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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한 소상공인 키우자”… 중기부, ‘라이콘 육성’ 피칭대회
- 중소벤처기업부가 주최하고 소상공인진흥공단이 주관하는 ‘2024년 강한 소상공인 파이널 오디션’ 개막식이 10일 광명시 아이벡스 스튜디오에서 열렸다. ‘소상공인을 혁신기업으로, 소상공인의 미래 라이콘’을 주제로 하는 이번 행사에서는 차별화된 가치를 제공하는 ‘라이콘’ 피칭대회가 진행된다. 라이콘(LICORN)은 유니콘을 지향하는 라이프스타일 및 로컬 분야 혁신 기업을 뜻하는 말이다. 9월 10일부터 12일까지 이어지는 행사에는 피칭 대회뿐 아니라 참여기업 제품 전시, 글로벌 인플루언서의 해외 홍보, 라이브커머스, 투자 IR, 글로벌 벤더 유통 상담회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마련됐다. 행사 마지막 날인 13일 금요일에는 파이널 오디션을 거쳐 선정된 10개 기업에 대한 ‘강한 소상공인-2024 넥스트 라이콘 시상식’이 진행될 예정이다. 중소벤처기업부(이하 중기부)는 지난 6월 강한소상공인 1차 오디션에서 9137개사 소상공인 중 210개 팀을 선정했다. 1차 오디션에서 선정된 팀들은 한 팀당 최대 6000만 원의 사업모델 고도화자금을 지원받았다. 이번 강한소상공인 파이널 피칭대회는 1차 오디션 선정 150개 팀(온라인 셀러 유형 제외) 중 우수한 제품·서비스를 개발한 소상공인을 ‘라이콘’으로 육성하고자 마련됐다. 이번 피칭 대회를 통해 선정된 최종 60개 팀에게는 스케일업을 위한 사업화 자금 최대 4000만 원이 추가 지원된다. 심사는 9명의 전문가 평가단과 50명의 대국민 평가단이 진행한다. 오영주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은 이날 개막식 축사를 통해 “44:1이라는 높은 경쟁률을 뚫고 5개월 동안 팀빌딩을 거쳐 이 자리에 오른 강한소상공인 여러분께 격려의 박수를 드린다”며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소상공인이 라이콘으로 성장한다면 우리 경제의 원동력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정부는 이러한 소상공인 육성에 필요한 지원책을 계속적으로 확대해 나갈 계획”이라며 “창업부터 도약까지 기업가의 소상공인을 위한 성장 단계별 지원 체계를 완비했으며, 소상공인 특성에 맞는 금융 프로그램도 지속적으로 확대해 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중기부는 올해 초 250억 원 규모의 라이콘 펀드를 신설한 바 있으며, 국민은행과 협업해 1000억 원 규모의 특별보증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내년에는 민간 투자자의 투자를 받은 기업가형 소상공인에게 사업화 자금을 매칭하는 투자 연계 지원도 새롭게 시작한다. 오 장관은 “정부의 노력과 소상공인의 열정이 만나면 지금은 작은 기업이지만 앞으로 소상공인이 갖게 될 미래는 정말 다를 것”이라며 “전 세계로 뻗어 나가는 대한민국의 역사를 새롭게 만들어 갈 것을 확신하며 더 나은 정책으로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한편 강한 소상공인 성장지원 사업은 소상공인이 파트너 기업과의 협업으로 소상공인만의 차별화된 제품과 서비스를 개발해 기업가형으로 성장하도록 지원하는 사업이다. 라이프스타일, 로컬브랜드, 백년가게·소공인 유형을 지원하는 트랙1, 온라인 셀러 유형을 지원하는 트랙2, 글로벌 유형을 지원하는 트랙3으로 나뉘어 있다.
- 2024-09-11 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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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심당 빵 왜 안 파냐고요?”... 로컬브랜드, 문화 커뮤니티의 중심으로
- 로컬 특별전 ‘로컬크리에이티브2024: 더 넥스트 커뮤니티’가 문화역서울284(서울역 구 역사)에서 17일 첫 선을 보였다. 이번 전시는 오픈 전부터 대전 유명 빵집 ‘성심당’의 참여로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성심당은 대전에만 지점을 내고, 그곳에서만 빵을 판매한다는 철학을 가진 브랜드였기에 서울에서도 빵을 살 수 있다는 기대가 높아진 것. 이에 성심당은 “ONLY 전시, 성심당 빵! 대전에서만 판매합니다. 문화역서울284에서는 빵을 판매하지 않습니다”라는 공식 해명까지 해야 했다. 성심당을 비롯한 로컬브랜드들은 이번 전시에서 제품이 아닌 무엇을 보여주고 싶었던 걸까 알아보기 위해 현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문화역서울284에서 5월 17일부터 6월 2일까지 열리는 ‘로컬크리에이티브2024: 더 넥스트 커뮤니티’는 로컬을 주제로 열리는 국내 첫 대규모 전시다. 중소벤처기업부가 후원하고 도시 콘텐츠 전문 기획사 어반플레이가 주최했다. 성심당, 태극당, 모모스커피 등 50여 개 브랜드가 참여한 이번 전시는 대표적인 로컬브랜드와 로컬을 이끄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여준다. 스타벅스·나이키 등 우리가 잘 아는 대형 브랜드도 첫 시작은 동네의 작은 가게에서 시작해 지금은 하나의 문화 흐름을 이끄는 브랜드가 된 것처럼, 국내 로컬브랜드들 역시 창의적 커뮤니티의 중심이자 새로운 문화를 만드는 원동력으로 진화하고 있음을 조명했다. 지역 소멸을 걱정하는 시대에 로컬크리에이티브2024 전시는 묵직한 울림을 던진다. 단순히 지역을 살려야 한다거나, 특정 브랜드가 지역을 먹여 살린다거나 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규모가 작은 로컬브랜드들이 각 지역에서 어떻게 사람들을 연결하고 있으며, 지역과 어떻게 상생하는지, 지속가능성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흐름을 보여준다. ‘지역의 커뮤니티 연결자’로서 로컬브랜드가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설명하고, 단순히 제품이나 서비스를 판매하는 것을 넘어 하나의 도시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과정을 함께 걸어보도록 한다. 전시장 곳곳에 숨겨진 로컬브랜드의 가치와 철학을 들여다보고 있자면 앞으로 이들이 지역에서 만들어낼 새로운 문화가 과연 어떤 것일지 자연스레 궁금해진다. 그렇기에 로컬브랜드들은 지역에서 보았을 때 더 깊은 의미가 있다. 작지만 강한 로컬브랜드 이야기 전시는 로컬브랜드 100, 당신과 나 사이의 검은 물, 로컬 아카이브 로드, 수집가의 방, 빵 좋아하세요?, 어떤 하루, 도시 미味-술, 뉴웨이브, 대체 불가한 이야기 등 총 9개의 테마로 구성됐다. 전시 티켓을 확인하는 입구에는 높은 천고를 자랑하는 홀이 자리한다. 이곳에는 여러 브랜드 이름이 적힌 현수막이 기둥과 기둥을 연결하고 있다. 홀 전시 테마는 ‘로컬브랜드 100’이다. 흩어진 기둥을 하나의 끈으로 연결한 현수막에는 100여 개의 로컬브랜드와 슬로건이 쓰여있다. 천정에 있는 양쪽의 창을 통해 들어오는 햇빛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다른 브랜드들을 비추도록 설계했다고 한다. 3등 대합실에는 ‘당신과 나 사이의, 검은 물’은 로컬 카페 이야기가 전시되어 있다. 커피를 판매하는 것뿐만 아니라 지역에서 커뮤니티를 만들어온 브랜드들이다. 컬래버레이션 전시, 전국 투어, 공정 무역 등 그들이 전하고자 하는 ‘가치’가 무엇이었는지를 들여다볼 수 있다. 서측 복도에는 ‘로컬 아카이브 로드’가 있다. 로컬브랜드들이 만들어가는 문화와 지역의 숨은 이야기들을 기록하는 매거진들을 볼 수 있다. 로컬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로컬 파인더, 로컬 에디터, 로컬 기록자, 도시 매니아, 도시 산책자 다섯 가지 유형으로 나뉘는데, 전시 관람객도 자신의 유형을 파악해보고 취향에 맞는 매거진을 볼 수 있도록 설계했다. 부인 대합실 ‘수집가의 방’은 로컬 큐레이터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성수, 마포, 서촌, 신사에서 일어나는 변화와 트렌드를 수집하고 소개함으로써 동네를 향유하는 매력과 재미를 전하고 그로 인한 문화적 가치를 창출하는 이들이다. 이곳에 소개된 큐레이터들은 서울 지역에서 활동하지만, 앞으로는 더 많은 지역에 이들과 같은 동네 큐레이터가 생기리라 짐작해 볼 수 있다. 1,2등 대합실 ‘빵 좋아하세요?’는 대표적인 로컬브랜드인 두 빵집 이야기를 보여준다. 성심당과 태극당이 주인공이다. “모든 이가 좋게 여기는 일을 하도록 하십시오”라는 성심당의 슬로건, “오래됨이 빵을 맛있게 하는 철학으로”라는 태극당의 슬로건을 기반으로 그동안 어떤 마음으로 빵을 만들어왔는지를 전한다. 광복이 너무 기뻐 무궁화를 연상시키는 로고를 만든 태극당과 대전 부흥에 소명을 가지고 청년 인큐베이터 역할을 하게 된 성심당의 이야기까지 그저 빵을 만드는 것에 그치지 않고 빵과 도시와 사람을 잇는 수십 년의 노력을 조명한다. ‘어떤 하루’는 크리에이터의 퍼포먼스를 기록한 다큐멘터리 영상 상영관이다. 지역에서 활동하는 개인의 이야기와 공간을 중심으로 관객으로 하여금 ‘어떤 것을 바라볼 것인가’를 사유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귀빈예빈실 ‘도시 미味-술’에서는 지역의 농산물과 자연이 녹아든 로컬 브루어리 제품들을 볼 수 있다. 술이라는 매개체로 어떤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는지 각 브루어리의 이야기를 전한다. 더불어 작가 ‘쿤스트호이테’의 우리 땅에서 나고 자란 식물성 재료를 활용해 천연 염색한 발 작품과 공예 작가들의 도자기들을 함께 전시했다. 딥다이브 투어를 전문으로 하는 가이드라이브가 마련한 도슨트 투어는 이런 전시의 의미를 더욱 깊이 있게 만들었다. 당초 도슨트 투어는 4회차로 계획됐지만, 많은 관심으로 조기 매진되었고 주최 측은 추가 회차를 열었다. 추가 회차 역시 단기에 예약이 마감될 정도로 많은 사람이 이번 전시에 관심을 가졌다. 도슨트 투어는 역사 해설가 안지영의 안내로 진행된다. 안지영 해설가는 “이렇게 많은 로컬브랜드를 한 곳에 모아 이야기를 들려주기가 쉽지는 않았다”면서도 “대형 프랜차이즈에 비하면 작은 규모의 브랜드들이지만, 이곳들이 언젠가는 역사처럼 배우는 브랜드가 될 수도 있다. 지역에서 봤을 때 더 의미 있는 브랜드들을 사람을 소개하는 마음으로 가이드 투어를 준비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스몰브랜드인 로컬브랜드들이 취향을 연결하고, 도시를 만들고, 문화를 형성했다”면서 “지역과 어떻게 공생할지를 고민하는 브랜드와 그들의 제품이 다음 단계를 맞이해 어떻게 ‘넥스트 로컬’을 만들 것인가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며 이번 전시의 의미를 전했다. 새로운 파도, 그래서 넥스트 로컬은? 2층에는 ‘뉴웨이브’와 ‘대체 불가한 이야기’ 전시가 마련됐다. 지속가능성과 다음(넥스트)에 대한 이야기다. 지역 소멸이라는 시대적 과제에 맞서 의미 있는 도전을 펼치는 로컬브랜드 프로젝트와 ‘넥스트 커뮤니티’에 대한 8명의 로컬브랜드 대표들의 인터뷰를 볼 수 있다. 뉴웨이브는 지역에 밀려오는 새로운 물결을 의미하는 것으로, 느슨하지만 강력한 커뮤니티로 연대하며 각 지역에 새로운 문화를 형성하고 정체성을 만들어가는 로컬 프로젝트를 소개한다. 소상공인과 호흡했던 ‘마계인천 페스티벌’, 침체된 상권 활성화를 위해 문화적 팝업을 구현한 ‘이태원 헤리티지 맨션’, 지역 자연환경을 새로운 콘텐츠로 탄생시킨 ‘서피비치’ 등의 사례를 통해 로컬브랜드들이 어떤 방식으로 지역의 미래를 모색하고 있는지를 볼 수 있다. 또한 박준규 서피비치 대표, 김하원 해녀의 부엌 대표, 김민규 복순도가 대표, 이창길 개항로프로젝트 대표, 신경철 태극당 대표, 임성은 헬카페 대표, 박진우 성수교과서 큐레이터, 홍주석 어반플레이 대표 등 8인의 인터뷰를 통해 로컬브랜드에서 시작해 도시 콘텐츠로 이어지는 미래와 현재를 고민해볼 수 있다. 홍주석 어반플레이 대표는 “1:1의 관계가 2명, 3명, 50명, 100명이 되면 하나의 지역 커뮤니티 혹은 라이프 스타일 커뮤니티 등 여러 커뮤니티 형성으로 이어지며, 그 안에서 다시 새로운 형태의 문화가 형성된다”면서 “그런 문화가 있어야 더 성숙한 형태의 도시 모델들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로컬브랜드에 대해 “삶에서 곁에 항상 있지만 어디에나 있지는 않은 것”이라고 정의 하면서 “가치구현을 위해 지속적으로 크리에이티브를 만들어내는 이들이 어떻게 시민과 공감하며 브랜드를 성장시켜 나가느냐”를 봐야 한다 강조했다. 물론, 온라인으로 무엇이든 살 수 있는 시대이기에 로컬브랜드도 지역을 넘어 글로벌 시장까지도 뻗어 나갈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다만, 이들에게 글로벌 시장이란 이익 창출만을 위한 시장이 아니라 이들이 추구하는 가치와 문화를 전달하는 통로로서 의미가 있을 것이다. 이렇듯 단순 소비를 넘어 각 브랜드의 생각과 가치를 들여다보고자 만든 전시인 만큼 전시 기간 동안 매주 금, 토, 일에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열었다. 오는 6월 1일에는 “성심당, 대전의 문화가 되기까지”라는 브랜드 토크가 열리며 스트릿댄스팀 뱅크투브라더스와 현대무용 그룹 전복된 해부학적 풍경의 컬래버레이션 공연도 준비돼 있다. 한편 전시 관람을 마치면 전시 티켓으로 연남방앗간에서 로컬브랜드의 음료를 맛볼 수 있다. 한쪽에서는 로컬브랜드 제품 일부를 보거나 구매할 수 있다. 전시를 둘러본 관람객의 전시 경험은 로컬브랜드를 떠올리며 지역에 방문해 그들이 만든 문화를 직접 피부로 느끼는 데까지 이어질 것이다. 오래도록 지역과 사람을 곱씹게 하는 것, 그들이 활동하는 장소가 어떤 사회문화적 맥락을 만들어 다음 시대로 이어질까 고민하게 하는 것, 그것이 이번 전시의 매력이 아닐까.
