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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 세계가 고령화 몸살, 각 국의 시니어 비즈니스 현황은?
- 유엔(UN)은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7% 이상이면 고령화사회, 14% 이상이면 고령사회, 20% 이상일 때 초고령화사회로 분류한다. 산아제한 정책을 펼쳤던 중국도 고령화의 그늘 속에 접어들었고, 세계에서 가장 젊은 나라로 손꼽히던 베트남도 고령화사회에 진입하는 등 전 세계가 함께 늙어가고 있다. 세계 각국에서 고령화에 대비해 어떤 산업적 변화를 꾀하고 있는지 알아본다. 전 세계 65세 이상 인구는 2020년 기준으로 7억 2700만 명(인구 비중 9%)에 달한다. UN은 ‘세계인구전망서’를 통해 2050년에는 약 15억 명(인구 비중 16%)까지 증가할 것으로 발표했다. 인구구조의 급격한 변화에 발맞춰 노인들이 겪는 어려움을 해결할 방법이 필요하다. UN은 “고령화 인구가 많은 국가는 보편적 의료 및 장기 의료 시스템을 구축하고 사회보장 및 연금 시스템의 지속 가능성을 개선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다시 말해 고령층을 위한 제품·서비스·인프라 등에서 시니어 비즈니스로서의 사업 변화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시니어 비즈니스란 시니어를 대상으로 시니어들을 위한 상품 제조・판매, 의료・복지 시설을 세우는 따위의 산업을 뜻한다. 이는 1970년대 일본에서 고령자 시장을 ‘실버마켓’이라고 지칭한 것에서 파생되었으며, 건강・은행・관광・주택・여행 등 다양한 분야를 아우른다. 과거에는 그룹홈이나 요양시설 위주의 시니어 비즈니스가 주력이었다면, 최근에는 ‘건강한 노화’에 집중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21~2030년, 건강한 노화 10년’으로 선언하고, 네 가지 영역에서 불평등을 줄이기로 한 UN의 기조와 같은 맥락이라고 할 수 있다. 커지는 미국 홈케어 시장 시니어 비즈니스가 가장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국가는 단언컨대 미국이다. 세계적인 리서치 기업 월드데이터랩(World Data Lab)에 따르면 미국 시니어 비즈니스 시장은 2025년 약 3조 5000억 달러(약 4849조 2500억 원)에 달할 전망이다. 미국의 대표 시니어 비즈니스는 홈케어 시장이다. 일상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노인과 장애인을 대상으로 자신의 집에서 생활하면서 신체적 수발이나 가사 지원 등 다양한 장기 요양 및 활동에 대한 지원 서비스로, 아마존이나 UPS 등 물류・운송 업체에서도 홈케어 시장에 진출할 정도로 확장되고 있다. 이와 더불어 시니어들의 고독함을 완화해주는 서비스도 꾸준히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시니어를 대상으로 하는 가상현실 콘텐츠 개발회사 렌데버(Rendenver)는 실버타운과 요양원에 거주하는 고령층의 무료함・무력감을 해소하기 위해 가상현실을 활용한 여행 및 방문 등의 콘텐츠를 개발해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최근에는 건강 증진 프로그램까지 개발해 시니어 비즈니스 영역을 확대해나가고 있다. 그뿐 아니라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돌봄 경제’(Caring Economy)를 내세우며 노인 및 장애인을 대상으로 가정과 지역사회 기반의 공공 건강보험 서비스를 확대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따라 바이오 기술이 적용된 의료 및 건강관리 첨단 제품과 서비스에 대한 수요가 점점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헬스테크 분야에 집중하는 중국 중국은 급속도로 고령화가 진행되면서 전 세계적으로 고령 인구가 가장 많은 나라로 등극했다. 이에 시니어 비즈니스에 잠재력을 가진 독보적인 시장으로 평가받고 있다. 중국 정부는 2021년 ‘2021~2025 돌봄 산업을 위한 5개년 개발 실행 계획’을 발표하며, 노인 돌봄에 필요한 스마트 제품과 서비스를 개발하는 등 헬스테크 분야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장애인 보조 및 노인 보조 로봇을 개발하는 상하이방방로봇회사(이하 방방로봇)는 2016년 설립 이후 현재 두 개의 ‘방방카’ 모델을 출시했다. 그중 하나는 외출 시 사용하는 보행 대행 차량이고, 또 다른 하나는 가정에서 사용하는 지능형 훈련 차량이다. 장애 노인을 위한 스마트 케어용 제품도 있다. 2019년 설립된 선전줘웨이과학기술회사는 용변과 목욕 시 사용하는 지능형 로봇이 주력 상품이다. 청두마이제캉과학기술회사는 손목시계, 침대 매트, 체중계, 호출기 등 다양한 스마트 제품을 통해 노인, 간호사, 자녀를 연결하는 스마트 케어 시스템을 구축했다. 이와 더불어 바이두와 알리바바 등 대기업도 앞다투어 시니어 비즈니스 시장에 진출하고 있다. 2021년 바이두헬스는 유명 제약회사 글락소스미스클라인과 제휴를 맺고 중년과 노인을 위한 예방 차원의 건강관리 시스템을 공동 구축했다. 이는 바이두헬스 사용자의 수요를 기반으로 빅데이터와 AI 기술 검색을 통해, 온라인으로 노인의 건강관리는 물론 질병 예방을 돕는 시스템이다. 알리바바는 베이징과 허난 지역에 지능형 요양원을 잇달아 설립하고, 2022년 3월에는 도시・농촌 지역사회의 노인 돌봄 문제에 주력할 것을 선언했다. 일본, 수요자 맞춤형 다양한 서비스 2005년 세계 최초로 초고령사회로 진입한 일본은 이후에도 꾸준히 고령 인구가 증가하고 있다. 고령사회에 일찍 접어든 만큼 다른 나라에 비해 시니어 비즈니스 시장 규모가 크게 형성되어 있는 편이다. 그룹홈 같은 요양시설에 투자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물론, 헬스케어 분야에 관심을 갖고 활성화하고자 노력하는 등 앞으로도 계속 시장 확장에 주력할 방침이다. 이보람 써드에이지 대표는 “거주지를 옮기는 것에 반감을 가진 고령층이 많아 본인의 거주지에 그룹홈을 만들어 지낼 수 있도록 하는 제도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와 더불어 고령층을 고려한 유니버설 디자인(Universal Design)이 확대되고 있다. 대표적으로 꼽을 수 있는 ‘하락 캐스타’는 손가락을 넣는 대신 패드를 눌러 사용하는 가위로, 탄탄한 시장 규모를 형성하고 있다. 유카이공학은 요양원에 있는 노인과 대화를 통해 요구사항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할 수 있는 가정용 로봇 ‘보코 에모’를 출시하기도 했다. 이 밖에도 이동 슈퍼 서비스 ‘도쿠시마루’, 넘어졌을 때만 부드러워지는 바닥과 매트 ‘코로야와’ 등 수요자가 필요로 하는 다양한 제품 서비스를 개발·제공하고 있다. 한편 일본에서는 고령층을 무조건적인 복지의 대상으로 보지 않는 인식 개선 운동이 진행되고 있다. 이보람 대표는 “‘고령층도 사회참여가 가능하다’는 것을 전 세대에 지속적으로 어필하며 자립할 수 있도록 인식 개선을 진행하고 있다”며 앞으로도 지속적인 인식 개선 운동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건강식품 수요 높은 태국 2005년 고령화사회로 진입한 태국은 2052년경 초고령사회로 접어들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2023년 태국의 노인 인구는 약 1300만 명으로 태국 전체 인구의 약 4분의 1을 차지한다. 노인 인구의 꾸준한 증가로 2027년 약 1600만 명까지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노인 인구가 급격히 증가하면서 다양한 시니어 비즈니스가 필요한 시점이다. 태국 국가통계청(NSO)에서 발표한 노인 가정의 소비 성향에 관한 자료에 따르면, 일반 식료품 관련 지출이 평균적으로 19% 낮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전체 소비 금액의 절반을 차지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외식 대신 가정에서 손쉽게 이용할 수 있는 조리 식품이나 포장 식품에 대한 식비 지출이 높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따라서 평균수명 연장과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질수록 건강식품 및 건강보조식품에 관한 수요는 꾸준히 증가할 전망이다. 헬스케어, 보건ㆍ의료에 중점 둔 싱가포르 싱가포르 역시 빠르게 고령 인구가 늘면서 시니어 비즈니스가 급성장하는 추세다. 싱가포르 정부는 2023년 인구 보고서를 발표하며 2030년에는 4명 중 1명이 만 65세 이상일 것이라고 밝혔다. 이와 더불어 코로나19 영향으로 디지털 솔루션이 활용되면서 새로운 헬스케어 도입이 가속화되고 있다. 특히 싱가포르는 원격의료, 노인 영양식 등 헬스케어 시장이 활기를 띠고 있다. 헬스케어 분야가 주목받는 이유는 노후에도 일을 계속하기 위해서는 건강이 최우선이기 때문으로 추측할 수 있다. 이보람 대표는 “싱가포르는 원격의료와 비대면 의료에 많은 투자를 하며 헬스케어 분야를 시니어 비즈니스의 주축으로 삼고 있다”며 “건강하게 장수하기 위원회의 마스터 플랜에 따라 2022년부터는 국민 건강관리에 디지털 헬스를 활용하는 ‘Healthier SG’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이는 모든 의료 서비스와 건강 기록에 원스톱으로 접속할 수 있는 건강 포털 ‘HealthHub’로 제공한다. 싱가포르 정부는 국민이 자신이 선택한 주치의를 등록하는 프로그램도 곧 시작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전 국민의 평균 나이 32.5세로 가장 젊은 나라였던 베트남도 2019년 고령화 지수가 48.8%로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이는 2009년 35.9%에서 10년 새 13%가량 늘어난 것으로, 다른 국가들처럼 고령화사회로 진입했다고 볼 수 있다. 베트남 산업계 역시 전 세계적으로 꾸준히 성장하고 있는 시니어 비즈니스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 2024-08-14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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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버 산업 블루오션 분야로 주목받는 ‘시니어 하우징’
