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갈망

기사입력 2018-05-04 09:08 기사수정 2018-05-04 09:08

아들이 신혼여행을 떠난 지도 어느새 열흘이 넘었다. 출국하던 날 공항에서 문자를 보낸다고 했다. 그래서 귀국하기 전까지는 문자도 카톡도 보내지 말고 오로지 노는 데만 충실하라고 했다.

열흘째 되던 어제 문자가 왔는데 모리셔스 공항으로 가는 중이라고 했다. 한국으로 오는 데만 12시간 이상이나 걸린다는 곳이 모리셔스란다. 그것도 중간에 두바이를 경유해야 한다니 대체 얼마나 먼 곳일까.

아들로부터 문자가 다시 왔다. 태풍이 심해서 비행기가 뜨지 못햇다고, 그래서 호텔에서 하룻밤을 더 묵은 뒤 오는 수밖에 없다는 내용이었다. “하는 수 없지 뭐, 기왕지사 그리 된 거 맘 편히 먹고 더 푹 쉬다 오렴”이라고 답신을 보냈다.

아들은 아직 귀국을 안 했지만 필자의 뒷갈망은 벌써 시작됐다. 떡을 맞추고 음료까지 사서 직장 동료들과 지인들에게 돌리기 시작했다. “덕분에 혼례 잘 치렀습니다. 고맙습니다!”, “이렇게 안 하셔도 되는데.”, “아닙니다. 인사는 해야죠!” 지금은 야근 중이다. 새벽 4시 10분. 오전 7시경 퇴근하면 눈부터 붙여야 한다. 두어 시간 잠을 잔 뒤엔 지인과 약속한 장소 식당으로 갈 참이다. 아들의 결혼식을 빛내 준 지인에게 점심을 사야 하기 때문이다.

“전화 준 것만으로도 충분한데 밥까지 사겠다고?” 지인은 그럴 필요까지 있냐고 했지만 신세를 졌으면 갚아야 하는 게 인간의 도리다. 인간은 대부분 세속적 동물이다. 준 만큼 받으려는 반대급부의 성향이 존재한다. 때론 그 정도에서 벗어나려는 경향까지 보인다. 예컨대 “나는 네 아들이 결혼할 때 부조(扶助)했는데 너는 내 아들이 장가간다는데 코빼기도 안 비춰? 이런 괘씸한!” 그러나 그렇게 지탄을 받는 대상 또한 할 말이 없는 건 아니다. “그런 소리 말어. 자네는 애가 둘인 반면 나는 달랑 하나 뿐이잖어. 까놓고 말해서 자네 딸이 먼저 결혼했을 때 나도 부조했어. 그러니 그걸로 쌤쌤(상쇄라는 의미)하면 되지 뭐.” 필자도 아들 결혼시키면서 경험한 ‘팩트’다. 심지어 문자는 물론이고 모바일 청첩장까지 보냈음에도 안 받았다고, 아니면 못 봤다고 시치미를 떼는 사람도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일부 계제자(計除者)의 에고이즘을 굳이 따지자는 건 아니다.

어쨌거나 사람 관계는 끝이 좋아야 한다는 말도 있듯 아들 혼례와 연관된 뒷갈망(일의 뒤끝을 맡아서 처리함)은 상당 기간 계속될 것이다. 축의금은 조의금처럼 반드시 갚아야 마땅한 빚이기 때문이다. 뒷갈망은 조금 럭셔리한 밥과 술을 사는 것이 가장 괜찮다. 뒷갈망을 제대로 안 하면 똥 누고 밑 안 닦은 것처럼 기분이 매우 찝찝하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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