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일도 안 도와주고는 못 참아

기사입력 2017-07-27 15:41 기사수정 2017-07-27 15:41

그녀를 처음 만난 것은 작년 12월 마지막 날이었다. 압구정에 있는 뮤지크 바움 오페라 동호회 모임에서였다. 그녀는 30여 명 되는 회원들 모두에게 두세 송이의 꽃을 선물하고 있었다. 화사한 연핑크와 보라색의 리시안셔스라는 서양 꽃이었다. 예쁜 꽃을 선물 받으면 늘 행복하다. 마음이 예쁜 그녀와 대화를 나눠보니 그녀도 필자와 같이 '자유로운 영혼'이었다. 곧바로 의기투합해 필자가 수강하고 있는 '라임'이라는 탱고 교습소를 같이 다니게 되었고 그녀와 필자는 매주 일요일 오후, 탱고를 배우며 우정을 쌓았다. 키 크고 체구도 당당한 그녀는 몸치인 필자와 달리 금방 유연하게 춤을 잘 따라 하며 흥미를 보였다. 그러던 중 그녀가 새 학기를 맞아 고향인 창원으로 발령을 받아 내려가게 되었다. 초등학교 교사인 그녀는 다양한 문화생활을 할 수 있는 서울이 좋지만 직장 때문에 내려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아니 이게 꿈이야? 생시야?”

창원에 있어야 할 그녀를 뮤지크 바움에서 만나게 될 줄이야! 깜짝 놀랐다. 발레 감상을 하기 위해 지난 토요일 무지크 바움에 갔는데 그녀가 서울을 떠난 지 몇 개월 만에 그곳에 온 것이다. 이런 우연이 있나? 필자도 일정이 바빠 몇 개월 만에 간 날이었다. 반가워서 얼싸안는 필자에게 그녀는 대뜸 '애란 언니'라고 부르며 안겼다. ‘애란 언니?’ 오랜만에 듣는 그 호칭이 필자를 여간 들뜨게 하는 것이 아니었다. 딸보다도 한참 어린 후배 여교사였다. 언니는 언니 값을 해야만 한다. 발레 감상이 끝난 후 인근에 있는 안동국시 집에 데려가 점심을 사줬다.

차를 마시며 무언가 걱정이 있어 보이는 그녀의 얘기를 들어주었다. 물가 비싼 신사동에 얻은 집이 빠지지 않은 상태에서 내려가 계속 많은 금액의 월세와 대출받은 보증금의 이자가 몇 달 동안 나가고 있다고 했다. 젊은 여교사의 피 같은 돈이 엉뚱하게 빠져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듣다 보니 부동산 업자의 행태에 분노가 치밀었다. 다른 업자와는 계약을 할 수 없으며 반드시 자신들하고 해야 일이 처리된다고 했단다. 집주인과 직접 만나 사정을 이야기하고 싶어도 전화번호를 가르쳐줄 수 없다고 말하더란다.‘한참 연장자인 인생 선배가 딸 같고 동생 같은 젊은이에게 이래도 되는 건가?’하며 울분이 일어났다. 걱정하실까봐 부모님께는 털어놓지도 못하고 필자에게 처음으로 얘기한다며 그녀는 눈물을 뚝뚝 흘렸다.

그동안의 마음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닌 듯싶었다. 이런 얘기를 듣고 가만히 있을 애란 언니가 아니다. 이럴 때는 정의의 사도인 애란 언니가 나서야 한다. '이 악당아~ 정의의 칼을 받아라~ 얍!' 당장 부동산 업자의 전화번호를 알아내 집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전화를 걸었다. 장장 24분이나 통화하며 업자를 설득했다. 퇴근 후의 휴식을 깨트리는 것이 미안하긴 했지만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

"애란 언니, 그 집 7월 말에 새 세입자가 들어오기로 했대요."

어제와 달리 그녀 목소리는 아주 밝았다.

이렇게 쉽게 나갈 수 있는 것을 그동안 왜 그렇게 그녀의 속을 썩였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필자가 좀 더 일찍 알았다면 손해를 최소화시키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지 않았을까? 만시지탄이었다. 어쨌든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필자가 도움이 된 것 같아 여간 기쁘고 후련한 것이 아니었다. 전화통화로 해결이 안 되면 사무실로 직접 찾아가 항의하고 사안별로 문제를 조목조목 따져보려고 했는데 그럴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이런 악덕 업자들을 대할 때마다 인간에 대한 회의가 밀려온다.

후배야, 애란 언니 역할을 어느 정도 해낸 거 맞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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