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2모작도 아닌 5모작까지 치르고 지금은 6모작을 준비 중이라는 사람, ‘N잡러’ 장필규 행복 제1연구소 소장은 1955년생으로 정확히 베이비붐 시대의 한복판에서 태어난 100% 베이비부머다. 그는 요즘 프리워커로서 고용노동부 내공강사, 노사발전재단 전문강사, 경기도 6차산업 현장 코칭 컨설턴트, 인천농촌융복합 현장코칭 전문위원 등 다섯 가지 일을 동시에 하고 있다. 그야말로 정년이라는 단어가 의미 없는 삶을 영위하는 셈. 장차 6모작을 넘어 9모작까지 완성하는 게 꿈이라는 그가 말하는 인생 후반기의 삶과 잡(job)에 대한 철학을 들어봤다.
“제 인생의 4모작은 50플러스재단 컨설턴트였고, 5모작은 N잡러로 활동하는 지금이죠. 이제 6모작을 준비하고 있어요. 시니어에게 일은 새로움과 행복을 가져다주기 때문에 여행하듯이 즐거움을 찾는 거지요.”
‘N잡러’ 장필규 씨는 요즘 그 어느 때보다도 바쁘게 일하고 있다. 현재 그는 서울시50플러스재단, 노사발전재단, 지방자치단체의 컨설턴트와 전문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최근에는 9모작을 최종 목표를 두고 6모작을 준비하기 위해 직업상담사, 사회복지사 공부를 하고 있다.
“환갑을 넘어 케어를 받아야 할 사람이 사회복지사 공부를 한다고 집사람이 잔소리를 하네요.(웃음) 그런데 저와 같은 나이대에도 취약 계층이 있을 거예요. 제 연배의 장애인이나 소외 계층을 위한 삶을 살고 싶은 거죠. 예전에 거창에서 일할 때 요양병원에서 봉사활동을 한 적이 있어요. 나도 머지않아 그분들과 같은 입장이 될 텐데 이야기 들어주고 도와주니 즐겁더라고요.”
퇴직 없는 삶 위한 평생현역 꿈꿨으나…
그의 이름에는 베풀 장(張), 도울 필(弼)이라는 글자가 들어가 있다. 어쩌면 그의 아버지가 이름을 지어줄 때 베풀고 도와주라는 의미로 새긴 게 아닐까. 현재 그의 모습은 이미 숙명처럼 정해져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는 건국대학교 축산학과를 졸업했다. 이후 1981년 두산그룹 계열사인 배합사료 회사 두산곡산에 취직하면서 본격적인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한강의 기적’이 펼쳐지던 시기였고 그의 삶 또한 대기업 직장인으로서 안정적으로 보였다. 그러나 1997년 외환위기 사태가 터지면서 그도 사회적 환경에 따른 선택을 강요받게 된다. 그에게 던져진 자리는 두산종합식품 식품사업 부문의 김치공장 관리부장. 고민을 했지만 결국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김치공장으로 간 그는 관리부장, 공장장을 거치며 10여 년간 김치 제조의 일선에서 일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회사 주인이 바뀌는 일이 일어났다. 두산이 식품사업 부문 전체가 대상에 매각될 때 그는 6년 후배가 상사로 승진하는 것을 보게 된다. 더는 버틸 수 없었던 그는 대상 소속으로 2년 정도를 더 지내다 2008년 4월에 퇴직한다.
끊임없는 도전, N잡러로 거듭나다
54세의 나이, 인생 1막이었던 대기업 직장인으로서의 27년은 끝이 났다. 삶에 대한 허무감과 삶을 유지해야 한다는 고통이 동시에 밀려왔다.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며 치주염 수술을 여섯 번이나 받아야 했던 그는 수술 후 재취업을 도와주는 노사발전재단 중장년일자리희망센터에 찾아가는 것으로 인생 2막을 시작했다. 이력서 작성법, 면접 스킬 등을 교육받은 그는 정부에서 추진하는 농업 최고경영자 경영대학원 과정에 합격한 뒤 몇 번의 테스트까지 통과하며 마침내 울진농수산물유통농업회사법인 대표로 취임했다.
그러나 그토록 고생하며 올라간 자리였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과는 맞지 않는 것 같았다.결국 대표 자리를 그만둔 그는 마침 일본 회사와 울진군의 합작 회사인 울진로하스코리아에서 대표 제안을 해와 CEO로서 3년을 지냈다.
“인생 2막의 과정은 지방에서 CEO로 일을 하며 자신에게 더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삶의 터닝포인트가 되면서 재무 문제도 해결되고 가족관계는 물론 건강도 좋아졌죠.”
울진로하스코리아 대표 자리에서 물러난 후에는 2012년 말부터 일자리희망센터를 찾고 취업박람회에 꾸준히 참석하면서 다시 한 번 기회를 노렸다. 그리고 마침내 농촌진흥청에서 마케팅 전문위원으로 인생 3막을 펼쳤다. 이곳에서 5년간 근무하며 농가 500곳을 대상으로 한 컨설팅을 진행했다. 이어 서울시 50플러스재단, 노사발전재단, 고용노동부 등지에서 강사 및 컨설턴트로 활동하며 4막의 장을 펼쳤고 진정한 N잡러가 되었다.
수입 적더라도 즐거움 주는 천직 찾아야
“이제 베이비부머들은 잡(job)이 아니라 워크(work)를 해야 해요. 워크는 천직을 의미합니다. 자신의 천직을 찾아야 오래 즐겁게 할 수 있으니까요.”
그에게 시니어 구직자들의 마음가짐에 대해 묻자 제2인생에서는 일이 무조건 즐거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심지어 일이 놀이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의 지난 삶의 궤적을 돌아보면 이해가 가는 말이다. 수입은 적더라도 길게 오래할 수 있는 천직을 찾아야 한다고 충고하는 그가 N잡러로 다양한 일을 동시에 하고 있는 것은 그 때문이다.
“우리 나이에 경제 문제를 해결하려면 하나의 직업 가지고는 안 됩니다. 적어도 세 개 내지 다섯 개는 가지고 있어야 과거 연봉의 절반 정도가 되죠. 특히 시니어는 공부를 위한 비용이나 손주들 용돈, 네트워크 유지비 등 지출이 생각보다 많습니다.”
그가 또 강조하는 것은 사고의 유연성, 관계의 유연성이다.
“적을 만들면 안 됩니다. 제 주위를 보면 어떤 사람과는 케미가 맞지 않다고 안 만나는 사람들이 있어요. 물론 그건 취향이기에 좋다 나쁘다 판단을 내릴 순 없죠. 다만 기왕이면 유연성을 갖고 적을 만들지 말아야 평화롭고 품위 있는 노후를 보낼 수 있습니다.”
열린 마음, 유연함으로 세상 대하기
그런데 삶의 부침들을 겪으면서도 마음의 유연성을 갖추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에게는 특별한 노하우가 있는 걸까?
“어느 접점에 있든 열린 마음을 실천하는 겁니다. 역지사지라고 하죠. 마음이 열리지 않으면 불편한 일이 많아져요.”
인터뷰를 하면서 보니 그는 도전적이라기보다는 안정을 추구하는 사람에 가까웠다. 그런 성품에도 불구하고 도전을 통해 자신이 원하는 것들을 쟁취해온 것이다. 어쩌면 그러한 결과도 그의 열린 마음 덕분에 가능했던 게 아닐까 싶다.
“박사학위를 가진 시니어도 일에 대한 욕망이 뜨거워요. 그런데 한국인은 디테일에 약해요. 그래서 매뉴얼이 있어도 막상 긴박한 상황이 되면 제대로 써먹지 못합니다. 습관화가 안 된 게 문제입니다. 그걸 극복하려면 계속 반복하고 고치고 훈련하는 수밖에 없어요.”
그는 구직을 하려면 ‘어떻게’에 관한 디테일한 액션 플랜을 짜서 지속적인 연습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수많은 테스트에 통과하며 자신의 자리를 잡은 그이기에 신뢰가 갔다.
나를 제대로 알아야 천직을 찾을 수 있다
지금으로부터 10여 년 전에는 그도 구직자 입장이었다. 그런 그가 이제는 구직자들을 상담하는 입장이 되었다는 게 삶의 아이러니처럼 느껴진다. 양쪽을 다 경험해본 그에게 두 입장에 대해 물어봤다.
“구직을 지원하는 정부 기관들은 고객 니즈에 맞게 세분화, 효율화되고 향상되어야 해요. 그런데 그런 시도가 진행되다가도 중간중간 끊기더라고요. 그게 아쉽죠. 그리고 구직자들의 입장을 보면, 그래도 구직을 위해 오는 사람들은 열정이 있는 거예요. 흔히 퇴직하면 ‘또 직장생활을 해야 해?’, ‘날 찾아주는 데는 없어’ 하며 의욕이 없는 경우가 많죠. 목표의식을 가져야 하는데 퇴직하는 순간 놔버리는 거예요. 물론 그럴 수 있어요. 그러나 그건 자신에게나 가족에게나 무책임한 거죠. 그런 심리를 어떻게 끌어주느냐가 관건이라고 봐요.”
그는 은퇴자 혹은 퇴직자들이 자기진단을 해보고 자신에게 어떤 일이 적합한지 생각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충고했다. 그렇게 자신을 파악하고 일을 찾다 보면 현실의 갭이 조금씩 줄어든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시간이 오래 걸릴 수도 있지만 그걸 인내하는 힘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지인 중에 20년 동안 독일 특파원 생활을 하면서 인문학을 공부한 사람이 있는데, 그가 말하길 ‘결론은 나를 찾게 되더라’ 하더군요. 나를 찾는 노력을 하고 준비하면 일이 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 인내심을 키우기 위해서 주위의 긍정적인 사람을 만나는 것도 한 방법이겠죠.”