- 실버타운에 대한 인식이 긍정적으로 변화하고, 입주자의 만족도 역시 올라가며 관련 수요가 자연스레 증가하는 추세다. 한국의 고령화 속도를 감안하면 그 열풍은 더 거세질 전망이다. 시장성을 포착한 기업들이 ‘시니어 하우징’이라는 이름의 주거 상품을 건강・금융・여가 등 시니어 세대의 특성과 수요에 맞춘 다양한 상품과 연계해 다각화하고 있다. 부동산 시장 침체와 주거 불안정이 지속되는 가운데 초고령사회 진입까지 앞둔 상황이다. 이 가운데 ‘몸 건강하게, 마음 편히 나이 들 수 있는 곳’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실정이다.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2023 노인 복지시설 현황’에 따르면 2022년 말 기준 전국 노인 복지시설은 8만 9643개, 입소 정원은 36만 4116명으로 대상 인구 대비 복지시설이 현저히 부족하다. 시니어 하우징 분야가 ‘블루오션’으로 주목받는 이유다. 시니어 하우징은 토지나 주택 등 생활공간에 시니어를 위한 서비스를 결합한 산업을 말한다. 실버타운, 복지주택, 요양시설 등 여러 주거 모델이 있다. 전문가들은 해당 분야가 활성화되면 시니어 관련 데이터가 지속적으로 쌓여 건강・금융・여가 등 다양한 사업 개발에 활용하고, 시장경제의 선순환이 이뤄질 수 있을 거라 예측한다. 너도나도 분주해진 시장 민간 기업은 한창 시니어 하우징에 관심을 보이는 분위기다. KB라이프생명, 신한라이프 등 보험사는 해당 시장에 진출한 지 오래다. 특히 신한라이프는 올 초 독립법인으로 출범해 현재 4곳의 요양시설과 2곳의 실버타운 설립을 준비 중이다. 최근 현대건설과 손잡고 노인복지주택 사업 모델 개발과 공모사업 추진을 위한 공동투자 및 개발에 나설 계획이다. 롯데그룹은 롯데건설과 롯데호텔 계열사를 활용해 실버타운 브랜드 ‘VL’을 필두로 내세웠으며, 사업 발굴에 한창이다. 신세계그룹 역시 곧 시니어 주거사업에 뛰어들 예정이다. 임영록 신세계프라퍼티 대표는 창립 10주년 기념식에서 ‘미래 10년 먹거리’ 중 하나로 ‘시니어 레지던스 사업’을 꼽았다. 부동산 개발 그룹 엠디엠은 대우건설과 손잡고 경기도 의왕백운밸리에 노인 복지주택 ‘백운호수 푸르지오 숲속의 아침 1단지’를 지난 1월 공급했다. 정부도 초고령사회에 대비하기 위해 관련 청사진을 내놓고, 규제를 손질하고 있다. 중산층 대상 시니어 주택 공급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커지자, 과거 불법 전매 등 투기 논란으로 금지했던 실버타운 분양을 다시 허용하겠다고 발표했다. 지난 7월에는 김범석 기획재정부 1차관 주재로 경제관계차관회의를 열고 ‘시니어 레지던스 활성화 방안’ 마련을 논의했다고 밝혔다. 더불어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지난 해 12월 국내 최초로 시니어 하우징 관련 ‘헬스케어 리츠 사업’을 공모했다. 선정된 민간사업자는 화성동탄2 의료・복지시설 용지에 시니어 주택・오피스텔・의료・업무・상업・문화시설 등을 복합 개발・운영하게 된다. 다수의 투자자로부터 자금을 모아 부동산에 투자 운용한 뒤 얻은 이익을 배당한다는 계획이다. 국민에게 주거 안정과 새로운 부동산 투자 기회를 제공하고, 민간사업자는 신규 사업 모델의 기반을 마련할 기회라 여기는 것이다. 국내 첫 헬스케어 공모 상장 리츠의 민간사업자 모집이 시행되면서 시니어 케어 산업의 활로 개척 및 부동산 투자 기회가 확대될 것으로 업계는 기대한다. 미국에서 125조 원 규모에 달하는 헬스케어 리츠는 시니어 하우징 산업을 활성화하는 가장 대표적인 방식으로 꼽힌다. 전망 밝지만 걸음마 단계 건설, 금융, 보험, 호텔 외에도 시니어 하우징을 중심으로 확장 가능성이 있는 분야는 IT 업계다. AI 기능이 탑재된 에어컨・냉장고・세탁기 등 가전을 연동하거나 센서를 통해 활동 리듬을 파악, 응급 상황을 막는 식이다. 그러나 국내 시니어 하우징 시장은 여전히 태동기다. 과거 실버타운을 짓는다고 하면 ‘노인들 대상으로 장사한다’거나, ‘자체적인 수익성이 부족하다’는 인식도 있었다. 이선엽 케어닥 주거사업본부장은 사업 특성상 중도 철수가 어려우므로 운영 역량 확보와 초기 시스템 구축에 검토가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이 본부장은 “노인들만 살면 우울할 거라 걱정하는 사람들도 있기 때문에 ‘더 클래식 500’과 같이 건물 1층에 다른 세대가 충분히 방문할 수 있는 근린생활시설 형태의 공간을 혼합하는 방법이 최근 추세”라며 “자녀와 지인이 쉽게 방문할 수 있고, 병원・백화점・마트에 도보로 갈 만한 위치를 선점한다면 소비자가 매력을 느낄 테고, 다른 산업과 연계해 시너지를 낼 수 있다”고 조언했다. 이어 “장기적으로는 모든 시설과 편의를 누리는 ‘올인원’ 실버타운에서 나아가 일본 ‘베네세 스타일 케어’의 유료 노인홈처럼 유형을 세세하게 나누고, 직업군이나 특정한 취미 등으로 타깃을 세밀하게 설정한 맞춤형 실버타운이 주목받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 2024-08-05 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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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양 허락한 정부 활성화 방안, 실버타운 업계 판도 바꿀까
- 기획재정부는 지난 23일 경제관계장관회의를 열고 ‘시니어 레지던스 활성화 방안’을 발표했다. 골자를 살펴보면 실버타운(시니어 레지던스)을 세울 때 토지·건물을 소유하도록 한 규제를 풀어 토지·건물을 임대해 실버타운을 운영하는 것도 가능하도록 할 방침이다. 민간 사업자의 진입을 촉진한다는 취지다. 업계에서는 소비자들이 입주를 위해 넘어야 했던 문턱이 낮아졌다는 평가다. 형식적인 지원책이 아니라 현장의 요구가 반영됐다는 뜻이다. 실제로 업계에서는 생보사들을 중심으로 토지·건물을 사업자가 소유해야 하는 현행법에서 '임대 방식'이 허용되도록 노인복지법의 규제 완화를 요구해왔다. 시설을 설립하려면 사업자가 토지와 건물을 소유해야 한다는 제약하에서는, 초기 비용이 커 생보사들은 사업 진출을 막는 규제로 인식해 왔다. 폐교나 공공 부지에 대한 임대는 허용됐지만, 도심에서 멀리 떨어졌기에 입소 수요가 많지 않다. 서울 내 일부 폐교 사례를 제외하면 실제 활용된 사업은 드물다. 기존 제도하에서는 사업자가 토지·건물을 소유하고, 임대 방식으로만 실버타운 운영이 허용돼 일종의 ‘유사 분양’ 방식의 양산을 낳았다. 투자유치를 위해 관광 단지 등 부동산 가치가 높은 지역에 시설을 짓고, 실제 분양이 아닌 ‘임대권을 분양’하는 방식을 취했다. 때문에 소비자의 소유에 대한 걱정은 늘 따라다녔다. 일각에선 인구 이동이나 교통량이 많은 관광 단지 내 고령자 시설이 적합한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는 이들도 있었다. 또 공급이 부족해지자, ‘완판’된 일부 시설을 제외하면 서비스 수준이 점차 낮아진다는 지적도 있었다. 정부는 이러한 문제점을 해소하겠다는 입장이다. 먼저 부지 확보에 대한 문턱을 낮춰 의료 접근성이 높고, 가족의 왕래가 편한 도심 지역에 설립을 유도하게 된다. 높은 임대료로 인해 투자가치를 따지고, 가족을 보기 위해 노후에 혼잡을 감내할 필요가 없어졌다. 또 분양형 실버타운의 설립도 허용하면서, 소유에 대한 걱정도 덜었다. 도심 내 유휴시설을 실버타운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용도 변경 허가와 용적률 완화에 대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이를 통해 지방 대학 소멸이나 노인 요양 인프라 부족 등의 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하겠다는 의지로 보인다. 또 높은 의료와 교육 시설을 갖춘 대학 내에 실버타운이 들어선다면 생활지원 서비스의 수준도 한층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또 서비스 지속에 대한 걱정도 해결된다. 지금까지 실버타운은 최소 시설·인력 기준만 있었을 뿐 애초 약속했던 서비스의 실행이나 유지에 대한 관리가 되지 않았었다. 시행사에서 약속하는 서비스를 믿을 수밖에 없었고, 지켜지지 않을 경우 대비책도 많지 않았다. 때문에 정부는 서비스 전문사업자를 육성하고 관리도 직접 나서겠다는 취지다.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고령자 대상 민간 임대주택인 실버스테이에 60세 이상 ‘유주택자’도 입주가 가능하도록 하고, 실버타운의 경우 기존 자가주택을 활용한 주택연금 계속 수령을 허용하고, 자가주택의 임대까지 허용한다는 부분이다. 중장년들에게 자가 주택은 노후 자산을 책임지는 현금 흐름 수원지이자 자녀를 위한 상속 수단으로서 중요하다는 점 등을 고려하면, 현실적인 문제로 인해 시설 입주를 꺼려했던 소비자들 입장에선 매력이 높아진 셈이다. 법무법인 가온 배정식 본부장은 “갖고 있던 주택을 매각하지 않아도 되고, 집안의 물품을 처분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서 실버타운 대중화에 기폭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하고, “상대적으로 고급 실버타운의 서비스는 더 높아지는 등 시장의 구분이 더 명확해질 것으로 예측된다”고 말했다. 실버타운을 투자 대상으로 바라보는 관점에도 변화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충분한 공급이 예상되는 만큼 대기 수요가 상당 부분 해소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정부 역시 이번 정책을 통해 민간 자금 진입을 위한 규제를 완화하는 대신 투기 수요 차단 방안도 함께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서울사이버대학교 부동산학과 김동환 교수는 “특정 계층을 대상으로 한 부동산 상품은 임차인 확보가 제한적일 수 있어 투자 대상으로 삼는다면 신중한 고려가 필요하다”고 주의를 당부했다.
- 2024-07-24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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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0·50세대 위한 평생 살 집 준비 지침서 ‘은퇴 후 평생 살 집’ 출간
- 의식주 가운데 하나에 해당할 정도로 중요한 ‘집’. 대한민국에서 집이 갖는 의미는 매우 크다. 누군가에게는 자랑거리지만, 또 누군가에게는 고민거리이기도 하다. 은퇴 후에는 편하게 만족하면서 살 수 있는 ‘나의 집’이 필요하다. 40·50세대인 지금부터 준비해야 로망의 집에서 여생을 보낼 수 있다. 40·50세대의 노후 살 집 마련 지침서 ‘은퇴 후 평생 살 집’이 최근 발간됐다. 이 책은 시니어 매거진 가 40·50세대를 위해 기획한 콘텐츠 큐레이션 매거진 시리즈 ‘dice@11pm’의 세 번째 책이다. 40·50세대는 자녀의 독립이나 은퇴로 인해 라이프스타일이 변하는 시기다. 그에 따라 노후에 지낼 장소를 선택하는 것은 깊은 고민이 동반된다. ‘은퇴 후 평생 살 집’ 편에서는 40·50세대의 고민을 덜고 준비를 돕고자 노후 주거지에 대한 정보를 총망라했다. 단독주택의 로망을 실현할 수 있는 귀농귀촌부터, 대기 행렬이 이어지는 프리미엄 실버타운까지 다양한 주거 유형을 소개한다. 독자는 나에게 맞는 집은 무엇인지 탐색하고, 어떻게 하면 마련할 수 있는지 정보도 얻을 수 있다. 파트1에서는 ‘에이징 인 플레이스’(Aging In Place), ‘다운사이징’ 등 주거 트렌드와 함께 노후에 어떤 준비를 하면 될지 전반적으로 설명한다. 파트2는 대한민국 인구 1000만 명이 넘게 거주하고 있는 아파트에 대한 정보를 담았다. 투자와 주거 목적을 모두 잡을 수 있는 방법은 물론 최근 주목받고 있는 실제 사례들도 엿볼 수 있다. 파트3에서는 단독주택 매입 방법부터 시골살이 로망을 실현한 사람들의 이야기까지 단독주택에 관한 다양한 내용을 포함했다. 파트4에서는 실버타운에 대한 정보를 제공한다. 만 60세 이상만 입주 가능한 실버타운의 장단점, 유형별 맞춤 실버타운 등에 대해 소개한다. 파트5는 ‘따로 또 같이’ 사는 코하우징을 중심으로 공동체 주거에 대해 얘기한다. 국내외 다양한 코하우징 사례도 만나 볼 수 있다. 파트6 마을과 도시 편에서는 초고령사회 진입을 앞두고 지역사회의 역할이 중요해진 이유와 전 세계 최근 동향에 대해 다뤘다. 파트1부터 6까지 순서대로 보지 않아도 무방하다. 주사위를 던져 나오는 숫자처럼 어느 파트를 봐도 도움이 되는 정보를 얻을 수 있도록 구성했다. 책 곳곳에 있는 QR코드를 활용하면, 지면의 물리적인 한계를 뛰어넘어 더 많은 정보를 습득 가능하다. 책을 다 읽고 나면, 노후 주거지 선택에 대한 마음을 굳히고 취득한 정보를 활용할 수 있다. 편집인은 “삶의 시간이 길어짐에 따라 ‘나이 들어서 어디서 살 것인가’는 우리에게 중요한 숙제가 됐다. 다이스앳 ‘은퇴 후 평생 살 집’을 준비하면서 다양한 주거 유형이 있고, 트렌드가 시시각각 바뀌고 있음을 느꼈다. 내가 가장 행복하고 편안한 삶이 가능한 집이 나의 노후를 위한 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인생의 중대한 숙제를 푸는 데 있어 ‘은퇴 후 평생 살 집’이 큰 도움이 됐길 바란다”라고 말했다. 의 ‘dice@11pm’ 시리즈는 40대 이상의 ‘후기청년’ 세대를 위한 다양한 은퇴·노후 정보를 다룰 예정이다. ‘dice@11pm’은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잠 못 드는 매일 밤 11시, 계획을 수립하기 위한 주사위를 제공한다는 의미에서 명명됐다. 6개의 면으로 이루어진 주사위처럼 ‘dice@11pm’도 여섯 개의 파트로 구성됐다. 는 프리미엄 경제신문 ‘이투데이’가 발행하는 중장년 대상 월간지다. 품격 있는 시니어들이 행복한 노후를 살아가는 데 필요한 건강, 금융·자산, 주거, 뷰티, 여행 등 다양한 콘텐츠를 제공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심사하는 ‘우수콘텐츠 잡지’에 2017년부터 3년간 선정되어, 공공성과 유익함을 인정받았다.