- 2024-05-30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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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기부, 소상공인 유니콘으로... ‘글로컬’ 상권 만든다
- 중소벤처기업부(이하 중기부)의 로컬브랜드 상권 육성 프로젝트가 이태원에서 시작을 알렸다. 소상공인들을 1조 원의 기업가치가 있는 유니콘 기업형으로 육성하고, 지역의 상권이 글로컬(글로벌+로컬)로 거듭나도록 만들 계획이다. 지난 1일 로컬브랜드 창출사업이자 이태원 상권 회복 프로젝트로 진행된 팝업스토어 ‘헤리티지 맨션’이 문을 열었다. 로컬브랜드 창출사업은 로컬크리에이터와 소상공인의 협업으로 지역의 인적·물적 자산을 연결하고, 상권관리 모델 도입과 자체 역량 강화를 통해 골목상권을 브랜드화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사업이다. 지난 5월 서울 이태원(어반플레이), 인천 개항로(개항마을), 공주(제민천), 군산 영화타운((주)지방)을 ‘로컬브랜드 상권 창출팀’으로 선정한 바 있다. 이영 중기부 장관은 2일 이태원에서 간담회를 열어 로컬브랜드 창출사업의 시작을 알리고, ‘헤리티지 맨션’을 둘러보며 이태원 소상공인을 응원했다. 이영 장관은 “퇴근하고 대중교통에서 내려 집까지 걸어가는 그 길이 나를 행복하게 해준다면 어떨까? 동네가 바뀌면 온 동네 사람들이 행복해질 것이라 생각했다”고 로컬브랜드 창출사업의 배경을 설명하면서 “생활 속 창업에 개인과 공동체의 행복이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전 세계 사람들이 한국에서 가장 먼저 방문하는 이태원의 독특한 문화, 역사, 가치들을 모아 상권을 개발하고자 했다”면서 이태원 상권 회복을 응원했다. 이태원에서 지역 소상공인들과 협업해 헤리티지 맨션을 기획한 어반플레이 홍주석 대표는 “우리나라 로컬크리에이터의 시작은 이태원”이라면서 “이태원의 정체성을 기반으로 한 상권 활성화를 목적으로, 다양한 문화 프로젝트를 준비했다”고 설명했다. 이태원관광특구연합회는 이날 열린 간담회에서 상인 700여 명의 감사의 뜻을 담아 제작한 감사패를 이영 장관에게 깜짝 전달하기도 했다. 유태혁 이태원관광특구연합회 회장은 “(지난해 참사 이후) 정말 고민이 많았는데 (중기부 지원으로) 여기까지 올 수 있었고 희망을 보게 됐다”고 소감을 전했다. 중기부는 소상공인을 기업가로 키우는 지원 사업들을 연계할 계획이다. 지역의 상인들을 ‘라이콘’(라이프스타일 유니콘)으로 성장시키고, 지역이 새로운 브랜드를 창출하는 글로컬 상권으로 재도약하도록 돕는다는 취지다. 이번 로컬브랜드 창출사업에 선정된 지역 중 이태원 헤리티지 맨션을 시작으로 공주 제민천 창업실험실, 마계인천 유니버스, 군산 술익는 마을 순으로 팝업스토어, 축제, 네트워킹 데이가 연속 개최된다. 이태원의 낮과 밤 담은 “헤리티지 맨션” 헤리티지 맨션은 도시 콘텐츠 전문 기업 어반플레이가 이태원의 로컬크리에이터, 소상공인과 협업해 만든 팝업스토어다. 독특한 지역성을 가진 이태원의 문화와, 시대를 선도하는 문화를 제안해온 이태원 구성원들의 유산을 담은 공간이다. 이날 헤리티지 맨션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방문했다. 오후 4시가 되자 DJ의 디제잉이 이어지며 마치 클럽에 온 듯한 느낌도 주었다. 헤리티지 맨션 자체가 곧 이태원이었다. 최은지 어반플레이 PD는 “9월 한 달 동안 앵커스토어인 헤리티지 맨션 팝업스토어를 중심으로 8군데의 지역 상인들의 공간에서 동시다발적 프로그램이 열린다”고 설명했다. 헤리티지 맨션에 방문하면 누구나 웰컴키트를 받을 수 있다. 이 안에는 이태원의 헤리티지(유산)를 보여주는 헤리티지 프로젝트에 관한 설명과 함께 이태원 일대를 돌아다니며 모을 수 있는 키링이 들어있다. 봉투 안의 키링을 가지고 쿠폰에 적혀있는 공간을 방문해 1만 원 이상의 소비를 하면 각 카테고리별 색깔의 열쇠 모양 키링을 받을 수 있다. 맨션 1층에는 웰컴레코즈(WELCOME RECORDS), 웝트(WARPED)의 제품들을 볼 수 있다. 한 편에는 이들을 지원하는 위스키 브랜드 짐빔의 하이볼을 맛볼 수 있는 부스가 있고, 옆에서는 매주 금, 토, 일 오후 4시부터 저녁 10시까지 DJ들의 릴레이 공연이 이어진다. 2층에는 암스테르담에서 믹스미디어 예술가로 활동하고 있는 전윤일 작가가 이태원에서 7일 동안 실제로 살면서 담은 기록들을 전시하고 있다. 한편에서는 이태원의 색깔을 담은 F&B 부스가 운영된다. 3층에서는 비슬라(VISLA) 매거진의 ‘이태원의 낮과 밤’을 주제로 한 전시를 볼 수 있다. 전시에 담겨있지 않은 이태원 사진들은 포스터로 구매할 수 있다. 한편에는 관광특구도시인 이태원의 특징을 담은 굿즈가 판매된다. 보이롱페이스 작가와 협업해 그래피티를 넣은 티셔츠와 이태원 도시 명칭과 함께 헤리티지 맨션의 위도와 경도가 그려진 수건 등이 있다. 또한 매주 금요일에는 댄스 등의 공연이 열리며 매주 일요일에는 플리마켓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헤리티지 프로젝트는 오는 9월 24일까지 진행된다. ‘이태원’ 하면 떠오르는 것 중 하나는 단연 DJ 문화일 것이다. 웰컴레코즈는 DJ들을 서포트하기 위해 많은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이번 헤리티지 프로젝트에서도 DJ를 지원하기 위해 헤리티지 맨션과 컬래버레이션 한 LP를 선보이며, 볼레로(BOLERO)에서 선보일 예정이다. 웝트는 서브컬쳐나 발굴되지 않은 문화를 옷으로 표현한다. 홍콩, 뉴욕 등 전세계 아티스트들의 러브콜을 받는 팀이다. 헤리티지 맨션에서 선보인 옷들은 해외 아티스트들과 작업한 것들로 국내에는 없는 수입 제품들이다. 전윤일 작가는 7일간의 이태원에서의 생활을 기록했다. 실제 이곳에서 소비한 영수증, 필름, 가게의 소품으로 만든 오브제 등을 선보인다. 또한 이태원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이태원의 헤리티지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이태원이 어떤 의미인지를 묻고 담은 다큐멘터리도 상영한다. 이태원 곳곳에 그래피티 작업을 한 작가의 그래피티도 감상할 수 있으며 매주 달라지는 F&B도 즐길 수 있다. 종이 잡지로 시작해 글로벌 에이전시로 활동하고 있는 비슬라 매거진은 서브컬쳐를 주류로 끌어오는 힘이 있다. 이태원 출신의 사진작가들을 섭외해 ‘이태원의 낮과 밤’을 담았다. 낮에는 조용하고 비어있는 듯한 이태원이 밤이 되면 화려하고 다양한 문화가 섞이는 이중적인 모습이 이태원의 매력이라는 점을 사진으로 표현했다.
- 2023-09-03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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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을 만들고 지역 오가는 ‘관계인구’된 사람들
- 귀촌(歸村), 촌으로 돌아가거나 돌아오는 것. 보통은 도시에서의 삶을 정리하고 지방으로 이주하는 현상을 ‘귀촌했다’고 말한다. 그런데 지역에 살지 않고도 귀촌한 것처럼 그 지역에 참여하는 새로운 인구가 나타났다. ◆마을 만드는 디렉터형 관계인구 1. 루치아의 뜰 석미경 대표는 서울에서 출판사 편집자로 11년을 일하다가, 남편이 공주에 있는 대학 교수가 되면서 1995년 공주로 귀촌했다. 차에 관심이 많았던 석 대표는 차 문화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 2012년 버려진 한옥을 발견하고 뼈대를 살려 지금의 ‘루치아의 뜰’을 열었다. 공주에 살며 동네 산책을 하다 보니 골목에 관심을 갖게 됐다. 2014년에는 주민참여 프로젝트로 ‘잠자리가 놀다 간 골목’이라는 도시재생 활동을 제안해 선정됐다. 현재는 공주풀꽃문학관 운영위원, 공주문화도시 정책위원 활동도 하면서 청년들의 공주 정착을 돕고 있다. 먼저 귀촌한 사람으로서 누군가 공주로 와 무언가를 도전할 때, 묵묵히 지켜보며 그의 시도에 참여하는 것만으로도 도움이 되리라 믿고 있다. 2. 사회문화예술연구소 오늘 여러 지역에서 도시재생이나 문화기획 일을 하던 임재일 소장은 유독 공주에서 일할 기회가 많았다. 10년 가까이 공주에서 공공미술을 하던 그는 2018년 자연스레 공주로 귀촌했다. 30년 동안 하숙집으로 사용되다 버려진 3층짜리 폐가를 사들여 연구소를 옮겼다. 공주의 과거와 현재를 잇고, 공주 사람과 이웃 사람을 잇는 장소를 만들고 싶어 ‘대안카페 잇다’도 열었다. 그는 공주 근대문화거리, 하숙테마거리, 제일감리교회 기독교박물관 조성, 국고개 문화예술거리 조성사업 등 공주 원도심 도시재생 사업을 기획·실행했다. “주민 300여 명을 인터뷰하고 기록한 내용으로 ‘하숙집의 세 딸’이라는 연극도 기획하고, 문화의 날도 만들었어요. 연구소 내에 ‘공주 정보 자료관’을 만들어 도시재생 과정에서 기록하고 모은 공주의 모든 자료를 전시하고 있죠. 공주로 귀촌을 고민하는 사람이라면 공주에 대해 알기 위해 조사차 우리 연구실을 한 번은 들러요. 저는 그들에게 공주의 과거와 현재를 보여주죠.” 문화를 통해 공주의 관계인구로 지내다 귀촌한 그는 이제 다른 관계인구를 잇는 다리 역할을 하고 있다. ㆍ임재일 소장과의 인터뷰 Q 공주에 유독 귀촌 하는 사람이 많은 듯 하다. A 충청남도에서 대학이 가장 먼저 생긴 곳이 공주다. 교육대학과 사범대학이 있다 보니 선생님이나 전문 분야에서 일을 하는 사람이 많다. 교직에 있었거나 직장생활을 하던 사람들이 은퇴를 하면서 고향으로 돌아오는 경우가 꽤 있는 듯 하다. 그저 공주가 살기 좋아 오는 사람도 있고. 공주로 모여드는 사람들은 꽤 다양하다. Q 고향은 세종시(구 연기군)인데, 공주에 자리 잡은 이유가 있나? A 거리를 조성하거나 환경을 개선하는 공공미술 일을 오래 했다. 특히 지역의 역사 문화를 활용한 프로젝트가 많았다. 그렇다 보니 자원이 많은 공주에 우연히 초대를 많이 받았다. 공주대학교에서 9~10년 정도 겸임교수 생활도 했고. 지역을 살리는 프로젝트를 하면 건축, 인문학, 미술, 행정 등 모든 분야의 전문가가 모인다. 자연스럽게 문화 기획을 하게 됐는데, 이제 나이가 어느 정도 드니까 마지막으로 정착할 곳을 찾게 됐다. 연기군이 고향이긴 하지만 학창시절을 공주에서 보냈기에 친구들도 다 이곳에 있다. 제2의 고향 같은 곳이다. 지금은 문화 소프트웨어, 문화 프로그램을 기획하면서 젊은 친구들과 공주를 연결하는 일을 한다. Q 공주에 이주하려는 이라면 이곳 연구소를 한 번은 꼭 들른다는 데, 그들을 돕는 이유가 있나? A 재미있으니까.(웃음) 그동안 공주에서 했던 모든 작업물들을 이곳에 모아두었다. 공주 문화 투어를 하면 가이드가 가장 마지막으로 연구소에 들른다. 그럼 나는 작업 기록집들을 펼쳐 공주의 지난 시간을 보여준다. 이주를 하려면 집이 가장 중요한데, 빈집 조사도 했어서 어디에 가면 빈집이 많은지도 알려준다.(웃음) 하던 일이 그렇다 보니 다양한 분야의 사람을 많이 알아서 자연스럽게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게 됐다. 나도 공주가 발전되어가는 걸 기대하고 지켜본 것처럼, 이곳에 정착한 사람들도 그들의 기대만큼 성취를 하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다. Q 기록을 통해 공주와 사람들이 이어지는 듯 하다. A 과거를 상기하고 싶어하는 분들이 있다. 당시의 기억을 이야기 하고 싶은 거다. 지금은 현재만 남아있으니 과거 그 자리가 무엇이었는지 모르지 않나. 노인 한 사람이 박물관이라고 하는 것처럼, 누구나 이야기를 가지고 산다. 