욕심의 분모 줄이면 행복이 찾아온다
자신이 이 사회에 가치가 있는 사람이라는 걸 확인할 때 더욱 의욕이 생기는 사람이 있다. 그는 100세 김형석 교수가 자신의 건강 비결로 ‘평생 손에서 일을 놓지 않은 것’이라고 한 말을 다시 전한다.
“사람은 일이 있어야 삶을 유지할 수 있어요. ‘60~65세가 자신의 황금기였다’는 김형석 교수님 말에 공감합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N잡러 장필규 소장은 자신의 행복을 충분히 누리는 것처럼 보였다. 그는 마지막으로 자신의 행복론을 소욕지족(少欲知足)에 비유했다. 행복해지려면 욕심의 분모를 줄여나가는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욕심의 분모를 자꾸 키우면 내려놓기가 안 되는 사람이에요. 100분의 60과 60분의 60을 비교해보세요. 후자는 60만으로도 부족함이 없죠. 이렇듯 분모를 줄이면 60분의 60이 1이 되듯 가벼워집니다.
‘1’과 ‘일’처럼 디테일하고 작은 것에 만족할 줄 알 때 삶이 풍요로워질 수 있다는 게 제 지론입니다. 결국 ‘1’과 ‘일’처럼 은퇴 후 행복하게 살게 해줄 수 있는 놀이와도 같은 것이죠.”
노후에 좋아하는 일을 찾게 되면 많고 적음을 떠나 돈과 건강, 관계, 여가 등이 자연스럽게 따라온다고 강조하는 그는 “행복이라는 단어를 의식하지 않고 여행하듯 사는 게 진짜 행복이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했다. 그는 그렇게 담대하고, 여유롭고 자유로웠다.
“정년퇴직이라…. 이건 뭐 생전 장례식이다.” 우치다테 마키코의 소설 ‘끝난 사람’에서 정년퇴직을 하는 주인공 다시로의 말입니다. 자기 사업체가 아닌 이상 퇴직은 누구나 거쳐야 합니다. 정년이 연장되더라도 본질은 변화 없습니다. 그래서 주된 직장에서 퇴직할 때 무엇을 준비해둬야 할지 생각하는 게 좋습니다. 재무적 준비뿐 아니라 비재무적 준비도 중요합니다. 여기서 그 몇 가지를 알아볼까 합니다.
퇴직 사춘기 대비
소설 ‘끝난 사람’의 주인공 다시로가 구직센터를 찾아가니 마침 조건이 괜찮은 곳이 있어 면접을 보러 갔습니다. 사무실에 8명 남짓이 앉아 있는 회사였지만 자신을 최대한 낮춰 채용해주면 열심히 해보겠다고 합니다. 사장은 도쿄대학교 법학부 출신이 자기 회사에 오면 할 일이 없을 것 같다고 합니다. 기술도 없는 일류대 출신은 쓸모가 없습니다. 다시로는 모교를 방문해 벤치에 앉아 펑펑 울고 맙니다.
주인공은 대학원에 진학하기로 마음먹습니다. 하지만 갑자기 일거리가 생기면서 대학원 진학은 무한 연기됩니다. 그러다 문화센터 등록처에서 여자를 만납니다. 63세의 주인공이 39세의 미혼 여성을 만났으니 가슴이 쿵쾅거립니다. 끝난 인생이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이것 역시, 결론은 헛물입니다. 다시로는 그냥 밥 잘 사주는 아저씨였던 셈입니다.
다시로는 피트니스에서 젊은 벤처 사업가를 만납니다. 사업가는 그를 고문으로 초빙합니다. 그런데 사업가가 급사를 하면서 아내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대표이사 자리를 덜컥 맡습니다. 결과는 대참사입니다. 회사가 미수금을 받지 못해 파산을 하게 되고 대표이사인 관계로 자신의 돈으로 은행 대출금 10억 원을 상환합니다. 아내의 은퇴자금까지 날려버리게 되죠. 이 일로 이혼 직전까지 갑니다.
아내는 가출하고, 회사는 파산하고, 은퇴자금 10억 원도 날리고, 맘 설레게 하던 39세 아가씨는 동상이몽이었습니다. 이제 주인공은 아버지의 구부정한 뒷모습을 생각하며 아버지가 느꼈을 고독을 이해합니다. 퇴직 후 사춘기처럼 방황하던 주인공은 방향을 잡습니다. 20~30대에 할 일과 60~70대에 할 일이 따로 있다는 걸 깨닫습니다.
우리도 주인공 다시로처럼 퇴직 후 사춘기를 앓습니다. 10대 사춘기처럼 퇴직 후에 좌충우돌하고 고독을 느끼고 분노하고 눈물을 흘립니다. 이를 ‘물 빼기 3년’이라고도 합니다. 이 변화 과정을 무탈하게 넘겨야 합니다. 자신이 평생 쓰고 있던 가면(페르소나)에 집착하지 말고 다른 가면으로 잘 바꾸는 게 필요합니다. 노후의 변신은 절대 무죄입니다.
노후의 행복 조건
노후에는 이제 행복하게 살겠다고 마음먹습니다. 마음만 먹는다고 되는 게 아니니 실천을 해야 합니다. 행복을 연구하는 심리학자들은 ‘좋아하는 사람과 맛있는 걸 같이 먹을 때’ 혹은 ‘여행을 할 때’ 등과 같이 구체적 방법들을 이야기합니다. 경제학자들도 행복의 이유를 분석합니다. 브루노 프라이(Bruno Frey)가 쓴 ‘행복, 경제학의 혁명’에는 경제학자들이 찾은 행복의 조건이 있습니다.
첫째, 행복을 노골적으로 추구할수록 반대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멋있는 파티를 계획한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파티 후에 실망이 컸다고 합니다. 행복하려면 지속적인 만족감을 얻어야 하는데 더 강한 만족감이 이어지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행복은 단기적인 희열 추구 혹은 희열의 연이은 추구가 아니라 장기적인 ‘좋은 삶’의 결과물일 수 있습니다.
둘째, 돈은 일정 수준까지만 행복에 중요하고 그 이상에서는 중요한 변수가 아닙니다. 이를 ‘이스털린의 역설(Easterlin Paradox)’이라고 하는데, 소득이 증가해도 행복이 증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한 이스털린의 이름을 딴 것입니다. 2000년 초에 실시한 세계가치조사를 보면, 1인당 국민소득이 1만 달러가 될 때까지 삶의 만족도는 올라갑니다. 그러나 1만 달러를 넘어서면 1인당 국민소득과 삶의 만족도 사이의 상관관계가 거의 사라져버립니다.
셋째, 행복해지려면 일을 해야 합니다. 일과 행복은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습니다. 실업은 삶을 극도로 불행하게 만듭니다. 이혼이나 별거 등 다른 어떤 사건보다 안정감을 떨어뜨린다고 합니다. 돈이 있어도 일하지 않으면 불행해진다고 합니다. 건강상태가 나빠지고 사망률도 높아지고 자살할 가능성도 커진다고 합니다. 실업 상태에 빠진 사람들은 많은 ‘비금전적 비용’을 지불한다는 걸 의미합니다.
마지막으로, 내재적 속성을 가진 활동에 의도적으로 자신의 자원을 배분해야 합니다. 내재적 속성은 타인과의 연결, 자신의 유능감, 자율성, 참여 등과 관련되어 있고 외재적 속성은 재화의 소비, 지위, 소득, 명예 등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내재적 속성은 반복해도 지겹지 않고 좋았던 경험의 기억도 오래 지속됩니다. 반면에 외재적 속성은 빨리 지루해지고 경험의 기억도 오래가지 않습니다. 명품 백을 사고 조금 지나면 행복감은 희미해집니다.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행복이라는 단어를 까먹고 장기적으로 좋은 삶을 살아가면 됩니다. 그리고 삶의 구조를 다음과 같이 바꾸어나갑니다. 돈은 어느 정도는 필요하지만 그 이상의 돈이 행복을 가져다주지 않으므로, 돈을 버는 데 집중되었던 자원을 적절히 재배치합니다. 일은 해야 합니다. 금전적 가치 외에 비금전적 가치도 너무 크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내재적 속성의 활동을 의도적으로 늘려야 합니다.
노후자산 지키는 삼총사
행복이라는 비재무적인 문제를 봤다면 이제 재무 솔루션을 보겠습니다. 노후 재무설계의 포인트는 수명에 맞게 자산 수명도 길게 해줘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를 단번에 해결해주는 전가의 보도 같은 상품은 없으며 연금자산, 투자자산, 보험자산을 잘 활용해야 합니다.
우선, 종신연금은 사망할 때까지 연금을 지급하므로 나의 수명과 자산 수명을 일치시킬 수 있습니다. 한편, 공적연금은 매년 연금 지급액을 물가에 연동해서 올려주기 때문에 구매력이 유지됩니다. 공적연금은 장수리스크와 구매력리스크를 없애주기 때문에 노후에 가장 적합한 자산입니다. 공적연금을 가급적 충분히 마련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부족할 때는 주택연금이나 민간의 종신연금으로 보완할 필요가 있습니다.
