상황이었기에 선생님의 칭찬이 너무 부끄러웠다. 선뜻 손을 들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 날 필자가 느낀 부끄러움은, 남다른 구석 없이 평범하고 공부도 잘 못하는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은 아니었다. 드디어 선생님의 시선과 관심을 끌었다는 사실과, 책을 읽는다는 것이 고결하고 자랑스러운 일이라는 걸 확인한 데서 오는 희열 같은 거였다. 그 날 들었던 선생님의 한 마디는 마음 속에 자랑스럽게 각인되었다. 그후 필자는 ‘도서관에 들어온 사람은 더 나은 사람이 되어 나간다’는 앤드류 카네기의 말을 평생 마음에 새기고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