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

기사입력 2017-05-26 14:05 기사수정 2017-05-26 14:05

[일주일간의 부재]

하루는 남편이 필자를 조용한 찻집으로 불러냈다. 평소에 안 하던 행동을 해서 석연찮은 생각이 들었다. 얼마 만에 오는 찻집인가. 그래서일까 전혀 모르는 사람과 앉아 있는 느낌이 들었다.

커피 향을 맡으며 한 모금 마시려는 순간 남편은 다짜고짜 “나 집을 나가볼까 해, 며칠만이라도 나가서 살아볼래” 하고 말했다. 막상 그런 말을 듣고 보니 머릿속이 하얘졌다.

필자는 “누가 할 소리…” 하며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게 말한 것은 어느 정도는 수긍한다는 의미였다. 물론 그놈의 사춘기 두 아들만 아니었으면 필자가 할 소리였다.

당시는 남편의 목소리도 지겨울 때였다.

매일 다리라는 바지와 와이셔츠 가지고 싸운 날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참을 만큼 참고 살던 시절이었으므로 고개를 가볍게 끄덕였다. 남편은 집으로 돌아와 주섬주섬 가방에 짐을 싸더니 그대로 나가버렸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그렇게 허락을 해놓고 막상 저녁이 되면 베란다 창가에 앉아 아파트 안으로 들어오는 차들을 유심히 바라보았던 것이다,

현관문에서 들려오는 발자국 소리에도 귀를 기울였다. 어느 날부터인가는 자꾸 비관적인 생각만 들었다. ‘만약 남편이 끝끝내 돌아오지 않는다면 어떻게 살아야 하지?’ 경제적인 면도 걱정됐다.

두 아들의 말대꾸는 혼자서 어찌 감당해야 하나, 그래도 남편이 있을 때는 아이들이 움찔하기라도 했는데 아빠가 없으니 그야말로 대들 기세였다. 그저 필자 살아갈 걱정만 태산이었다. 남편이 어디서 밥을 제대로 먹고 있는지는 별로 걱정되지 않았다.

잠을 자도 푹 자지 못했다. 한밤중에 잠을 깨는 날이 많았는데 웅크리고 자는 필자 옆에는 아무도 없었다. 베개를 가슴에 안고 거실을 서성이기도 했다. 하루 이틀 정도는 홀가분했는데, 사나흘이 지나자 불안이 엄습해왔다. 시누이에게 전화를 걸어 남편의 근황을 물어보고 싶었지만 몸이 허해서 일어나는 불안증일지도 모른다 생각하며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다시 남편을 만나면 무슨 말을 해야 할까. 그 사람은 필자에게 무슨 말을 할까.

남편과 같은 공간에 있을 때는 아웅다웅 별것도 아닌 것 가지고 자주 싸움을 했다. 그런 상대가 없어졌으니 후련할 일인데 불안해하면서 창문 앞에서 서성대는 모습이라니.

남편이 다시 내 앞에 떡하니 나타난다고 해도 오순도순 살 자신도 없으면서 말이다. ‘속이 시원하지가 않네.’,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더니 그런 건가?’ 더럭 겁이 났다. 온갖 잡념들이 머릿속으로 파고들었다. 심장도 쿵쿵댔다.

얼마 후 “나야 나” 하고 전화가 왔다. 반가운 마음이 들었지만 퉁명스럽게 전화를 받았다. 무슨 짓을 하면서 지냈는지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이혼을 하지 않으려 마음을 먹은 이상, 그냥 모른 척 살아야만 했다. 그는 구렁이 담 넘듯 성큼 집 안으로 들어섰다. 미안하다는 말도 하지 않았다. 세상에 있는 욕을 다 퍼붓고 싶었지만 별말 하지 않았다. 관계는 더 서먹해졌지만 그래도 그의 그림자라도 있는 것이 덜 쓸쓸했다.

필자는 요리하는 것을 즐겨하는 편이다. 평생 그토록 칼을 잘 쓰면서도 지금까지도 자르지 못하는 게 있으니 바로 부부의 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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