둘째, 투자자산은 수익률이 높으므로 자산 수명이 깁니다. 지금 가진 돈의 4%를 매년 인출하고 2% 물가가 오르는 만큼 인출을 증가시킨다고 해보겠습니다. 이 경우 자산운용수익률이 2%이면 25년 만에, 3%일 때는 28년 만에 자산이 모두 소진됩니다. 하지만 4%일 때는 34년, 5%이면 43년으로 자산 수명이 길어집니다. 노후자산은 안정적이어야 함을 감안할 때, 목표하는 투자수익률은 4%를 중심으로 해서 3~5%가 적절할 것으로 판단됩니다.
마지막으로, 보험자산은 노후자산을 블랙스완(black swan)에서 보호해줍니다. 블랙스완은 아주 가끔씩 발생하지만 일단 발생하면 치명적인 타격을 주는 것이라 보면 되겠습니다. 노후 자산은 중대 질병이라는 블랙스완의 출현으로 크게 줄어들 수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수십 년 준비해둔 노후설계가 한순간에 무너집니다. 보험은 생애설계에서 블랙스완의 출현을 막아줍니다. 노후의 보험자산은 생명보험보다는 질병이나 요양보험들이 해당되겠죠.
세 자산 중, 투자자산은 골을 넣는 공격수로 자산 수명을 길게 해주는 주포(主砲) 역할을 해줍니다. 축구에서 공격에 치중하다 보면 골을 먹을 수 있습니다. 인생 후반의 실점은 치명적입니다. 그래서 연금자산으로 1차 수비라인을 만들어야 합니다. 연금자산으로 생계를 유지할 소득을 만들어둬야 하는 거죠. 하지만 이 수비만으론 부족합니다. 노후자산의 급격한 변동을 막기 위해서는 2차 수비라인으로 보험자산을 가져야 합니다. 연금, 보험, 투자 이 셋은 노후자산을 지키는 삼총사입니다.
내 연금 내가 만들기
연금처럼 자신이 보유한 금융자산에서도 매월 일정한 소득을 얻을 수 있어야 합니다. 국가나 금융기관이 아닌 자신이 만드는 셀프연금인 셈이죠. 종신연금은 유동성이 없는 데 반해 셀프연금은 언제든 중도에 필요한 돈을 찾아 쓸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셀프연금 체계는 퇴직 후 반드시 갖추고 있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배당일이 다른 6개의 리츠(REITs)를 사놓으면 매월 배당금이 들어옵니다. 보유 리츠의 평균배당금액을 감안해 매월 일정한 금액을 인출하면 됩니다. 금융상품을 달리하여 받을 수도 있습니다. 계좌에 주식펀드를 넣어두고 여기에서 매월 확정된 금액을 인출하는 방법입니다. 이 경우 수익률이 높으면 수익금만으로 연금을 받을 수 있지만 수익률이 낮을 때는 원금을 빼 써야 할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서 변동성이 큰 자산은 적합하지 않습니다.
셀프연금을 만들기에 적합한 금융상품은 수익률이 너무 낮지 않은 현금흐름이 꾸준히 나오는 인컴형 투자자산입니다. 투자자산이지만, 자산가격 상승보다는 배당이나 이자획득이 주목적인 자산이죠. 리츠, 상장 부동산펀드, 회사채, 배당주 등이 해당됩니다.
이런 자산을 담고 나면, 계좌의 수익금과 원금의 일부를 연금처럼 인출할 수 있는 인출 방식을 적용해야 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정액식(定額式)입니다. 예를 들어, 초기 자산의 4%(5억 원이면 연 2000만 원)를 계속 인출하는 방식입니다. 이 방식은 금액이 확정적이어서 이해하기 쉬우나 계좌의 잔고가 언제 바닥날지 예상하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계좌 운용수익률이 높으면 오래 유지되고 낮으면 일찍 바닥나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로 대표적인 방식은 인출기간을 정해놓는(예를 들어 30년) 정기식(定期式)으로 매년 계좌잔고를 잔존 연금기간으로 나눈 금액을 인출합니다. 초기 자산이 5억 원이고 운용수익률이 4%라면, 첫해에는 1666만 원(=5억 원/30년) 인출하고, 둘째 해에는 1733만 원(=5억 266만 원/29년) 인출합니다. 이렇게 되면 마지막 해에는 5197만 원을 인출하고 계좌잔고는 없어집니다. 즉 연금액은 매년 변동하지만 30년 후에 계좌잔고는 정확히 ‘0’이 됩니다. 이는 매월 연금액은 확정적이지만 계좌잔고의 소진기간을 모르는 정액식과 대비되는 방식입니다.
국민연금은 우리가 손댈 수 없고, 민간 종신연금은 유동성이 없어 무작정 많이 하기 어렵습니다. 금융자산으로 내가 스스로 만드는 셀프연금이 노후에 중요해지는 이유입니다. 셀프연금과 함께 공적연금, 종신연금을 잘 활용해서 노후 소득을 만들면 좋습니다.
은퇴한 시니어들의 화두는 뭐라해도 ‘일’이다. 300만 원 이상의 연금 수급자들도 돈을 떠나 ‘일’하고 싶어 한다. 재취업, 인생 2모작 등 현역으로 일하고 싶어 하는 시니어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그래서일까, 시니어들 사이에서는 노후 불안과 함께 65세 정년연장에 대한 얘기들이 뜨겁게 오가고 있다. 일하는 시니어가 많은 상황에서, 현재의 정년이 60세로 설정되어 있다는 것부터가 말이 안 된다는 반응도 있다. 그러나 정년을 연장하는 일은 일견 단순해 보여도 쉬이 풀기 힘든 무수한 문제들이 따른다. 대체 정년연장으로 어떤 변화들이 발생할 것인지 짚어봤다.
정년연장 논의 가속화에 팔 걷어붙인 정부
정년은 누구에게나 오게 된다. 현재 시니어의 생활에 가장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소위 ‘불이 붙은’ 이슈는 바로 ‘정년연장’일 것이다. 기존의 60세를 65세로 올려야 한다는 정년연장 화두는 올해 2월 대법원에서 본격적인 포문이 열렸다. 육체 노동자의 가동 연한을 60세로 산정한 원심을 깨고 65세로 늘려야 한다며 판례를 바꾼 것이다.
이어서 정부에서도 지속적으로 정년연장 문제를 건드리기 시작했다. 대표적으로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5월 23일에 기자들과의 만남에서 정년연장의 사회적 논의가 필요함을 밝히고 6월 초에는 TV에 출연해 정부에서 현재 해당 문제를 집중 논의하고 있음을 알리는 등 거듭해서 정년연장 이슈를 제기하고 있다. 또한 6월 말에 발표된 60세 이상 고령자의 재고용 기업에 인센티브를 제공한다는 정부 시책은 이 문제에 기름을 부었다.
정년 60세, 어떻게 볼 것인가
우리나라의 고령자가 노동시장에서 완전히 은퇴하는 연령은 남성은 72세, 여성은 72.2세로 알려져 있다. 이것도 2016년 기준이기에 2019년인 현재에는 더 높아졌으리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이는 OECD 35개 회원국 중 가장 높은 나이대다. 그런데 한국고용정보원 추산에 따르면, 일자리에서 퇴직하는 평균연령은 49.1세에 불과하다. 이는 첫 퇴직을 하는 평균 나이가 49.1세라는 의미다. 그렇다면 한국인은 완전히 일에서 물러나는 72세까지 22년이라는 긴 시간을 재취업 혹은 계약직, 자영업의 세계에서 일하게 된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그런데다 지난 5월에 통계청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65세 이상 고령 인구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35.2%로 최고 수치를 기록했다.
65세 이상 인구의 3분의 1이 아직도 일하고 있는 대한민국 현실에서 60세 정년이라는 현재의 기준은 은퇴 시점을 앞당기는 주요한 원인이면서 현실성 없는 기준으로 보인다. 그래서 현실에 맞게 정년도 5년 늘려서 65세로 간단하게 바꾸면 되지 않겠느냐는 말이 나올 법도 하다. 그러나 이 간단한 해법 뒤에는 엄청나게 복잡하고 다양한 사회적 역학 작용들로 인한 갈등들이 시한폭탄처럼 숨겨져 있다. 올해 769만 명으로 집계된 65세 이상 노인 인구는 2020년 813만 명, 2024년 995만 명 등으로 늘어 2025년이면 1000만 명을 넘어설 전망이다.
청년 일자리와의 상충
100세 시대라는 명칭에 맞게 평균수명이 늘어나고 막대한 수의 베이비부머가 매년 80만 명이 은퇴하기 시작하는 근간에, 60세 정년이라는 기준은 터무니없어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기준을 보다 현실적인 나이인 65세로 올리는 일의 발목을 잡는 문제는 바로 청년실업이다.
현재 우리나라 경제는 국내외의 문제들이 중첩되어 경제 침체와 함께 높은 청년실업률이 이어지며 사회적 갈등으로 연결되는 상황이다. 정년연장으로 가뜩이나 부족한 청년 일자리를 시니어들이 빼앗는 것 아니냐는 우려 섞인 시선이 있다.
정년연장의 실현을 통해 노동권을 보장받을 수 있는 사람들은 1차적으로 공무원이나 대기업 근로자 등 소위 ‘좋은 일자리’를 가진 사람들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좋은 일자리’는 청년들에게도 ‘좋은 일자리’이며 수년간의 고시 공부를 해서라도 들어가려는 곳이다. 정년연장으로 인한 일자리 축소와 사회적 갈등이 심화되리라는 것을 예상하게 만드는 이유다.
