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어린 시절 10살까지 살았던 곳이 대전이다. 수많은 날을 살아오면서도 그 10살 때까지의 추억이 너무나 아름다워 내 머릿속에 깊이 간직되어있는 곳이다.
그래서 그 날들을 잊지 못하고 필자는 대전에서 보낸 어린 시절을 아직도 그리워하고 있다.
전에는 친가 외가의 할아버지, 할머니와 삼촌 이모가 대전에 살고 계셨지만 이제 할머니 할아버지는 모두 돌아가시고 외삼촌 세 분만 계신다.
일찌감치 서울로 이사를 한 필자는 사촌 동생들의 결혼식이 있을 때나 대전에 가게 되었는데 어느 날 막냇삼촌의 딸 (사촌 동생) 결혼식이 있어 내려가게 되었다.
시내 예식장에서 식을 마치고 삼촌 댁에 들렀다 가기로 했다. 삼촌이 몇 년 전에 분양받아 새로 이사한 동네 이름이 산내라고 한다.
새로 개발된 신시가지인데 대전 시내에서 그리 멀지도 않은 곳에 초고층아파트가 즐비하게 늘어선 최첨단 아파트 단지였다.
막냇삼촌의 집도 아파트 20층에 있었는데 새로 지어선지 아파트도 깨끗하고 동네도 아주 깔끔한 느낌을 주었다.
그런데 산내라면 그 옛날 어렸던 8살 즈음 외할아버지께서 필자와 친척 아이 명애 그리고 집에서 일하던 아이인 기순이를 데리고 피서하러 다니시던 곳이다.
그곳은 외가에서 버스로 삼사십 분 정도 걸리는 곳에 있는 시골동네였는데 동네 바로 아래에 커다란 냇물이 흐르는 모래밭이 있어서 할아버지와 우리는 여름에 피서를 그곳으로 갔다.
넓고 얕은 냇물이 흐르는 곳에 돌을 모아 작은 웅덩이를 만들고 그곳에 포도와 복숭아 등 과일을 담아 놓았다.
할아버지는 모래사장에서 모래찜질을 하셨고 우리는 속옷만 입고는 신 나게 물놀이를 했던 즐거운 추억이 있다.
할아버지 댁인 문창동에서 산내를 가려면 인동시장을 지나 버스를 타야 했다.
우리가 제일 신 났던 건 인동시장을 지나면서 맛있는 간식거리를 사는 일이었다.
할아버지께서는 먹고 싶은 걸 고르라고 하셨고 우리는 포도며 복숭아, 그리고 옥수수, 찐 고구마 사이다 등을 골라 가져간 보자기에 싸면서 즐거워했다.
어릴 때라 버스 탈 일이 별로 없었는데 할아버지 손을 잡고 버스에 올라 냇가로 피서를 가는 건 정말 즐거운 소풍이었다.
한적한 동네를 지나서 모래밭을 가로지르면 깨끗한 시냇물이 졸졸졸 흐르고 물이 조금 깊은 곳엔 작은 소용돌이가 치기도 해서 아이들이 놀기에 최적의 안전한 냇가였던 곳이 산내천이었는데 지금은 이렇게 높은 빌딩 숲으로 뒤덮인 세련되고 차가운 느낌의 아파트단지로 바뀌어 버렸다.
물론 깨끗하고 멋진 신도시가 생겨서 그곳으로 이사 간 사람들에겐 좋은 일이겠지만 이름은 산내로 그대로 남아 있으면서 외할아버지 손을 잡고 버스를 타고 간식을 싼 보자기를 들고 친척 아이 명애랑 기순이와 여름 피서를 왔던 그 산내천, 얕은 시냇물은 도대체 어디로 간 것일까. 모든 것이 예전대로 남아 있을 수는 없는 일이고 더 좋은 쪽으로 발전하는 거라면 변화하는 것이 마땅하겠지만 기억하고 싶은 많은 것이 사라져버리니 안타깝고 아쉬운 느낌이다.
그리운 마음에 눈시울이 찡하며 아련한 그리움이 밀려왔다. 삼촌댁의 20층 아파트에서 또 한 번 추억에 젖으며 어린 날 냇가의 그 기억을 떠올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