- 2024-03-08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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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고급 지향하는 실버타운, 롯데 VL르웨스트
- 2025년 10월 입주 예정인 ‘VL르웨스트’는 롯데에서 선보이는 실버타운이다. 목동에 마련된 모델하우스를 찾아 VL르웨스트를 미리 느껴봤다. 이 곳은 상위 1%의 소비자를 목표로 만들어진 만큼 최고급 시설이 감탄을 자아낸다. ◇서울 도심 최대 규모 자랑 ‘VL르웨스트’는 지하 6층~지상 15층, 4개 동, 총 810세대로 서울 실버타운 중 가장 규모가 크며, 서울 마곡지구에 들어선다. 마곡지구에는 상암 월드컵경기장 9배 규모인 마이스(MICE: 회의·포상관광·컨벤션·전시회) 복합단지가 조성된다. VL르웨스트 도보권에 마곡역과 마곡나루역이 위치하고, 백화점과 대형 쇼핑몰 등이 인접해 있다. 특히 시니어에게는 녹지 환경이 중요한데, 단지 내 지하 보행통로를 이용하면 축구장 70개에 달하는 규모의 ‘서울식물원’을 오갈 수 있다. VL르웨스트 상품 기획부터 마케팅까지 맡은 태원씨아이앤디의 추민석 전무는 “서울에서 800세대 이상의 규모에 기반시설을 갖춘 노인복지주택은 앞으로도 나오기 힘들 것”이라고 설명했다. ◇상위 1% 어반 시니어를 위한 곳 가정과 자녀에게서 벗어나 자신을 위해 아낌없이 투자하며 제2의 전성기를 사는 ‘어반 시니어’를 위한 VL르웨스트는 수준 높은 시설과 서비스를 자랑한다. 모델하우스만 둘러봐도 여기가 실버타운인지 호텔인지 구분이 안 될 정도다. 호텔 셰프의 다이닝 서비스가 제공되며, 단지 내 커뮤니티 시설에는 스크린골프, GX룸, 피트니스, 사우나, AV룸, 북라운지 등이 들어선다. 이 가운데 스크린골프, GX룸, 피트니스, 사우나 등은 부대시설 이용료가 별도다. 연간 이용료가 340만 원인데, 입주자는 50% 할인된 170만 원에 시설을 이용 가능하다. 한 달 14만 원 정도로 시세 대비 합리적인 가격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VL르웨스트에는 게스트룸도 별도로 존재한다. 부모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은 자녀는 게스트룸에서 편안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주거 공간도 시니어 맞춤형으로 설계됐는데, 특히 라이프스타일에 맞게 활용할 수 있는 ‘비스포크 발코니’에 힘을 썼다. 가든형, 헬스형, PET(반려동물)형 등으로 활용할 수 있다. 가장 인기가 많은 비스포크 발코니는 가든형이다. 쾌적한 공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반려식물 키우기가 취미인 시니어가 많아졌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눈길을 끄는 점은 반려동물을 위한 공간이 형성됐다는 점이다. 그동안 반려동물이 허용된 실버타운이 없었는데, VL르웨스트는 국내에서 최초로 반려동물 동반 입주 시스템을 도입했다. 추민석 전무에 따르면, 입주자들은 ‘난 여기 살러 오는 게 아니다. 서비스를 받으러 오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가정주부는 가사 노동에서 해방되고 싶고, 열심히 일한 가장은 노년에 편하게 쉬면서 여가생활을 즐기고 싶어 한다. 이에 따라 VL르웨스트는 질 좋은 시설과 서비스 제공이 중요하다는 입장이다. ◇차별화된 건강·의료 서비스 VL르웨스트는 무엇보다 건강·의료 서비스 강화로 노후에 대한 두려움을 덜어줄 계획이다. 입주 시 건강검진과 함께 유전자 검사를 진행한다. 개인 컨디션에 맞게 식단을 제공하고 재활 운동을 돕는다. 주거 공간 내에는 실시간으로 건강 컨디션을 확인할 수 있는 센서, 위급상황 발생 시 신속한 대처를 위한 비상콜 시스템을 도입했다. 또한 간이 승강기도 설치해 비상 시 탈출이 용이하도록 했다. 또한 단지 내에서 유명 재활 요양병원인 ‘보바스기념병원 건강관리센터’를 운영해 맞춤형 건강관리를 제공한다. 도보로 이동 가능한 ‘이대서울병원’에서는 전용 창구를 통해 대기 없이 즉각적인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 2023-11-13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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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요 증가하는 실버타운… 대기 시간 5년·보증금 최고 9억 원
- “입주까지 5년은 기다려야 한대요.” 서울시 강서구 마곡동에 들어서는 롯데건설의 실버타운 ‘VL 르웨스트’가 최근 청약을 진행한 결과, 최고 경쟁률 205대 1을 기록했다. 배우 노주현 등 유명 인사도 관심을 보였다. ‘VL 르웨스트’처럼 도심형 고급 실버타운은 평균적으로 2년에서 5년은 기다려야만 입주할 수 있는 상황이다. 초고령사회 진입을 앞두고 실버타운(시니어타운) 열풍이 불고 있다. 실버타운 왜 수요 증가했나 실버타운이란 사회생활에서 은퇴한 고령자들이 집단적 또는 단독적으로 거주가 가능하도록 노인들에게 필요한 주거 및 휴양·여가시설, 노인용 병원, 커뮤니티센터 등 서비스 기능을 갖춘 노인주거단지를 말한다. 한마디로 설명하면, 고령친화주택에 서비스를 결합한 것이다. 실버타운은 입주 보증금을 내고 달마다 이용료를 내는 임대형과 분양형으로 나뉜다. 분양형은 부동산 사기로 이어진 경우가 생기면서 2015년부터 신규분양은 금지됐다. 입지에 따라서는 1세대 전원형, 2세대 도심형, 3세대 도심 근교형으로 나뉜다. 보건복지부의 노인 실태 조사에 따르면, 노인 10명 중 8명은 노인 단독가구다. 이 중 부부가구는 58.4%, 독거가구는 19.8%에 해당한다. 자녀와 같이 살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는 ‘건강·경제적 안정, 개인생활 향유 때문’이라고 62%가 응답했다. 과거와 달리 자녀의 부양을 받지 않아도 된 그들이 거주할 공간을 찾다 보니 실버타운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졌다는 사실을 유추할 수 있다. 실버타운에서 살게 되면, 지금처럼 혹은 더 이상으로 즐거운 삶을 영위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 작용했을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노인의 수요와 다르게 전국의 실버타운은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2020년 기준 전국의 실버타운은 38개소였다. 현재 국내 만 60세 이상 인구는 약 1270만 명으로, 전체 인구의 25%를 차지한다. 그런데 실버타운에 입주할 수 있는 세대는 전국 기준 1만 세대에 불과하다. 즉, 수용력이 0.1%도 안 되는 상황인데, 실버타운에 입주를 원하는 사람은 늘어나니 평균 2년~5년의 대기 시간이 생기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그렇게까지 오랜 시간과 돈을 투자하면서 실버타운에 가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실버타운을 추천하는 가장 큰 이유로 ‘식사’를 꼽는다. 나이가 들수록 균형 잡힌 식사를 제대로 챙겨 먹기 어렵기 때문이다. 실버타운에는 식사를 해결할 수 있는 식당이 있다. 뿐만 아니라 실버타운에는 건강관리를 위한 물리치료실과 부속 의료기관, 운동시설 등이 있다. 서예실, 도예실, 노래 연습실 등 취미·여가 시설도 있으며, 대부분의 실버타운은 목욕탕, 사우나를 갖추고 있다. 실버타운의 입주 가능 연령은 만 60세 이상이다. 부부가 입주를 원한다면 부부 중 한 명만 60세 이상이어도 입주가 가능하다. 중요한 것은 실버타운은 생활비를 100% 본인이 부담한다는 점이다. 경제적 여유가 있는 시니어를 위해 만들어진 곳으로 정부의 지원을 기대하기 어렵다. 비싸지는 실버타운, 소외당하는 중산층 그렇다면 실버타운에 입주하고 싶다면 얼마나 경제적인 여유가 있어야 할까. 가장 먼저 입주 시 목돈이 필요하다. 임대형 실버타운이라면 입주 보증금이 필요하고 자가 소유형 실버타운은 주택 구입 비용이 든다. 매달 내는 생활비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부분은 식비다. 실버타운마다 의무식 제도가 있다. 식사를 하든, 하지 않든 일정한 식비를 의무적으로 내야 한다. 월 생활비에는 식비와 함께 공동시설 유지 및 관리 비용과 직원 인건비, 화재보험료 등이 들고, 주 1~2회 청소 비용도 포함된다. 그 외에 전유부분에 대한 공과금과 개인별로 사용하는 비용은 추가로 내야 한다. 상하수도 요금, 전기요금, 급탕비, 인터넷 사용료, 케이블 TV 시청료, 전화 요금 등이 해당한다. 즉, 실버타운에서 살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보증금과 생활비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그리고 정확한 비용은 실버타운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서울 소재 실버타운은 부부 기준으로 봤을 때, 보증금 4억~6억 원에 생활비 300만~400만 원 정도가 든다. 경기권이나 지방은 월 생활비가 200만~300만원 수준으로 내려간다. 지방의 경우 생활비가 100만 원 대까지도 가능하다. 그러나 현재 입주 대기까지 타면서 인기를 끄는 고급 실버타운의 비용은 ‘억’ 소리가 난다. 고급 실버타운 중 베스트로 꼽히는 곳은 서울시 광진구에 위치한 ’더 클래식 500’이다.보통 1인과 부부 기준이 다른데, 이곳은 1인 부부 모두 보증금이 9억 원이다. 여기에 약 500만 원의 월 생활비가 든다. 또한 ‘VL 르웨스트’는 보증금 7억 5000만 원, ‘삼성 노블카운티’는 보증금 3억 2000만 원에 해당한다.(1인 기준) 더욱이 올해 실버타운 사업은 전환점을 맞이할 전망이다. 약 7000세대가 입주 될 예정이다. 앞서 말한대로 ‘VL 르웨스트’가 분양되고, 서울시니어스 고창타워는 4차 입주자를 모집한다. 또한 대형 디벨로퍼(부동산 개발업체) 엠디엠그룹의 계열사 엠디엠플러스도 실버타운 ‘백운호수 푸르지오 숲속의 아침’을 짓고 있으며, 연내 분양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러나 고급 대형 실버타운이 연이어 조성되는 것에 따라 ‘중산층이 소외된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정부에서는 실버타운에는 경제적인 지원을 안 하지만, 저소득층을 위해서는 노인복지주택 지원 사업을 펼치고 있다. 중산층 소외 지적을 의식한 듯, 정부는 저소득층과 중산층의 실버타운을 활성화하겠다는 계획을 최근 밝혔다. 2027년까지 매년 1000호를 공급하겠다는 것. 특히 서울시는 서울형 실버타운 ‘골드빌리지’를 만들 계획이다.
- 2023-07-18 0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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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생을 보낼 내 집 “신체 능력 떨어질수록 성능은 올려야”
- 사람은 누구나 노인이 된다. 그러나 ‘웬만한 50대보다 건강한 70대’, ‘중증 질환을 가진 40대’ 등 개인의 신체 능력과 노화 수준은 다양하다. 보조기구의 사용 여부, 지금 거주하는 주택의 상황 등 다양한 요인에 따라 생활 방식도 다르다. ‘단계별 맞춤 주거 설계’가 필요한 이유다. 비용, 시간, 노력을 과하게 들이지 않고 원상 복귀가 어려운 구조 변경은 최소화해 집을 정비한다면 노인뿐 아니라 노인이 될 모두에게 ‘평생 공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권오정 건국대학교 건축학과 교수는 주거복지 정책 및 제도, 노인 주거계획, 장애인 주거계획, 주거 서비스 개발 및 평가 등의 분야에서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주거 전문가다. 그가 생각하는 ‘오래도록 건강하게 살 수 있는 집’이란 무엇일까? Q. 나이가 들수록 ‘내 집’을 몸 상태에 맞게 개조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A. 익숙한 내 집에서 안정감을 느끼며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이죠. 실버타운에 입주해 고급 서비스를 누릴 수도 있지만, 비용이 만만치 않은 데다 그 유형이 다양하지 않습니다. 공공실버주택은 소득 수준이 일정 기준 이하인 사람을 우대하기 때문에 쉽게 입주할 수 없어요. 중간에서 중간 이상 정도의 소득 수준을 가진 사람들을 위한 주거 형태는 아직 보편화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집을 과하게 뜯어고치자는 말이 아닙니다. 현관에 접이식 의자를 설치해 편하게 신발을 갈아 신도록 하고, 복도와 거실, 방으로 이어지는 길의 턱을 모두 없애는 식입니다. 높낮이를 조절할 수 있는 가구를 배치해 수납을 돕고, 화장실에 손잡이를 부착하는 방법도 있어요. Q. 유니버설디자인*의 개념이네요. A. 그런 셈이죠.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의 국가기관, 지자체, 기업에서 하는 개조는 일괄적으로 진행됩니다. 단순히 여닫기 쉬운 문손잡이 부착, 적절한 높이의 부엌 작업대 설치 등 소극적인 수준에 머무르고 있어요. 대상도 장애인, 독거노인 등 사회적 약자로 범위가 한정적이고요.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하되, 해당자의 신체적 능력과 현재 집 상태 등을 고려한 단계별 설비가 필요해요. 더불어 그 사람의 어떤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한 개조인지, 목적을 확실히 인지하고 작업을 계획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유니버설디자인: 성별, 나이, 국적, 문화적 배경, 장애 유무와 상관없이 누구나 손쉽게 쓸 수 있는 제품 및 사용 환경을 만드는 디자인 Q. 단계별 설비가 왜 필요한가요? A. 사람마다 노화 수준에 따라 수행할 수 있는 일의 범위와 자립 정도, 생활 방식이 달라요. 때문에 다양한 유형에 맞게 개조 원칙을 세분화해야 합니다. 개인이 자신의 상태를 살피고 집을 바꾸는 것도 좋지만, 국가적인 지원이 필요해요. 정부가 시민에게 좋은 거주 환경을 제공하는 데 일조하고자 유형을 여섯 단계로 나누고, 개조 및 계획 기준을 제시했습니다.(27쪽 표 참고) Q. 그러나 아직 교수님이 말씀하시는 ‘노화 대응을 위한 주택 정비’를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A. 안타까운 현실이에요. 국가, 개인, 관련 기업조차도 해당 내용에 대해 무관심한 편입니다. 정부는 노인 임대주택 공급 등 실적이 명확한 분야에 더 집중해 투자하고, 기업에서도 주택 개조의 중요성을 느끼지 못하니 다양한 디자인 상품을 개발하지 않아요. 수요가 없어 수익사업으로 발전시키기 어렵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반면 가까운 일본에는 고령자를 위한 실내 디자인 제품이 아주 많습니다. 안전 손잡이 하나도 소재와 마감재, 색을 다양하게 조합했어요. 촌스럽거나 ‘보호시설에서 쓸 만한 물건’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세련됐죠. Q. 일본 정부는 개호보험(장기요양보험)을 통해 주택 개조를 돕고 있다고 하던데요. A. 일본은 20만 엔(약 200만 원) 정도 지원하는 제도를 만들었어요. 주거 환경 개선 급여로요. 그 덕에 주택 개조 시장이 엄청나게 커졌어요. 소득분위별로 지원 대상을 정하는 우리나라와 차이가 있죠. 주택 개조 지원을 통해 안전하게 자립적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늘면 결국 사회적인 부양 부담이나 의료비 절감 효과도 있을 겁니다. Q. 개인이 나서서 본인의 집을 가꿔보려 해도 쉽지 않겠습니다. A. 실제로는 나이가 들어 신체 능력이 떨어진 사람조차 집을 고쳐 써야겠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문턱에 걸려 넘어져도 ‘아, 내가 조심하지 못했구나. 앞으로 잘 보고 걸어야지’라며 자책해요. 자연스러운 노화로 시야가 좁아지거나 보폭이 좁아져서 그런 것뿐인데 말이죠. 몸이 노화할수록 단열·누수·균열과 같은 건축물의 성능을 올리는 건 기본이고, 거주자의 공간 활용도를 높여야 합니다. 고쳐야겠다고 마음먹고 인터넷으로 검색해본다 한들 노화 대응을 위한 전문 주택 개조 업체를 발견하기 힘들어요. 진단이나 컨설팅을 해주는 곳은 물론이거니와 전문 시공사도 없죠. 인테리어나 시공 전문가에게 “현관 앞 통로에 안전 손잡이 설치해주세요”라고 요청하면, “그걸 왜 설치하세요?”라는 질문이 돌아와요. 얼마 전 제가 겪은 일입니다. 하지만 안전 손잡이가 있으면 고령자나 장애인뿐 아니라 건강한 사람들도 편리하거든요. 아이들도 마찬가지고요. Q. 인식 개선이 굉장히 중요하겠네요. A. 맞습니다. 나라에서 홍보활동을 해주면 물론 좋겠지만, 드라마나 영화에 나오는 연예인의 집에서 생활을 보조해주는 가구나 기계를 노출했을 때 파급 효과도 무시할 수 없어요. 누가 봐도 아름답고 화려한 외모를 가진 사람이 지팡이를 짚고 걸어 다닌다면 처음에는 이질감이 들겠지만 나중에는 완판 행진을 이어갈지도 몰라요. 다양한 매체에서 그런 부분을 많이 다뤄줬으면 좋겠습니다. 다 같이 노력해야 우리 모두의 노후가 행복해지지 않을까요.