공주는 백제시대 수도였다 보니 그만큼 이야기가 더 많은 셈이고. 일종의 오픈 뮤지엄처럼. 3. 이미정갤러리 이미정 관장은 공주 토박이다. 귀촌을 한 건 아니지만, 그를 통해 공주와 관계 맺는 사람이 늘었다. 이 관장은 2016년 3월, 그림이 팔리기는커녕 그림 보러 오는 사람도 없을 거라고 여겨지던 공주 원도심에 갤러리를 열었다. 이 소식을 듣고 지역을 떠나 있던 작가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윤상원, 정영진 등 원로 작가들이 이미정갤러리에서 전시를 하고 그림이 팔리면서 작가로 입지를 다졌다. 정영진 작가는 U턴 했고, 윤상원 작가는 이주를 준비 중이다. 이 관장은 이들을 ‘1986년도 공주의 미래였던 사람들’이라고 표현했다. 최근에는 ‘월전 귀향’이라는 주제로 공주가 직장이거나, 공주가 고향이지만 다른 지역에 살고 있는 작가들을 모았다. “공주의 인구는 줄고 있지만, 공주로 유입되는 인구는 늘고 있어요. 화가일 수도, 감상자일 수도, 소장자일 수도 있겠죠. 열 명이 오면 여덟 명은 공주를 돌아보고 가요. 공주와의 관계가 생기는 거죠. 이전에는 공주 출신 작가들하고만 교감했다면, 이제는 공주에서 일하거나 공주에서 유학하거나 고향이 공주지만 다른 지역에 살거나 공주에 인접한 지역에 있는 작가들까지 연결하고 있어요.” 어쩔 수 없이 타지로 나가는 작가들조차 공주에 반드시 작업실을 두고 두 지역을 오가고자 노력한다. 이미정갤러리를 통해 공주에 살든 살지 않든 생활권을 공주에 두고자 하는 이들이 늘어난 셈이다. ㆍ이미정 관장과의 인터뷰 Q 갤러리를 열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A 그림 그리는 사람에게 갤러리를 여는 건 로망이다. 미술 작가로 활동하면서 30여 년 미술 학원을 운영하고, 대학 강의도 나갔다. 일을 그만 두면서, 전업 화가로 살 것인가 전업 주부로 살 것인가 고민을 했는데 둘 다 어렵더라.(웃음) 갤러리가 수익 사업은 아니지만, 작업실의 연장으로 해볼까 싶었다. 7년째 자리를 지키다 보니 작가들도 모이고, 이 주변으로 작년에 두 개, 올해 두 개 갤러리가 개관하기도 했다. Q 갤러리 운영뿐 아니라 작가들이 먹고 살 수 있도록 프로그램도 만든다고 들었다. A 한 평론가의 말을 인용하자면 "갤러리스트는 대중과 예술가의 중간 역할자다." 원로 작가들이 공주로 돌아올 수 있도록 기획전을 열거나, 그림을 판매할 수 있는 판로를 만들고 있다. 이 감영길을 '공주의 인사동'으로 만들어 보자고 행정기관에 제안했다. 작가 한 명에게 행정기관이 지원하는 금액을, 그림을 사는 사람에게 지원금 형태로 주자고 했다. 그래서 공주문화재단에서 '그림 상점로'라는 프로그램을 기획했을 때 갤러리로 참여했다. 그림 상점로는 그림 구매자에게 일정 금액을 지원해주는 프로그램이다. 지난해에는 예술가 약 7명을 단순 지원할 금액으로, 1억 4000만 원의 예술품 거래를 만들어냈다. 7~80명 화가의 작품들이 팔린 거다. 올해는 참여 작가도, 작품 수도 더 늘었고 상반기에만 지난해만큼의 거래가 일어났다. 이 과정에서 공주를 오고가는 사람들은 이 주변을 둘러보고 밥도 먹고 차도 마시게 된다. Q 젊은 작가들과 활발하게 소통한다고 하던데.. A 각자의 이유로 언젠가는 공주를 떠날 수도 있지만, 공주와의 관계성을 잃지 않도록 젊은 작가들과 자주 소통한다. '영영 아티스트'라는 20대 화가들의 모임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작가들이 공주에서 개인전을 안 한다. 대전이나 서울처럼 큰 곳으로 간다. 공주를 떠나고 싶어 그런 게 아니다. 커뮤니티를 만들고 그림을 놓치지 않도록 도움을 주다 보니, 젊은 작가들이 학업이나 생계로 어쩔 수 없이 공주를 떠나더라도 작업실만큼은 공주에 두려고 하게 되더라. 이곳 감영길에서 누군가 그림을 전시하고, 누군가는 감상하고, 누군가는 소장한다. 그렇다면 예술 생태계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Q 이미정갤러리를 중심으로 작가, 관객, 공주가 모두 연결되는 느낌이다. A 어린 학생들이 갤러리를 자주 온다. 한 학생이 “저도 대학을 졸업하고 예술을 하려면 공주로 와야겠네요”라고 했는데, 무척 기특했다. 아이한테 그림을 보여주고 싶다며 아이 손잡고 오는 엄마도 있다. 공주에 갤러리가 생겼다는 말을 듣고 찾아오는 작가들도 꽤 있다. 사람들이 건강하게 그림을 즐기고, 여러 이유로 작품 활동을 하지 못했던 작가들도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중간 역할자인 갤러리스트로서 역할을 다 하고 싶다. 앞으로는 공주에서 학교를 다닌 사람, 공주에서 태어난 사람, 공주에서 일하는 사람 등 공주와 관계 있는 작가들도 연결하려 한다. ◆지역 오가는 더블로컬형 관계인구 1. 퍼즐랩 권오상 대표는 경기관광공사에서 15년 동안 해외 마케팅 일을 하다가 아내의 고향인 공주에 매력을 느꼈다. 어느 날 마음에 드는 한옥을 발견하고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겠다며 회사를 그만두고 귀촌했다. 그는 근교인 세종시에 거주하면서 공주 원도심을 살리는 일을 한다. ‘봉황재’를 찾는 사람들에게 원도심의 맛집과 볼거리를 안내하다 보니 ‘마을스테이’를 꿈꾸게 됐고, 2019년 퍼즐랩을 창업했다. 2021년도 행정안전부 청년마을 만들기 공모사업에 이어 올해도 청년들의 지역 탐구와 정착을 지원하는 ‘자유도’를 운영하고 있다. 여기에 참여한 청년들이 다음 기수에서는 프로그램 스태프로 참여했다가 결국 공주로 귀촌하는 사례가 생기기 시작했다. 정부 사업을 하기 전에도, 사업이 끝난 후에도 그는 공주를 느슨하게 연결하는 일을 이어갈 계획이다. 2. 다이얼팩토리 이병성 대표는 서울에서 권오상 대표와 독서 모임을 하던 사이로, ‘봉황재’에 놀러 왔다가 공주에 매료됐다. 그는 12년 동안 플랜트 설계 엔지니어로 일하면서 사이드 프로젝트로 ‘교육’을 주제로 독서 모임을 했다. 느슨하게 연결된 공동체를 만드는 일에 관심이 많아 ‘공동체 디자인’을 하고 싶었다. 공주 원도심은 그 꿈을 구체화할 수 있는 곳이었다. 서울에 살면서 공주에 코러닝스페이스 ‘와플학당’을 만들고, 청년마을 ‘자유도’를 통해 여러 프로그램과 워크숍을 기획했다. 커뮤니티가 마음에 든 청년들이 공주를 찾아 머무르기 시작했다. 이 대표는 올해 와플학당을 운영하는 기업 ‘에듀커넥트’를 다이얼팩토리로 리브랜딩하고, 커뮤니티 디자인과 대화 워크숍을 더욱 구체화했다.
- 2022-08-03 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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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리타분 전통주? 재미있게 즐기는 법!
- 전통주란 전통적인 양조법을 계승 및 보존해 빚는 술을 말한다. 흔히 전통주 하면 막걸리를 떠올리고, 그 외의 전통주는 쉽게 접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알고 보면 전통주의 종류는 다양하고 즐기는 방법도 천차만별이다. 전통주 시음회, 전통주 직접 만들기 등 전통주를 재미있게 즐기는 법을 알아봤다. 전통주는 ①주류 부문의 무형문화재 보유자가 제조한 술, ②대한민국 식품명인이 제조한 술, ③농어업 경영체 또는 생산자단체가 지역 농산물을 주원료로 제조한 술(지역 특산주)을 말한다. 종류로는 막걸리(탁주), 약주, 소주, 과실주, 일반 증류주, 리큐어 등이 있다. 3월 농림축산식품부가 발표한 ‘2021년 주류 시장 트렌드 보고서’에 따르면, 응답자의 60.3%가 최근 음용한 전통주는 막걸리였다. 모든 연령층이 막걸리를 제일 많이 마셨는데, 그중에서도 50대 남성의 68.8%, 50대 여성의 67.6%가 막걸리를 마셨다고 답했다. 50대가 마시는 전통주는 막걸리에 편중된 경향이 있다. 더불어 전통주 하면 떠오르는 것에 대해서 25~34세 여성은 ‘요즘의 주류 트렌드’, ‘정성 들여 만드는 이미지’ 등의 의견을 내놓았다. 35~44세 남성은 예전에는 ‘저렴한 술 이미지’였다면 요새는 ‘고급 술’이라고 답했다. 즉 전통주는 트렌디하면서도 귀한 술로 평가된다고 할 수 있다. STEP 1. 전통주와 쉽게 친해지기 맛 보며 체험하는 방법 전통주 입문 첫 단계로 전통주갤러리부터 찾아가는 것을 추천한다. 한국 전통주의 맛과 멋, 문화적 가치를 널리 알리고자 농림축산식품부와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가 설립한 전통주 홍보 공간이다. 지난 4월 강남에서 북촌으로 이전했다. 전통주갤러리는 방문객이 연간 10만여 명에 이른다. 이곳에서는 다섯 주종(탁주, 약주, 증류주, 과실주, 기타 주류)의 500여 가지 전통주를 상설 전시한다. 우리술품평회 수상작, 찾아가는 양조장 제품, 대한민국 식품명인 술 제품, 품질인증 제품, 새롭게 소개되는 전통주 등이 포함된다. 더불어 월별 추천주, 계절별 우리술 등 다양한 특별기획전과 특별시음회를 운영한다. 전통주 시음회 중장년에게 ‘인기’ 특히 전통주갤러리에서는 매일 상설시음회를 개최한다. 전문가가 선정한 이달의 술 5종을 무료로 시음할 수 있다. 매일 7차례 상설시음회가 진행되는데(2회는 영어로 운영), 한 회당 최대 6명이 함께한다. 소요 시간은 20~30분이다. 네이버 예약을 통해 신청 가능하다. 전통주 소믈리에가 시음회를 진행하며, 전통주 5종을 친절하게 소개한다. 각 전통주의 맛과 향, 특징은 물론 탄생 배경이나 얽힌 이야기도 들려준다. 전통주에 대한 배경 지식이 없어도 설명을 재밌게 들을 수 있다. 또 참석자 모두는 태블릿PC를 지원받아 각 술의 당도, 산미, 향, 색 농도 등을 평가하는 시음 노트를 작성한다. 시음하면서 ‘당도가 높다’, ‘산미가 강하다’ 등을 음미해야 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집중도가 높아진다. 남선희 전통주갤러리 관장은 “코로나19 여파로 잠시 중단됐다가 4월부터 다시 시음회를 열고 있다”고 밝혔다. 더불어 “참여하시는 분들의 연령층은 다양하다. 사실 온라인 예약이 어르신들께는 어려운 일 같지만 생각보다 어르신의 참여율도 높다. 비율로 따지면 50대 이상 참여율은 15%에 이른다”고 했다. 그렇다면 중장년층이 선호하는 전통주는 무엇일까. 남 관장은 “아무래도 막걸리에 익숙한 세대이기 때문에 탁주를 즐기시는 것 같다. 요즘 나오는 탁주는 도수가 6%에서 12%로 맛도 도수도 다양하다. 그래도 역시 어르신은 전통적인 막걸리의 맛을 좋아하는 경향이 있다. 진짜 술맛을 선호하는 분들은 고도주의 증류주를 찾기도 한다”고 말했다. 남선희 관장은 “예전에 비해 전통주의 종류와 맛, 그리고 개성이 다양해졌다”면서 우리술에 변화가 많이 일어나고 있다고 강조했다. 현재 2000종이 넘는 우리술이 유통된다고. 그러면서 “우리술은 알고 마시면 더욱 맛있다”며 양조장 투어나 와이너리 방문 등의 여행을 추천했다. 전통주는 현재 국내외로 관심을 끌고 있는데, 이러한 역사는 20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고 한다. 2006년 MBC 드라마 ‘환상의 커플’ 속 여주인공 한예슬이 막걸리를 많이 마신 것이 계기가 돼 해외에서 관심도가 높아졌다고. 남 관장은 “저는 우리술의 장점이자 단점이 로컬화라고 생각한다. 미국은 땅도 넓고 쌀도 많이 생산되기 때문에 막걸리를 만들 수 있는 환경이 충분히 조성됐다. 10년 후에는 미국 현지에서 만든 막걸리를 먹는 날이 오지 않을까”라면서 전통주의 세계화에 대한 포부를 밝혔다. STEP 2. 전통주 직접 만들어 먹자! 전통주를 어떻게 만든단 말인가. 엄두가 안 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 전통주는 쌀, 누룩, 물만 있으면 만들 수 있는 술이다. 전통주의 출발점 역시 ‘가양주’(家釀酒, 집에서 빚어 만드는 술)다. 