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한 일로 만나게 되어 필자가 인생 상담을 해주었던 한 여인의 외도 이야기다. 세월이 꽤 흘러 이젠 말해도 되지 않을까 싶다. 기억에서 쉽게 지워지지 않는 그 여인의 이야기는 특별한 사연을 담고 있어 여전히 도덕적 판단이 쉽지 않다. 당시엔 인간 본능의 욕구를 해결하는 것이 가정생활을 잘 유지할 수 있는 제일 나은 방법이었고 상대방에게도 외도가 문제가 되지 않았기에 괜찮지 않겠냐는 의견을 주었다. 일흔을 바라보는 현재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니 꽤 열린 상담이었다고 여겨진다.
미모의 40대 후반이었던 여인은 음식점을 운영했다. 장사도 잘되었는데 손님이 많은 음식점이 일반적으로 그러하듯 여인은 친절하고 매너도 좋았으며 음식 맛도 손님들의 취향을 사로잡았다. 종업원도 여러 명이었다. 다소 한가한 시간대에는 주인이 자리를 지키지 않아도 음식점이 무리 없이 돌아갔다. 종일 비워도 큰 문제가 없을 정도로 체계가 잘 잡혀 있는 음식점이었지만 여인은 가능한 한 자리를 비우지 않았다. 주인이 있을 때와 없을 때 종업원들의 업무 태도가 달라지는 것을 체험으로 알고 있어서다. 그런데 여인은 어느 날부터 일주일에 한 번씩 외출을 하기 시작했다. 한가한 시간대가 되면 피곤해서 사우나를 하고 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자리를 비웠던 것이다. 서너 시간 후 음식점으로 돌아온 여인은 사우나를 다녀온 듯한 모습이었다. 표정은 밝았고, 종업원을 대하는 태도나 손님을 응대하는 모습도 더 나긋나긋했다. 종업원들은 주인이 사우나를 다녀와 피로가 풀려 컨디션이 좋은가보다 했다. 그녀의 외출에 의심의 눈길을 던지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 여인에게는 하나의 비밀이 있었다. 외출할 때마다 연하의 건강한 미혼 남성을 만나 억제할 수 없는 성적 욕구를 해소해왔던 것이다. 그야말로 가정이 있고 남편이 있는 여인의 외도였다. 여인은 왜 그렇게 위험한 관계를 하게 된 것일까? 이야기를 들어보니 남편에게 문제가 있었다. 교통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되어 부부관계를 전혀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여인은 주체하기 힘들 정도로 성적 욕구가 강한 편이었다. 남편이 사고를 겪기 전에도 여인이 더 적극적이었다. 게다가 여성이 성적 욕구가 강해지는 40대 후반의 연령대에 남편에게 사고가 났으니 부부 사이가 어떠했을지 대략 짐작이 됐다. 여인은 성적 욕구를 해소할 수 없는 처지였지만 사회 통념상 그리고 인간의 도리상 외도를 생각해본 적은 꿈에도 없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짜증이 늘기 시작했다. 짜증이 일어날 때마다 남편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고 측은하기도 했다. 마음을 다스리려 노력했다. 그런데 어느 날 운명처럼 미혼의 40대 초반 남성을 만나게 됐고 외도가 시작됐다. 물론 남편에게는 미안했지만 남성을 만나면서부터 여인은 활기를 되찾았다. 집에 돌아가면 미안한 마음에 남편을 더 챙기고 정성을 다해 보살폈다. 욕구 불만으로 짜증스러웠던 마음도 없어졌다. 가정 파탄은 생각해본 적도 없었고 바라지도 않았다. 여인은 남편을 여전히 사랑했다. 상대 남성 또한 결혼을 싫어하는 독신주의였기에 심적 부담을 느끼지 않아도 됐다.
당시 여인의 특별한 사연을 외도에 대한 생각이 복잡해졌다. 물론 도덕성과 책임감은 중요한 덕목이다. 하지만 여인의 사례처럼 성적 욕구를 해소할 수 없는 상황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불행의 요소를 제거할 수 있다면 차선책도 생각해볼 수 있지 않을까? 그 선택으로 가정의 행복을 지켜나갈 수 있다면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며 시시비비를 가리기가 참 난감하다는 생각이다. 도덕적 기준은 시대나 사회 변화에 따라 달라진다. 인생을 살다 보면 어쩔 수 없는 상황을 맞기도 한다. 그럼에도 때때로 삶을 억압하는 도덕적 굴레를 씌워 인간 본연의 욕구를 터부시함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한 여인의 오래된 이야기이지만 유사한 사연들이 많을 것 같다. 남의 시선을 의식하며 전전긍긍하는 삶은 건강하지 않다. 좀 더 유연한 사고를 가져봄이 좋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