- 2023-05-08 0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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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양형’ 실버타운 폐지됐는데, 실버타운 ‘분양’ 가능한 이유
- 최근 실버타운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진 만큼 실버타운 ‘분양’ 시장도 뜨겁다. 23일 청약 마감한 롯데건설의 ‘VL르웨스트’의 평균 청약 경쟁률은 19대 1을 기록했다. 롯데건설에 따르면 가장 인기가 높았던 ‘4군’(전용 103㎡)은 205대 1이라는 높은 경쟁률을 기록했다. 실버타운에 흥미가 생긴 당신은 더 많은 정보를 찾아 나선다. 듣자 하니 실버타운이 ‘현대판 고려장’ 취급 받던 것은 옛말이란다. 입주하면 직접 챙기지 않아도 전문가가 짜주는 식단을 삼시세끼 식사가 가능하고, 입주자 전용 시설에서 여가 프로그램을 즐기거나 맞춤형 건강관리 서비스를 누릴 수 있다고 한다. ‘미래의 내가, 혹은 나이 드신 부모님이 이런 곳에서 지내면 좋겠다’. 실버타운에 대한 정보를 접할수록 생각이 커져만 간다. 그런데 잠깐, 빠르게 정보를 훑어 내리던 당신에게 의문이 생긴다. ‘2015년 노인복지법 개정으로 분양형 실버타운은 폐지됐다’는 대목에 이르렀을 즈음일 것이다. 과장 광고와 부실 운영 등의 이유로 피해 입은 사례가 잇따르면서 폐지됐다는 것. 그렇다면 내가 봤던 ‘실버타운 분양’에 대한 언급은 다 무엇인가? 분양형이 폐지됐다면, 앞으로 실버타운 한 세대를 소유할 수 있는 방법이 영영 사라진 것일까? 실버타운 초심자가 품었을지도 모르는 질문 몇 가지를, 실버타운 전문 유튜버 ‘공빠TV’의 문성택 씨에게 물어봤다. Q 실버타운 ‘분양’과 ‘분양형 실버타운’의 개념이 헷갈린다. A 일반적인 아파트 분양의 사례를 떠올리기 때문에 혼동하기 쉽지만, ‘분양’의 사전적 의미는 ‘전체를 여러 부분으로 갈라서 여럿에게 나누어 줌’이다. 전세나 공공임대에서도 분양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이 법적으로는 맞다는 뜻이다. 다만 여럿에게 나눠주는 실버타운이 ‘입주자 소유’이냐, ‘임대’이냐의 차이일 뿐이다. Q 그렇다면 분양형 실버타운이 무엇인가? A 분양형 실버타운은 일반 주택처럼 주택 소유권을 갖되, 제공되는 실버타운 서비스에 대한 이용료를 매월 운영사에 지급한다. 일반 주택과는 만 60세 이상만 살 수 있다는 점이 다르다. 개인 간에 사고파는 것은 당연히 가능하다. 90세대 이상의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실버타운 중 30~40%가 개인이 소유하고 있는 분양형이다. Q 분양형 실버타운은 이미 폐지된 게 아닌가? A 2015년 노인복지법 개정으로 폐지된 것이 맞다. 그러나 분양형 실버타운이 폐지되기 전 허가를 받았던 실버타운은 개인간 거래가 가능하다. 이에 해당하는 실버타운은 △서울시니어스 고창타워 △동백 스프링카운티자이 △용인 고기동 실버타운 등이 있다. 서울시니어스타워의 실버타운 총 6곳 중에서는 서울시니어스 서울타워 한 곳만 100% 임대형이고, 나머지는 분양형과 임대형이 섞여 있다. 스프링카운티자이의 경우 대단지 아파트형이라 매물이 많고 거래도 활발한 편에 속한다. 용인 고기동 실버타운은 아직 사업이 진행 단계에 있는데, 제대로 마무리된다면 새 매물을 자기 명의로 분양받을 수 있는 마지막 분양형 실버타운이 될 것이다. Q 분양형vs임대형, 어떻게 다른가? A 소유권을 누가 갖고 있는지를 봐야 한다. 임대형 실버타운은 실버타운 운영 업체에게 소유권이 있다. 운영사에서 거주자에게 전세 및 월세 등 임대를 내주는 방식이다. 실버타운에 따라 의무 거주기간이 정해진 곳이 있어, 이 기간을 채우기 전 퇴소할 경우 위약금이 발생되므로 계약 전 확인이 필요하다. 최근 청약이 끝난 마곡 VL르웨스트, 부산 VL라우어도 임대형(전세 분양)이며, 최소 의무 거주기간을 2년으로 두고 있다. 또한 종교 재단에서 운영하는 실버타운은 대부분 임대형 실버타운이라고 보면 된다. 분양형 실버타운은 입주자가 소유권을 가지고, 매매 거래가 가능하다. 몇몇 실버타운에 한해서는 외국에 나가야 하는 등의 부득이한 사정이 있을 때 전세, 월세 등 임대를 주는 것이 허용된다. 확인한 바로는 스프링카운티자이와 서울시니어스 고창타워에서는 이를 허용하고 있다. Q 분양형과 임대형 중 무엇을 선택할지 참고할만한 기준이 있다면? A 거주는 실버타운에서 하되, 본인 명의의 일반 주택이나 아파트를 갖고 투자를 하고 싶다면 임대형이 적합하다. 반대로 '내 집'이어야 하고, 더 이상 거주지를 옮길 생각이 없거나 주택연금을 들어 연금 수령하며 평생 살겠다고 생각한다면 분양형을 추천한다. Q 분양받은 실버타운을 주택연금 들 때 유의해야 할 점이 있다면? A 일반 주택에 비해서는 연금 수령액이 약 85% 정도로 적다는 페널티가 있다. 만 60세 이상만 거래 및 입주가 가능하다는 조건 등으로 거래에 어느 정도 제한이 있기 때문이다. Q 아직 남아있는 분양형 실버타운,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A 공인중개사를 통하기도 하고, 실버타운 운영사에서 직접 거래를 중개하는 사례도 있다. 스프링카운티자이처럼 대단지 아파트의 경우에는 부동산을 통해서 매물을 구할 수도 있다. Q 임대형 실버타운의 보증금에 대한 안전 장치는 있는가? A 있다. 다른 아파트와 마찬가지로 전입신고 후 확정일자를 받으면 임대차보호법에 의해 보호받을 수 있다. 또 전세형의 경우 전세권 설정 등기를 하거나, 보증금 보증 보험을 들면 된다. 단, 이러한 안전 장치가 제대로 운영되고 있는지 계약 전 확인해야 한다.
- 2023-03-27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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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0+ 시니어 신춘문예 공모전] 대륙에서 길을 묻다
- 길을 잃다 지천명(知天命)의 나이에 길을 잃었습니다. 사업이 무너지니 가정도 파탄되고 종교생활도 다 무너졌습니다. 그동안 알던 모든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불편하고 싫었습니다. 자격지심(自激之心)인지 저의 현재 상황을 일일이 설명하는 것에 비참함을 느꼈습니다. 방황하며 현실을 도피했습니다. 일부러 서울을 떠나 아무도 모르는 타지(他地)에 가서 머물렀습니다. 그러다가 중국까지 도망치듯 오게 되었습니다. 흔히 인생을 B(Birth)와 D(Death) 사이의 C(Choice)라고 합니다. 태어나서 죽기까지 매번 선택하며 사는 것이 인생이라는 뜻입니다. 그중에 중요한 3대 선택을 결혼, 직업, 종교라고 하는데, 나이 50세에 이 모든 것들의 기반이 한순간에 붕괴된 것입니다. ‘과연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나는 어떤 선택이 잘못된 것일까?’ 지나온 저의 50년을 곰곰이 반추해보았습니다. 나의 1차 꿈 저는 가난한 집의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저의 아버님은 1·4후퇴 때 월남해온 이산가족입니다. 남한에 친척이 없었고 저의 어머님을 중매로 만났지만 가정에 정(情)을 못 붙이시고 한평생을 유랑하듯 밖으로만 떠도셨습니다. 그래서 어머님이 홀로 저희 3남매를 키웠습니다. 어머님의 고생을 익히 보고 자란 저는, 빨리 커서 돈 벌어 어머님께 집 한 채 사드리는 것이 1차 목표였습니다. 대학 갈 때쯤 우연히 저의 주민등록초본을 떼어보았는데, 거기에는 제 나이보다도 주소지 이전 횟수가 훨씬 많았습니다. 그만큼 더 싼 곳으로 자주 이사를 다녔다는 의미입니다. 대학 시절엔 저를 특별히 아끼시는 교수님께서 제게 미국에서의 7년간 석·박사 유학 코스를 권하며, 공부하고 돌아와 우리 대학의 교수가 되라고 기회를 주셨는데, 저는 거절했습니다. 제게는 현재의 대학생도 과분하며, 저는 제가 교수되는 것보다, 빨리 돈을 벌어 어머님을 편히 모시는 게 더 중요하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랬더니 교수님께서는 “사람이 돈을 쫓으면 추해진다. 돈이 너를 쫓아오도록 해야지” 하시며 저를 훈계하셨지만, 그때 저는 그 말이 전혀 귀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군(軍) 입대할때도 경제생활을 고려해 장교를 선택했고, 대기업에 입사했다가 1년 반 만에 대형 증권사로 이직(移職)을 합니다. 거기서 3년 만에 드디어 꿈을 이룹니다. 드디어 어머님께 집을 사드리게 된 것입니다. 그때의 제 나이가 서른 살이었습니다. 이후 증권사에서 저는 탁월한 능력을 인정받고 승승장구합니다. 고민이 시작되다 그리고 이어 제가 서른한 살에 아들을 낳았는데, 그때에 아들 이름을 지으며 저는 처음으로 인생에 대해 고민했습니다. ‘모든 사람이 저처럼 좋은 집을 사고 좋은 차를 타며, 가족끼리만 잘 먹고 잘 사는 게 목표일까? 그 이상의 인생은 없는 걸까? 나중에 크면 아들에게 인생이란 무엇이라고 말해줘야 할까?’ 그런 생각들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아들의 이름을 지었습니다. ‘금강산(金剛山)’. 저의 성이 김(金)이니, 김강산이나 금강산이나 한자(漢字)의 표기는 같았습니다. 제가 그때는 교회도 열심히 다닐 때였기에, ‘역사의 하나님’께서 앞으로 우리 민족의 미래를 열어주실 때, 제 아들 녀석을 ‘금강산 찾아가는’ 통일의 도구로 써주십사 하는 의미였습니다. 저는 비록 제 가족밖에 모르는 인생이지만, 제 아들만큼은 그 이상의 가치 있는 인생을 살게 해달라는 기도의 산물이었습니다. 한편 증권사 시절은 가히 저의 전성시대였습니다. 최연소 영업추진부장, 지점장, 연수원장, 홍보실장, 강남본부장(11개 지점 총괄), KBS 라디오 증권방송 등 종횡무진(縱橫無盡)했고, 급여도 억대 연봉이었습니다. 20여 년 전에 연봉 1억 원이면 거의 상위 1% 수준이었습니다. 모두가 부러워하는 위치였는데, 언제부터인가 왠지 가슴 한구석이 허전했습니다. 경제적인 풍요가 더 이상 나를 행복하게 하지 않았고, 가시적 1차 목표가 사라진 인생은 조금씩 허무해지기 시작했습니다. 특별히 IMF 때 저는 증권사 신촌지점장이었는데, 문득 제가 하는 일에 회의(懷疑)가 생겼습니다. ‘조국 대한민국은 현재 달러가 없어서 국가부도 사태인데, 지금 내가 하는 일은, 이 혼란 속에서도 돈 있는 사람들에게 돈을 좀 더 벌게 해주는 역할 정도가 아닌가? 과연 이 일을 계속해야 하는 걸까?’ 본질적인 고민이 시작되었습니다. 결국 증권회사에 사표를 제출하게 되었을 때, 저를 아끼셨던 사장님께서 제게 물었습니다. “지금 잘하고 있는데, 왜 갑자기 사표를 내는가?” 그때에 저는 ‘재미가 없어서요’라고 답한 기억이 있습니다. 진심이었습니다. 그 말에 사장님께서는 씨익 웃으시며 “사표는 유보할 테니, 유급으로 한두 달 푹 쉬고 충전해서 돌아오라”고 말씀하셨고 실제로 그렇게 처리해주셨지만, 저는 결국 사표를 철회하지 않았습니다. 헤드헌터(Head Hunter)사의 유혹 증권사 퇴직 얼마 전부터 강남의 유명 헤드헌터사로부터 전화를 받았습니다. 아시는 것처럼, 대기업이나 국가기관이 소수의 전문가를 특별 채용하고자 할 때는 공개채용을 하지 않고, 헤드헌터사가 보유한 분야별 전문 인력 풀에서 추천을 받곤 합니다. 어찌된 일인지 그쪽 추천 리스트에 저도 포함되어 있었나 봅니다. 기분 나쁘지 않았고 신기했습니다. 첫 번째 제안은 외국계 증권사의 홍보팀장이었는데 제가 거절했습니다. 우선은 IMF 시기에 외국 회사라는 게 싫었고, 저의 공식적인 답변은 그쪽 역할이 지금보다 작고, 연봉도 저의 현재 수준이 더 높다는 이유였습니다. 그러자 2개월 후 다시 제안이 왔습니다. 이번엔 역할도 크고 연봉도 맞춰주겠다고 했습니다. 그게 우리금융그룹 홍보실장이었습니다. 일단 마음이 흔들렸습니다. 우리금융은 IMF 때 공적자금을 받은 5개 은행을 통합하여 만든 우리나라 최초의 금융지주회사인데, 빨리 회생하여 주가를 높여야 우리나라가 IMF로부터 벗어나는 상황이었습니다. 일단 면접이라도 보아달라는 헤드헌터사의 거듭된 요청을 받아들여, 면접을 보고 결국 입사를 결정하게 됩니다. 가서 만나보니, 하나은행을 성공적으로 경영하셨던 윤병철 회장님께서 우리금융그룹 초대회장으로 오셨고, 이후에 금융감독원장이 되신 전광우 부회장님이 제 직속 상관이셨습니다. 두 분 모두 능력도 탁월하시고 인품도 훌륭하셨습니다. 특별히 저를 많이 아껴주시고 믿어주셔서 가까이서 많은 일들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근무여건은 녹녹지 않았습니다. 