일가일주, 즉 집집마다 빚던 독특한 술 문화의 다양성이 일제강점기 수탈과 주세법 등의 영향을 받아 사라졌으나, 이를 계승·발전시키려는 국가적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현재는 전통주갤러리뿐만 아니라 전통주 교육기관이 늘고 있다. 전통주 교육기관 전통주 교육과 관련된 사업은 2012년부터 시작됐다. 농림축산식품부는 현재 ‘우리술 전문인력 양성기관’ 6곳과 ‘우리술 교육훈련기관’ 16곳을 지정해 운영하고 있다. 교육생에게는 국비 지원을 해준다. 우리술 전문인력 양성기관은 ‘전통주 등의 산업진흥에 관한 법률’ 제12조에 따라 우리술 산업을 선도해갈 전문인력을 체계적으로 양성(6개월 이상)하기 위한 곳이다. 양조 관련 학과나 과정이 설치된 대학 또는 전문 연구소가 지정 대상이다. 우리술 교육훈련기관은 전통주 등의 산업진흥에 관한 법률 제11조에 따라 우리술 산업의 저변 확대와 건전한 술 문화 조성을 위한 교육훈련(6개월 미만)을 실시하는 곳으로, 적절한 시설 및 인력을 갖춘 기관 또는 단체가 대상이다. ‘한국가양주연구소’는 두 조건에 모두 속한다. 한국가양주연구소는 대표적인 우리술 교육기관으로 꼽히며, 수도권 지하철 2호선 방배역에서 5분 거리다. 전통주 만드는 법을 배우는 ‘우리술 빚기’ 교육을 하고, 전문가로 거듭나는 ‘전통주 소믈리에’, ‘한국술 최고지도자’ 과정 등이 있다. 삼해소주 만들어볼까? 서울의 전통주 아카데미로 삼해소주 공방도 있다. 농림축산식품부가 지정한 교육기관은 아니지만 특별한 의미가 있는 곳이다. 명인의 전통주를 만들어볼 수 있다. 삼해소주의 故 김택상 명인은 2017년 전통식품명인 제69호로 지정됐다. 고려시대 이규보가 쓴 ‘동국이상국집’에 등장하는 ‘삼해(三亥)소주’ 제조 방식을 계승해온 것을 인정받았다. 삼해소주는 조선시대 사대부 사이에서 널리 음용되던 서울의 대표적인 소주다. 음력 정월 첫 돼지일(亥日) 해시(亥時)에 첫 술을 담근 다음, 36일 후 돼지일에 2차 덧술을 한다. 또 36일이 지난 후 3차 덧술을 한다. 이처럼 세 번 덧술을 쳐 술을 빚기 때문에 삼해주라는 이름이 생겼다. 술을 마시기까지 대략 100일이 걸려 백일주라고도 한다. 故 김택상 명인은 삼해소주 공방을 운영하면서 전통주를 알리고 제자 양성에 힘썼다. 고인이 떠난 후 김현종 대표가 삼해소주의 명맥을 잇고 있다. 김현종 대표 역시 아카데미 수업을 들으면서 삼해소주와 인연을 맺었다. 삼해소주 공방은 지난해 북촌에서 마포로 이전했다. 삼해소주 아카데미는 술을 만들기까지 약 5개월의 과정이 걸린다. 첫 번째 날은 밑술을 한다. 그리고 그다음 주에 와서 밑술에다 1차 덧술을 한다. 덧술은 멥쌀로 고두밥을 지어서 밑술과 같이 섞는 과정이다. 덧술을 해야 발효가 되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36일이 지나면 술이 익는데 바로 마시지 않고 2차 덧술을 한다. 2차 때는 누룩과 물, 그리고 1차 때와 다르게 찹쌀이 들어간다. 3차 덧술은 2차 때와 똑같은 방식으로 한다”면서 “36일이 또 지나 숙성한다. 발효가 모두 끝난 이후에도 맑은 약주만 건져내 증류한다”고 설명했다. 이와 같은 과정을 통해 삼해소주가 만들어지기까지 약 반년의 시간이 걸리는 것. 수강생들은 한 달에 한 번 정도 지정된 날에 참석하면 된다. 김현종 대표는 반년의 시간 동안 계속해서 술이 잘 익는지 확인하고 보살펴준다. 김 대표는 “삼해소주는 굉장히 복합적인 맛이 난다”면서 “수강생들이 자신이 담근 술이 잘 익었다면서 만족할 때 뿌듯함을 느낀다”고 밝혔다. 그동안 수업을 거쳐간 사람만 500명 정도 된다고 한다. 김현종 대표는 “전통주 관련 종사자가 아니라 현업이 있고 취미 생활로 수업을 듣는 사람들이 많다”고 밝혔다. 요즘은 중장년층보다 20~30대 젊은이들이 수업을 많이 듣는 추세라고. 전통주 관련 사업을 계획하는 이들도 물론 있다. 김 대표는 “사실 저는 아카데미에 와서 노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들 관심 분야가 같기 때문에 금세 친해진다. 수강생끼리 모여서 술도 마시곤 한다”고 말했다.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에너지를 얻어 갈 수 있다는 설명이다. 직접 삼해소주 아카데미 수업을 지켜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수강생들, 그리고 공방 사람들한테는 공통점이 있었다. 그들은 모두 전통주를 사랑하는 마음을 가졌다. 반죽을 빚고 술을 담그는 과정에 힘과 노력이 많이 들어가고, 오랜 기다림의 시간을 거쳐야 한다. 술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기에 술을 즐기면서 만든다는 생각이다. 전통주를 사랑하는 마음을 가졌다면 나이가 많다고 겁내지 말고 전통주 교육기관의 문을 두드려보자. 막걸리 키트도 있지 아직 코로나19의 여파도 있고, 많은 사람과 어울리기보다는 혼자서 여유를 즐기면서 전통주를 만들어보고 싶은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들을 위해서는 집에서 간편하게 전통주를 만들어 먹을 수 있는 막걸리 키트를 추천한다. 대표적으로 배상면주가의 느린마을 막걸리 키트가 있다. 키트에는 쌀가루, 누룩, 효모가 들어 있다. 1일 차에 술을 담그고, 2~4일 차에 술 익히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탄산이 올라오는 것을 확인하고 하루에 한두 번씩 잘 섞어주면 된다. 5일 차에 술 거르는 과정까지 거치면 완성된다. 더불어 기호에 따라 재료를 추가해 자신만의 특별한 막걸리를 만들 수 있다. 막걸리 담다의 키트도 유명하다. 기본형부터 딸기, 바나나, 멜론까지 맛이 다양해서 취향에 따라 선택 가능하다. 해오름의 통곡물 현미 하우스 막걸리 키트는 물만 부어서 하루만 숙성하면 완성된다. 우리술방 막걸리 DIY도 물만 섞어주면 막걸리가 만들어진다. 막걸리 병이 고급스러워서 선물용으로 제격이다.
- 2022-06-08 0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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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랜 부엌세간들의 옛이야기, 덕포진 생활사 박물관
- 그저 푹 빠져서 즐기다 보니 이렇게 되었다고 말한다. 나름의 격한 취미생활일 경우 부부라면 대부분 다른 한쪽에서는 뜯어말리는 걸 본다. 하지만 부부가 함께 한다면 문제가 없을 듯하다. 30년 넘도록 부부가 수집한 2만여 점의 예스러운 부엌세간이 전시된 덕포진 생활사 박물관에서 만난 김홍선 관장은 고개를 내젓는다. "애초에 우리는 아내가 더 앞장섰지요. 이런 취미로 말년의 재미를 책임진다고 내게 큰소리쳤는데 이제 와서 보니 내가 사기를 당한 것 같다니까요. 하하... 이것 봐, 지금 고생은 나만 하잖아요." 고생이라고 말했지만 젊었던 시절의 취미로 이제는 느긋하게 누리는 부엌 전시관 앞에서 김포 덕포진의 가을 숲을 바라보는 그의 오늘을 들여다보았다. "안 다녀본 데가 없어요. 장안평, 인사동, 황학동은 물론이고 직장 출장길에서도 찾아갔었고, 소문 따라 지방으로 쫓아가고 미친 듯이 모았거든. 점점 늘어나면서 창고를 임대해서 보관해 왔지요. 그러다가 자꾸 늘어나니까 감당이 안 되어서 말이지. 처음엔 지금의 이 건물을 지을까 말까 망설였어요. 짓지 말라고 말리는 사람도 있었지요. 그런데 창고에 보관하느라 지출되는 창고비용이 은행 이자와 별다르지 않아서 지었습니다. 사실 이런 박물관을 가지고 있다는 건 머리 아픈 일입니다. 이러한 것들을 모으는 사람들 중엔 부자도 있지만 그저 좋아서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살면서 돈이 생기면 사러 다닙니다. 나는 그래서 그들에게 하지 말라고 해요. 하지만 못 말려요. 마약은 격리라도 시킬 테지만 이런 취미의 중독성은 마약보다 더합니다.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어제 그거 샀어야 하는데 하면서 꿈에도 나타나는 통에 미친다니까요." 담백하고 따뜻한 언어 외할머니 그렇게 모아지고 쌓인 2만여 점의 생활용품들이 박물관 1층을 빼곡히 채웠다. 우리네 외할머니의 부엌에 있었음직한 무쇠솥부터 채반, 술을 내리던 소주고리, 맷돌, 도무지 용도나 이름조차 알 수도 없는 생활도구들이 방대하다. "이건 도둑시루라고 하지, 시어머니가 무서우니까 몰래 먹으려고 요렇게 만들어진 떡시루인데... " 설명만으로도 재미있다. 귀중한 식수원이었던 우물통, 김치 양념 가는 돌확이나 자배기, 호미로 막을 걸 가래로 막는다는 호미와 가래, 갖가지 모양의 무쇠화로, 디딜방아, 맷돌과 어처구니, 주꾸미랑 문어 잡는 도구, 양푼, 참빗, 온 가족이 둘러앉아 밥을 먹던 두레반의 정다움... 도구들과 연결된 이야기가 줄줄이 나온다. 온갖 부엌 살림살이들이 지방 특색이나 용도별 삶의 형태에 따른 이야기들로 흥미진진하다. "연가라고 아는가" 묻기에 '비바람이 치는 바다 잔잔해져 오면~' 이런 노래를 흥얼댔더니 '연기의 집'이라며 투구처럼 생긴 옹기를 가리킨다. 이름 한 번 이쁘다. 그 틈에서 꽤 큰 장독 옆구리를 한 땀 한 땀 꿰맨 모습이 지금으로선 새로운 디자인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일회성이 판치는 세상에 꿰매서 썼던 장독의 세월을 그려본다. 천년 이상 땅 속에 묻혀있었다는 옹관, 물때가 끼지 않는 숨 쉬는 옛 옹기의 현상, 은행잎으로 섬세한 무늬를 놓은 토기 장인들의 섬세함, 옹기장이 이야기를 소설처럼 들었다. 지금은 사라져 흔적조차 만나기 어려운 아주 오래 전의 생활용품 전시장 속에 덕지덕지 외할머니의 일생이 담겨있었다. 정겹다. 조상들의 삶 속에 들어가는 따뜻한 시간이다.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무수한 이야기들이 들려오는 부엌세간들 속에서 속정 깊은 외할머니를 그려보고 내 어머니를 떠올린다. 부엌 세간들이 품어낸 세월의 가치 "이곳에 온지는 5~6년 됐나? 서울 사직동 한옥에서 살았는데 아내는 지금도 서울과 덕포진을 오가고 있어요. 원래 마당의 정원 관리는 아내가 하기 때문에 바삐 오가죠. 올해는 덩굴장미를 많이 심어서 텃밭을 많이 점령했어요. 이쪽에 덕포진 진지가 있고 강도 보이고 풍광이 좋아요. 평화누리길도 있어서 사람들이 많이 오가긴 합니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은 카페로 용도 전환을 하라고, 요리교실로 활성화하라고 갖가지 조언들을 하는데 그 말에 딱히 반박을 하지도 못하면서 이렇게 이곳을 지키고 있습니다." 이야기하는 동안 찾아오는 단 한 명의 사람도 볼 수가 없다. 코로나의 영향도 있겠지만 박물관을 지키는 일이 녹록지 않음이 짐작된다. 젊은 시절의 취미가 노후에 소일할 일이 되는 것만큼 이상적인 사례가 있을까만 교류와 관계성의 현실이 배제되면 재미가 덜할 수 있다. 옛사람들의 생활용품의 역사적 가치와 소중함을 알아주어야 할 텐데 무심함에 때론 서운할 만도 하다. 그럼에도 자부심만은 만만찮다. "차라리 사람들 말대로 이 건물에 카페를 하거나 임대를 주면 더 여유로울 텐데 이건 개인이 할 짓이 아니라니까. 지역이나 국가에서 해야지. 박물관이라고 어디서 지원이 있는 줄 아는데 지가 좋아서 하는 걸 어디서 도와줄 리가 있나. 팔아야 뭐가 나올까 지금은 생기는 것은 별로 없어요. 아무리 좋은 문화 콘텐츠라도 중요한 자료라고 하는 것들은 대부분 부유층의 것들을 보여주고 있잖아요. 민속박물관에 가면 전시된 물건은 다 양반 위주지 여기처럼 서민들 용품은 별로 없거든요. 공유 부엌의 사용도 가능 전시관 2층은 음식 체험실이다. 잘 갖추어진 조리대와 넓은 홀은 쿠킹클래스의 현장이란 게 단박에 연상된다. 