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 그 위대한 발명

기사입력 2018-07-06 09:38 기사수정 2018-07-06 09:38

김치찌개를 먹을 때마다 이 맛을 모르는 다른 나라 사람들은 얼마나 불행할까 생각해 본다. 한국인들만 김치찌개의 맛을 알고 즐기는 것이다.


어릴 때는 김치를 ‘짠지’라 하여 너무 짜서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겨울철 채소가 귀하니 냉장고도 없던 시절에는 오래 두고 먹으려고 짜게 만든 것이다. 고춧가루가 제대로 안 들어가서 색깔마저 누랬다. 그러니 식욕이 날 리 없었다. 그러나 외식을 하면서부터 김치의 참맛을 알게 된 것이다.


외국을 여행할 때 주로 현지 음식을 먹다가도 한국 음식점이 있으면 반드시 들어가 김치찌개를 주문한다. 김치찌개를 먹고 나야 비로소 입맛도 살아나고 온몸에 활기가 도는 느낌이다. 한국에서도 이것저것 메뉴가 생각나지 않으면 김치찌개 집에 간다. 값도 싸고 어디에나 있어 가장 무난하고 반대하는 사람이 없다.


김치는 배추에 여러 가지 양념이 들어간다. 종합 식품인 것이다. 양념에 따라 맛도 다르다. 그리고 익어가는 정도에 따라 맛도 달라진다. 이 세상에 그런 음식은 많지 않다. 위대한 발명이다. 대부분의 서양 음식은 음식 재료 그대로를 먹거나 기껏해야 익혀서 약간의 소스를 가미하거나 곁들여 먹는다. 그러나 김치는 그보다 한 차원 높은 고급 음식이다. 익을 때까지 기다리는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필자는 갓 담은 김치보다 신 김치를 좋아한다. 배추의 하얀 속살과 가장자리 부근의 쪼그라진 노란 잎도 좋지만, 시고 매운 독특한 맛을 좋아한다.


김치 하나만 있으면 찌개 끓이기는 쉽다. 김치만 기름에 볶다가 물을 부어 다시 끓이는 것이 기본이다. 여기에 돼지비계가 들어가면 환상의 궁합이다. 돼지비계 대신 꽁치가 들어가기도 하고 요즘 구하기 쉬운 참치 통조림 하나를 까 넣어도 훌륭하다. 단맛을 좋아하는 사람은 양파나 배를 갈아서 넣으면 꿀맛이다.


김치를 넣은 부대찌개를 먹으면서 김치를 뺀다면 무슨 맛일까 생각해 봤다. 원래 부대찌개의 기원은 한국 전쟁 직후 먹을 것이 없어 굶던 시절, 미군 부대 식당에서 버린 음식물을 찌개로 만든 것이다. 운이 좋으면 먹다 버린 햄, 소시지, 햄버거도 있고 뜯다가 만 닭 뼈도 들어 있었다. 먹다 만 빵조각이나 오렌지 껍질도 들어 있기도 하다. 심지어 담배꽁초가 섞여 나오는 경우도 있었다. 그냥 먹으라면 아무리 물을 붓고 끓였다지만 속이 메슥거릴 것이다. 그런데 여기 김치만 들어가면 훌륭한 부대찌개가 되는 것이다. 김치의 매운맛과 신맛이 부대찌개의 느끼한 맛을 없애주는 것이다. 빨간 기름 동동 뜬 국물은 입맛까지 돋워준다.


그러므로 각종 조림 음식도 김치가 들어가면 다른 양념을 할 필요가 없을 정도이다. 국물이 많으면 찌개가 되는 것이고 국물 없이 조리하면 김치 조림, 김치 볶음이 된다. 꽁치나 갈치처럼 다른 식재료를 넣으면 꽁치조림, 갈치조림이 되는 것이다.


따로 먹더라도 김치는 훌륭한 배합이다. 밥 자체는 밍밍하지만, 김치와 같이 먹으면 짜고 매운 맛이 어우러지면서 풍미를 즐길 수 있다. 삼겹살을 구워 먹으면서 신 김치와 같이 먹으면 환상의 조합이 된다. 김치 없이 삼겹살만 먹으라고 한다면 고역이다. 몇 점 먹고 나면 더는 젓가락이 안 간다.


해마다 김장철이 되면 여기저기에서 김치 선물이 들어온다. 냄새 나는 김치를 담아 온다는 것도 대단한 성의라서 받아 둔다. 깔끔한 플라스틱 용기를 일부러 사서 거기에 담아 주는 것이다. 그런데 겨우내 다 먹지도 못한다. 김치가 없으면 안 되는데도 정작 많이 먹지는 않는 모양이다. 아침 한 끼만 집에서 먹고 점심 저녁은 밖에서 사 먹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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