그러나 정년연장이 청년 일자리를 줄인다는 주장에 대한 반론들도 있다. 대표적으로 OECD는 일찍이 1990년대에 청년실업 문제에 대한 해법으로 조기퇴직의 활성화를 권고한 바 있다. 하지만 이후 세대 간 비교우위에 따른 고용분리로 인해 기존의 일자리 전쟁 가설은 성립하지 않는다는 결론을 채택했다. 그래서 2005년부터는 양 세대 고용을 늘리는 정책 방향을 권고하고 있다.
이제 정부 입장을 보자. 현행 60세 정년을 유지하는 것은 국가 예산 정책을 위협하는 주원인이 되기도 한다. 왜냐하면 현행 60세 정년 기준은 대부분의 복지 우대 대상 나이를 65세로 묶어두는 근거이기 때문이다. 즉 60세 정년을 유지하면 복지혜택을 받는 ‘노인’의 기준 연령을 낮추게 돼서 대상자 수가 늘어나게 되고 복지 부문의 지출을 늘리는 이유가 되는 것이다. 더구나 복지혜택을 받지 않아도 되고 계속 일할 수 있는 건강한 시니어가 늘어나는 현재에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까지 겹치면 복지 지출의 단위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게 될 것이다. 따라서 정부에서는 청년실업 문제를 해소한다는 이유로 무조건 정년연장을 막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렇게 정년연장 정책은 연령을 올리는 것만으로도 얽혀 있는 문제들이 서로의 급소를 죄고 있는 듯한 상황들이 이어지고 있다.
노동유연성을 높여야 한다는 주장들
다음은 기업의 입장을 살펴보자. 국내 기업들 다수는 근속연수에 따라 임금이 올라가는 연공급 임금 체계를 따르고 있다. 따라서 정년연장이 이뤄지면, 65세까지 늘어난 시간에 따라 연공급에 맞추는 기업의 인건비 지출 또한 늘어날 수밖에 없다. 그러면 60~65세 인구 내에서 정년연장을 보장받으며 일하는 사람들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 그리고 젊은이들 사이의 양극화가 커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기업들은 무조건적인 정년연장이 임금 지출 상승 및 전체 국민 경제에 피해를 줄 것이라며 반발부터 하는 상황이다.
이 문제의 해소를 위해 정년연장과 함께 노동유연성을 높여야 한다는 주장들이 있다. 60세 이상 직장인의 업무량을 점차적으로 줄여 65세에 은퇴 준비를 하게 함으로써 기업의 비용절감과 함께 청년층의 고용도 추구하자는 것이다. 그렇다. 이것은 임금피크제를 활성화하자는 주장이다. 임금피크제가 정착되기 위해선 시니어 당사자들 전반의 이해와 사회적 동의가 필요하지만 여전히 관련된 갈등들이 이곳저곳에서 펄펄 끓고 있는 게 현실이다.
국민연금도 함께 검토해봐야
정년연장 문제에서 중요하게 다뤄지는 것은 국민연금이다. 현행 60세 정년을 계속 유지하면 소위 ‘소득 크레바스’라고 불리는 소득 단절시기에 대한 문제가 불거질 수밖에 없다. 기존 60세였던 국민연금 수급시점이 2013년부터 5년마다 한 살씩 상향조정돼 2033년에는 65세로 늘릴 예정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행 60세 정년이 그대로 유지된다면, 2033년에는 최대 5년 동안 국민연금을 받지 못해 금전적 리스크를 감내해야 하는 인구가 상당수 발생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65세로 정년연장을 할 경우 국민연금 차원에서는 아무 문제가 없을까? 지금까지 본 사례들처럼, 당연히 해결해야 할 문제가 발생한다. 우선 일을 하면서도 연금을 받는 사람들로 인해 소득격차 문제가 커질 수 있다. 연금공단 입장에서도 연금의 본래 취지와는 다른 성격의 지출이 발생함으로써 재정 부담과 함께 제도의 본질이 훼손되는 문제를 겪을 수 있다. 물론 2033년이 되면 65세로 수급 시점이 올라가니 65세 정년과 맞춰지겠지만, 그때까지 10여 년가량은 누수 현상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즉 정년연장은 국민연금 제도의 근간도 검토해야 하는 일인 것이다.
선진국들의 대처
정년연장 문제는 전형적인 선진국형 이슈라고 할 수 있다. 사회 제도가 갖춰지고 평균수명이 늘어나면서 노동인구 감소를 겪는 선진국의 사회 변화 추이와 맞물려 자연스럽게 발생할 수밖에 없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보다 먼저 고령화 사회를 맞이한 선진국들은 대부분 이 문제를 맞닥뜨려야 했다. 그렇다면 그들이 이 문제를 어떻게 대처했는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선 미국은 1980년대에 이미 정년 개념을 없앴다. 일할 수 있는 권리를 나이에 따라 차별한다는 것은 불가하다는 이유에서였다. 영국은 이보다 늦은 2011년에 대부분의 직업에서 정년제를 없앴다. 단 영국은 고령자가 직무 역량을 완전히 충족시킬 수 없는 부분적인 일자리들에서는 아직 정년제를 유지하고 있다. 독일은 이미 65세 정년을 적용하고 있는데 곧 67세로 연장할 계획이다. 대표적 장수 국가인 일본은 70세까지 정년을 늘리는 방안을 고려 중이다. 이렇듯 선진국들은 정년연장을 피할 수 없는 역사적 순서로 보고 발생할 문제를 해소하는 쪽에 집중해 대처하고 있다.
불가피한 득과 실, 사회적 합의로 풀어야
지금까지 열거된 것들만으로도 정년연장이 얼마나 복잡하고 어려운 사안인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해당사자인 개인과 국가, 기관, 조직의 사정들이 얽히고설킨 상황이다. 그렇다고 마냥 손놓고 있을 수도 없다.
분명한 것은 정년연장의 적용이 이뤄지면 각 이해당사자들이 서로 잃고 얻는 것들이 있으며 그러한 결과를 회피할 수 없다는 점이다. 따라서 사회적 논의로써 정년연장 이슈를 공론화해, 철저히 사회통합적인 가치 기준에서 조정해나가야 할 것으로 보인다.
“마, 잡상인은 저리 가이소!” 아무리 농이 섞였다 해도 지인의 한마디는 그를 슬프게 했다. 23년간 나라를 위해 일했다는 자부심으로 가득한 경상도 사내로서는 분을 삭이기 힘든 일이었다. 하지만 그는 “이제는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말하며 빙긋이 웃는다. 사소한 냉대쯤은 웃어넘길 수 있는 여유가 생겼고, 거절도 즐길 수 있는 경지에 이르렀다고 한다. 보람상조에서 장례지도사 겸 상조상품 세일즈맨으로 활동 중인 김길후(金佶喣·48) 씨 이야기다.
“아들아, 너는 계획이 다 있구나!” 칸 영화제를 휩쓴 영화 ‘기생충’의 대사 한 구절처럼 김길후 씨 역시 계획이 다 있었다. 23년간 근무하던 해운대구청을 떠날 때, 그는 당당했고 여유로웠다. 하지만 늘 그렇듯이 인생은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명예퇴직 신청을 받을 때 인생의 전환점이 될 기회라고 생각했어요. 사실 버티려고 했다면 정년퇴직 때까지 버틸 수도 있었죠. 퇴직 후 나름의 계획도 있었고 잘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나와 보니 예상과는 달라 당황했습니다. 그 후 제가 세운 원칙 중 하나는 ‘직접 눈으로 보고 결정하자’였습니다. 지금 입사한 회사도 그렇게 결정했습니다.”
해운대구청에서 23년 근무
그가 해운대구청에 입사한 것은 1996년 8월. 오랜 기간 구청에 근무하면서 안 해본 일이 없다. 주로 담당했던 업무는 재개발로 인한 토지수용 업무나 토지이동, 환경개선부담금 관련 일이었다. 당시 해운대는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등으로 인한 재개발 수요가 많아 무척 바쁜 나날을 보내야 했다.
“제가 입사할 때는 해운대에 수영비행장 자리가 남아 있었던 시절이었으니까요. 그때와 비교하면 천지개벽 수준으로 달라졌죠. 재개발과 관련한 업무가 쉽지 않았던 건 다른 사람의 재산을 다루는 일이었기 때문이에요. 업무를 보다가 안 되겠다 싶어 닥치는 대로 공부를 했죠.”
장례지도사와의 인연도 이때 시작됐다. 김 씨는 동부산대학교 장례지도학과에 입학했을 때만 하더라도 관련 업종에서 일하게 될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면서 웃는다. 그 후로도 그는 영산대학교 법학과에 입학했고, 법무사와 공인중개사 공부도 병행했다.
“법에 대해 잘 알게 되니 많은 분을 도울 수 있게 되더라고요. 재개발로 집을 잃은 분들에게 임대주택을 얻을 수 있도록 안내를 해주거나, 전세금을 날리게 된 가설건축물 임차인들이 최소한의 금액이라도 회수할 수 있도록 조언을 해줄 수 있었던 것은 그 때문이죠. 그래서 구청 내에서도 절 찾는 사람이 많았죠. 공무원들이 업무상 송사에 휘말리는 경우가 간혹 있거든요.”
한때는 공무원 노조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을 정도로 조직에 대한 애정도 남달랐다. 노조 지부 중 회계 내역을 홈페이지에 투명하게 공개한 곳은 그가 총무국장으로 있었던 해운대구청이 최초였다.
명퇴 후 삶, 계획대로 안 돼
그가 명예퇴직을 결심한 것은 2017년이다. 한때는 진급도 꿈꿨지만 공직사회에서의 한계를 느끼면서 두 번째 인생을 살아보고자 도전을 선택한 것.