이곳 체험실은 공유 부엌 개념으로 이용되고 있어서 그동안 강사를 초빙해서 전통 장류나 김치와 같은 발효음식, 김장철엔 김장 담그기, 제철음식으로 감자전이나 호박요리, 샌드위치나 떡볶이, 중국을 비롯 동남아 요리 등 시대와 나라 구별 없이 다양한 종류의 수업을 진행해 왔었다고 한다. 코로나 이후 주춤했으나 경기도 김포시 보조사업으로 희망의 밥상 펼치기 프로그램을 계획하기도 했다. 김포시에 거주하는 소외계층을 대상으로 화상을 통한 쿠킹클래스 프로그램이었다. 어려운 시절에 밥상이 주는 위로와 화합으로 소통의 시간이었다고. 물론 평소에도 함께 한 끼 식사를 하며 쉼을 얻고 마음을 나누는 공간으로 열려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전엔 박물관 마당에서 로컬푸드 장마당이 열리곤 했다. 지역주민들이 가꾼 신선한 식재료들을 판매하고 무료 요리교실이 열렸었다. 가족요리대회, 어린이 요리교실 등이 때때로 진행되기도 했는데 이젠 한적하다. 알고 보면 따뜻한 놀이마당이란 걸 아는 사람만 안다. 직접 내린 드립 커피 한 잔 건네며 성큼 다가온 가을의 정취와 이어질 겨울의 멋을 슬그머니 자랑한다. 박물관 주변의 자연이 계절마다 색다른 매력을 보여주어 늘 기대가 된다는 말이다. 물론 이런 멋도 공유한다. 누구라도 원한다면 이런 풍경을 내다보면서 각자의 취향대로 시간을 보내는 장소로도 제공된다는 것. “방역 수칙 강화로 모임들이 편치 않으니까 서울에 사는 우리 친구가 주말이면 놀러 와요. 다른데 가면 오래 앉아있을 수도 없으니 말입니다. 여긴 조리실도 있고 마당에 가마솥도 걸려 있고 야외 천막 텐트도 있으니 여기서 마음껏 쉬며 먹고 숲에도 들고 시간 보내기 좋으니까 그런가 봅니다. ” “가끔씩 때가 되면 오는 젊은 친구들도 있어요. 여행 관련 모임인데 사회적 거리두기를 기본으로 몇 명씩 모여서 먹을 것 사 가지고 와서 요리해 먹고 함께 모여 토론도 하고 와인도 마시며 편히 놀다가 갑니다. 3층엔 카페 공간도 있으니까." 외할머니 부엌의 느릿한 정서에 잠기다 하루쯤 내 마음대로 자유롭게 지내고 싶은 사람들에겐 이런 여유로운 공간이 필요하다는 걸 어찌 알았는지. 이곳이 공유 부엌의 개념으로 만들어져서 소액의 이용료만 지불하면 각자 먹을 재료만 사 와서 요리도 하며 느릿한 템포로 마음껏 시간을 보낼 수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옛 마을의 정서를 느끼게 하는 외할머니의 부엌, 방학이면 놀러 갔던 외가댁의 편안한 정취를 맛보고 싶을 때 떠올릴 만하다. 미리 예약한 덕분에 로컬푸드로 체험 프로그램을 직접 경험해 보았다. 부엌 조리대엔 대부분 텃밭에서 조달하는 식재료들이다. 단호박은 박물관 옆 채마밭에서 자란 수확물이다. 앉은뱅이 우리밀로 만든 수제비와 단호박전은 다시 한번 찾아가 맛보고 싶게 한다. 외할머니 부엌의 푸근함 속에서 따뜻한 위로의 소리를 그는 날마다 듣는다. 인적이 드문 박물관 들꽃 정원에 나와 자연의 변화에 흠뻑 빠지고 가끔 찾아오는 친구들에게 도시에서 맛보지 못할 평온한 휴식을 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더 바랄 게 있을지. 뚝 떨어진 김포의 덕포진 숲길 옆 외할머니 부엌의 김홍선 관장은 자발적 유배와도 같은 잔잔한 사색의 시간에 묻혀 산다.
- 2021-10-22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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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사(秋史), 가을 이야기가 담긴 와이너리
- 드문드문 작은 마을을 몇 번 지나고 앞뒤가 온통 논밭인 가을 들판을 지난다. 간간이 길가엔 노송이 세월 속에 서 있고, 그 산하에서 나고 자란 추사 김정희 생가, 윤봉길 의사 유적지, 수덕사 가는 길 표지판이 군데군데 보이기도 한다. 한적하기만 한 너른 들길을 휘돌다 보면 간간이 사과밭이 나타난다. 지금 예산사과농장의 와이너리에서는 사과와인이 숙성되고 있다. 예산사과와인으로 알려진 은성농장으로 들어가는 길은 입구에서부터 기다란 포도밭 길을 달리는 유럽 다큐 영화 같은 느낌을 잠깐 맛보게 한다. 포도와인과는 확연히 다른 맛의 은은하고 상큼한 사과와인을 만들어내는 사과 와이너리. 푸릇푸릇한 연둣빛 사과와 이미 붉은빛으로 감싼 큼지막한 사과가 과수원에 줄지어 선 나무에서 과육의 풍부함을 내뿜는다. 사과와 블루베리로 와인과 소주를 만드는 양조장, 사과농원의 커다란 지하에는 와이너리가 자리 잡았고, 건물 안에는 와이너리 투어를 위한 준비가 잘 갖추어져 있다. 1층에는 카페 레스토랑과 교육 세미나실, 체험장과 전시실, 위층에는 단체 손님들이 이용 가능한 게스트하우스를 갖춘 이른바 유럽 스타일 와이너리다. 그 앞으로 넓게 펼쳐진 사과 과수원은 약 3ha라고 한다. 기계가 드나들며 사과농사를 돕고, 햇빛을 많이 받아 일조량을 충족해야 해서 밭고랑이 제법 넓은데 이 또한 유럽식이라고 한다. “브랜디의 경우 원료가 과일이고 포도인데, 이곳은 사과니까 이건 사과로 만든 증류주입니다. 프랑스 노르망디 지방에서는 사과발효주를 증류해서 칼바도스를 만들어냈죠. 엄밀히 말하면 칼바도스를 만드는 곳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아주 오래전 읽은 레마르크의 소설 ‘개선문’에 언급되어 회자되었던 ‘칼바도스’(Calvados)를 여기서 듣는다. 소설 속 외과의사 라빅과 무명 여배우 조앙 마두가 서로를 마주 보면서도 고독하게 마시던 술 칼바도스, 예산의 와이너리에 와서 책을 읽었던 고등학교 시절을 단번에 떠올린다. 와인 갤러리 앞에서 소환되는 그 시절 풍경과 함께했던 사람들, 그리고 따사롭던 그 시간 속으로 데려다주다니, 오늘 하루가 그래서 또 행복하다. 문이 열리자마자 술 내음이 진하게 풍겨온다. 발효실, 증류실, 숙성 창고… 와이너리 입구에서부터 여러 군데의 작업 공간을 거치면서 사과와인의 개발 과정을 차근차근 설명해준 김유근 매니저가 덧붙인다. “작년에는 백종원 씨와 협업해서 추사백이라는 소주를 만들었습니다. 제품의 투명함과 백종원 씨의 백, 그리고 ‘가을 추(秋), 이야기 사(史)’. 착즙한 사과를 가당 후 30일 동안 발효시켜 감압 방식 증류기로 저온 증류한 것입니다. 사과 향이 상큼하게 살아 있고 활용도도 높아 좋아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예산은 명필 서화가 추사 김정희가 나고 자란 곳이며, 가을 사과의 함축적인 의미도 포함하여 ‘추사’라는 와인 이름이 세상에 나온 거죠.” 낯선 이름의 외국 브랜드가 난무하는 틈에서 예산사과와인의 자부심이 크다. 특히 코로나19 이전 방문자 중엔 외국인의 비율이 높았다고 한다. 주말이면 주한 미군 가족이나 외국인 여행자들이 이곳을 찾은 것은 한국에서 한국만의 와인을 맛보고 싶은 단순하고도 당연한 이유에서였다. 진정한 소믈리에라면 이미 알려진 맛의 유명 브랜드보다는 한국에서만 맛볼 수 있는 와인 맛의 독창성을 찾는 것이 지당하다. 이 땅에서 깔끔하게 증류 발효해낸 국내산 와인 맛을 우리는 잘 아는지. 숙성실에서 가득 익어가는 오크통 양면에는 주종, 용량, 날짜 외에도 각각의 특징을 적은 표시가 붙어 있다. 그중에는 개인적인 이름으로 숙성되고 있는 오크통도 여럿 눈에 들어온다. 요즘 요식업계의 대표주자 백종원 씨의 ‘맛있는 술이 익어갑니다. 완벽한 사과술을 기대하면서’라고 쓰인 통이 있고, 만화가 허영만 씨의 귀여운 그림과 함께 ‘3년 후 이 술통은 내 꺼’라고 쓰인 오크통도 보인다. 1층 와인 바에서 분주히 일하던 정제민(54) 대표를 만났다. “와이너리를 시작한 지는 10년 되었습니다. 캐나다엔 대학교에 양조학과가 있어요. 거기서 12년 살면서 와인 공부도 하고 돌아와 10년 정도 술 제조업을 해보니 인식의 변화가 필요한 걸 느껴요. 해외 살 때 와인 만드는 곳에 돌아다녀 보면 와이너리는 술 공장이 아니고 관광산업입니다.” 이야기하는 중에도 업무상 전화나 방문 문의 전화를 받느라 바쁘다. 그러면서 요즘 변화해가는 추세를 이야기해준다. “우리나라도 원료와 지역 중심의 술 생산으로 바뀌어가고 있어요. 지역사회와 연계해 스토리텔링이 있는 술 소비를 하자, 그런 추세잖아요. 그래서 뭘 먹어도 이야깃거리가 있는 것으로 먹으려 하죠. 왜냐하면 자기가 먹고 마신 것들을 SNS에 올려야 하니까요. 그런 변화가 생긴 거죠. 지금 전통주 취급하는 곳에서는 사과로 만든 증류주가 젊은 사람들에게 인기입니다. 싼 소주에 길들여졌다가 이처럼 깔끔하고 상큼한 맛, 젊은 친구들이 가는 주점에서 많이 찾고 있죠.” 조금씩 따라주는 와인을 맛본다는 핑계로 나도 모르게 다 마셔버렸다. 예산사과와인의 시그니처라 할 수 있는 추사애플와인, 그리고 추사백. 와인 맛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아이스와인의 서늘한 짜릿함에, 그리고 토닉워터를 넣은 부드럽고 시원한 애플토닉 한 모금으로 나른한 오후에 기분이 산뜻해진다. 오래전 캐나다 토론토에서 나이아가라 폭포 쪽으로 달리던 중 유명한 와이너리에 들른 적이 있다. 그때 처음 아이스와인이란 걸 맛보았다. 와인에 길들여지지 않은 사람은 처음부터 와인이 입안에 착 감기지는 않는다. 그런데 아이스와인은 첫 모금부터 맛과 향, 입안의 찬 느낌, 그리고 적당한 취기가 기분 좋았다. 알코올 12%에 예산사과 83%의 멋스럽게 길쭉한 사과와인 한 병 사온 것이 우리 집 냉장고 안에 있다는 것 또한 괜히 기분 좋다. 아이스와인은 차가운 와인이란 말이 아니라 겨울 무렵 겨울바람 맞은 언 포도를 따서 해동 전에 만든 와인으로, 풍미와 당도가 높다. 그러기에 우리나라는 아이스와인이 아닌 아이스와인 스타일이라고 한다. 아이스와인과 아이스와인 스타일로 나눌 수 있는데, 한국은 기후적으로 겨울에 언 포도를 딸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 아이스와인 제조 조건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원료 처리 방법은 다르지만 제조 공정은 똑같은 것이 아이스와인 스타일이다. “아이스와인은 국내에도 이미 있었죠. 한국에서 나는 과일로 만드는 술 시장이 크진 않습니다. 게다가 수입하는 와인은 늘어나는데 일반 농가는 영세한 상황이죠. 영동, 영천, 문경 등 전국의 과일로 술을 만드는데 원료의 한계가 있어요. 우리나라에선 복분자주가 가장 많고, 산머루, 포도 순이지만 외국에선 포도가 압도적이죠.” 한국와인생산협회 회장이기도 한 정제민 대표는 국내 와인 시장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그는 대한민국 술 품평회에서 대상을 받은 사과와인 ‘추사’를 만들어낸 장본인이다. 세계적 품질 평가 기관인 ‘몽드 셀렉션’에서는 동메달을 따내기도 했다. 사과를 발효한 한국 와인으로서 자긍심이 크다. “와인은 문화상품입니다. 참이슬이냐 처음처럼이냐, 어느 대기업 맥주가 좋으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요즘은 전통주 바람도 불고 있고 마시는 사람들이 술의 스토리에 관심이 많죠. 와이너리 투어도 그래서 필요해요. 시원하게 다 보여주고, 직접 체험도 하며 그렇게 인연을 만들어가는 것. 또한 이런 건 히스토리가 쌓이고 여러 대의 경험이 축적되면서 대를 이어가는 가업이어야 합니다. 우리 아들도 캐나다에서 와인 공부를 하고 있어요.” 요즘 각 지역별로 로컬 푸드를 알리기 위한 노력이 두드러진다. 예산사과와인은 로컬 푸드이면서 이 땅에서 만들어낸 와인이기도 하다. 풍부한 일조량과 천혜의 기온 덕에 사과 맛이 아주 좋은 청정 예산의 풍미 그윽한 추사애플와인. 대를 이어 축적될 경험을 바탕으로 더욱 익어갈 와인 맛이 기대된다. 예산사과와인이라는 지역성을 강조한 이름만 들어도 저절로 떠올려지는 술이 대대로 뿌리내릴 날도 머지않은 듯하다.