산하의 은행들은 지주회사를 마치 점령군처럼 인식하여 노조를 중심으로 사사건건 반발했고, 언론도 호의적이지 않아, 매일 밤 언론사를 찾아가 부정적인 기사를 막아내는 것이 저의 주된 업무가 되었습니다. 또다시 흘러가는 시간이 아깝게 느껴졌고, 저는 결국 1년 만에 최종 사직을 합니다. 저의 사표에 대한 답신으로 윤병철 회장님이 써주신 덕담 가득한 친필 서한(書翰)에, 저는 한 번 더 감동하며 고별인사를 드렸습니다. 새로운 세상을 엿보다 총 18년간의 직장생활을 정말 미련 없이 정리하고 나서는, 직장인 시절에 제대로 할 수 없었던 일들에 관심을 갖고 시간을 보냈습니다. 첫째는 각종 동문회 참가였고, 둘째는 강사 활동이었습니다. 동문 모임으로는 서울시립대학교 대학동창회와 ROTC 총동기회가 있었는데, 나름 열심히 하다 보니, ROTC 21기 총동기회장으로 전국을 누볐고, 당시 ROTC 중앙회장이셨던 5기 차인태(전 MBC 아나운서) 회장님과도 좋은 신뢰를 쌓았습니다. 이어 회사 다닐 때부터 간간이 요청이 있었던 몇몇 대기업에서의 강의 요청을 이제는 편하게 다닐 수가 있어서 좋았습니다. 삼성그룹, 효성그룹, 푸르덴셜생명 등에 리더십, 프레젠테이션, 커뮤니케이션, 네고시에이션(협상기술) 등을 주제로 4~8시간까지 강의를 진행하곤 했습니다. 그것이 인연이 되어 푸르덴셜생명으로부터 한 가지 큰 제안을 받게 됩니다. 난치병 어린이들의 마지막 소원을 들어주는 ‘한국 메이크어위시(Make A Wish) 재단’의 초대 사무총장을 맡아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비록 제겐 생소한 분야였지만, 자원봉사자 선발 및 교육, 소원행사 감동연출 및 홍보, 그리고 기업으로부터 후원금 조달업무 등을 총괄하는 역할이어서, 저를 적임자로 평가한 것 같았습니다. 저에 대한 기대도 감사하고 좋은 일이어서 흔쾌히 수락했습니다. 한국 메이크어위시 재단의 사단법인 인허가 설립부터 총 2년여를 봉사했는데, 미국재단으로부터 매뉴얼 교육을 받고, 소아암병원으로부터 소원 대상자를 추천을 받아, 최선을 다해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수십 건의 소원성취 행사를 진행했습니다. 그때에 저는 많은 것을 배우고 깨달았습니다. ‘약값이나 치료비를 지원하지 왜 소원성취인가? 스스로는 아무것도 꿈꿀 수 없는 어린이들에게 단 한 번의 소원은 무얼까? 인간에게 진정한 소원이란?’ 이런 물음을 통해 사회봉사에 대해 새롭게 눈을 뜨게 되었고, 이런 생각은 후일 중국에 와서도 나름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새로운 큰 도전, 그리고 실패 직장생활을 그만두고 깊이 생각한 것은, 돈 이상으로 의미 있고 하고 싶은 일을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제게는 ‘한류문화 관광사업’ 이었습니다. 이 사업을 선택한 이유는 첫째, 우리 문화를 사랑하고 상품화하는 것은 제가 잘할 줄 아는 분야였고, 둘째, IMF를 겪고 보니 국가적으로 달러 버는 일이 중요했는데, 이 일이 바로 그쪽 분야의 일이었고, 셋째는 우리나라 환율이 오르니, 이른바 인바운드(inbound, 한국 입국) 관광사업에 경쟁력이 높아졌던 시기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사실은 2002년 한일 월드컵에 맞춰서 일을 시작하려던 계획이었는데, 여기저기 세상을 엿보다가 좀 늦어져서 2004년에 도전을 시작했습니다. 한국에 오는 외국 관광객들에게 한국적 감동을 추가로 전하며, 1인당 100불씩 더 쓰게 하자는 내부 경영목표를 세우고, 독창적 한류문화 전시 및 상품개발 사업을 기획합니다. 그리고 김포공항 국제선 제2청사 지하 1층에 약 1000㎡ 규모로 ‘한류스타 홍보관’을 제법 호화롭게 개장했습니다. 전시관 조성에만 총 9억 원을 투자했습니다. 당시 일본에 한류 붐이 있었고, 국제선 제2청사는 도쿄 하네다공항을 직행하는 항공편이 매일 16편이 있었습니다. 김포공항의 한국공항공사는 물론, 문화관광부, 한국관광공사 등의 기대와 관심을 한껏 받으며 사업을 자신감 있게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초기에 공동으로 지분투자를 약속했던 일본 도쿄의 파트너 관광사업자가 약속을 어기면서 틀어지기 시작했고, 개장 6개월 후부터 갑자기 일본의 한류 붐이 식으면서 위기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래서 직접 일본 도쿄돔에서 열린 한류 페스티벌 행사에도 참가하고, 말레이시아와 중국 등에도 직접 진출을 시도했습니다. 중국은 그때 처음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수익 다변화를 위해 국내 이벤트 기획사로도 사업영역을 넓혔습니다. 당시 오세훈 시장 시절에 서울시 장애인 예술제도 연출했고, 노인협회 주관의 세계노인문화예술제를 8개국을 초청하여 속초와 설악산에서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그 외에도 포천 양귀비 꽃 축제, 대기업 행사 등을 수주했습니다. 그러나 결국 불황과 위기를 극복하지 못하고, 개장 4년 만에 전시시설을 김포공항에 기부체납하면서 사업장의 문을 닫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부채청산을 위해 모든 개인 재산 정리를 했고, 가정도 파탄을 맞습니다. 돌이켜보면 뜻만 좋았지 저 자신이 자신감을 넘어 너무 교만했고, 위기대응 준비가 충분하지 못했고, 모두가 저의 부덕한 탓이었습니다. 어머님이 계시기에 졸지에 더 이상 갈 곳도 없고 반기는 곳도 없었습니다. 낮에는 대인기피증이 생겼고, 밤에는 극심한 불면증에 시달렸습니다. 몸도 마음도 피폐해졌습니다. 개인적으로 나쁜 생각도 참 많이 했었지만, 그때마다 어머님이 슬퍼하실 얼굴이 떠올라서 참고 참았습니다. 어머님은 당시에 큰아들이 고생한다고 제가 사드린 집을 처분하여 제게 마지막 힘을 보태주셨는데, 저는 그 기대마저도 부응하지 못하고 무너진 것입니다. 저 때문에 졸지에 어머님마저도 다시 사실 곳이 마땅치 않은 상황이 되었습니다. 사실은 그 몇 해 전부터 어머님은 몸이 많이 상하셔서 거의 거동을 못하시는 상태셨습니다. 한약방에서는 맥박도 약하고 보약도 효험이 없다고 주지를 않았습니다. 그런데 제가 사업이 망하고 가정파탄마저 겪게 되자, 어머님은 기적처럼 아픈 몸을 털고 다시 일어나셨습니다. 이유는, 갈 곳 없는 저의 끼니를 챙기시고 저의 옷을 세탁해주기 위해서였습니다. 정녕 어머니는 위대하다는 말을 저는 그때 다시금 느꼈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인가, 원인도 모른 채 제가 밤새 심한 복통으로 끙끙 나뒹군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어머님은 두 손으로 저의 아픈 배를 계속 문지르시며, 당신은 평소 불교 신자셨는데 제가 믿는 하나님을 외치시며 ‘우리 큰아들을 제발 살려달라’고 밤새 우셨습니다. 너무도 아프고 길었던 그날 밤, 어머님의 그 뜨거운 눈물과 안타까운 외침 소리를 저는 결코 잊지 못합니다. 중국으로 떠나오다 그런 어머님을 뒤로하고 저는 중국행을 선택합니다. 당시 중국과는 비록 지지부진했지만, 고구려의 420여 년간 수도였던 집안시(集安市) 정부 관료들과 제가 고구려축제를 협의하던 중이었던 바, 거기에 마지막 희망을 걸고, 아니 그것을 핑계로 한국을 도망치듯 떠납니다. 어쩌면 아무도 없는 무인도(無人島)를 찾는 마음이란 표현이 더 솔직할 겁니다. 집안시의 고구려 프로젝트는 3개월 뒤 결국 무산됩니다. 제가 한국인이라는 이유였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한국인이 중국에서 고구려를 거론하는 것은 그 자체가 금기시되는 일이었습니다. 집안시 정부 책임자도 처음에는 그 정도로 민감한 문제인 줄을 미처 몰랐던 것 같았습니다. 집안시 프로젝트는 무산되었지만 저는 한국으로 돌아갈 마음이 없었습니다. 아무런 대책도 목적도 없이 그저 좀 더 중국에 머물기로 하고 지인이 있는 곳을 찾았는데, 그곳이 바로 단동시(丹東市)였습니다. 단동은 압록강을 사이로 북한 땅 신의주와 마주하고 있으며, 북한 대외무역의 약 80%가 단동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단동은 한마디로 우리말 백화점이었습니다. 당시 단동에는 중국 조선족이 1만 5000명, 북한 사람이 1만 명, 북한에서 태어난 중국 화교(華僑)가 1만 명, 요동대학교 한국·조선(북한)어과 학생들이 1000여 명, 그리고 한국인이 총 2000명 정도 살고 있었습니다. 대부분 대북사업 관계자이거나 선교사였습니다. 누구를 만날 일도 없고 아무 일과도 없는 저는, 매일 새벽 혹한의 추위에도 저를 채찍질하듯 하염없이 압록강 산책로를 걸었습니다. 새벽 교회당을 찾아 무릎 꿇고 홀로 숨죽여 울었습니다. 그리고 매일 밤, 강 건너 불 꺼진 북한의 신의주 땅을 멍하니 넋 놓고 바라보았습니다. 그렇게 저의 ‘살아남아 버티기’의 중국 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사람이 살고 있었네 그렇게 한두 달을 보내다 보니, 점점 주변 사람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거기에도 저와 똑같은 사람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여러 해 전 소설가 황석영이 북한을 다녀와서 쓴 책의 제목이었던 ‘사람이 살고 있었네’가 생각났습니다. 한인교회를 통해 한국 사람들을 접하고 단동한인회도 구경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제가 시간이 많으니 한인회 봉사를 제의받아, 당시 막 설립한 단동한국문화원의 부원장직(원장은 한인회장이 겸직)과 한인회 사무국의 사무총장으로 무료봉사를 시작했습니다. 단동한인사회는 대부분 1992년 한중수교 직후와 1997년 IMF 전후로 중국에 건너오신 소상공인 분들이 많았던 바, 아마도 저와 같은 대기업 출신의 사회 경험자가 드물어, 오자마자 졸지에 감투를 쓰게 된 것이었습니다. 봉사의 길에 들어서다 뜻밖에 할 일이 생긴 저는, 대기업에서의 기획력과 이벤트 기획사 대표로서의 경험을 되살려 많은 일들을 추진했습니다. 우선 요동대학교 한국·조선어과를 찾아서는 한국어 말하기 대회와 글쓰기 대회, 그리고 합동 문화공연을 매년 추진했습니다. 재외동포재단에는 기획서를 보내 한인회관 건축지원금을 50% 받고 나머지는 현지 모금하여 3층짜리 아담한 단동한인회관을 건립했습니다. 한편, 장기체류 단동 한인들의 대부분이 현지인과 결혼한 다문화가족들이었는데, 이들에 대한 지원체제가 없어, 문화원 내에 다문화가족 복지센터를 만들고, 당시 단동을 방문한 국회 통일외교안보위의 박선영 국회의원님과 심양총영사관의 협조를 얻어 다문화가족 합동결혼식과 단체 한국 신혼여행을 추진했습니다. 그리고 조선족학교에 가보니, 70% 이상 대부분 학생들은 부모가 한국에 돈 벌러 가서 없는 결손 가정이거나 조부모 위탁상태였고, 소학교를 졸업해도 별도 우리말도 잘 못하고 중국어도 잘 못하는 언어수준에다, 문화예술 방면 재능교육 발견은 엄두도 내지 못하는 상황이었습니다. 비록 몸은 건강해도 스스로는 아무것도 꿈꾸지 못하는 조선족 아이들이 너무 안타까웠습니다. 그래서 저는 먼저 문화원에서 조선족 학생들을 대상으로 우리말 교육과정을 시작했고, 해마다 한국어 말하기 대회를 개최하여 수상자들에게 한국문화체험여행을 제공했습니다. 제가 단동에 머문 4년 동안 총 140여 명의 학생들이 한국을 방문했는데, 여행비용은 경기문화재단과 한국 지인들의 개인적 도움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조선족 학생들의 예술적 잠재력을 끌어내기 위해, 나아가 그들 스스로가 무언가를 꿈꾸게 하기 위해, 제가 예술단장이 되어 직접 학교에 가서 학생 67명을 선발하여 ‘압록강 청소년예술단’을 공식 발족하였습니다. 그 뒤 8개월간의 훈련 후에 5성급 호텔에서 1000여 명의 학교관계자과 학부모들을 모시고 ‘내 마음의 북두칠성’이라는 제목의 예술단 창단공연을 성공리에 추진하였습니다. 대부분 첫 무대를 경험하는 것이라 감동은 컸고, 학교를 향한 후원금도 쏟아졌고, 부모님들은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심양으로 진출하다 이런 저의 활동들이 인근 지역에도 소문이 났던 모양입니다. 심양총영사관에서는 당시 조백상 총영사님의 파격적 배려로 저를 총영사관의 경제문화행사 기획자 겸 사회자로 발탁해서 일을 맡겼습니다. 마침 한중수교 20주년도 겹쳐서, 각 도시마다 한중우호의 밤 행사가 있었고, 중국 동북3성(요녕성, 길림성, 흑룡강성) 27개 대학을 대상으로 한 ‘한국어 말하기 대회 및 K-Pop 경연대회’, 그리고 한국 국경절(개천절) 기념 총영사관 한복패션쇼 등의 행사를 연출했습니다. 