“워낙 재개발 관련 업무 경험도 많고, 인맥도 넓어 일단은 그쪽 일을 시작했죠. 변호사 사무소의 사무장 역할이었어요. 처음엔 재미있었죠. 공직에서 나온 만큼 좀 더 자유롭게 일을 할 수도 있었고요. 하지만 문제는 시장의 변화였어요. 로스쿨 제도 도입 등 이런저런 요인들로 인해 시장이 혼탁해져갔어요. 의뢰인에게 자세히 상황을 설명해주고 법적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도와야 하는데, 수임을 하기 위해 무조건 이긴다고 유혹하는 변호사 사무소가 늘기 시작한 거죠. 결국 1년을 못 버티고 나올 수밖에 없었어요.”
김 씨의 방황은 다시 시작됐다. 경매학원에 등록해 부동산 경매에 대해 알아보고, 개인회생 분야도 조사했다. 한국폴리텍대학에서 기술을 배우기도 했다. 방황이 끝난 것은 지난해 7월. 지인 소개로 보람상조개발을 소개받으면서부터다. 공무원에서 세일즈맨, 즉 영업직으로의 변신이었다.
“처음엔 나를 내려놓고 세일즈맨이 된다는 게 쉽지 않았죠. 이 제복을 입는 데 한 달이 걸렸어요. 공직자에 사무장 출신인데 왜 그런 마음이 없었겠어요. 하지만 인생을 턴할 수 있는 기회이고 성공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방문해서 제 눈으로 직접 확인한 뒤 고심 끝에 내린 결심입니다.”
세일즈, 나를 내려놓는 일
세일즈맨이 되는 데는 많은 노력이 필요했다. 지인들에게 핀잔을 듣는 건 기본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무리하지 않고 고객을 늘릴 수 있는 방법을 터득하기 시작했다. 상품에는 자신이 있었기 때문에 노력이 관건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초창기에는 지인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죠. 나를 많이 생각해주는 사람이 누구인지 실감하게 됐어요. 최근에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려고 노력해요. 일부러 제복도 입고 가죠. 약속 장소로 정해둔 식당이나 카페에서 사람들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려고요, 고객이 있을 만한 교육 과정에도 참여해 인맥을 넓히기도 합니다. 최근에는 봉사활동도 열심히 하고 공직자 때는 상상도 못했던 정치 단체에서도 활동해요. 또 회사에서 제공해주는 다양한 교육들이 큰 도움이 되죠.”
김 씨는 중장년에게 자신의 직종과 같은 세일즈 분야는 한 번쯤 도전해볼 만하다고 이야기한다. 의지만 있다면 정년 없이 계속 일할 수 있고, 노력에 따른 경제적 보상도 충분하기 때문이다.
“절대로 쉬운 일은 아닙니다. 사실 중장년들은 자신이 한창 잘나갈 때의 추억에 젖어 있잖아요. 그러니 나를 내려놓기 쉽지 않죠. 하지만 솔직히 말해 중장년의 이력서를 받아주는 곳은 많지 않아요. 저도 면접관이 되어 중장년들을 만나기도 하는데 자존심 버리는 것을 가장 어려워해요. 면접에 통과해도1년 이상 롱런하는 분들은 20%가 안 돼요.”
그는 지금 일하는 직장의 장점으로 ‘수평이동이 가능한 문화’를 꼽았다. 조직 내에서 일정 부분 역할을 해내면 영업직이 아닌 관리직 등 다른 부서로의 이동도 가능하다는 것. 김 씨는 “최종 꿈은 직영 장례식장에서 일해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는 정보를 직접 확인하고 판단할 것을 당부했다.
“많은 분이 인터넷에서 떠도는 불확실한 정보만 가지고 판단해요. 그 정보들 중 상당수는 직접 경험하지 않은 사람들의 이야기예요. 어떤 직업을 선택하더라도 꼭 눈으로 확인하고 결정하면 좋겠어요. 중장년은 무엇이든 할 수 있어요. 그게 세일즈라 해도요. 직접 부딪쳐보는 게 중요합니다.”
이제 막 걸음마를 뗀 회사가 있다. 구성원이 6명인 작은 회사. 다른 회사와 다를 바 없어 보이지만 사무실을 조금만 둘러보면 독특한 분위기를 바로 알아차리게 된다. 이 회사 구성원은 60대 이상으로 모두 정년을 마친 사람들. 이들은 한목소리로 “정년 걱정이 없어 고용불안이 존재하지 않는 회사를 만들고 싶었다”고 이야기한다. 동료들과 함께 보람 있는 제2인생을 만들어나가는 삼성기술안전의 최동기(崔東基·64) 씨를 만났다.
“정년퇴직 후의 꿈은 건물 관리소장이었죠. 서울교통공사에 다닐 때 자격증을 보유한 직원들에게 수당을 주는 제도가 있어 산업안전기사와 산업안전산업기사 자격증을 따놓았거든요. 여기에 몇 가지만 더 공부하면 될 것 같아 빌딩경영관리사와 사용시설가스안전관리자, 소방안전관리자 자격증 등을 정년 직전에 땄어요.”
취업박람회 문턱 닳도록 다녀
그가 자격증에 매달린 것은 정년퇴직 후의 생활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다. 체력적으로 할 수 있는 일도 많지 않은 데다, 퇴직자를 받아줄 회사 또한 찾기 힘들다고 판단해서다.
“공부는 어렵지 않았어요. 원래 시험을 보면 잘 붙는 편이었고, 기출 문제 위주로 공부하는 요령도 생겼죠. 열심히 하는 모습을 칭찬하는 아내 응원에 더 힘이 났어요. 퇴직해도 놀 사람은 아니라고 하더라고요.(웃음)”
2015년 2월 정년퇴직을 눈앞에 두고 있었지만 그는 자신에 차 있었다. 지하철 역장 출신으로 조직관리와 기술 분야와 관련한 오랜 경험이 있었고, 자격증으로 무장한 상태였다. 퇴직 후 곧바로 제안받은 일자리도 거절했을 정도로 여유가 있었다.
하지만 그 여유는 오래가지 않았다. 퇴직 후 몇 달간 숨 고르기를 한 뒤에 다시 일을 시작하자고 생각했지만, 그에게 손을 내미는 일터는 많지 않았다.
“취업박람회를 수없이 다녔죠. 이력서도 계속 넣고. 서울시어르신취업지원센터에서 교육을 받고 취업활동 요령도 알게 됐죠. 하지만 늘 나이가 문제였어요. 퇴짜 맞기 일쑤였죠. 거절이 반복되자 아침에 가방 들고 출근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부럽더라고요. 초조함이 극에 달했을 때 취업 제안을 받았어요. 안전관리자 대행업체였어요. 50인 이상 사업장은 사내에 안전관리자를 선임하거나 외부 전문기관에 대행을 의뢰하게 되어 있는데, 이 일을 하는 회사에서 안전관리자로 활동하게 된 것이죠.”
3년간의 회사생활은 그에게 산업안전관리 분야에 대해 많은 것을 알려줬다. 하지만 사라지지 않는 불안감이 있었다. 바로 ‘파리목숨’ 같은 계약직 신분이었다.
“‘당신 계약직이잖아, 내년은 장담 못해’ 등의 이야기를 직간접적으로 들을 때마다 가슴이 철렁거렸죠. 명절 떡값에서부터 계약직에 대한 차별은 곳곳에 있었어요. 사장이나 젊은 상사들의 말이 곧 법이었으니까. 그렇게 불안에 떨다가 어느 순간 결정했어요. 더 이상 안 되겠다, 회사를 차리자! 하고 말이죠.”
“정년 없애자” 6인의 의기투합
1959년생이 막내인 젊은(?) 회사는 그렇게 태어났다. 지난해 10월, 6명의 안전관리 전문가가 함께 투자하고 의기투합해 설립한 회사는 ‘삼성기술안전’. 역할은 각자의 전문 분야에 따라 나눴다. 이곳에서 최 씨의 직함은 이사다.
“우리 회사 구성원들의 자격증 개수를 합치면 50개가 넘어요. 나이는 많지만, 실력과 경력은 모두 출중하죠. 수익보다는 보람 있는 인생에 더 가치를 두자고 의견을 모았어요. 설움을 느껴봤으니 정년 없는 회사를 만들어 스트레스 받지 말고, 신바람 나게 일을 해보자고 말이죠. 처음 6개월은 집에 가져가는 돈이 없을 거란 각오로 일했죠. 그래도 나이 먹었어도 할 수 있다는 것을, 잘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다들 초로의 길목에 서 있는 만큼 가장 먼저 챙기는 것은 서로의 건강이다. 모두가 이해할 수 있는 은퇴 시기까지 건강하게 일하고 싶은 마음 때문이다. 최 씨는 75세까지는 계속 일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래서 함께 모였을 때 외치는 구호도 안전과 함께 건강을 빼놓지 않는다.
사실 안전관리자는 체력이 뒷받침되어야 하는 직종 중 하나다. 각종 산업시설을 방문해 안전상 위험요소를 찾아내 해결하거나 조치가 되도록 조언하는 역할이다 보니 사업장 구석구석을 살펴야 한다. 특히 고층 건물은 지하층부터 꼭대기까지 빠짐없이 다니며 점검해야 하기 때문에 체력이 떨어지면 일을 할 수 없다. 또 시간이 남을 땐 신규 사업장 확보를 위해 영업도 다녀야 한다. 최 씨는 “구성원이 6명밖에 안 되지만 회사에서 다 함께 얼굴 볼 수 있는 시간이 없을 정도로 다들 바쁘다”고 말했다.