- 2021-10-06 0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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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버려진 시골집의 재탄생 ‘규암리자온길’
- 백제고도 부여에는 백제의 찬란한 문화 유적들이 많이 남아 있다. 한편으로는 백제 유적지 말고는 이렇다 할 관광 콘텐츠가 없어 아쉬웠다. 2년 전 규암면 규암리 자온로에 ‘자온길 프로젝트’라는 마을재생사업이 진행 중이라는 반가운 소식을 들었다. 그 첫 단추가 독립서점 ‘책방세간’이었다. 호기심을 안고 찾아간 시골 책방은 꽤 신선했다. 지금 그 마을이 어떻게 변했을지 궁금해 다시 가봤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마을 재생 프로젝트 부여 시외버스터미널에서 택시를 타고 백마강을 건너 규암리로 향했다. 시내에서 차로 고작 5분 정도 떨어진 마을인데 딴 세상인 듯 고요하다. 규암 나루터 인근 골목에서 ‘책방세간’을 다시 만났다. 2년 전 모습 그대로 있어주어 고마웠다. 시골에서 책방을 유지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니. 책방 주인도 그런 사정을 잘 알 텐데, 이곳에 책방을 연 이유가 궁금했다. 자온길 프로젝트를 총괄 기획하고 진행하는 박경아 씨는 “부여에 제대로 된 서점이 없어요. 규암리에 가장 필요한 문화공간이 책방이라고 생각했어요. 책방세간이 전통문화를 알리고, 책과 사람, 사람과 사람을 잇는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어요”라고 답했다. 그가 시골집에 책방을 차린 사연은 규암리의 전성기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규암리는 해방 전후만 해도 200여 가구가 살았던 큰 마을이었다고 한다. 1930년대 규암장터가 열리면서 규암나루터에 배가 무시로 드나들었다. 마을 거리에는 선술집과 여관이 즐비했다. 극장과 백화점도 있었다. 규암리의 전성기는 1968년 백제교가 놓이면서 막을 내렸다. 육상 교통이 발달하면서 나루터가 제구실을 못하게 됐다. 상권은 부여읍으로 옮겨갔고, 사람들은 마을을 떠났다. 붐비던 장터 국밥집, 부여에 처음 세워진 극장, 양조장 등이 폐허가 되었다. 집주인들이 세상을 떠나면서 빈집도 늘어갔다. 약 20여 년 전 부여전통문화대학교 재학생이었던 박 대표가 규암리의 방치된 근대건축물들을 눈여겨본 것이 자온길 프로젝트의 바탕이 됐다. 자온길 프로젝트는 규암면의 버려진 공간들을 개조해 전통문화 예술마을로 꾸미는 마을재생사업이다. 빈집과 상가들이 차근차근 전통공예 작가의 작업실과 쇼룸, 로컬푸드 레스토랑, 카페, 책방, 한옥 스테이, 북 스테이 등의 문화공간으로 바뀌고 있다. 이 프로젝트의 구심점이 책방세간이다. 임 씨네 담배 가게가 책방이 된 사연 책방세간은 원래 ‘임 씨네 담배 가게’로 불렸다. 담배와 잡화를 팔던 가게와 살림집이 붙어 있는 건물이었다. 책방으로 개조할 때 외벽과 내부 구조물을 최대한 헐지 않았다. 천장 위에 숨어 있던 서까래와 내벽 속 나무 문을 찾아내 복원했다. 임 씨가 잡화를 팔던 공간은 책방세간의 메인 공간이 되었다. 담배를 팔던 옆 공간에는 책장과 테이블을 두었다. 책장은 사실 담배 진열장이다. 벽면에 은박 벽지를 발라 담배 속지를 표현한 아이디어가 기발하다. 카운터는 지붕을 덮었던 함석판과 담배 가게의 금고로 꾸몄다. 임 씨 가족의 거주 공간은 카페로 개조했다. 벽장이 있는 작은 방에는 동화책과 전통 놀이 도구를 넣어 키즈존을 만들었다. 이 방은 신발을 벗고 들어가야 하는데 시골집에서 볼 수 있는 구조다. 구석진 곳을 좋아하는 아이들이 벽장에 숨어 책을 읽는다. 책방세간만의 특징이라면 전통공예가 대중의 일상에 시나브로 스며들길 바라는 책방지기의 마음이 책방 구석구석에 표현돼 있다는 것이다. 공예·디자인 서적의 비중이 높으며, 책과 전통공예품을 함께 배치해 손님들이 자연스럽게 작품을 감상할 수 있도록 했다. “청자 잔에 말차라떼 주세요” 책방세간에서 도보 5분 거리에 전통공예품 숍 ‘편지’가 문을 열었다. 우체국이었다가 전파사로 사용됐던 건물을 고쳐 생활소품, 의류, 생활도자기 전시·판매장으로 사용한다. 도자기 판매장 유리창에 붙은 ‘전파사’ 글자가 그 흔적이다. 삼각 지붕을 얹은 회벽 건물은 단박에 적산가옥임을 알 수 있다. 일제강점기 규암리에는 일본이 조선의 토지와 자원을 빼앗기 위해 설립한 동양척식주식회사의 부여지소가 있었다. 일본인들이 수탈한 쌀을 규암나루터에서 배에 싣고 백마강을 건넜다고 한다. 과거의 아픈 역사를 아는지 모르는지 ‘편지’를 에워싼 아름드리 밤나무, 보리수나무, 향나무는 싱그럽게 자랐다. 카페 수월옥의 사연도 만만찮다. ‘빼어난 달’이란 뜻을 지닌 수월옥은 술과 음식을 팔던 요정이었다. 한 세대를 건너 카페 수월옥으로 다시 태어났다. 폐가와 다름없던 건물이 부여 핫 플레이스가 될 줄 누가 알았을까. 마을 주민들은 공사를 하다 만 것 같은 건물에 손님들이 많으니 신기해한다. 수월옥은 건물이 두 채인데 한 채는 내벽 콘크리트를 드러내 모던한 분위기를 살렸고, 한 채는 한옥 느낌을 살려 좌식으로 꾸몄다. 분위기는 다르지만, 가구와 소품은 색동무늬 방석, 소반, 골무, 도자기 등의 전통공예품을 사용했다. 수월옥은 차 주문법도 독특하다. 선반에 놓인 청자, 백자, 진사, 분청사기 등의 찻잔을 고를 수 있다. “청자 잔에 말차라떼 주세요” 하고 주문하니 바리스타가 말차라떼 빛깔과 비슷한 청자 잔에 차를 내준다. 꽃봉오리 모양 청자 잔과 말차라떼의 조화가 찰떡궁합이다. 수월옥은 SNS 사진 맛집으로 소문났지만, 사실 차 맛집이었다. 활기를 되찾는 규암리 옛날 국밥집은 ‘웃집’이라는 이름의 독채 숙소가 되었다. 전통공예품 쇼룸과 숙소가 결합한 형태로 꾸며졌다. 한옥스테이 이안당은 일본식 건축 양식을 접목한 100년 된 근대 한옥이다. 옛 자온양조장 건물에 딸린 살림집으로, 이 마을에서 가장 부잣집이었다고 한다. 너른 마당에는 깊은 우물이 있고, 마당에서 양조장 굴뚝이 보인다. 주인이 사용했던 자개장, 경대, 항아리, 도자기 등의 세간살이가 세월을 안은 채 그대로 있다. 오래된 건물은 고쳐 사용하는 것보다 부수고 다시 짓는 게 수월하다고 한다. 박경아 씨에게 도시 재생 방식을 선택한 이유를 물었다. “옛집을 허물고 똑같이 다시 짓는다고 해도 그 옛집이 아니잖아요. 세월을 재현할 수 있나요. 문화재를 똑같이 만들 수 없듯 옛집도 그런 것 같아요. 비록 문화재적 가치가 낮은 서민들의 근대 가옥이라도 보존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요. 모두 역사이니까요.” 자온로를 산책하며 옛것의 가치와 도시 재생의 의미를 되새겨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도시 재생은 죽어가는 건물에 심폐소생술을 실시해 생명을 이어주는 작업이 아닐까. 쇠락했던 규암리가 사람들의 온기로 다시 따듯해지길 기대해본다. ◇ 이색 명소 & 맛집 ◇ 궁남지 궁남지(사적 제135호)는 1400여 년 전인 백제 무왕 때 조성한 우리나라 최초의 인공 연못이다. 연못 둘레에 버드나무를 심고, 연못 중앙에 신선이 노니는 산을 형상한 섬을 만들어 왕궁의 정원으로 삼았다고 한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궁남지는 무왕의 잉태지였다. 여름에는 연꽃이 가득 핀 풍경이 장관이며, 야간산책 명소로도 유명하다. 연못 중앙의 정자와 다리에 조명을 켜놓는다. 충남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24시간 개방, 입장료 무료. 부여서고 책방세간 바로 옆에 있는 수공예품 편집숍이다. 책방처럼 여러 나라의 문화와 예술을 볼 수 있는 곳이라고 하여 ‘부여서고’라 이름 지었다고 한다. 동남아에서 수입한 라탄소품, 가방, 모자, 의류, 머플러, 도마, 문구, 조명 등의 생활 잡화와 천연염색 소품을 판다. 우리나라 작가가 만든 상품도 있다. 다양하고 아기자기한 소품이 많아 구경하는 재미가 있다. 충남 부여군 규암면 자온로 84 장원막국수 구드래나루터 근처에 있는 오래된 가게다. 허름한 시골집의 작은 방에 앉아 막국수를 먹노라면 할머니 댁에 놀러온 듯하다. 메뉴는 메밀막국수와 편육 두 가지뿐이다. 메밀막국수 면발은 조금 가늘고 쫄깃하다. 시원한 육수는 새콤달콤한 편이다. 돼지 목삼겹살로 만든 편육에 막국수를 감아 먹어보길 권한다. 충남 부여군 부여읍 나루터로62번길 20, 11:00~17:00, 메밀막국수 7000원
- 2020-08-31 0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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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익숙함과 낯섦 사이, 레트로 핫 플레이스
- 레트로는 단순히 오래된, 옛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가령 50년째 장사를 이어온 노포와 1970년대 인테리어로 새로 문을 연 식당. 전자는 전통이라 말하고, 후자가 ‘레트로’라 하겠다. 이러한 레트로 콘셉트의 가게들은 중장년 세대뿐만 아니라 젊은이들의 핫 플레이스로 자리 잡고 있다. 자녀와 함께 데이트 즐기기 좋은 레트로 핫 플레이스를 소개한다. ◇ 익선동 한옥섬을 한눈에 ‘낙원장’ 옹기종기 기와지붕 아래 레트로풍 맛집과 아틀리에가 즐비한 익선동 거리. 부티크호텔 ‘낙원장’에서는 골목을 가득 메운 한옥 150채의 전경을 한눈에 담아볼 수 있다. 1980년대 지어졌던 ‘그린필드’라는 낡은 여관을 크라우드펀딩으로 매입, 지역 아티스트와 협업해 탄생시킨 공간이다. 클래식한 건물 외관과 달리 세련되고 모던한 실내 인테리어가 레트로 플레이스만의 독특한 분위기를 끌어올린다. 객실은 일반뷰와 한옥뷰, 프리미엄 한옥뷰 총 3단계로 나뉜다. 그중 LP플레이어가 있는 한옥뷰 룸을 선택하면 커다란 창문 너머로 보이는 익선동 풍경과 함께 LP음악까지 만끽할 수 있다. 위치 서울특별시 종로구 수표로28길 25 숙박비 평일(일~목) 7만~9만 원, 주말(금~토) 9만~11만 원 ◇ 아날로그 선율에 빠지다 ‘바이닐 앤 플라스틱’ 현대카드가 운영하는 ‘바이닐 앤 플라스틱(VINYL&PLASTIC)’은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경계에서 사라져가는 음반의 가치를 재조명하는 음악체험형 공간이다. 노출콘크리트와 나무 소재 인테리어가 조화를 이루는 인테리어가 돋보인다. 입구 왼편으로는 턴테이블이 놓인 긴 탁자가 눈에 띈다. 이곳에서 바이닐 앤 플라스틱이 선정한 200장의 LP명반을 감상할 수 있다. 1층에서는 클래식, 재즈&소울, 힙합 등 다양한 장르의 LP음반 9000여 장과 다양한 음향장비를 전시, 판매한다. 2층은 1만6000장에 달하는 CD와 더불어 음악감상 서비스를 제공하는 카페 공간으로 꾸며져 여유를 즐기기 좋다. 위치 서울특별시 용산구 이태원로 248 이용시간 화~토요일 12:00~21:00, 일요일 12:00~18:00 (현대카드 미소지자도 입장 가능) ◇ 한국·태국의 퓨전 레트로 맛집 ‘동남아’ 태국요리전문점 ‘동남아’의 입구. 