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사 모두 빚이다

기사입력 2017-07-03 11:40 기사수정 2017-07-03 11:40

필자에게 정기적으로 음악회에 초대하는 이가 있다. 보통 20만 원짜리 로열석이다. 몇 명을 데려 와도 좋다는데 늘 혼자 간다. 몇 번은 지인들을 초대하여 갔으나 펑크 내는 사람들이 종종 있었다. 급한 일이 생겨 못 간다는 데야 할 말이 없다. 어떤 이는 길이 너무 막혀 화가 나서 그냥 집에 돌아간다는 것이었다. 예술의 전당 앞이 늘 교통이 막히는 것은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이다. 제 시간에 가 주는 전철이 있는데 왜 굳이 차를 끌고 와서 막힌다고 필자에게 화를 내는지 모를 일이었다. 20만 원짜리 티켓이지만, 공짜라서 사람들이 노 쇼(No Show)를 우습게 안다. 20만 원짜리 초대석을 펑크 내고 나면 필자에게 표를 준 사람에게 미안한 일이다. 그래서 그 다음부터는 아예 혼자 간다. 가장 확실한 사람은 필자 혼자인 것이다. 필자가 초대해서 간 사람들은 사실 필자에게 표를 준 사람에게 진 빚이다.

자녀의 결혼식을 호화판으로 치르는 사람도 많다. 호텔 결혼식장에서 하객이 1천명이 넘는 대규모 결혼식도 종종 있다. 그 많은 사람들은 다 빚이다. 그 사람들이 청첩장을 보냈을 때 역시 봉투를 들고 가야 하는 것이다. 그 사람들의 자녀 결혼식 뿐 아니라 지계 가족 장례식까지 연락 받으면 가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한꺼번에 갚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두고두고 빚을 갚아야 하는 것이다.

식사를 하고 어떤 사람이 식사비를 혼자 냈을 때, 그 당시는 고마운 일이지만, 결국 빚이다. 매번 그 사람에게 얻어먹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매번은 아니더라도 최소한 두 번에 한 번은 대접해야 빚을 갚는 것이다.

술집마다 돌아다니며 파인애플을 깎아 한 조각 건네며 팔아달라는 외국인이 있다. 분명히 외국인인데 유창한 한국말로 그런 일을 하는 것을 보면 한국인들의 빚에 대한 심성을 꿰뚫고 있는 것이다. 한 조각 얻어먹으면 그게 다 빚이다. 한번은 그냥 받아먹지만, 다음에 또 와서 한 조각 건네면 파인애플을 사주게 된다. 파인애플이 귀한 과일도 아니고 당장 마트에 가면 사 먹을 수 있지만, 빚진 게 있으니 그 사람이 파는 파인애플을 팔아주는 것이다.

빚이 있다면 두 다리를 똑바로 뻗지 못하고 자는 사람이 충청도 사람이란다. 빚은 곧 스트레스인 것이다. 오늘날 가계 빚이 엄청나서 금리가 조금만 올라도 큰일이라는데 어떻게 빚을 안고 편안히 살아가는지 모르겠다. 사금융을 쓰면 이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 금방 감당하지 못할 수준이 된다는데 여전히 사금융은 판을 친다.

더 크게 보면 이제껏 별 고생 없이 이만한 위치에서 노년을 보내게 만들어준 우리 사회에도 빚이 있는 셈이다. 제 딴에는 노력을 했다지만, 운이 좋았을 뿐이다. 부모를 잘 만났거나 인맥, 학맥을 통해 한 때 잘 나간 덕분에 집도 사고 좋은 시절 보낼 수 있었던 것이다. 반면에 그렇지 못한 사람들도 있었다. 그런 사람들도 다 잘 되었으면 좋을 텐데 여전히 고전하고 있다면 그 사람들에게 미안해야할 일이다. 그래서 해야 할 일들이 사회적 공헌이다.

자칫 하느님 앞에 모두 죄인이듯이 모든 사람들은 빚이 있다는 소리로 들릴지 모른다. 그러나 결혼식 청첩장처럼 직접적으로 요구 받아서 갚는 빚이 아니라 스스로 알아서 빚을 느긋하게 갚는 행위도 협의적 사회적 공헌이라 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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