그러면서 항일유적연구소장과 동북3성 한국인연합회 사무총장을 맡게 되어 동북3성 최대도시인 심양으로 진출하게 됩니다. 심양은 단동의 10배 규모로, 외곽까지 도농(都農)인구 합계가 총 2000만 명인 대도시입니다. 중국 동북3성에 와서 알게 된 사실은, 전 세계 한민족 항일유적지의 3분의 2가 중국에 있고, 중국 항일유적지의 3분의 2가 동북3성에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한국인은 물론 조선족들도 우리의 항일역사에 대해 잘 모르고, 항일유적지 찾기에 별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만든 것이 항일유적연구소였습니다. 연구소를 운영하면서 우리나라는 물론 중국의 항일역사에 대해서도 많은 공부를 했습니다. 저는 연구소장으로서 연구원을 모집하고, 안중근 13일간의 이동경로와 거사일정을 뒤따라가 보기도 했고, 윤동주의 생가, 신흥무관학교의 발자취 등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한국에서는 이념이 다르다는 이유로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는 많은 항일열사들의 발자취도 찾아다니며 공부했습니다. 그런 중 우리나라 3대 독립선언 중 하나이자 최초의 독립선언인 ‘무오독립선언’의 내용과 의미를 분석, 발굴하여, 심양총영사관과 국가보훈처의 협조 아래 저희 항일유적연구소가 주관하여, 중국 현지 최초로 ‘무오독립선언 기념식’을 개최하였습니다. 저의 가장 큰 보람 중 하나인 이 행사는, 민주평통 선양협의회의 주관으로 지금도 8년째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한중교류문화원을 설립하다 대도시 심양에 와서 저는 새로운 결심을 하게 됩니다. 그동안 제가 잡다하게 벌여놓은 문화예술 봉사활동과 조선족학교 지원, 그리고 항일역사연구와 유적지 방문활동 등을 종합하여, 체계적으로 추진하기 위한 시스템과 공간 확보의 필요성이 커진 것입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한중교류문화원’을 설립 추진합니다. 한중교류문화원은 심양의 코리아타운 지역인 서탑가 인근에 약 2000㎡ 규모로 많은 분들의 도움을 받아 2014년 7월 19일 설립하였습니다. 자체적으로 130여 석 규모의 강당을 갖게 된 문화원은 많은 교육활동과 문화예술 공연행사를 연출합니다. 그중에 최고의 대박상품은 ‘실버대학’입니다. 제1기 실버대학은 2014년 가을에 약 15주의 과정으로 진행되었는데, 50세 중반부터 80세 전후의 조선족 어르신들 93명이 첫 신입생으로 입학했습니다. 노래교실, 역사문화특강, 10년 젊어지기 미용특강, 핸드폰 사용법, 기본생활영어, 도전 골든벨, 그리고 졸업여행에 이어 사각모와 졸업가운 입고 졸업식하기 등의 행사에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었습니다. 실버대학은 제가 문화원장으로 재임한 약 3년 반 동안 총 4회가 이어졌습니다. 한편, 실버대학은 제가 특별한 의미로 시작한 것입니다. 바로 한국에 두고 온 저의 어머님을 생각하며 만든 행사입니다. 사실 한국에 있을 때, 어머님의 집에 가면 마음으로는 늘 눈물겹게 고맙고 감사하게 생각하지만, 대부분의 우리 세대 장남들이 그러했듯이 다정다감하게 표현하지 못하고 무뚝뚝한 아들이었습니다. 사실은 어머님과 재미있게 놀아드리고도 싶었는데, 그러지 못한 죄송스러움과 한(恨)을 실버대학을 통해서 조선족 어머님들께 재롱도 부리며 조금이나마 풀지 않았나 싶습니다. 이심전심(以心傳心)일까요? 실버대학 어머님들의 공통된 감사인사 표현은 “우리 아들도 못 해준 호강을 실버대학에서 받았네요, 너무 행복합니다!”였습니다. 저도 응답합니다. “아닙니다. 행복하시다니, 제가 더 고맙습니다.” 그밖에도 한중교류문화원에서는 항일사진전, 어린이 K-Pop대회, 한국가수 김광석 가요제, 중국가수 등려군 가요제, 장예모 감독 영화제, 한국영화제, 조선족학교 돕기 프로젝트, 청춘콘서트, 사물놀이 강습, 한국 만화도서관 개관, 한중친선 배구대회와 탁구대회 등의 행사를 연출하였습니다. 동주학당, 동북에 물들다 그렇게 3년 반의 초대원장 자리를 마치고, 조선족에게 한중교류문화원 2대 원장을 물려주었습니다. 경영의사결정 과정에서 오해와 어려움도 있었고, 제가 너무 강하게 한국 문화를 중국 조선족들에게 전파한다는 정치적 오해가 깊어져서, 부득불한 조치였습니다. 대신에 저는 조선족 지식인들과 함께 윤동주의 이름을 딴 ‘동주학당(東柱學堂)’이란 모임을 만들고, ‘한중 문화융합연구소’라는 개인연구소를 차린 후, 다시 독립하여 조선족들을 향한 집중 봉사활동을 재개합니다. 동주학당은 민족시인 윤동주를 한민족 디아스포라(Diaspora)의 대표인물로 생각하여 ‘한민족 디아스포라 사랑방’을 추구하는 가운데, ‘찾아가는 민족문화원’을 표방했습니다. 우선 심양에서 ‘윤동주 100주년 기념 시낭송음악회’를 연출했고, ‘동주학당, 대련에 물들다’, ‘동주학당, 치치하얼에 물들다’, ‘동주학당, 영구에 물들다’ 등 동북3성 여러 지역을 순회하며 ‘찾아가는 민족문화원’의 면모를 과시했습니다. 또한 심양 남부 소가툰 지역에 ‘윤동주 문화원’을 건립하여 실버대학도 성황리에 진행하였습니다. 그리고 중국의 거의 최북단으로, 3만 명의 조선족이 거주하는 흑룡강성 치치하얼에도 ‘치치하얼시 조선족문화원’ 설립을 지원하고, 제가 명예원장을 맡아, ‘치치하얼시 조선족 아리랑 예술제’ 및 대동제를 개최하였습니다. 이어 거기서도 같은 마음으로 실버대학을 진행했는데, 제가 중국에서 총 6번째로 진행하게 된 ‘치치하얼 조선족 실버문화대학’은 무려 1200km 거리(심양-치치하얼)를 3개월간 매주 고속열차로 달려가서 진행한 것이었습니다. 누군가에게 소중한 것의 크기는, 자신의 재물과 시간과 열정을 투자한 것에 비례한다는 말을 저는 온전히 믿습니다. 치치하얼이 제겐 그런 곳입니다. 그곳에서 만난 조선족 동포 분들이 제겐 그랬습니다. 한중 갈등에 아파하다 그렇게 해서 어느 새 10여 년이 흘렀고, 50세에 길을 잃고 도망치듯 중국에 왔는데, 뜻밖에 어쩌다 길이 되어버린 조선족 대상 봉사활동을 하다, 어언 환갑을 지나 올해 63세에 이르렀습니다. 앞에서 제가 제법 많은 일들이 성취되었음을 자랑하듯 나열했는데, 그러나 돌이켜보면 과정이 순탄하지만은 않았고, 어렵고 힘든 문제들은 지금도 계속 발생되고 있습니다. 특히나 한중관계가 어려워지면 중국에 거주하는 한국인들은 숨이 막힐 만큼 생존에 위협을 느낍니다. 평소에도 역사문제는 중국의 동북공정과 부딪치며 민감해서 매우 조심해야 했지만, 설상가상 사드 사태 등 정치적으로 꼬이면 한국인은 택시 탑승을 거절당할 만큼 배척됩니다. 지금도 한중관계가 소원해지면 겁부터 나는 것이 사실입니다. 가장 가슴 아팠던 것은, 동주학당이 야심차게 윤동주문화원을 설립했으나, 윤동주의 국적문제가 불거지면서 설립 1년 만에 활동을 접어야 했고, 개인적으로는 문화간첩으로 오해받아 특정 지역에 출입이 막힌 적도 있었습니다. 살펴보면, 중국인들은 조건 없는 봉사를 믿지 않습니다. 조선족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분명히 숨겨진 다른 목적이 있다고 의심합니다. 그리고 문화는 정치라고 생각합니다. 문화침투 등 정치적인 오해로 몰면, 어느 친구도 나서서 저를 변호해 주지 못했습니다. 그게 중국이고 그게 조선족의 입장임을, 너무 아프고 안타깝지만 이제는 이해하고 인정합니다. 한편, 한때는 한국 정부도 저를 오해해서, 제가 북한과 중국의 국경지역인 압록강 지역을 자주 오고가니까, 인천공항에 입국할 때마다 혹시 친북간첩이 아닐까 조사를 받기도 했습니다. 어쩌다 한국과 중국이 모두 저를 의심하는 웃지 못할 상황도 있었습니다. 흔히 우리나라 외교를 ‘안미경중’(安美經中)이라고 말합니다. 안보는 미국이요, 경제는 중국이라는 뜻입니다. 양쪽 사이에서 위태로운 줄다리기 외교만큼, 재중 한국교민들의 마음도 불안하고 위태롭습니다. 어찌되었거나 서로 신뢰하고 미래지향적으로 협조하는 훈훈한 한중관계를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조선족 전성시대’가 온다 제가 중국에서 만나본 조선족들은 현재 중국인으로 열심히 살아가고 있고, 아울러 한민족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하지만, 그 내면을 살펴보면 어디 가도 비주류요, 이방인처럼 살고 있습니다. 1950년대 초에 중국 소수민족의 하나인 조선족으로 편입되어, 그동안 중국인으로 산 세월이 미처 70년이 되지 않습니다. 아직 중국의 주류인 한족들과의 융화가 문화 차이로 쉽지만은 않고, 마찬가지로 모국인 한국에 와서도 여전히 차별받는 비주류요, 이방인입니다. 현재 조선족 부모와 자녀들은 매우 고민합니다. 중국에서는 점차 조선족에 대한 우대조치가 사라지고, 얼마 전 조선족학교를 향해 앞으로 조선말이 아닌 중국어로 교육하라는 지시가 내려왔습니다. 그동안 조선어로 시험 보아 다소 유리했는데, 앞으로는 대학시험도 중국어로 쳐야 합니다. 그러자 조선족 유치원과 학교에는 학생들이 빠져나가고 있습니다. 빨리 중국 한족학교로 옮겨가야 그나마 중국 학생들을 따라갈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조선족 학생들이 한족 학생들과 경쟁에서 이기기는 어렵습니다. 대학을 나와도 갈 곳이 거의 없습니다. 얼마 전 조선족 대학생연합회 대표들과 대화했는데, 그들의 대다수가 원하는 꿈이 커피숍이나 식당을 꾸리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아마도 그 외에는 별다른 기회가 없다는 뜻일 것입니다. 그런 조선족들에게 저는 이제 곧 ‘조선족의 전성시대’가 온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남북한 평화경제시대입니다. 이는 굳이 정치적 통일이 아니더라도, 상호간 화해협력을 기반으로 북한이 경제적으로 개방하는 시대를 의미합니다. 이때가 되면 조선족 역할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바, 이를 잘 준비하자는 것입니다. 저는 외칩니다. “조선족은 어디 가나 비주류요 이방인이 아니라, 향후 ‘남북한 평화경제시대’에 모두가 필요로 하는 핵심인재들입니다. 그래서 하늘이 미리 점지(點指)하고 100년 전부터 중국 땅에 선발대로 보낸, 최고의 일꾼들입니다.” 저는 이런 점들을 우리 조선족들에게 분명히 가르쳐주려 합니다. 저의 그런 주장의 근거는 세계적인 투자자 짐 로저스의 분석에 기초합니다. 이제부터 다시 시작하는 제 인생 이모작의 꿈도 거기서 같이 출발합니다. 20년 전부터 중국의 획기적 성장을 예견했던 짐 로저스는, 이제 일본의 시대는 끝이 났고, 앞으로는 북한의 개방을 주목하라고 말합니다. 북한의 개방은 분명 대한민국과 한민족의 미래에 가장 큰 기회가 될 것이라고 호언장담합니다. 저도 이 주장에 100% 공감하며 진실로 기대하며 설렙니다. ‘조선족 희망전도사’의 꿈 한국에서 그랬던 것처럼, 중국에서도 가끔은 강의를 할 기회가 생깁니다. 대부분은 조선족단체 모임이고, 한국국제학교 학생들에게도 할 기회가 있습니다. 그때마다 공통적으로 빠지지 않고 제가 설파(說破)하는 내용이 있는데, 그것은 ‘조선족이여, 남북한 평화경제시대의 실무주역이 되자!’ 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독일 통일 이후의 상황에 주목합니다. 1989년 서독과 동독이 통일할 때 양국의 경제력 차이는 8:1이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지난 32년간 동독의 발전을 위해 엄청난 투자를 한 결과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 서독과 동독은 아직 2:1 이상의 격차 상태라고 합니다. 그런데 한국과 북한은 3년 전 기준으로 경제력 차이가 무려 44:1입니다. 이 격차를 해소하자면 적어도 향후 50년 이상의 투자와 인적교류가 무조건 필요합니다. 그때에 필요한 실무인력으로 조선족보다 더 경쟁력 있는 집단은 없다고 저는 감히 주장하고 있습니다. 만약 북한이 문을 열면, 서울 청년들이 평양 청년들과 별 갈등 없이 일할 수 있을까요? 저는 매우 어렵다고 봅니다. 당장에 한국인과 조선족도 문화인식 차이가 작지 않은데, 남북한 간에는 불가피하게 갈등해소 시간과 비용이 엄청나게 많이 소요될 것입니다. 그래서 이미 한국의 자본주의도 충분히 알고, 중국의 공산주의 체제에도 잘 적응하고 있는 조선족만의 실무역할 영역이, 다가올 남북한 평화경제시대에 차별적 블루오션(Blue Ocean)으로 분명히 생겨날 것이라 저는 판단합니다. 앞으로 적어도 50년 동안은 조선족을 필요로 하는 시대가 활짝 열릴 것입니다. 