세월이 켜켜이 쌓여 낡은 검푸른색 철문을 활짝 열면 레드벨벳 커튼과 이국적인 샹들리에가 맞이한다. 겉과 속이 완전히 다른 이 오묘한 식당은 안쪽으로 들어설수록 이색적인 풍경이 펼쳐진다. 한옥을 개조한 실내는 태국 연회장을 모티브로 한 인테리어로, 동남아 여행에서의 아쉬운 마지막 밤을 표현했단다. 메인 홀 외에 공간을 다양하게 나누었는데, 룸마다 강렬한 색감의 독특한 벽지가 눈길을 끈다. 특히 대중탕 욕조(?)를 연상케 하는 앞마당의 테이블은 겨울철 식사를 즐기기엔 다소 불편하지만 보는 것만으로도 흥미로운 공간이다. 인기 메뉴인 꽃게와 커리로 맛을 낸 ‘뿌빳 퐁 커리’와 태국식 볶음 쌀국수 ‘팟타이’ 등 현지 셰프가 요리한 다양한 오리지널 로컬 푸드를 맛볼 수 있다. 위치 서울특별시 종로구 수표로28길 23-6 이용시간 매일 12:00~22:00, 브레이크타임 15:30~17:00(주말 제외) ◇ 도도한 모던걸의 화려한 외출 ‘경성의복’ 익선동 골목을 걸어가다 보면 개화기풍의 원피스와 정장을 입은 이들을 발견할 수 있다. 고궁 일대에서 한복 체험을 하듯, 이곳에서는 개화기 의상을 대여해 레트로 감성을 한껏 즐기는 것이 트렌드. ‘경성의복’에는 다양한 디자인의 복고 의상과 셀프 촬영을 위한 포토존이 구비돼 있다. 고풍스러운 원피스와 장신구로 치장하고 모던걸이 되어 거리를 누벼보는 것 어떨까? 위치 서울특별시 종로구 삼일대로30길 56 2층 이용시간 매일 10:00~20:00 가격 의상대여(의상·장신구·모자·기타소품) 3시간 3만 원/6시간 4만 원/하루 4만5000원/1박2일 5만 원 ◇ 딸과 데이트하는 날엔 ‘경양식 1920’ 1980년대 전후, 가족외식 하면 떠오르는 경양식집을 테마로 한 레스토랑 ‘경양식 1920’. 레트로 거리로 유명해진 인선동 골목에 젊은이들이 부모 세대와 함께 올 수 있는 외식 공간을 만들기 위해 인테리어를 꾸미고 추억의 메뉴들을 불러왔다. 24시간 숙성한 돈가스와 함박스테이크는 남녀노소 모두 즐기기에 부담이 없다. 실제 방문한 고객들을 살펴봐도 젊은 연인부터 엄마와 딸, 노부부까지 다양한 세대를 아우른다. 사이드 메뉴로는 1980년대 경양식집에서 맛보던 수프와 멕시칸 사라다(샐러드)를 선보인다. 특별한 날에는 하우스 와인 한 잔 곁들여보는 것도 좋겠다. 위치 서울특별시 종로구 수표로28길 17-30 이용시간 평일 12:00~22:00, 주말 11:00~22:00, 브레이크타임 15:00~17:00(주말 제외) ◇ 뒹굴뒹굴 잠시 쉬어가는 ‘만홧가게’ 과거 만화잡지 ‘챔프(CHAMP)’를 비롯해 ‘우주소년 아톰’, ‘스타워즈’ 등 다양한 장르의 만화책과 그래픽노블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이다. 평일에 방문한다면 런치스페셜(라면·즉석밥·계란·김치/단무지+만화 1시간, 6000원)로 이용해보자. 위치 서울특별시 종로구 수표로28길 33-7 영업시간 11:00~23:00 가격 1인 기준 10분당 500원, 좌석(주말 및 공휴일) 2000원 동년기자가 직접 다녀온 레트로 핫 플레이스 ◇ 최원국 동년기자/ 돌고 도는 레트로 액티비티 ‘자이언트 롤러장’ 부천의 레트로 명소 ‘자이언트 롤러장’. 방문한 날은 휴일이라 인파가 붐벼 그 인기를 실감할 수 있었다. 30여 년 전 부천의 ‘자이언트 롤러장’이 유명했는데, 장소는 다르지만 복고풍에 맞춰 추억의 이름을 다시 불러왔다고 한다. 지하철 1호선 부천역 3번 출구에서 도보로 10분 이내에 있어 접근성이 좋다. 30년 전 롤러를 타던 학생들이 어른이 되어 옛 추억을 회상하기 위해 아이들과 많이 찾는 듯하다. 롤러장의 경쾌한 분위기를 담당하는 DJ가 있어 음악에 맞춰 롤러를 타다 보면 스트레스가 확 풀린다. 곳곳에 간식을 판매하는 매점을 이용하면 시장기를 해결할 수 있다. 과거 롤러스케이트를 타던 시절의 낭만을 다시 느끼고 싶은 시니어라면 친구 또는 아이들과 꼭 방문해보길 추천한다. 위치 경기도 부천시 장말로 376 지하 1층 1일 입장료 성인 1만1000원, 유아~고등학생 9000원 영업시간 평일 12:00~22:00(무제한 이용), 주말 10:00~22:00(3시간 이용) ◇ 윤영애 동년기자/ 시간이 머무는 곳, 우유 카페 ‘희다’ 논현동 주택가 골목에 하얀 3층집, 카페 희다. 낮은 계단을 테라스 삼아 나무 소반에 왕골방석이 놓인 테이블이 눈에 들어온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언젠가 분명 와본 듯 너무나 친숙한 느낌! 어릴 적 시골 할머니 집 냄새도 나는 듯하다. 높다란 1인용 앤티크 의자, 사각밥상 테이블, 양은 개다리소반, 자개문양 화장대와 거울, 낡은 찬장과 괘종시계까지. 곳곳을 돌아보며 낡은 물건들에게 속말로 인사를 건넨다. ‘어디 있다가 여기로 왔니?’ 메뉴를 보니 우유가 주다. 기본 우유에 커피, 홍차, 말차, 페퍼민트, 미숫가루까지 6가지다. 사이드 메뉴로 옥춘당 때때사탕과 큼직한 레몬 마들렌도 있다. 프런트의 젊은이에게 주문을 하고 대표님이 누구시냐 물으니 본인이란다. 긴 생머리가 멋진 나두리 대표 역시 작년 7월 오픈 이래 가장 연로한 리포터가 왔다며 빙긋 웃는다. 주고객은 복고에 관심 있는 젊은이들이고, 우연히 동반한 부모님이 친구들과 다시 와서 단골이 된단다. 대부분의 물건은 나 대표 할머니가 집에서 실제로 사용했던 것들이다. 때문에 “외할머니 집에 온 것 같다”는 고객의 평이 가장 맘에 든단다. 느슨한 공간에서 익숙한 것을 자연스럽게 누리는 것이 콘셉트였다는 나 대표의 의도는 조용한 음악과 소품에서도 잘 드러난다. 갓 씌운 백열등, 도자기, 왕골바구니, 낡은 찬장 속 오래된 커피 잔과 유리컵까지 모든 것이 눈에 익어 정겹다. ‘희다’는 기쁘다[喜]와 많다[多], 즉 기쁨이 넘치는 곳 혹은 우유의 하얀 빛깔을 뜻한다. 오래됨과 잘 어울리는 가게 이름이다. 카페 한편에 ‘검다’라는 글자가 쓰인 화분을 가리키니, 개업 후 “희다인지, 검다인지 카페는 잘돼가냐?” 했다던 아버님의 조크 에피소드를 들려준다. 창밖 현관 옆에는 ‘웃다’라는 이름의 화분도 있다. 잠시 후 혼자 들어온 고객은 동네 주민이라며 아이를 기다리다 들렀는데 편안하고 조용하다면서 레트로풍의 독특한 인테리어에 흡족해한다. 바람 불고 서늘한 가을의 어느 날, 논현동 도심 한복판에서 어릴 적 시골집을 본 듯하다. 500㎖의 대용량 미숫가루우유는 인심만큼 넉넉하다. 남겨온 때때사탕을 구순 노모에게 드리니 어디서 이런 사탕을 사왔냐며 좋아라 하신다. 시간이 멈춘 나만의 비밀 아지트에 다녀온 것처럼 왠지 마음이 따시다. 위치 서울시 서초구 주흥15길 16-4층 영업시간 매일 11:00~21:00
- 2018-11-06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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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랍 420년 심수관 가문의 조선 혼
- 임진왜란이 치욕의 역사였다면, 정유재란은 왜군이 충남 이북에 발도 못 붙인 구국승전의 역사다. 그 전적지는 진주, 남원, 직산 등 삼남지방 곳곳에 있지만 옛 자취는 찾기 어렵다. 뚜렷한 자취가 남아 있는 곳은 왜군이 남해안을 중심으로 농성하던 성터들이다. 주로 경남 중동부 해안에 밀집한 왜성 터들도 오랜 세월 허물어지고 지워져 갈수록 희미해져간다. 왜성이라는 이유로 사적지 지정이 해제된 탓이다. 근래 일부 지방자치단체는 그 중요성에 눈을 떠 옛 모습대로 복원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러나 대다수는 아직도 방치되어 있다. 치욕의 역사도 반드시 기억해야 할 역사다. 더 늦기 전에 지금 모습이라도 남겨둬야 한다. 더 사라지고 훼손되기 전에 역사 현장 보전의 필요성을 일깨우고, 정유재란의 역사적 의미를 천착하기 위해서라도 그 흔적을 돌아볼 필요가 있어 ‘브라보 마이 라이프’에 게재하기로 한다. '임진ㆍ정유왜란 피랍인 후손 가운데 가장 유명한 이는 14대 심수관이다. 일본 도예의 대명사가 된 사쓰마 야키(薩摩燒) 중흥의 주인공이라는 게 그 이유일 것이다. 1969년 그를 주인공으로 설정한 시바 료타로(司馬遼太郞)의 소설 ‘고향을 어찌 잊으리오’가 화제가 되자 그의 명성도 부풀어 올랐다. 정유재란 때 납치된 도공들이 규슈 가고시마(鹿兒島) 땅에 터를 잡고 400년 동안 조선인 혈통을 이어가며 살아온 이야기가 독자들의 심금을 울린 것이다. 한국에서는 ‘노란 셔츠 입은 사나이’로 유명했다. 1974년 한국에 온 그는 서울대학교 강당에서 강연했다. 질의응답 시간에 일제 치하 36년에 대해 묻는 학생들에게 “여러분이 36년을 말한다면 나는 370년을 말해야 합니다. 과거에 매이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고 답했다. 그 순간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지면서 유명한 노래의 합창이 울려 퍼졌다. 마침 그가 노란 티셔츠를 입고 있었던 것이다. 14대째 한국 이름을 쓰고 있는 데 대한 존경과 사랑의 표시였다. 그 일을 계기로 그는 박정희 대통령을 예방하는 행운을 누리기도 했다. 그건 오래전 이야기이고, 근래에는 고(故) 노무현 대통령이 그의 집을 방문하고, 한일 각료회담 간담회가 그의 집에서 열린 일로 유명해졌다. 2004년 12월 18일 가고시마에서 열린 한일 정상회담이 끝난 뒤, 유명 온천 휴양지 이부스키(指宿)로 가는 길에 노 대통령이 그의 집에 들러 차 한 잔을 마신 일이 있었다. 1998년에는 가고시마 한일 각료회담 후 양국 각료들이 그의 집에서 간담회를 가진 일도 있었다. 30년째 주일 한국대사관 명예 총영사직을 수행하고 있는 그의 가교역할이 필요하기도 했지만, 양국이 서로 편한 인물이었던 것이다. 그를 처음 만난 것은 1981년 도쿄에서였다. 정확히 말하면 그의 작품과의 만남이었다. 게이오대학교 신문연구소에서 공부할 때 우연히 신주쿠 이세탄(伊勢丹)백화점에서 ‘심수관 도예전’이 열린다는 신문기사를 보고 달려갔다. 먼저 놀란 것은 작품 값이었다. 막사발로 보이는 그릇 하나에 30만 엔짜리 가격표가 붙어 있었다. 도예에 까막눈이었던 젊은 기자의 눈에는 큰 놀라움이었다. 두 번째로 놀란 것은 그가 심수관이란 이름을 쓰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는 분명 일본인이었고, 그의 선대가 납치되어온 지 400년을 바라보는데 아직도 우리나라 이름을 쓴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재일동포 대부분이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숨기려고 통명(通名)이라는 일본식 이름을 쓰고 있지 않은가. 그 일이 있은 후 꼭 한 번 그를 만나 인터뷰를 하고 싶었다. 그리고 그 소원은 10년 만에 이루어졌다. 1990년 7월, 주일 특파원으로 발령받아 도쿄에 부임하자마자 가고시마로 달려갔다. 도쿄에서 신칸센으로 후쿠오카까지 7시간, 거기서 특급열차로 가고시마까지 5시간, 다시 로컬 열차로 30분을 달려, 시골 역에서 택시로 30분을 더 가야 했다. 중간에서 하룻밤을 머문 여정이었다. 미야마(美山)라는 지금의 마을 이름보다 나에시로가와(苗代川)라는 옛 이름이 더 유명한 곳이다. 그는 10년 지기처럼 환대해주었다. 수장고에서 선대들의 작품들을 둘러보는 사이, 14대가 가마에서 나왔다는 전갈이 왔다. 