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속에서라도 보고 싶다.”
열애에 빠진 젊은이들이 막 헤어진 연인을 돌아서자마자 보고 싶다고 할 때, 또는 반백의 불효자가 이미 저세상으로 가신 부모를 뒤늦은 후회와 함께 애타게 그리워할 때, 또는 어느새 망백(望百)의 나이가 된 이산가족이 고향에 두고 온 부모 형제를 죽기 전 단 한 번만이라도 만나고 싶다며 눈물을 쏟을 때나 쓸 법한 간절한 염원을 꽃말로 가진 야생화가 있습니다.
일 년 중 가장 더운 7월 불볕더위에 그늘 한 점 없는 습지에서 불화살처럼 뜨겁고 강렬한 여름 햇살을 온몸으로 받으며 순백의 꽃을 피우는 해오라비난초가 바로 그 주인공입니다. 키는 15~40cm로 그렇게 작지는 않지만 녹색의 줄기마다 3~6장씩 달리는, 너비 3~6mm 길이 5~6cm의 잎 등 전초가 그렇게 풍성한 편은 아니어서 눈길을 끌지 못하는 데 반해, 줄기 끝에 1~3개씩 달리는 흰색 꽃만큼은 누구나 보는 순간 눈이 휘둥그레질 만큼 독창적인 관상미를 뽐냅니다.
“하~ 알 수 없는 조화로다.” 몇 해 전 처음 해오라비난초를 만나고 집에 돌아와, 몇 시간 전에 담은 사진을 컴퓨터 모니터에 올리니 흰 새들이 날아다닙니다. 분명 카메라에 꽃을 담아왔는데, 꽃은 온데간데없고 명품 고려청자에 새겨진 학을 닮은 새들이 흰색 날개를 활짝 펴고 우아하게 춤을 추니 ‘알 수 없는 조화’라고 혼잣말을 했던 것이지요.
그렇습니다. 길이 3cm의 꽃은 2개의 곁 꽃잎과 하나의 입술 꽃잎으로 이뤄졌는데, 특히 세 갈래로 갈라지는 입술 꽃잎이 좌우 날개를 퍼덕이며 비상하는 백로(白鷺)를 연상케 하며 꿈속에서라도 다시 보고 싶은 강한 열망을 낳습니다. 그리고 새를 닮은 꽃의 형태에서, 다소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기는 하지만, 바로 해오라비난초라는 이름이 유래한다고 식물학자들은 말합니다. 즉 ‘해오라비’는 백로와 같은 왜가릿과의 새인 해오라기의 경상도 사투리로, 해오라비난초란 해오라기난초의 오기로 봐야 한다는 것. 그런데 해오라비를 해오라기의 지방 사투리로 인정한다 해도, 해오라기는 머리와 등이 검고 통통한 게 순백의 해오라비난초 꽃과는 다소 거리가 있어, 온몸이 희고 날렵한 ‘백로난초’라는 이름이 더 적확했겠다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아무튼, 중·남부 지역의 양지바른 습지에서 한여름 꽃을 피우는 해오라비난초는 우리 땅에서 자라는 야생 난초 중 손가락으로 꼽을 만큼 관상미가 뛰어납니다. 다만 자생지가 불과 몇몇 곳에 불과한 희귀종인 데다, 꽃이 피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 숱한 이들이 찾아 순식간에 자생지가 파괴되기 일쑤여서, 각별한 보호 대책이 요구됩니다. 실제 몇 해 전 수십 송이가 한꺼번에 피어 전국의 야생화 동호인들이 줄지어 찾았던 자생지를 그다음 해 찾아갔다가 단 한 송이의 꽃도 보지 못했습니다.
발길을 돌리면서, 자칫 잘못하다가는 꽃말처럼 꿈속에서나 만나게 되는 것 아닐까 걱정을 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세계적으로도 우리나라와 일본, 중국에만 분포하는데, 중국에는 자생지가 단 한 곳밖에 없고, 비교적 개체 수가 많은 일본에서도 무분별한 채취로 멸종위기를 맞는 등 국제자연보전연맹(IUCN) 국가 단위 멸종위기종 A급으로 분류되어 있습니다.
Where is it?
멸종위기식물 2급으로 지정, 관리 중인 해오라비난초는 경기도·강원도·경상남북도에 최대 200개 개체가 자생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몇 해 전 수원 칠보산의 한 습지에서 꽤 여러 개체가 꽃을 피웠으나, 이후 크게 줄어들자 애호가들이 자발적으로 보호 철망(사진)을 두르기도 했다. 인근의 또 다른 자생지에선 수년째 발견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야생에서 보기 어렵다고 실망하긴 이르다. 광릉 국립수목원 등 여러 식물원에 가면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경남 합천군에선 몇 해 전 해오라비난초에 비해 개체가 크고 꽃이 많이 달리는 큰해오라비난초가 자생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김인철 야생화 칼럼니스트
서울신문 기자로 29년 일했다. '김인철의 야생화산책(ickim.blog.seoul.co.kr)' 블로그를 운영 중이다. '야생화 화첩기행' 저자.