그러하니 조선족이라면, 기본적으로 우리말은 무조건 똑똑히 배워두고, 능력이 되면 한국의 기술이나 장점을 잘 공부해두라는 조언을 조선족 청년과 부모들에게 진심을 다해 전해줍니다. 그렇게 강의하며 말하고 다니다 보니, 일부 조선족들이 제게 붙여준 별명이 ‘조선족 희망전도사’입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이 별명이 참으로 과분하지만 제 마음에도 흡족하게 스며듭니다. 더 노력해서 진짜 ‘조선족 희망전도사’로 살아보자는 꿈도 생겨났습니다. 대륙에서 길을 묻다 나라 잃은 슬픔 속에서 민족시인 윤동주는 그의 시 ‘길’을 통해 이렇게 말합니다. ‘잃어버렸습니다. 무얼 어디다 잃었는지 몰라, 두 손이 주머니를 더듬어 길게 나아갑니다.’ 아마도 나이 50에 직업과 가정과 신앙의 동반 몰락을 경험하면서 도망치듯 중국으로 넘어온 때의 제 심정과 조금은 닮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리고 다시 기운을 차려, 작고 소박하지만 같은 민족으로서의 안타까움과 애정을 담아, 혹시라도 저의 재능을 필요로 하는 곳에, 특별히 조선족들에게 아무 조건 없이 달려갔던 중국에서의 지난 10여 년을 정리해봅니다. 중국의 대문호 노신(魯迅) 선생이 청년들에게 희망을 이야기하면서 말했던, ‘처음부터 길은 없었다. 사람들이 다니면서 비로소 길이 되었다’는 구절이 생각납니다. 처음엔 미처 길인 줄 몰랐는데 저도 어찌어찌 십여 년을 지나고 보니, 이젠 나름 하나의 길처럼 느껴집니다. 제 몸 하나 추스르지 못했던 한심한 존재가, 어쩌다 타국 땅에서 문화 봉사를 통한 희망전도사로 모질게 살아남아 있습니다. 30~40대의 젊고 풍요로울 때 그렇게도 갈구했으나 찾지 못했던 인생의 참 의미와 가치를, 어리석게도 60을 훌쩍 넘어 늙고 가난해지면서 비로소 조금씩 깨닫고 배워갑니다. 그동안 중국에 와서 개인적으로 절망하며 힘들었을 때, 제게 특별한 위로가 되어준 시(詩)가 있습니다. 정호승(鄭浩承) 시인의 ‘봄 길’입니다. 봄 길 -정 호승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있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되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봄 길이 되어 끝없이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강물은 흐르다가 멈추고 새들은 날아가 돌아오지 않고 하늘과 땅 사이의 모든 꽃잎은 흩어져도 보라 사랑이 끝난 곳에서도 사랑으로 남아 있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사랑이 되어 한없이 봄 길을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김영식이 있다’ 이제 고백합니다. 정호승 시인의 ‘봄 길’은, 제가 대륙에 와서 길을 묻다가 십 수년 만에 찾아내어 저 스스로에게 답한 길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때때로 저는 시의 마지막 구절 뒤에 한 줄을 더 보태어, ‘김영식이 있다’를 다짐처럼 홀로 외치기도 했습니다. 오늘도 길을 잃고 다시 길을 찾는 분들에게 지난날 저의 절망도 작은 위로 중 하나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깜깜한 절망 속에서 위로를 받았듯, 많은 분들이 그랬으면 좋겠고, 앞으로 살면서 서로에게 작으나마 위로가 되고, ‘봄 길’의 내용처럼 희망이 되어줄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만약 하늘이 허락하셔서, 제게도 ‘인생의 이모작’이 가능하다면, 우선은 한국에서 한국인으로 태어난 것에 무한 감사하며, 이제부터는 중국 땅에서 한 핏줄 동포를 향한 희망전도사로 살아가고 싶습니다. 나아가 더 축복해주신다면, 30여 년 전 제가 아들 이름을 ‘금강산(金剛山)’이라 지었던 그 기도의 응답까지 받아서, 북녘의 아버지 고향 땅에 달려가 입 맞추고, 거기 그분들을 뜨겁게 보듬다, 그곳에서 그분들과 함께 묻히고 싶습니다. 이런 저의 마지막 소망이 너무 큰 욕심일까요? •수상소감 - 대상 미니자서전 김영식 “중국 조선족 100년의 이야기를 중국판 처럼 작품으로 써 세상에 알리겠다” •대상 수상을 축하드린다. 수상 소감은? 저는 7살 어릴 적 시골에서, 코 흘리게 손수건을 왼쪽 가슴에 달고 소학교에 입학했습니다. 학교 가는 게 너무너무 좋아서, 공부도 열심히 했습니다. 1학년을 마치는 날, 담임선생님께서는 제 이름을 호명하시며 뜻밖에 1등 우등상장을 주셨습니다. 그것이 제게는, 태어나 받은 ‘첫 상(賞)’이었습니다. 우등상 상품은 공책 한 권과 연필 두 자루였습니다. 그걸 들고 낮은 언덕의 신작로 길을 뛰어 어머니께로 달려갈 때, 저는 얼마나 가슴이 뛰며 기뻤는지 모릅니다. 만나는 모든 분들에게 막 자랑하고 싶었습니다. 그로부터 어언 56년이 지났습니다. 어쩌면 ‘마지막 상(賞)’일지도 모르는 이번 상이 저에게는 그때만큼이나 기쁩니다. 그때만큼이나 설렙니다. 저에게 이렇게 설레고 행복한 순간을 선물로 주신 ‘50+ 시니어 신춘문예 공모전’의 주최한 브라보와 신한은행의 관계자 여러분들께 진심으로 감사인사 드립니다. 이번에 제가 쓴, 미니 자서전 는, 어쩌면 교만했던 인생의 부끄러운 고백이고, 뻔뻔한 반성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에게 특별히 큰 상을 주신 뜻은, 아마도 이 두 가지가 아닐까 저 나름 생각해 봅니다. 하나는, 다시 한 번 힘을 내서 ‘인생 이모작’에 도전하라는 따뜻한 격려로 느껴집니다.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기대만큼 열심히 새로운 길에 도전하며 살겠습니다. 또 하나 이번 상은, 제 글쓰기에 대해 숙제를 주셨다고 생각합니다. 글쓰기를 통해, 세상에 조금이나마 ‘선한 영향력을’ 보태라는 명령입니다.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늘 정직하고 공감과 위로를 주며, 보존할 가치가 있는 글을 쓰겠습니다. 다시 한 번, 큰 상을 주신 브라보와 신한은행에 감사드리며, 끝으로, 조국 대한민국의 조속한 코로나 승리를 기도하고 응원하겠습니다. 여러분, 고맙습니다. •‘50+ 시니어 신춘문예 공모전’ 응모 배경이나 동기는? 저는 현재 중국 심양에 머물고 있습니다. 그동안 한국과 중국을 오가며 생활했는데, 코로나로 인해 지난해 설 명절을 지내고 중국에 온 후, 한국에 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지난해 말에는 운동 중 아킬레스건이 파열되어, 중국에서 수술을 받고 3개월을 치료한 후 현재는 재활 중입니다. 한국의 가족도 한국의 소식도 모두 그립습니다. 한국뉴스를 검색하다가 ‘50+ 시니어 신춘문예 공모전’을 발견했습니다. 그중에 특별히 ‘50+’라는 표현에 많은 생각이 스쳤습니다. 제가 사업에 실패하고 도망치듯 중국에 온 것이, 바로 50세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타향살이 어언 13년이 흘러, 갑자기 코로나로 멈춘 일상 속에서 지나온 저의 인생을 되돌아 반추해보는, 귀한 시간을 가져 보게 되었습니다. 뜻밖에 좋은 기회를 주셔서 정말로 감사를 드립니다. 이번 시니어 공모전을 통해 ‘인생 이모작’도 새로이 꿈꾸게 되었습니다. •글을 잘 쓰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글을 잘 쓰기 위한 노력이라기보다는, 기왕에 제가 쓴 글이 독자들에게 재미와 감동을 주며 더 잘 읽히면 좋겠다는 차원에서의 노력은, 제가 많이 부족해서 앞으로도 계속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평소 저의 글은 딱딱하고 설명형입니다. 재미없는 제 성격과 꼭 닮았습니다. 게다가 글쓰기로 처음 상을 탄 것이 대학 때 논문공모대회였고, 대기업에서 기획담당자였기에 더더욱 저의 글은, 사사로운 감정이 담기지 않은, 그래서 재미와 감동이 ‘1’도 없는 필법(筆法)을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특별히 개인적으로 지난 10여 년간, 중국에 와서 여러 종류의 한글 잡지를 만들고 배포했는데, 주된 독자층이었던 중국조선족들은 한국인들에 비해 우리말 어휘력이 30% 수준을 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제 글은 그저 수준 높고(?) 어려운 글이었습니다. 로 유명한 미국작가 훼밍웨이가 어느 회고문에서 자신의 독자로부터 받은 편지 하나를 소개했습니다. 전쟁 파병(아마도 한국전쟁) 중인 미군병사가 자신의 소설을 읽고 나서, 어려운 단어가 없어 ‘사전(辭典)찾기 ’없이도 100% 공감하며 큰 감동을 받았다는 감사편지였습니다. 저 역시, 쉽고도 감동적인 글, 그리고 오래 간직하고픈 글을 쓰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겠습니다. •글을 쓰는데 도움을 준 멘토나 동기부여 이유가 있다면? 직접적인 멘토는 아니지만, 제가 특별히 닮고 싶은 작가가 두 분이 있습니다. 한 분은 한국의 유명한 시인 류시화이고, 또 한 분은 의 저자이자 인류학자인 미국의 루스 베네딕트 교수입니다. 시인 류시화는 개인적으로 저와 고등학교 동기동창입니다. 본명은 안재찬이며, 대광고등학교 30회로, 고교 2,3학년을 같은 반에서 공부했습니다. 경희대학교 2학년 때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당선된 그는, 인도 여행을 다녀와서 쓴 수필집 및 시집 등이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인기작가가 되었습니다. 그의 글은 쉬우면서도 깨달음을 줍니다. 저도 글을 쓴다면 그런 면을 배우며 닮고 싶습니다. 다음은 미국의 여성인류학자 루스 베네딕트 교수인데, 제가 단동에서 항일유적연구소장을 할 때, 그분의 저서 을 읽었습니다. 2차 대전 전쟁을 종료하기 직전에 미국이 일본에 대해서 분석한 책으로, 70여년이 지난 지금도 전 세계인들에게 일본과 일본인 분석에 관한 제 1의 필독서입니다. 같은 패망국인 독일과는 달리, 일본은 왜 끝까지 반성하지 않는가에 나름의 분석이 명쾌합니다. 일본에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상태에서 쓴 글이라는 점도 놀랍고, 냉철한 대안 제시가 전후(戰後) 미국과 일본의 관계설정에 기준이 되었고, 지금까지도 대단히 유효합니다. 일본에 대해 비판만하고 흥분만하는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줄뿐만 아니라, 개인적으로는 나는 중국인에게 대한민국에 대해 얼마만큼 설명할 수 있는가, 또는 한국에 와서는 중국에 대하여, 그리고 제가 중시하는 중국 조선족에 대해서, 나는 얼마만큼 본질을 명쾌하게 공부했는가에 대해 통렬하게 반성하게 하는 책입니다. 중국판 같은 글에도 도전하고 싶은 이유입니다. •수상을 계기로 앞으로 어떤 글을 쓰고 싶은가? 얼마 전 미국 아카데미상에서 영화 가 큰 주목을 받았습니다. 70년 전 조선인의 미국 이민사를 소재로 한 영화인데, 이 영화를 보면서 저는 제 주변의 중국조선족들을 한 번 더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대부분 100년 전후로 대륙에 이주해 왔고, 영화 미나리 이상의 휴먼 스토리가 얼마든지 있다고 저는 확신하고 있습니다. 향후 중국 조선족 100년의 이야기를 중국판 처럼 작품으로 써서 세상에 알리는 것도, 이번 상(賞)을 통하여 저에게 주신, 귀한 소명 중 하나라고 느끼고 있습니다. •감사와 고마움을 전하고 싶은 분이 있다면? 많은 사람이 있지만, 딱 한사람만을 꼽으라면 저는 주저 없이 저의 여동생 ‘김경희’를 말하고 싶습니다. 제가 교만한 실패와 방황, 그리고 대륙에서 길을 묻는 지난 10여 년 동안, 개인적으로는 부끄럽게도 맏아들로서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했습니다. 저희 어머님께 제가 한 때는 자랑이던 아들이었지만, 이제는 걱정을 끼치는 아들로 살고 있는데, 그 빈자리를 저의 여동생이 말없이 채워주고 있습니다. 여동생 김경희는 제 인생에서 가장 미안하고 가장 고마운 존재입니다. 이번에 받은 저의 수상이, 제 여동생에게도 작으나마 위로가 되고 기쁨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2021-08-27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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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A에서 만난 사람] 꿈의 은퇴촌, 캘리포니아 라구나우즈 빌리지를 가다