수염이 덥수룩한 얼굴이 이웃집 아저씨 같은 푸근한 인상이었다. 잉크빛 작업복은 개량한복 같았다. 따스한 손길에 이끌려 사랑채에 오르니, 낡은 선풍기 저편 벽에 ‘백세청풍(百世淸風)’이라는 글씨가 눈길을 끌었다. “선친께서 조선에 가셨을 때 황해도 해주의 어느 정자에서 탁본을 떠온 것이오. 우리 집 가보요.” 수인사가 끝나고 액자를 화제 삼자 그는 이렇게 대답하며, 가문의 내력부터 설명하기 시작했다. 많은 것을 물었고, 많은 말을 들었다. 정유재란 때 붙잡혀온 도공 후예들이 사는 마을이라기에 당신처럼 조선 이름을 가진 사람이 얼마나 되느냐고 물었더니, “우리 집뿐이오” 했다. 성은 그대로인 임(林) 씨가 있지만, 읽기는 일본식(하야시)으로 하는 집이 하나, 나머지는 모두 일본 성으로 바뀌었다 했다. 200여 호 가운데 50%는 조선 도공 후예들이고, 나머지는 메이지(明治)유신 이후 흘러 들어온 일본인들이라 했다. “지금은 달라졌지만 메이지 유신 무렵까지만 해도 마을에 서당이 있어 글 읽는 소리가 낭랑했답니다. 조선의 혈통을 보전시키려는 사쓰마 번(藩)의 보호정책 덕분에 모두가 사족 대우를 받으며 경제적으로도 유족하게 살았지요.” 그는 나에시로가와 마을이 번 당국으로부터 어떤 보호를 받았는지를 강조하는 사례로, 마을 사람 하나를 죽인 범인과 관련자 6명이 모두 처형당한 사건을 들었다. 서당 이야기가 끝나자 그는 잠시 자리를 뜨더니 ‘한어훈몽(韓語訓蒙)’과 ‘숙향전(熟香傳)’ 고본을 들고 왔다. 한어훈몽은 자녀들에게 우리말을 가르칠 때 쓰던 교과서다. ‘매오 다’(매우 좋다), ‘책을 닐러라’(책을 읽어라) 같은 우리말 고어 옆에 일본 글자로 훈이 붙어 있었다. 그렇게 가르친 우리말로 자녀들에게 ‘숙향전’ 같은 책을 읽혔다는 것이다. 아직도 우리말 잔재가 많고, 한동안은 개고기를 먹는 풍습에서부터 제례 혼례에 이르기까지 조선 색채가 남아 있었다 했다. 그가 어렸을 때 돈이 없다는 말은 ‘동가 샤가나이’, 방귀 뀌었다는 말은 ‘방구 시타’라고 했다. 공방과 가마에는 그런 표현들이 더 많다. ‘안질통’은 가마에서 일할 때 쓰는 간이의자다. 물그릇은 ‘무루사쿠’, 흙덩이는 ‘동그레’, 주걱은 ‘비코세’, 막대기는 ‘찌르레’, 흙을 두드려 펼 때 쓰는 연장은 ‘슈르레’, 장작은 ‘찍순’이라 했다. 일본어에는 없는 말들이다. 점심 대접을 받은 뒤 그가 운전하는 벤츠 승용차를 타고 단군사당 옥산궁(玉山宮)부터 찾아갔다. 자동차 라디오에서 우리말 방송이 나왔다. KBS 제주 방송이었다. “우리말을 알아들으시네요.” “아닙니다. 뜻은 몰라도 들으면 편안해서 그냥 틀어놓습니다.” 우리말을 몰라서 미안해하는 표정에 어린아이 같은 부끄러움이 묻어 있었다. 차를 내려 차 밭 사이로 난 나지막한 언덕길을 잠시 오르니 대숲 가에 옥산궁이 모습을 드러냈다. 개량기와로 지붕을 이은 정자 같은 건물 앞에 작은 도리이(鳥居, 신사 입구에 세운 기둥문)와 돌 등롱이 서 있었다. 일본 신사 분위기가 나지 않아 다행이었다. 가까이 가 보니 사당은 많이 퇴락해 있었다. 상주 관리인이 없는 탓인지 잡초가 무성했다. “오래전에 신관이 죽고 새 사람을 모실 수 없어 이렇습니다. 아무나 신관으로 앉힐 수도 없는 일이라서… 다시 사당을 부활시키자는 논의가 있으니 머지않아 문을 열게 되겠지요.” 그렇게 된 것이 자기 책임이라도 된 듯, 표정에 미안해하는 빛이 역력했다. 그러면서 얼른 옥산궁의 유래를 말하기 시작했다. “살기에 여유가 생기고부터 마을에 갈등이 심했던 모양입니다. 서로 자기 가문이 잘났다고 티격태격한 것이지요. 어느 날 밤 현해탄 쪽에서 커다란 불덩이 하나가 날아와 이곳에 떨어졌는데, 다음 날 아침에 와 보니 큰 바위가 있더래요. 사람들은 서로 싸우지 말고 사이좋게 살라는 단군의 계시로 알고 이 자리에 사당을 세웠답니다.” 옥산궁이 생긴 뒤 매년 설날과 추석에 단군제가 열렸다. ‘오노리소’라는 신축가가 그때부터 불렸는데, 이제는 노랫말 뜻도 제대로 전해지지 않는다. 도자기 작품에 새겨져 내려오는 노랫말은 ‘오는 날도 오는 날도 매일 매일이 오늘과 다름없네. 날이 저물고 또 해가 떠올라도 오늘은 오늘, 언제나 같은 세월’이라 돼 있다. 고국에 돌아갈 날만 손꼽아 기다리는 인고의 세월에 오늘과 내일의 차이가 있겠느냐는 체념과 실망의 의미를 담은 글이다. 옥산궁을 떠난 자동차는 이웃 구시키노(串木野) 시가지를 지나 시마비라(島平) 해안에 멎었다. 1598년 겨울, 1대 심수관 일행 42명이 표착한 해안이다. 주차장에 차를 세운 14대는 성큼성큼 해변으로 걸어가더니, 검은 빗돌 아래에서 잡초를 한 움큼 뽑아냈다. 선조들의 도래 400주년을 앞두고 그가 세운 기념비다. 비석에는 ‘게이초 경장 3년 겨울, 우리들의 개조 이 땅에 상륙하다’라는 글이 새겨져 있다. 돌을 세운 경위를 설명하고 나서 그는 해안 바윗돌에 올라, 먼 지평선을 가리키며 고난의 역사를 설명했다. 조선을 떠난 피랍인 배는 3척이었다. 두 척은 맞은편 가고시마 해안에 상륙했는데, 그들의 조상 42명을 태운 배만 이곳에 표착했다. 그 까닭은 아무도 모른다 했다. 오랜 굶주림과 뱃멀미에 시달린 도공들은 뭍에 오르자마자 지쳐 쓰러졌다. 배 안에서 숨을 거둔 사람도 있었다. 그 무덤들이 아직도 남아 있다. 아녀자들은 신음 섞인 울음을 그칠 줄 몰랐다. 당장 먹을 것과 바람을 피할 움막이 필요했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마른풀과 잔가지를 꺾어 움막을 짓고, 진흙을 파서 가마부터 만들었다. 먹고살 방도는 그것뿐이었다. 이상한 말을 쓰는 사람들이 구워내는 그릇은 곧 현지 마을의 화제가 되었다. 곡식과 채소를 가져와 바꿔가기도 했고, 돈을 가져오는 사람도 있었다. 맨손으로 와 빼앗아가려는 무리도 있었다. 어느 날 왜인들이 떼 지어 몰려온다는 소문이 돌았다. 무리의 지도자 심당길과 박평의(朴平意)는 의논 끝에 마을을 버리기로 결정했다. 유약과 공방 도구부터 챙겨 넣고 옷가지와 취사용품은 남부여대(男負女戴)한 채 하염없이 걷다가 발을 멈춘 곳이 나에시로가와였다. “여기 지형이 남원 천지와 너무 흡사하지 않은가!” 발길을 멈추고 짐을 내린 이유는 단 하나, 그들의 고향 남원 땅을 닮은 곳이라는 것이었다. 그곳에 새 둥지를 틀자마자 번 관리가 성하촌(城下村)으로 이주하라는 명을 가져왔다. ‘성주인 시마즈 요시히로(島津義弘)의 명령’이라 했다. 마을 어른들은 단호히 거부했다. “군부(君父)를 팔아먹은 원수와는 같은 하늘을 이고 살 수 없다”는 게 그 이유였다. 남원성 함락 때 요시히로 군을 지름길로 안내한 주가전(朱嘉全) 같은 자들이 거기 모여 산다는 것을 그들은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으니 거기 그대로 살게 하라. 대신 그들의 조선인 혈통을 철저히 보전토록 하고, 도자기 생산을 적극 지원하라.” 히데요시가 죽은 뒤 열도의 패권을 겨룬 세키가하라(關が原)전투에서 돌아온 요시히로는 애써 붙잡아온 도공들이 생각난 듯, 적극적인 보호정책을 펴기 시작했다. “도공 마을에 잡인의 출입을 금하라, 조선의 언어와 풍속을 이어가게 하고 반드시 동족끼리만 혼인하도록 하라, 한 번 결혼하면 이혼할 수 없게 하라, 도자기 생산에 필요한 지원을 아끼지 말라. 생산된 제품은 모두 성에 납입하도록 하라….” 보호·지원정책에 힘입어 조선 도공 마을의 도자기 산업은 날로 융성했다. 번의 지원을 받은 박평의가 백토를 발견한 뒤로 도자기 생산이 가능해졌다. 유명한 ‘시로 사쓰마(白薩摩)’의 탄생이다. 도자기란 자석(磁石) 없이는 아름다운 색과 빛을 낼 수 없는데, 흰 자석을 쓰게 되니 금상첨화가 된 것이다. 당시 일본에서는 시로 사쓰마 한 점이 ‘일국일성(一國一城)에 값한다’는 말로 평가되었다. 차(茶) 문화는 발달했으나 다기(茶器)가 조잡했던 문명의 수준 탓이었다. 이렇게 양산된 사쓰마 야키는 번 재정에 엄청난 보물단지가 되었다. 나가사키 항을 통해 외국에 수출하고 국내 시장에도 출하해 막대한 수입을 거머쥘 수 있었다. 정유재란 때 일본 무장들이 도공 납치에 혈안이 되었던 까닭도 바로 이 때문이었다. 메이지유신 때 사쓰마 번이 조슈(長州, 현재 야마구치) 번과 함께 중심 역할을 한 것도 그에 힘입은 것이었다. 사쓰마 야키는 1873년 오스트리아 만국박람회에 출품한 12대 심수관 작품이 은상을 수상한 것을 계기로 국제적으로도 유명해졌다. 심수관 가 수장고에 있는 ‘히바카리(ひばかり)’ 막사발은 일본 국보로 지정돼 있다. 이를 만든 도공도, 흙도, 유약도 모두 조선의 것인데 오직 불 하나만 일본 것이라는 뜻이다. 사쓰마 야키 개조 심당길이 표착 초기에 만든 이 작품은 1998년 서울 일민미술관에서 열린 ‘400년 만의 귀향전’에 출품되어 화제가 되었다. 사쓰마 야키 400년 기념 행사의 일환으로 14대가 주관한 전시회였다. 14대와의 두 번째 만남은 1993년 8월 대전엑스포 ‘한국의 도자기 귀향비교전’ 취재 때였다. 고국과 오랜 왕래가 있었던 그는 친한 도예 작가들과 얼싸안고 재회의 기쁨을 나누었다. 말은 통하지 않아도 뜻이 통하는 것 같았다. 같은 처지이지만 고국과 유대가 없어 서먹서먹해하는 도공 후예들에게는 친절한 가이드 역할을 했다. 일본 도자기의 신이 된 이삼평(李參平)의 12대 가네가에 삼페에(錦が江三兵衛), 가라쓰 야키 13대 나카사토 다로에몽(中里太郞衛門), 다카도리 야키 12대 다카도리 하루산(高取八山), 하기 야키 12대 사카 고라이자에몽(坂高麗左衛門), 고다 야키 11대 아가노 사이츠케(上野才助) 등이 ‘한국의 도자기 귀향비교전’ 출품자들이었다. 이들 중에는 자신이 한국계라는 사실을 확신하지 못한다는 사람도 있었고, 조상이 어디서 붙잡혀 갔는지 확실한 연고지를 몰라 “이번 기회에 꼭 확인하고 싶다”는 사람도 있었다. 고국에 올 때마다 조상이 붙잡혀간 남원과 관향인 경북 청송읍을 찾아보는 14대와는 너무도 대조적인 삶이었다. ‘400년 만의 귀향전’ 때 그는 불까지 조국의 것으로 하자는 뜻으로 남원 교룡산성에서 채화된 불씨를 일본으로 가져가는 행사를 주관했다. 그 불씨는 지금도 미야마 도유관(陶遊館)에서 꺼지지 않고 타오르고 있다. 후손들은 가마에 불을 지필 때마다 거기서 불씨를 채화한다. 400주년 기념 행사들을 마친 뒤 14대는 “이제야 선대의 비원을 이루어 감회가 깊다. 특히 400년 사업을 부탁한 선친의 유언을 받들어 기쁘다”고 했다. 그 모든 사업이 단군의 보살핌 덕분이었다는 말도 했다. 인터뷰를 마치고 헤어질 때 귀중한 선물을 받았다. 돌아와서 열어보니 아름다운 꽃병이었다. 나무상자 안쪽의 친필 휘호에 감격했다. ‘本是同根-14代 沈壽官’ 생면부지의 특파원을 동족으로 대해준 따뜻한 마음이 오래도록 가슴에 남았다. 그가 심수관 도원 당주 자리를 아들에게 물려준 지도 30년째다. 그는 이탈리아 유학에서 돌아온 아들을 또 한국으로 유학을 보냈다. 도예의 기본은 옹기에 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그 아들의 아들도 벌써 공방과 가마를 드나들며 흙일을 배우고 있다. 올해 93세가 된 그는 16대를 습명(襲名, 선대의 이름을 계승함)하게 될 손자에게 흙일을 가르치고 있다. 근래 한국 기자와의 인터뷰에서는 “거동이 불편해 2013년 이후 한국에 가지 못하고 있다”면서, 지금도 최후의 여행을 꿈꾸고 있다고 말했다. 일본어를 아는 택시 운전사를 만나 한국의 각 지방을 돌며 고향 산천과의 작별을 고하는 게 마지막 소원이라 했다.
- 2018-03-09 08: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