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 끓이지 말고 좋은 말로 부탁하자

기사입력 2017-08-25 11:06 기사수정 2017-08-25 11:06

필자는 유달리 더위를 타는 사람이다. 몸속에도 열이 많은지 한겨울에도 냉동실 얼음 칸에 얼음을 가득 채워야 마음이 놓일 정도다. 마시는 물도 미지근한 물이 몸에 좋다는데 필자는 꼭 얼음처럼 차가운 물을 마시니 주변에서 걱정해주기도 한다. 체온이 1도 오르고 내리는 데 따라 몸에 적신호가 켜지기도 한다는데 그렇게 차가운 물을 마셔대냐고 충고를 하는 것이다. 그래도 필자는 여전히 얼음처럼 차가운 물을 마신다. 또 조금만 기온이 올라가면 남들은 아무렇지도 않은데 필자만 허덕거리고 부채질을 해댄다. 그래서 “너 갱년긴가보다” 하는 말도 듣는데 갱년기가 아니라 이제는 노년기에 접어든 나이이니 그 증상은 아닐 듯하다.

어떤 분은 필자가 부럽다고 한다. 젊으니까 더운 거라며 본인은 항상 추워서 고민이라고 한다. 그러나 필자 입장에서 더위는 웬수다. 남보다 더위를 많이 타서 안 좋은 점은 여러 가지다. 단체로 여행을 갈 때 대부분의 여자들은 따뜻한 환경을 선호한다. 추운 겨울에야 뜨끈한 방이 좋지만 봄가을에도 다들 따뜻한 잠자리를 선호한다. 필자는 마룻바닥 베란다 쪽에 바싹 붙어서 잔 적도 있다. 도무지 후끈한 실내 공기를 참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에어컨 좀 켜자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다들 따뜻한 게 좋다는데 필자 혼자 덥다고 그러기는 어려웠던 것이다. 그저 부채질을 해대며 참는 수밖에 없었다.

얼마 전 모임에서 강화도 탐방 나들이가 있었다. 전철 5호선 송정역에서 내려 3000번 버스를 타고 1시간 20분쯤 가면 강화도에 도착한다고 했다. 12시에 송정역에 모여 강화도로 가서 서너 시간 유적지를 걸어서 둘러본다는데 땡볕이 내리쬐는 날씨를 필자는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어 5시에 있는 식사시간에 맞춰 참석하기로 했다.

혼자 3시간여를 전철과 버스를 타고 가니 어디 먼 여행이라도 떠나는 것처럼 설레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송정역에서 갈아탄 3000번 버스는 요금이 2400원이었다. 뒤편으로 가서 자리를 잡고 앉았다. 이제 버스에서 1시간 반 정도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그런데 버스 안이 너무 더웠다. 옆자리의 아주머니도 연신 부채질을 하고 있었고 어떤 사람은 좌석 위쪽에 있는 에어컨이 제대로 작동되고 있는지 만지작거리기도 했다.

필자만 더운 건 아니었나보다. 날씨가 이렇게 무더운 날 승차비를 2400원이나 받는 버스가 이렇게 더워도 되는 건지 급기야 화가 나기 시작했다.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기사분에게 에어컨 좀 세게 틀어달라고 말할까 말까 고민만 했다. 속 시원하게 부탁하면 좋으련만 그러지도 못 하는 성격에 큰 소리도 못 내고 덥다고 혼잣말을 하며 30여 분간 분을 참고만 있었다.

요즘은 자가용 줄이기 목적으로 대중교통 이용이 보편화됐다. 자가용을 타는 것보다 전철이나 버스가 냉난방이 아주 잘 되어 있어 많이들 이용하고 있다. 그런데 이 버스는 관광지로 가는 차인데도 불구하고 승객을 더위에 지치게 했다. 분통이 터졌다. 목적지에 도착려면 아직 한 시간이나 남았는데 승객들은 부채질을 해대면서도 불평 한마디 하지 않고 있으니 이상하기도 했다.

드디어 필자가 참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기사님께 가서 좌석이 너무 더우니 에어컨 좀 켜달라고 부탁했다. 그랬더니 기사분이 “켰는데요?” 했다. 그러고는 무언가를 만지니 쉭 하는 소리와 함께 시원한 공기가 뿜어져 나왔다. 역시 말하길 잘했다는 생각에 웃음이 났다. 부글부글 끓을 필요 없이 진즉에 좋은 말로 부탁하면 간단히 해결될 일이었다.

필자에게 찜통더위는 견디기 어려운 고통이다. 많은 승객 앞을 지나 앞자리의 운전석까지 부탁하러 가는 일이 부끄러워 망설였지만 역시 소통이 중요하다는 걸 새삼 느꼈다. 용기 내어 한마디하고 시원하게 목적지까지 잘 다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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