- 미국은 세계에서 실버타운이 가장 발달한 나라다. 자녀가 성인이 되면 독립하고 결혼을 하더라도 부모를 봉양하지 않는 독립적인 가족문화 때문일 것이다. 은퇴 후 자식에게 의존하기보다는 내 스스로 삶의 질을 높여야 한다는 시니어들의 의식도 한몫했다. 미국에서는 1960년대에 이미 실버타운이 건설되기 시작했다. 현재 전국적으로 이름난 대규모 은퇴 단지만 3000여 곳, 이 중 캘리포니아 오렌지카운티의 작은 해안도시에 있는 라구나우즈 빌리지는 한인들에게는 꿈의 은퇴촌으로 불린다. 365일 따뜻하고 화창한 날씨, 입맛대로 골라 즐길 수 있는 클럽활동, 마음을 나눌 수 있는 동년 친구들, 무엇보다 긍정의 에너지가 넘치는 곳이다. 서로를 ‘아름다운 동행자’라 부르는 이곳, 라구나우즈 빌리지의 한인들을 만나봤다. 미스터&미세스 손 “입구를 잘못 들어왔네요. 거기서 기다려요. 미스터 손한테 나가보라고 할게요~” 은퇴촌이라고 만만히 봤다간 낭패다. 라구나우즈 빌리지의 총면적은 2100ac(약 250만 평). 라구나우즈 시(市)의 90%를 차지한다. 여의도 전체보다도 크다. 알려준 9번 출입구를 못 찾아 8번 출입구로 들어간 것이 화근이었다. ‘9’에서 ‘8’이 멀어봤자 얼마나 멀겠냐 했지만 결국 길을 잃었고 기어이 80세의 주인장을 마중 나오게 만들고 말았다. 나무 그늘 밑에 자동차를 대놓고 5분 정도 기다리자 언덕 위에서 골프카트 한 대가 바람을 가르며 달려왔다. 흐트러진 흰머리를 단정히 하며 환한 웃음으로 맞아주는 노신사. 미스터 손이었다. GPS를 손에 들고도 길을 잃은 젊은이(?)에게 위로의 말도 잊지 않는다. “여기가 원래 넓어서 찾기가 좀 힘들어요. 하하하.” 손기용(80), 손종숙(75) 부부. 빌리지에서 이들은 미스터&미세스 손으로 불린다. 두 사람은 캘리포니아와 정반대 쪽에 있는 오하이오에서 40년 넘게 소아과 의사, 병리과 의사로 각각 일하다 은퇴를 했고 6년 전 캘리포니아로 이주, 라구나우즈 빌리지의 주민이 됐다. “오래 살았던 오하이오가 익숙하긴 했지만 겨울이 추웠어요. 따뜻한 플로리다로 갈까, 아들이 있는 캘리포니아로 갈까 고민하던 중에 집이 덜컥 팔려버린 거예요. 어디로든 떠나야 했죠. 일단 아들 집과 가까운 이곳 라구나우즈 빌리지에서 월세로 살면서 천천히 결정해보자 했는데, 두 달 만에 집을 샀습니다. 여기가 바로 우리가 찾던 파라다이스였어요!” 부부가 살고 있는 집은 2300ft2(약 65평)의 크기로 거실과 주방, 그리고 두 개의 침실과 화장실이 있는 예쁜 단층집이다. 2011년 당시 80만 달러에 구입했다. 라구나우즈 빌리지에는 손씨 부부가 살고 있는 단독주택 외에도 콘도와 아파트가 있는데 한인들이 선호하는 어바인이나 플러턴에 비해 주택 가격은 다소 낮은 편이라고. 캘리포니아의 화창한 날씨는 부부의 마음을 단숨에 사로잡았다. 여름엔 더워도 습도가 낮아 상쾌했고 겨울엔 눈이 내리지 않아 운전하기가 좋았다. 10분이면 캘리포니아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라구나 해변이 있어 마음만 먹으면 언제라도 갈 수가 있었다. 인근 플러턴과 어바인에는 한국 식당과 상점이 넘쳐나니 한국 음식이 그리울 틈도 없었다. 무엇보다 마음에 들었던 것은 여유 넘치는 빌리지의 라이프스타일이었다. “한마디로 하고 싶은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는 환경이었어요. 골프, 수영은 물론이고 젊은 시절부터 취미였던 사교댄스도 더 본격적으로 할 수 있는 분위기였죠. 빌리지에는 200개가 넘는 클럽(동호회)이 있어요. 원하면 어떤 클럽이든 가입할 수 있고 직접 만들 수도 있어요. 여기서는 심심할 일이 없어요. 어떤 날은 하루 종일 서로 얼굴도 못 보는걸요. 젊은 시절보다 더 바쁘다고 농담처럼 이야기합니다.” 남편은 독서와 골프를 즐기고 아내는 하이킹과 합창을 좋아한다. 서로의 취향을 존중하는 부부는 각자 활동하는 클럽이 다르지만 이것만큼은 꼭 같이하자고 정해놓은 세 가지가 있다. 손을 잡고 거니는 저녁 산책, 같은 침대 쓰기, 그리고 벌써 20년을 함께해온 볼륨댄스가 그것이다. 빌리지 안에서 손씨 부부는 춤꾼으로 유명하다. 경력 20년의 수준급 솜씨다. 특히 아내 손종숙씨는 전국 경연에도 참가할 만큼 프로급 댄서다. 어느 해 연말파티에서 백인들도 울고 갈 정도로 멋들어지게 춤을 추는 부부의 모습을 보고 이웃에 사는 한인 부부들이 배움을 자청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미세스 손의 댄스교실은 현재 40명이 넘는 학생들이 늦은 춤바람으로 열공 중이다. 부부는 라구나우즈에 들어오기를 두고두고 잘한 일이라 여긴다. 아내에 비해 조금은 소극적인 성격인 손기용씨는 이곳에서 동년 친구들과 격 없이 어울리며 사는 재미를 알게 됐다고 한다. 평생 쓰고 싶어도 못 썼던 모국어를 원 없이 할 수 있는 것도 신나는 일이다. “저녁은 주로 아내가, 아침은 내가 준비합니다. 내가 내린 커피를 마시며 행복해하는 아내의 모습을 매일 아침 볼 수 있다는 건 감사한 일이지요. 우리는 현재 생활에 아주 만족해요. 둘이 있어서 좋고 친구가 많아서 즐겁습니다. 이곳에 오지 않았다면 몰랐을 즐거움이지요. 아내와 나는 이곳이 마지막 종착역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건강해야지요. 스트레스가 건강에 제일 안 좋다는데 여긴 그럴 일이 없어요. 이곳에 살고 있는 최고령 한인은 90이 넘은 분이에요. 10년은 문제없겠지요? 하하하.” 라우나우즈의 이장님, 한인회 김일홍 회장 라구나우즈 빌리지에 한인회가 만들어진 것은 지난 1998년. 당시 회원은 30명 정도였다. 타향살이 이민자들은 한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형님 동생이 되었고 주말이면 다 같이 한집에 모여 바비큐를 먹고 친목을 다졌다. 이후 7명의 한인 회장이 배출되었고 그동안 빌리지의 한인은 700여 가구 1200여 명으로 늘었다. 옛날처럼 오손도손한 분위기는 없어졌지만 한인의 위상은 커졌다. 현재 8대 한인 회장을 맡고 있는 김일홍(79)씨는 초기 한인회가 한인들 간의 친목을 다지는 것이 목적이었다면 지금은 커뮤니티 내 타 인종과의 화합과 클럽활동을 통한 자기계발에 중점을 두고 있다고 말한다. “지난 5년간 이곳에 한인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었어요. 이대로 가면 빌리지의 한인 비율이 전체의 10%를 차지하게 될 겁니다. 그만큼 커뮤니티에 좋은 영향력을 미치면 좋겠습니다. 매년 빌리지 내에 한국전 참전 용사들을 초청해 기념식과 만찬을 열고 있는데 참으로 뿌듯합니다. 4년 전 만든 한국어 클래스도 아주 인기가 좋아요. 얼마 전에는 아리랑 코리안 문화축제를 열었는데 주민들의 호응이 대단했어요.” 라구나우즈 빌리지에는 동호회 활동을 위한 대규모 연회장인 클럽하우스가 10여 개 있다. 소규모 모임을 위한 크고 작은 미팅룸은 예약만 하면 10~20달러(1만~2만원) 선에서 얼마든지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 한인들이 주축이 된 클럽도 20여 개나 된다. 김일홍 회장은 클럽활동을 단순한 여가생활에서 더 발전시키려 애쓰고 있다. “목표를 정하고 도전해보자는 거죠. 그 예로 글사랑모임 클럽에서는 2014년부터 라는 수필집을 발간하고 있어요. 회원들의 필력뿐 아니라 편집이나 사진 실력이 매년 발전하는 것을 보며 성취감과 자부심을 느낍니다.” 김일홍 회장은 라구나우즈에서 늘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한다. 한인회 관련 일은 물론이고 동호회 활동, 관리사무소나 빌리지 내 시설 사용 등 민원 업무도 그의 몫이기 때문이다. 앞서 만난 손기용씨는 김 회장을 알뜰살뜰한 마을 이장님 같다고 했다. 빌리지 안에서 운전하며 가다가도 아는 얼굴을 만나면 꼭 차를 세우고 이름을 부르며 안부를 묻는다. 짬을 내어 아프거나 홀로된 노인들이 잘 지내고 있는지도 살펴야 맘이 편하다. 때로는 라구나우즈 빌리지 가이드가 되어 투어 서비스도 한다. 미국 전역에서 톱 10에 속하는 명성에, 한인이 많이 살다 보니 은퇴자라면 한 번쯤 꿈꾸어보는 라구나우즈 빌리지. 입주 문의는 늘 이어진다. 라구나우즈 빌리지에 입주하기 위해서는 주택 종류에 따라 3만6000달러(약 3600만원)에서 4만2000달러(약 4200만원)가량의 연수입이 있어야 한다. 일정 금액의 자산도 증명되어야 한다. 월 관리비는 650달러로 골프장, 수영장, 헬스클럽, 클럽하우스 등 빌리지의 모든 시설을 이용할 수 있다. 물론 시설관리, 조경, 가스, 수도, 케이블TV 등이 모두 포함된 금액이다. 김 회장은 빌리지 입주는 어느 정도 경제력이 뒷받침되어야 가능하지만 미리미리 은퇴 계획을 세운다면 어려운 일은 아니라고 조언한다. “재력이 은퇴생활의 필수조건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죠. 100세 시대에 은퇴하고 20년, 30년을 어떻게 살 것인가를 미리 고민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한국인들은 자식에게 모든 것을 바치는 경향이 있죠. 지나친 헌신으로 은퇴 후 자신들의 삶을 피폐하게 만드는 경우를 주위에서 많이 봅니다. 안타까운 현실이죠. 솔직히 우리 나이가 되면 자식보다 배우자, 친구가 더 소중합니다.” 김 회장은 건강과 재력 외에 성공적인 은퇴생활을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것이 은퇴 후 어떤 삶을 살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라고 말했다. “은퇴 후 시간을 어떻게 쓸지 몰라 난감해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아요. 미리 준비해야 할 것은 돈만이 아닙니다. 평소 좋아하는 운동이나 취미를 준비해놓는 것도 중요해요. 라구나우즈가 최고의 은퇴촌으로 불리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열정이 있는 사람들이 있고, 그들이 열정적으로 살 수 있는 환경을 완벽하게 만들어놓고 있기 때문이죠. 이곳에서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사람이 별로 없어요. 다들 바빠요(웃음).” 라구나우즈 빌리지의 많은 이야기는 ‘현재진행형’이다. 이웃들의 소소한 일상을 카메라에 담아내는 포토그래퍼 박성원 작가, 성악가의 꿈을 라구나우즈에서 이루고 합창단을 이끌고 있는 소피아 최 회장, 춤을 사랑하는 동호인들을 모아 7년째 고전무용 춤방을 열고 있는 김영옥씨, ‘김중배의 다이아 반지가 그리 좋더냐’ 훈남 이수일로 변신한 연극반 채한경씨, 고등학교 미술선생님에서 이제는 라구나우즈 미술선생님이 된 이상락씨, 그리고 여전히 서로를 뜨겁게 사랑하고 배려하며 최선을 다해 살고 있는 미스터&미세스 손까지…. 라구나우즈 빌리지가 꿈의 은퇴촌으로 불리는 이유는 기막힌 골프코스와 수영장, 럭셔리한 클럽하우스 때문만은 아니다. 이곳에는 여전히 꿈을 이루며 살아가는 열정적인 사람들이 살고 있다. 라구나우즈 빌리지가 아름다운 이유다. 라구나우즈 빌리지는? 캘리포니아 오렌지카운티 남서쪽에 위치해 있는 ‘라구나우즈 빌리지’는 라구나우즈 시 안에 있는 은퇴 마을이다. 현재 1만2736세대, 3만6000여 명이 거주하고 있다. 빌리지 안에는 5개의 수영장과 36홀의 골프코스, 테니스코트, 도서관, 극장, 우체국 등 각종 편의시설이 있다. 라구나우즈에 입주하려면 조합(HOA – Home Owner’s Association)에 가입해야 하는데 크게 협동조합(Co-Op)과 상호조합(Mutual)으로 나눠져 있다. 협동조합의 경우는 조합이 소유주로서 입주자는 집이 아닌 조합회원권(Stock Certificate)을 구입하면 된다. 상호조합의 경우는 콘도 내부 수리와 관리를 소유주가 책임지고 해야 한다. 상호조합과 협동조합의 가장 큰 차이는 구입한 집을 임대해줄 때다. 협동조합의 경우는 1년 동안 6개월 이상 임대를 줄 수 없다. 상호조합은 임대에 대한 제약이 없다. 따라서 투자를 위한 임대 목적으로 은퇴촌 주택을 구입하는 경우는 상호조합 콘도를 구입하는 것이 유리하다. 라구나우즈에 입주하려면 배우자 중 한 사람이 반드시 55세 이상이어야 하며, 집값은 일시불로 지불해야 한다. -------------------------------- 라구나우즈 빌리지 웹 사이트 lagunawoodsvillage.com 한인회 웹사이트 lagunawoodskac.com
- 2017-07-05 09: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