35년 직장생활, 지하철에 바쳐
최 씨는 1979년 서울교통공사에 입사해 35년을 지하철과 함께 근무하다 정년퇴직했다. 그가 입사했을 때 서울교통공사는 아직 서울시 산하의 지하철운영사업소로 운영되고 있었다. 당시 지하철 운임은 30원. 9개 역 운수 수입은 하루 553만 원에 불과했던 시절이었다.
“매표소에서 승차권을 판매하는 역무원으로 직장생활을 시작했어요. 당시만 해도 에드몬슨식 승차권을 사용했어요. 탑승객들의 표를 역무원이 일일이 구멍을 뚫으며 검표를 했죠. 그 시절에는 사람들이 지하철에 익숙지 않아 지금은 상상도 못할 촌극이 많이 벌어졌어요. 특히 서울역은 시골에서 오시는 분이 많아 더욱 심했죠.”
2009년 신촌역 역장으로 부임했다가 대림역 역장으로 정년퇴직했다. 평생을 쉬지 않고 달리는 지하철 옆에 서서 대한민국의 산업화, 민주화되어가는 과정을 지켜봤다.
공기업에서 정년을 마쳐 생활비 조달이 급급한 상황은 아닐 텐데, 투자까지 해가며 회사 설립에 참여한 이유는 무엇일까?
“사람은 사람 냄새를 맡으며 살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집에만 있으면 안 돼요. 소속된 곳이 있어야 힘이 솟고, 활력을 유지할 수 있어요. 주변 동년배 중 건강한 사람들은 대부분 직장을 가진 사람들이에요. 물론 지금의 회사는 예전에 다녔던 직장과는 구조도 문화도 다르죠. 각자의 역할을 존중하되 의사결정을 해야 할 때는 서로 상의하는 구조로 운영되고 있어요. 함께 꿈을 만들어가고 있는 셈이죠. 그래서 더 열중할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어요.”
그는 또래의 퇴직자, 퇴직 예정자들에게 “나이가 많다는 이유 뒤에 숨어서는 안 된다”고 조언했다.
“세상엔 말도 안 되는 상황과 환경 속에서 기적 같은 일을 해낸 사람이 수없이 많잖아요. ‘왜 나만 힘들지?’ 하는 생각 속에 사는, 나이 든 사람을 종종 만나요. 하지만 꿈을 향해 뛰는 사람들에게는 그런 고민이 느껴지지 않아요. 꿈과 목표를 분명히 세우면 노후의 삶도 바쁘게, 치열하게, 보람 있게 만들 수 있다고 믿습니다.”
이런 기분이었다. 시원하게 속이 뻥 뚫리고 세상이 진짜 내 것 같은 느낌 말이다. 노곤한 몸을 일으켜 잠에서 깰 때까지도 몰랐다. 사람들이 왜 이 새벽에 뛰겠다고 모이는가 생각했다. 그 생각은 너른 호수가 눈에 들어오고 푸르른 나무 사이를 지나다 햇살이 몽환적으로 몸을 감싸는 순간 사라진다. 아침에 달리는 느낌이 이런 것! 하루를 만나고 또 만나다 보니 15년 한결같이 같은 곳을 바라보며 뛰게 됐다는 사람들을 소개한다. 바로 ‘런조이일산마라톤클럽’이다.
매주 토요일 아침 6시. 일산호수공원 제1주차장에서 호수공원 쪽으로 난 문을 열고 들어가면 런조이일산마라톤클럽 회원들이 삼삼오오 모이다가 금세 40명에서 50명으로 무리를 이룬다. 시간이 되면 빙 둘러서서 함께 몸을 풀고 뛸 준비를 한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벤치에 놓인 과일과 물을 나눠 마시고 난 뒤 대열을 맞춰 호수공원 트랙을 뛰기 시작한다. 매번 이렇게 모여 호수공원을 두 바퀴 뛰면 일정이 마무리된다. 말이 쉽지 일산호수공원 두 바퀴는 10km 코스를 의미한다. 이들은 매주 수요일 밤과 토요일 새벽에 만나서 어김없이 뛴다고 했다. 사실 런조이마라톤클럽은 일산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서울 동작구의 보라매와 여의도, 잠실 등지에서 먼저 생겨났고 일산은 마지막에 조직됐다. 게다가 꽤 유명한 마라토너가 창단한 클럽이라고 이희준 훈련감독이 말했다.
“이 클럽은 이홍렬 감독님이 마라톤에 대한 열정을 담아 ‘뛰는(RUN) 기쁨(JOY)’이란 이름으로 만드셨습니다. 우리나라에서 10년 동안 넘어서지 못하던 2시간 15분대의 벽을 1984년 동아마라톤대회에서 1초 앞당겨서 깨신 분입니다. 국가대표도 오래하셨고 마라토너 출신 첫 체육학 박사이십니다. 저도 감독님께 배웠죠.”
특히 런조이일산마라톤클럽이 받은 혜택이 있다면 이홍렬 감독이 초창기부터 꽤 오랜 시간 일산에 거주했다는 것. 다른 지역 클럽은 애써 찾아갔다면 일산은 매번 와서 함께 훈련하고 뛰었다. 바탕이 튼튼하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꾸준하게 회원들이 찾아온다고. 매주 이렇게 모여서 뛰면서도 줄곧 하는 얘기는 또 마라톤 이야기다. 회원들은 자세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기도 하고 다 뛰고 나면 다 같이 몸을 푼다. 15년 된 초창기 회원도 매주 나와 뛰고 있고 적게는 3년, 평균적으로 10년 정도 이곳에서 마라톤 경력을 쌓아온 베테랑이 많다.
사뿐히 뛰는 아름다운 꽃중년 미녀들
런조이일산마라톤클럽 부회장을 맡고 있는 정혜경 씨는 이곳에서 10년째 뛰고 있는 베테랑 중 한 명. 취재를 할 때도 뛰면서 이야기하자고 할 정도로 자신감과 활기가 넘쳤다. 팔다리가 길고 여린 체구의 그녀에게 “요즘은 여자들을 위한 실내운동이 많은데 왜 마라톤을 선택했냐”고 묻자 참 단조로운 답이 돌아왔다.
“처음에는 아무 생각 없었거든요. 나중에 지인들이 뼈가 부러질 거라면서 말리더라고요. 물론 여자로서 꺼려지는 게 있죠. 햇빛에 노출되어 주근깨도 생기고 피부 걱정이 돼요. 그런데 야외에서 뛰다 보니까 실내운동은 생각만 해도 답답해요. 매일매일 다른 풍경을 보여주는 자연과 호흡하면서 뛰는 느낌이 정말 좋습니다.”
7년 전 갑상선암 수술을 한 뒤 1년 쉰 기간을 제외하고는 매주 호수공원 트랙을 돌고 있다. 덕분에 남들이 걱정하는 골밀도도 눈에 띄게 좋아졌다고 했다.
“완전 정상이에요. 갑상선암 수술하면 골밀도가 문제라던데 저는 전혀 그런 거 없고 지금은 갑상선 약도 끊었어요. 마라톤 덕을 확실히 봤죠.”
긴 머리 휘날리며 호수공원을 뛰는 또 한 명의 미녀가 있다. 올해 4월 보스턴마라톤대회에 참가하고 돌아온 정경화 씨다.
“작년에 개띠 선배님들이 보스턴에 다녀왔는데 너무 좋으셨다며 자꾸 바람을 넣는 거예요.(웃음) 그래서 보스턴마라톤대회 참가자 2기가 꾸려졌습니다. 보스턴마라톤대회에는 42.195km 풀코스밖에 없어요. 그런데 진짜 말로만 들어서는 이해하지 못할 감동이 있어요. 동네가 온통 축제 분위기이더라고요. 다들 손 흔들어주고요. 첫발부터 결승점까지 계속 감동이에요. 눈물 날 것 같았어요.”
마라톤 경력 3년, 과감한 도전을 하고 감동까지 만끽하고 돌아왔다는 그녀의 눈빛이 촉촉하게 빛났다.
팔순잔치 삼아 참가한 보스턴마라톤대회
런조이일산마라톤클럽에서 단연 눈에 띄는 사람은 바로 이명희 씨다. 이 모임의 최고 연장자이지만 열정만큼은 20대를 방불케 하는 인물. 젊은 회원들하고 뛸 때도 뒤처짐이 없을 뿐만 아니라 80대가 맞나 싶을 정도로 다리 근육도 단단해 보였다. 그의 마라톤 인생에 있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작년에 참가했던 제122회 보스턴마라톤대회. 정경화 씨가 언급한 58년 개띠들과 함께 보스턴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저를 위한 선택이었습니다. 작년에 제가 80세였거든요. 그걸 기념하고 싶었어요. 마침 회원 들 중 작년에 환갑을 맞이한 58년 개띠들이 보스턴에 간다고 하더라고요. 같이 가겠다고 했죠. 생일은 6월인데 팔순 기념으로 4월 말 보스턴에 다녀왔죠. 제가 참가했던 첫 마라톤이 2005년에 열린 ‘보스턴제패기념마라톤대회’였거든요. 그때부터 보스턴에 한 번 가봐야겠다고 생각했는데 그 꿈을 이뤘죠. 폭풍우가 몰아쳤지만 완주는 했습니다.”
현역 시절 공인노무사로 일하다가 정년퇴임 뒤 일산 신도시로 들어오면서 그의 마라톤 인생이 시작됐다.
