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주 돌보기가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중요 이슈로 떠오른 지 오래다. 자녀 내외가 맞벌이해야 하는 현실을 살고 있어서다. 경제적 사정이 허락되면 아이 돌봄 전문인을 활용할 수 있지만, 대체로 친정이나 시댁의 부모가 그 일을 대신한다. 또한, 손주 돌봄 자체가 노후 삶에 보람을 주기도 해서다. 남의 손에 맡기느니 힘이 들어도 내리사랑을 베풀기 마련이다. 유아원이나 어린이집에 안전하게 보내고 먹거리를 챙기는 일 등이 기본이다. 정성을 다해 열심히 해도 때로는 마찰이 일기 마련이다. 한눈판 사이에 가구에 부닥쳐 생채기를 내기도 하여 며느리나 딸에게 걱정을 끼치는 경우도 생겨서다. 그러한 일상적이고 보편적인 손주 돌보기가 중요하지만, 질이 다른 분야도 관심을 갖고 손주를 눈여겨보는 자세가 더 필요하지 싶다. 예를 들면 선천적 재능을 발견해 본다든지 잘못된 버릇을 고쳐주는 일 등에 더 중점을 두어야 하지 않을까? 손주를 돌보는 일의 근본적 주안점은 미래를 위한 손주 양육이기에 질을 높여야 한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 어릴 때 버릇을 제대로 들여줘야 바르게 성장한다. 인성이나 자세를 만들어가는 시점이 유아기라 한다. 유소년 시절에 잘못 길든 버릇은 평생 고치기가 쉽지 않다. 손주를 둘이나 안겨준 큰아들은 젓가락질이 아직도 서툴다. 젓가락을 잡는 방법이 달라 음식을 먹을 때 불편해 보인다. 본인은 버릇되어 아무렇지 않을지라도 주변에서 보기는 어색하기만 하다. 어릴 때 바로 잡아주지 못해서고 성장해서 고치기가 쉽지 않은 모양이다. 필자의 셋째 처제가 고등학교 교사다. 얼마 전에 가족 모임에서 이런 이야기를 했다. 고등학생 중 많은 학생이 연필이나 볼펜을 제대로 잡지 못한다고 털어놓았다. 서툴게 잡고 필기를 하다 보니 힘이 들어 공부하는 시간을 오래 버티지 못한다고 했다. 어릴 때 손주가 연필을 잡는 모습을 유심히 살펴보아 바른 방법으로 고쳐주어야 한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난 뒤 내년에 초등학교 입학을 앞에 두고 있는 큰 손주가 연필 쥐는 모습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앞의 사진과 같이 잡고 글을 쓰고 있었다. 엄지와 중지 등 세 손가락 사이에 연필을 두고 있었다. 셋째 손가락이 연필을 받쳐주는 형태가 아니어서 글쓰기가 불편해지는 방법이다. 두 번째 사진처럼 고쳐 잡게 하였더니 이내 고쳐 잡았다. 글쓰기도 편해 보였다. 보편적 방법에서 벗어나 미래에 초점을 둔 질을 높인 손주 돌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