![[Trend&Bravo] 부부 자산, 꼭 공유해야 할까? 세대별 응답 4](https://img.etoday.co.kr/crop/190/120/2249041.jpg)















































![[김인철의 야생화] 남도의 가을을 단풍보다 더 붉게 물들이는 ‘꽃무릇’](https://img.etoday.co.kr/crop/85/85/1131968.jpg)
![[김인철의 야생화] 염화시중의 미소로 꽃샘추위 내치는, 앉은부채!](https://img.etoday.co.kr/crop/85/85/1022522.jpg)
![[김인철의 야생화] 겨울이 깊어갈수록 존재감이 드러나는 '겨우살이'](https://img.etoday.co.kr/crop/85/85/1008185.jpg)
![[김인철의 야생화] 백두 평원에 흰 눈 쌓이듯 피는, 노랑만병초](https://img.etoday.co.kr/crop/85/85/991212.jpg)
![[김인철의 야생화] 척박한 바위 겉에 오뚝 서 꽃피우는, 좀바위솔](https://img.etoday.co.kr/crop/85/85/975249.jpg)
![[김인철의 야생화] 보랏빛 꽃다발로 거친 파도를 다독이는, 해국](https://img.etoday.co.kr/crop/85/85/956093.jpg)
![[김인철의 야생화] 스산한 가을 향이 강하게 묻어나는 꽃 ‘가는잎향유’!](https://img.etoday.co.kr/crop/85/85/944045.jpg)
![[김인철의 야생화] 야생난의 극치미를 보여주는, 백두산 애기풍선난초](https://img.etoday.co.kr/crop/85/85/909703.jpg)
![[김인철의 야생화] 폭염 속 온몸 틀어 선홍색 꽃다발 선사하는 타래난초](https://img.etoday.co.kr/crop/85/85/892727.jpg)
![[김인철의 야생화] 연분홍 치마 흩날리며 핑크빛 사랑 나누는, 개정향풀](https://img.etoday.co.kr/crop/85/85/876706.jpg)
![[김인철의 야생화] 섬진강변 흩날리던 매화의 환생 매화마름!](https://img.etoday.co.kr/crop/85/85/859954.jpg)
![[김인철의 야생화] 폭포수의 벗이자, 춘설(春雪)과도 친구인 특산식물 '모데미풀'](https://img.etoday.co.kr/crop/85/85/840816.jpg)
![[김인철의 야생화] 자연의 신비, 생명의 외경을 일깨워주는 '너도바람꽃'](https://img.etoday.co.kr/crop/85/85/827027.jpg)
![[김인철의 야생화] “봄 봄 봄! 봄이 왔어요.” 소리 높이 외치는 보춘화!](https://img.etoday.co.kr/crop/85/85/805684.jpg)
![[김인철의 야생화] 순백의 신부 부케를 똑 닮은 꽃 백서향!](https://img.etoday.co.kr/crop/85/85/784440.jpg)
![[김인철의 야생화] 백의 얼굴, 천의 표정을 자랑하는 광릉요강꽃!](https://img.etoday.co.kr/crop/85/85/759743.jpg)
![[김인철 야생화] 한 해 야생화 탐사의 대미(大尾)를 장식하는 좀딱취!](https://img.etoday.co.kr/crop/85/85/741256.jpg)
![[김인철의 야생화] 가을을 유혹하는 립스틱, 하늘을 내려앉게 하는 물매화!](https://img.etoday.co.kr/crop/85/85/719775.jpg)
![[김인철의 야생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베를린까지 유라시아의 여름을 물들이는 분홍바늘꽃](https://img.etoday.co.kr/crop/85/85/703375.jpg)
![[김인철의 야생화] 한국의 야생화를 대표하는 특산식물 '금강초롱꽃'](https://img.etoday.co.kr/crop/85/85/682894.jpg)
![[김인철의 야생화] 천 길 바위 절벽서 새벽이슬 먹고 피는 지네발란!](https://img.etoday.co.kr/crop/85/85/661984.jpg)
![[김인철의 야생화] 산악인의 꽃 산솜다리](https://img.etoday.co.kr/crop/85/85/642317.jpg)
![[김인철의 야생화] 5월 높은 산 깊은 계곡을 화사하게 물들이다 '애기송이풀'](https://img.etoday.co.kr/crop/85/85/626761.jpg)
![[김인철의 야생화] 동강 할미꽃](https://img.etoday.co.kr/crop/85/85/608389.jpg)
![[김인철의 야생화] 제주 봄의 화룡점정 수선화](https://img.etoday.co.kr/crop/85/85/596807.jpg)
![[김인철의 야생화] 2월이면 변산바람꽃 이미 피어 새 봄이 지척에 와 있음을 알립니다](https://img.etoday.co.kr/crop/85/85/584361.jpg)
![[김인철의 야생화 산책] 통곡하고 싶은 계절, 사무치게 그리운 임을 닮은 꽃 '둥근잎꿩의비름'](https://img.etoday.co.kr/crop/85/85/538854.jpg)
![[김인철의 야생화 포토기행④] 한탄강 '꽃장포' …불면 갈아갈세라, 만지면 터질세라, 가냘픈 풀꽃이 핍니다](https://img.etoday.co.kr/crop/85/85/480423.jpg)
![[김인철의 야생화 포토기행⑤] 솔나리](https://img.etoday.co.kr/crop/85/85/487074.jpg)
![[신간]](https://img.etoday.co.kr/crop/85/85/489790.jpg)
![[김인철의 야생화 포토기행 ③] 민족의 성산 백두산 고산식물의 대표 '두메양귀비'](https://img.etoday.co.kr/crop/85/85/473492.jpg)
![[김인철의 야생화 포토기행 ②]접경지대 야생화 탐사의 백미… 고대산 칼바위 능선 ‘자주꿩의다리](https://img.etoday.co.kr/crop/85/85/468876.jpg)
![[김인철의 야생화산책 ①] 위험하면서도 황홀한 응시! 야생화의 만남이 시작됩니다](https://img.etoday.co.kr/crop/85/85/468328.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