“2004년부터 였으니까 우리 클럽이 생기기 전부터 뛰었습니다. 일산에는 65세에 이사 왔어요. 그때 제 눈에 운동할 만한 곳이 호수공원밖에 없어서 매일 나왔습니다. 어느 날 보니까 런조이마라톤클럽이 회원을 모집하더라고요.”
이제 정말 마라톤 은퇴를 생각한다면서도 미련을 버릴 수가 없는 모양이다.
“팔십 먹어 마라톤 하면 사람들이 욕해요. 죽으려면 집에서 죽지 미쳤다고 길거리에 죽냐고요.(웃음) 금년까지는 뛰고 싶습니다. 하프 코스에서 10km로 조금씩 줄여나가야죠. 이제는 좀 힘들어요.”
15년을 함께 뛰다 보니 기념일도 챙긴다. 매년 6월에 있는 클럽 창립 기념일에는 환갑을 맞이하는 회원들을 위해 ‘환갑 마라톤’을 연다. 올해는 정년퇴임을 하는 회원과 함께 양평으로 가서 뛸 예정이다. 혹시 마음속에 질주 본능이 있다면 토요일 아침 6시 일산호수공원으로 나가보시라.
※ 라이프@이 독자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소개하고 싶은 동창회, 동호회 등이 있다면 bravo@etoday.co.kr로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시니어 일자리는 하늘의 별 따기가 됐다. 현실이 녹록지 않아서다. 경제적 어려움과 4차 산업혁명으로 일하는 시간과 일자리가 줄어드는 현상도 한몫하고 있다. 베이비붐 세대(1955~63년생)의 은퇴시기와 맞물려 재취업이나 창업을 원하는 사람의 수가 늘어나 경쟁률도 치열하다. 채용 공고가 나면 마치 쓰나미 현상을 방불케 한다.
평균수명 100세 시대에 건강 나이까지 늘어 요즘 은퇴한 시니어는 60~65세라 해도 신체적으로 청년 못지않게 건강하다. 2015년 유엔(UN)이 발표한 새로운 '생애주기별 연령지표'에 따르면, 18~65세까지가 청년, 66~79세는 중년, 80~99세는 노년, 100세 이상은 장수노인이다. 문제는 정년퇴직 후 아무 일도 안 하면서 보내야 할 시간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수명이 늘어 은퇴한 후에도 30~40년을 더 살아야 하는데 자녀 교육비, 자녀 결혼 자금 등으로 정작 본인의 노후 생활비는 챙겨두지 못한 경우가 태반이다. 최소한의 생활비를 스스로 마련해야 하는 입장이다. 그래서 기회가 될 때마다 일거리를 찾으려 해보지만 현실은 쉽지 않다.
어떻게 해야 하늘의 별을 따는 것만큼 힘들다는 일자리를 얻을 수 있을까? 일자리와 관련한 정보를 알게 되면 구직활동에 도움이 된다. 아는 것만큼 보이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고령사회에 대비한 시니어의 일자리 창출에 다각도로 노력을 기울여왔다. 대표적으로 보건복지부가 시행하는 '시니어 인턴십 지원제도'가 있다. 보건복지부가 주관하고 한국노인인력개발원이 시행하고 있는 제도다. 위탁기관으로 선정된 '스탭스'를 비롯해 관련 업체에서 인턴십 근무자를 쓸 기업들과 계약을 하고 참여할 시니어를 교육시켜 기업에서 근무하게 하는 시스템이다. 시니어 인턴십 근로자를 채용하는 기업에게는 6개월 동안 일정액을 지원한다. 일자리를 찾는 시니어와 구인에 어려움을 겪는 기업 양쪽에 도움이 되는 제도다.
물론 6개월이라는 제한된 기간이 있으나 인턴십 과정을 통해 제2의 일자리로 연결되기도 한다. 또 기업 입장에서는 훌륭한 인재를 구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 인턴십 일자리에 관심이 있다면 한국노인인력개발원과 상담을 해보길 권한다. 의외로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일자리’라는 별을 따는 방법 중 하나다.
한동안 ‘기승전OO’이라는 신조어가 유행했다. 어떤 일의 시작, 전개, 전환 과정과 무관하게 결론이 항상 같게 나타날 때 쓰는 용어인데, 본래는 한시의 형식을 설명하는 ‘기승전결(起承轉結)’에서 따온 말이다. 안대회(安大會·58) 성균관대학교 한문학과 교수는 한시뿐만 아니라 희로애락이 부침하는 인간의 생애 또한 기승전결의 구조를 띤다고 말한다. 유행어의 의미와 차이가 있다면 누구나 ‘결(結)’에 다다르지만, 그 모습은 모두 다르다는 것이다.
안대회 교수가 엮은 책 ‘다행히도 재주 없어 나만 홀로 한가롭다’는 인간의 삶을 큰 줄기로 잡아 152편의 한시를 ‘기승전결’ 4부로 나눠 편집했다. 전반부(기·승)가 갈등과 슬픔, 불안의 감정이 주를 이룬다면 후반부(전·결)는 기쁨과 안정, 소소한 즐거움을 노래한다. 시를 고르고 해석하며 자연스레 동년배인 중장년층을 염두에 두게 됐다는 안 교수. 그의 삶은 기승전결의 어디쯤 와 있는지 궁금했다.
“책에 실린 한시가 쓰인 시대로 따지면 이미 ‘결’이겠지만, 요즘의 생애주기로 보면 아직 ‘전’ 단계라고 생각해요. 전(轉)은 인생에서의 변화를 겪는 전환기라 할 수 있죠. 일반적으로 보면 퇴직 전후나 인생 2막을 준비하는 때이고요. 책에서는 ‘삶이 다가오는’(시기)이라는 말을 덧붙여 표현하기도 했어요. 구성상 4부로 나누긴 했지만, 독자에 따라 어떤 시는 ‘이게 왜 여기에 들어갔지?’라는 의문이 생길 수도 있을 거예요. 그러나 꼭 기승전결에 얽매여 억지스럽게 배열하지는 않았습니다. 인생에는 굴곡과 변수가 있게 마련이니까요.”
정조도 염원한 ‘미로득한방시한’
책 제목 ‘다행히도 재주 없어 나만 홀로 한가롭다’는 영조 시대의 문관 홍신유(洪愼猷)의 시 한 구절을 따와 만들었다. 풀이하면 ‘재주가 없어 낙향한 덕분에 무척 한가롭다. 바쁜 세상은 재주 많은 이들에게 맡기고 나는 저 넓은 하늘과 바다를 즐기겠다’는 의미다. 안 교수는 어떤 점에서 이 구절을 마음에 둔 것일까?
“홍신유는 중인(中人) 출신이지만 문과에 급제했을 정도로 역량이 출중했어요. 그러다 출세가 힘들어져 부산으로 쫓기듯 내려왔는데, 그때의 상황에서 보면 이중적인 의미가 있죠. 정말 능력이 없어 그렇게 표현한 게 아니니까요. 성취하지 못한 것에 대한 불만과 회한도 있지만 오히려 그 덕분에 일이 없어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니 행복하다는 거죠. 가질 수 없는 걸 부여잡고 탐하기보다는 현재의 즐거움과 만족에 집중하는 모습이 멋지다고 느꼈어요.”
홍신유는 자칫 박탈감이 생길 수도 있는 상황을 한가로움을 즐기는 만족으로 전환했다. 안 교수는 그런 홍신유의 태도도 훌륭하지만, 가장 좋은 건 스스로 한가로움을 택하는 길이라고 조언했다.
“미로득한방시한(未老得閒方是閒)이라는 옛말이 있어요. ‘미로’ 늙기 전에, ‘득한’ 한가로움을 얻어야, ‘방시한’ 그게 진정한 한가로움이라는 의미입니다. 가끔 정년까지 회사에 다니지 않고 그전에 퇴직을 자처하는 이들이 있잖아요. 나이 들어 주변 사람이나 환경에 의해 억지로 얻는 한가로움보다는 스스로 몸과 마음이 건강할 때 보내는 한가로움이 더 유익하다고 보는 거죠. 꼭 정년퇴직 문제가 아니더라도, 경제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미리 정리한 삶의 방향대로 간다면 인생이 여유로워지리라 생각해요.”
그는 ‘미로득한방시한’을 실천하려는 이들에게 특별한 장소를 추천했다. 바로 경기도 수원시 화성행궁에 있는 ‘득한정(得閒亭)’이다.
“수원을 방문한다면 기념 삼아 한번 가보세요. 득한정은 말 그대로 ‘한가로움을 얻는 정자’라는 뜻을 지니고 있어요. 정조가 붙인 이름인데, 그 역시 미로득한방시한을 원했던 인물 중 하나입니다. 정조가 세운 ‘갑자년 구상’을 보면 세자가 15세 성년이 되는 해인 갑자년(1804)에 왕위를 물려주고 화성으로 내려가겠다고 했죠. 아쉽게도 정조는 그 구상이 실현되기 전인 1800년에 병으로 세상을 뜹니다. 절대 권력을 가진 임금이 그런 결심을 하는 게 쉽지는 않아요. 가진 게 많을수록 내려놓기 어려우니까요. 내가 정말 많은 것을 안고 있을 때, 또는 너무 바쁠 때는 스스로 조금씩 덜어내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각별함, 평범한 것이 특별해지다
여항시인 최천익(崔天翼)의 시에서도 홍신유와 비슷한 태도를 엿볼 수 있다. ‘병석의 나를 위로하며(病中自慰)’라는 시에서 그는 병이 생겨 누워 있는 탓에 몸은 수척해졌으나 마음을 고쳐먹고 내적 양식을 쌓으리라 의지를 다진다.
