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열이 많다. 그래서 더운 걸 못 참는다. 반면 나와 딸들은 추위를 싫어한다. 남편은 비 오는 날을 좋아하고 나머지 식구들은 맑은 날을 선호한다. 이렇게 다르다 보니 집 안에서 늘 신경전이 벌어진다. 미세먼지가 많은 봄날에 딸들이 모든 문을 봉쇄하면 남편은 몰래 안방에 들어가 창문을 열고 혼자 앉아 있거나, 요즘같이 날씨가 선선해지는 가을의 문턱에선 창문 여닫기 숨바꼭질이 벌어진다.
처음에는 우리 집만 그러는 줄 알았더니 친구들도 다 그렇단다. 겉으로 말을 안 했을 뿐이지 모두 비슷한 어려움을 가지고 있었다. 생각해 보니 대부분 남자는 체질적으로 양에 속하고 여자들은 압도적으로 음 체질이 많아서 그럴 거라고 어렴풋이 짐작한다. 그러나 그저 그러려니 하면서 적응하며 다들 살아간다. 주변에 그런 이유로 분가한 경우를 보지 못했으니 말이다.
그런데 최근 신문 기사를 보니 이게 작은 문제가 아니었다. 미국에선 이 문제가 남녀 차별이라는 관점으로 접근하며 대대적으로 문제 삼을 기세이다. 말하자면 남녀가 함께 근무하는 사무실 온도가 대부분 남성 위주로 설정되어 여성들이 추위에 떨고 있다는 것이다. 과학자들에 의하면 약 22도가 알맞고 여성들은 약 24도 정도가 최적온도라는 것이니 그럴 만도 하다.
페미니즘이라는 도도한 시대의 흐름이 여성해방과 미투운동을 거쳐 이제 사무실 내 온도로까지 번지는 듯해 무섭고도 재미있다. 하긴 따지고 보면 충분히 문제 삼을 만하다는 느낌이다. 남녀 간의 생리적인 차이도 존중받아야 진정한 남녀평등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한편으론 이렇게 가다간 남녀가 갈수록 멀어져 이젠 공간까지 나누어 아예 서로 보지 않는 지경에 이르지 않을지 걱정도 된다.
그러고 보니 옛 조상들의 삶이 이해가 된다. 과거 있는 집들은 대개 안채와 사랑채가 분리되어 있어서 부부가 독립적인 삶을 영위했다. 어쩌면 두 방은 서로 온도도 달랐으리라. 단지 그 이유 때문만은 아니라도 부부가 한 방에서 생활할 때 생기는 여러 가지 남녀 간의 갈등을 미리 방지하는 기능은 했을 것이다. 그래서 부부가 서로 생활 속의 갈등으로 헤어졌다는 기록은 찾아볼 수 없지 않은가.
사실 요즘도 실내 온도뿐 아니라 생활 습관의 차이로 각방을 쓰는 부부가 늘고 있단다. 어쩌면 이 갈고, 코 골고, 방귀 뀌고, 트림하는 배우자를 보며 얼마 남지 않은 사랑이 달아나는 것보다는 잠시 헤어져 있는 것이 그나마 사라져 가는 애정을 보존하는 지혜로운 방법일는지 모른다. 마치 시끄러운 스마트폰을 잠시 꺼 두고 마음의 평정을 찾듯이 말이다.
그러나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니 그래도 부부는 한방을 써야 하는 건 아닌지? 옆방으로 옮긴 남편이 언젠가 문밖으로 옮길지 어찌 아는가. 누구처럼 졸혼이니 뭐니 하는 핑계를 대면서 말이다. 방 안 온도를 조금 양보하는 대신 이불을 각자 달리 덮으면 되고 코를 좀 골면 거꾸로 누워 자면 되지 않을까? 남녀평등은 싸워서 얻는 게 아니라 사랑으로 극복하는 것이다. 아아, 님아! 부디 옆방으로 가지 마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