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이 오른다

기사입력 2017-07-05 14:03 기사수정 2017-07-05 14:03

왼쪽 무릎을 다쳤다. x-ray를 찍어 보니 연골이 찢어졌다. 의사들은 수술을 해야 하는데 고통지수를 100으로 가정하면 수술 후 완전히 전과 같지는 않단다. 무엇을 해도 40~50 정도의 고통은 남기 때문에 설명을 자세히 해서 그나마 줄어드는 고통지수에 만족하게 한 다음에야 수술을 한다고 했다. 또 자신의 연골을 조금 뽑아 배양한 뒤 아픈 부위에 다시 집어넣는 자가연골배양술이 있는데 시술하면 좋아져야 하는데 실패율이 높아 권유하지 않는다고 했다. 인공관절 역시 남자들에게는 잘 권하지 않는단다.

그런데 진짜 문제는 따로 있었다. 모든 수술의 실패율이 높아 책임 회피 차원에서 수술을 잘 안 해준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이제는 무릎을 전처럼 사용할 수 없으니 마음 단단히 먹으라 한다. 아픈 무릎이 나을 때쯤이면 그동안 무리했던 다른 쪽 무릎도 탈이 생기는데 이번에는 그 무릎을 치료하면서 양 무릎을 오가는 고통의 악순환이 몰려올 거란다. 나빠지면 앉아 지내야 하는 시간이 많을 수도 있으니 그나마 좋아질 거라는 긍정적인 생각으로 6개월에서 3~4년 물리치료를 꾸준히 받으라고 한다.

에스컬레이터 관계자의 말을 들어보면 우리나라의 기계는 외국에 비해 수명이 매우 짧다고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빨리빨리 문화에 젖어서 그런지 에스컬레이터를 타고도 내려갈 때까지 혹은 올라갈 때까지의 시간을 참지 못하고 걷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기계에 권투의 잽처럼 잔 충격이 누적되어 고장이 잦다는 설명이었다.

필자도 평소 많이 움직인 탓으로 무릎에 무리가 온 것이리라. 조금이라도 빨리 좋아져야 한다는 욕심에 하루에 정형외과와 한방병원 두 곳을 매일 다니며 물리치료를 받는다. 두 곳 모두 환자가 많으면 대기시간이 길어져 3~5시간이 걸리기도 한다. 하루 일과 중 결코 만만치 않은 시간이다. 이로 인해 스케줄을 정확히 잡기가 어려워 일도 확 줄였다. 누군가 “기적이란 막대기로 바다를 가르고, 빗자루를 타고 하늘을 날아다니는 게 아니라 두 발로 걷는 것이다”라고 말했는데 이제 실감이 난다.

한 번의 실수가 인생 스케줄을 바꿔놓는다는 말이 이렇게 맞아떨어지다니. 정신적으로 받은 충격이 뇌에 오랫동안 기억되어 생기는 트라우마라는 단어도 그저 흘려 듣기만 했는데 스트레스로 인한 장애란 이런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또 다른 고민은 강력 소염 진통제를 먹다 보니 속이 쓰리고 어지러워 마음대로 먹을 수가 없다. 의사는 진통제를 처방해주면서도 진통제 복용으로 고통이 없어지면 현재 아픈 상태인 무릎을 아무렇지 않게 사용해 더 큰 부작용을 불러올 수 있으니 참을 수 있는 상황까지는 참으며 무릎에 무리가 가지 않는 선에서 걸으라 한다. 도대체 진통제를 먹으라는 건지 먹지 말라는 건지 헷갈려 반으로 잘라 먹으며 어느 정도 고통을 감수하려니 약도 마음대로 먹지 못 하는 입장이 또한 스트레스다.

아내는 더 이상 좋아지지 않는다면 바쁘게 강의 다니지 말고 그냥 쉬든지 앉아서 할 일을 찾아보란다. 그러나 젊은이들도 취업이 어려워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요즘에 아재를 넘어 꼰대 나이가 된 사람을 누가 써준단 말인가. 잠자리에 누우면 스물스물 고통이 몰려온다. 그럴 때마다 필자에게 스스로 묻는다.

“지금 바뀔래, 벼랑 끝에서 바뀔래?”

그러면서 약도 바짝바짝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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