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의 언어는 아름다워라

기사입력 2017-05-23 08:38 기사수정 2017-05-23 08:38

근래 탄생 100년 주년을 기념하는 전시회가 줄지어 열리고 있다. 미술 애호가들은 우리나라 현대미술 거장들이 걸어온 길을 작품을 통해 가깝게 살펴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가 생겨 행복하기만 하다. 김환기(金煥基, 1913~1974), 박수근(朴壽根, 1914~1965), 유영국(劉永國, 1916~2002), 이중섭(李仲燮, 1916~1956), 장욱진(張旭鎭, 1917~1990) 그리고 박고석(朴古石, 1917~2002) 등이 그들이다.

그중 가장 최근에 열린 고 박고석 화가의 뜻깊은 전시회를 찾아 나섰다. ‘산(山)의 화가’로 잘 알려진 박고석 화백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전시회였다. 격정의 한 시대를 살아온 거장이 당시의 시대상을 캔버스에 어떻게 옮겼을까 자못 궁금했다.

박고석 화백의 그림은 무엇보다 힘이 넘치는 굵은 터치가 특징이다. 아울러 흰 구름과 푸른 하늘 그리고 그 아래 자리한 검은 산의 풍광에서 작가만의 특별함을 엿볼 수 있었다. 그를 ‘산의 화가’라고 부르는 이유를 알겠다.[그림 1]

▲[그림 1] 박고석(朴古石, 1917~2002), 외설악(50 x 60.6 cm. 1977)
▲[그림 1] 박고석(朴古石, 1917~2002), 외설악(50 x 60.6 cm. 1977)

그의 힘 있는 필치에 익숙한 애호가들이 보기엔 분위기가 사뭇 다른 작품도 눈에 띄었다. 1951년 피란 시절 부산 범일동의 풍경을 화폭에 담은 작품이다. 그 시대의 어두울 수밖에 없었던 모습이 여과 없이 필자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반추상적 터치로 그려낸 등장인물의 얼굴에는 웃음기가 전혀 없다. 참으로 마음을 무겁게 짓누르는 그림이다.[그림 2]

▲[그림 2] 박고석(朴古石,1917~2002), 범일동 풍경(39.3 x 51.4 cm. 1951)
▲[그림 2] 박고석(朴古石,1917~2002), 범일동 풍경(39.3 x 51.4 cm. 1951)

전시장을 나오는데 문득 같은 시기 역시 부산에서 작품활동을 한 김환기 화백의 1952년 작품 <꽃장수>가 떠올랐다.[그림 3]

▲[그림 3] 김환기(金煥基, 1913~1974), 꽃장수(46.3 x 55 cm. 1952)
▲[그림 3] 김환기(金煥基, 1913~1974), 꽃장수(46.3 x 55 cm. 1952)

김환기 화백은 박고석 화백의 <범일동 풍경>에 비하면 아주 다른 세상을 화폭에 담았다. 캔버스에 등장하는 꽃수레 주인이나, 근처에서 무엇인가를 팔고 있는 여인의 표정에서 기다림의 마음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화폭 중앙에 자리 잡은 꽃수레는 화사하고 다양한 꽃들로 가득하다. 주변의 인물상과 달리 수레 안의 꽃들은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든 아랑곳하지 않은 채 화려하고 고운 자태를 뽐내고 있는 듯하다.

생과 사를 넘나드는 ‘피란생활’ 와중에도 누군가는 사랑하는 연인에게, 또 누군가는 고생하는 어머니에게 꽃을 사서 선물했겠구나 하고 생각하니 아련한 마음과 함께 화가 김환기의 시심(詩心)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화폭에 담긴 과거의 시대상에서 삶의 깊이와 폭을 다시금 느낀다. 특히 시공간을 초월해 우리에게 감동을 선사하는 꽃의 아름다운 언어에 대해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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