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을 변하게 해달라고 기도하지 마세요. 여러분에게 딱 맞게 변화시키려고 노력하기보다는 여러분 스스로가 남편에게 맞추는 게 더 쉬워요. 자신의 잣대로 상대를 평가하는 잘못을 범하지 않으려면 조급함을 버려야 합니다.”
초청 신부님 강론이 있었다. 평일의 성당은 대부분 여자들로 채워졌고 열기가 가득했다.
“신부님 말씀 듣고 용서하며 너그러워지려고 노력하는데 미사 끝나고 집에 가서 남편을 보면 열이 다시 뻗쳐 분심이 드는데 어찌해야 하나요?”
“화내고 폭력적인 생각을 한 것이 걸려 고해성사까지 하고 마음을 평화롭게 다스려놓으면 남편이 또 뒤집어놓는데 어찌해야 할까요?”
얼마 동안 우문현답이 심심치 않게 오갔다.
지금까지 살면서 싸움도 해보고, 화도 내보고, 섭섭해서 짜증을 부려보기도 했다. 이런 감정들 때문에 소비한 에너지도 만만치 않다.
이제는 필자가 어떨 때 가장 열 받는지를 알 것도 같다. 이를테면 진정성이 무시되거나 이해받지 못할 때, 필자 마음에 대한 곡해, 또 귀하게 여기는 사람에게서 아무것도 아닌 대접을 받게 될 때 화가 난다. 오로지 자신만을 생각하는 자기중심적인 인간 앞에서도 분노가 일어난다.
가족이 아닌 관계에서는 마음을 쉽게 정리할 수 있다. 가족은 싫어도 죽을 때까지 만나야 하지만 가족이 아닌 관계는 보기 싫으면 안 봐도 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인격을 무시당하거나 자신만의 이익을 추구하면서 신의가 없는 사람을 만날 때 분노한다. 화가 일어나는 지점은 거의 비슷하다.
젊은 시절, 모멸감과 함께 인간이 너무 무서웠던 경험이 있다. 그때는 아무도 없는 동굴 속으로 들어가고 싶었다. 주변에 좋은 사람도 많았지만 상처를 준 사람도 있었다.
요즘은 사람을 볼 때 한쪽 면만 보지 않는다. 선의와 악의를 함께 지니고 있는 동물이 바로 인간이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이 선의와 악의는 자신에게 편리한 대로 쓰인다. 그래서 좋은 사람이라고 해서 늘 좋은 것도 아니고 나쁜 사람이라고 해서 늘 나쁜 것도 아니다. 아무리 좋은 품성을 가지고 있다 해도 상대와 코드가 안 맞으면 불편하고 시끄러운 일들이 자주 생긴다. 또 상대의 마음을 자기 식대로 단정해버리며 오해하는 사람도 많다. 주로 상처를 많이 받은 사람들에게서 그런 성향이 나타난다.
갈등이 생기면 상대의 입장에서도 생각해봐야 한다. 흥분하면 아무 말이나 하게 되고 실수를 한다. 그러므로 화가 나면 마음이 가라앉을 때까지 대화를 하지 않는 게 좋다.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대결 구도로 가면 서로 상처만 입을 뿐이다.
아무리 나쁜 사이라도 시간이 흐르면 객관적으로 생각하게 된다. 기억에 남는 사람은 배려가 많은 사람이다. 고개를 끄떡여주고 이야기를 들어주려는 마음이 가슴에 와 닿을 때 저절로 고개를 숙이고 손을 내밀게 된다. 이것이 바로 지고도 이기는 법이다.
“문제 삼지 않으면 아무 문제가 없는 데 문제 삼으니 문제가 된다.”
조정래의 소설 <정글만리>에 나오는 구절이다.
깊이 공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