“원문에는 ‘近裏工夫或庶幾(근리공부혹서기)’라 쓰여 있어요. 가까울 근, 속 리, 즉 근리공부는 내면공부와 같아요. 최천익은 병상에 누워 있는 지금이야말로 절실한 내면공부를 하기에 알맞은 시기라 말했죠. 대부분 좌절을 겪으면 자신을 돌아보게 되는데, 나이 들면 병이 생기는 것도 큰 좌절이잖아요. 낙담하지 않고 내면을 다스려 채워간다면 위기도 더 나은 인생을 향한 전환기로 삼을 수 있으리라고 봐요.”
이황(李滉) 역시 ‘세상맛은 나이 들수록 각별해진다’며 노년의 삶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안 교수에게 나이 들수록 특별히 더 좋아지는 것이 있는지 묻자, 이때의 ‘각별함’은 조금 다른 의미로 해석된다고 설명했다.
“나이 들수록 각별해진다는 건 그동안 별것 아니던 무언가가 특별해지는 경험을 말해요. 젊어서는 즐길 거리가 워낙 많으니 사소한 것에는 관심이 가지 않잖아요. 예를 들어 꽃도 좋아하지 않거나 장미처럼 화려한 걸 선호하죠. 그런데 나이가 들면 이름 없는 작은 들꽃도 참 예뻐 보여요. 늙어서 새로 생긴 것이 아닌, 본래 있던 평범한 것들에 눈이 가고, 소중함을 재발견하는 거죠.”
안 교수는 노탐(老貪)을 버리고 평범한 일상에 만족하며, 자신의 내면을 바라보는 과정을 통해 ‘결’에 이르고 싶다고 소망했다. 더불어 언젠가 다가올 인생의 한가로운 시기에 대한 계획도 빼놓지 않았다.
“퇴직 후엔 인생 이모작보다는 연장전에 가까울 것 같아요. 지금까지 하던 작업을 계속할 테니까요. 그게 제겐 즐거움이고 취미거든요. 다들 그건 너무 단조롭지 않겠느냐고 묻기도 해요. ‘인문’ 자체는 하나의 종목이지만, 내용에는 인간의 풍부한 경험과 다양성이 존재하죠. 한 사람이 일생 동안 다 해내지 못할 정도로 끝도 없고, 경지도 없어요. 그 속에서 내가 보는 만큼 아는 거고, 찾는 만큼 나아가는 거죠. 욕심 부리지 않고, 역량껏 차근차근 ‘결’의 시기를 맞이하고 싶어요. 자료 수집하러 여행도 다니고, 다른 것에 매여 하지 못했던 박제가(朴齊家) 평전도 쓰고요. 그게 바로 제가 택한 한가로움입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 그는 매일 듣던 라디오도 꺼버린 채 적막만이 가득한 시간을 달렸다. 유일하게 작은 소음을 내는 것은 잡동사니가 담긴 상자뿐이었다. 불과 몇 시간 전 “그간 고생 많으셨습니다. 이제 쉬세요”라는 말과 함께 갑작스레 받게 된 퇴직 권고의 결과물이었다. ‘내가 뭘 잘못했지?’, ‘더 잘 보여야 했나?’, ‘누구 탓이지?’ 온갖 질문을 해댔지만 속시원한 답을 찾을 수 없었다. 그리고 또 다른 질문이 떠올랐다.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하지?’ 경기도 화성의 한 아파트에서 만난 강석진(姜錫珍·63) 씨 이야기다.
“안 타본 해군함정이 거의 없어요.” 전직을 이야기하다 군함 이야기가 나오니 그의 얼굴이 환해진다. 우리나라 해군의 주력 구축함인 충무공이순신함부터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독도함, 안타깝게 뭍으로 올라오게 된 천안함까지 우리 해군의 함정 중 상당수는 그의 손을 거쳤다. 전자공학을 전공한 그는 원래 방위산업체인 LIG넥스원에서 주로 해군함정의 레이더 관련 장비 개발을 담당했었다. 1980년 금성정밀공업(LIG넥스원의 전신)에 입사해서 2014년 정년퇴임했다. 이후 관계사로 이직했다가 2017년 말 퇴직권고를 받으면서 방산 장비와 작별을 고했다.
“적이 우리 함정을 추적하거나 공격하지 못하게 막는 전자전 장비를 만드는 일을 했어요. 장비 개발뿐만 아니라 제대로 작동하는지 시험하고 점검해야 했기 때문에 해군과의 협업이 필수였죠. 덕분에 많은 시간을 바다에서 보냈어요. 이제는 멀리서 안테나 모양만 봐도 어떤 배인지 맞힐 수 있는 정도가 됐죠. 한번은 첫 번째로 실전 배치된 장비 운용을 돕기 위해 함정에 올랐다가 ‘실전 상황’이 벌어져 혼비백산한 적도 있어요. 다행히 별일 아니었지만 완전무장한 군인 사이에서 사복 차림으로 난감했습니다.”
“일하는 것만으로 애국심이 생겼다”
방위산업체에서의 직장생활은 어땠을까? 그는 “지휘고하를 막론하고 일하다 보면 애국심이 절로 생긴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가족에게도 무슨 일을 하는지 말도 못했어요. 보안을 엄격하게 지켜야 했으니까요. 그렇게 살다 보니까 불편함도 잘 모르겠더라고요. 제약이 많고, 특별한 혜택은 없어도 국력에 보탬이 되는 일을 하고 있다는 긍지를 갖고 평생을 살았어요. 개발을 위해 몇 주간 밤을 새기도 하고, 외국인 박사들과 머리를 맞대기도 했죠. 덕분에 우리 국방 기술은 이제 세계 수준에 올랐어요. 회사생활 마지막에 정년을 연장하면서까지 개발했던 육군의 디지털 통신망 관련 기술은 미군에도 없는 수준입니다. 우리 전투력에 큰 도움이 될 거예요.”
정년은 정해져 있었지만 마지막까지 개발에 매달리던 삶이었다. 프로젝트 완성을 위해 이례적으로 정년이 연장되기까지 했다. 때문에 남들처럼 느긋하게 정년 준비를 할 틈이 없었다. 이런 상황은 이후 협력사에서의 갑작스런 퇴직 권고와 함께 그에게 독이 됐다.
“어느 날 도서관에서 관련 정보를 검색하다가 노사발전재단 경기중장년일자리희망센터를 알게 됐고, 관련 교육을 받으면서 전기기술에 도전해봐야겠다고 결심했어요.”
보통의 퇴직자에게는 전기기능사 자격 취득을 권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평생을 전자회로와 씨름했던 그였기에 더 욕심을 내보기로 했다. 수원직업전문학교에서 전기기능사 수업을 듣고 나서 교실에 남아 상위 자격인 전기산업기사와 전기기사 준비를 독학으로 했다. 전기산업기사 이상의 자격을 취득하면 전기안전관리자로 공동주택, 즉 아파트 관리실에 취업할 길이 열리기 때문. 담당 강사도 강의실을 비워주고 책까지 빌려주며 그를 응원했다.
그리고 6개월 만에 전기산업기사 자격을 취득했다. 전기기사는 필기는 붙었지만 실기에서 떨어졌다. 그는 “전기기사 실기는 문제 파악도 제대로 안 되더라”고 말했지만, 환갑을 넘긴 나이에 젊은이들도 어려워하는 전기산업기사 자격을 취득한 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이었다. 산업인력관리공단 자료에 따르면, 2017년 전기산업기사 응시자 2만9428명 중 실기까지 합격한 인원은 14.7%인 4334명에 불과했다.
일반 회사와 다른 아파트 관리 문화
자격증이 그의 취업에 전가의 보도 역할을 했을까. “그렇지 않다”고 말하는 그는 아파트 관리 업계의 독특한 문화에 대해 설명했다.
“아파트 관리 분야는 일반 직장과는 다른 진입장벽이 있어요. 경력자를 우선 채용하는 문화가 있습니다. 때문에 신입은 일자리를 얻기가 쉽지 않아요. 저는 처음에 운이 좋았어요. 경력자만 뽑는다는데 무작정 이력서를 넣었고, 면접 때 저를 잘 봐주신 소장님 때문에 직장을 얻을 수 있었거든요. 그러나 첫 아파트에서는 격일로 24시간 근무하는 것이 적응이 안 돼서 퇴사했고, 두 번째 아파트를 거쳐 지금 직장은 세 번째 아파트입니다. 이제는 이 일이 적응이 돼서 격일 근무도 문제없어요.”
일반인들은 잘 모르겠지만 아파트 관리는 크게 3개 직군으로 나뉜다. 관리, 경비, 청소가 그것. 아무래도 자격증을 필요로 하는 관리 직군이 대우도 가장 좋다. 관리 분야는 소방, 전기, 난방 3개 분야를 중심으로 모집한다. 아파트 관리사무소 안에는 세대 규모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소장, 과장, 대리, 반장 등의 직급이 존재하고, 관리 분야 외에 회계 등 행정직 근무자도 있다.
업무 체계는 일반 회사와 비슷하지만 정체된 조직이다 보니 승진 기회가 많지 않다. 때문에 경력을 쌓아 이직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아파트 관리 업계의 승진 문화가 됐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이력서에 잦은 이직 기록이 있는 경우 부정적으로 보는 일반 업계와 달리 아파트 관리 분야에서는 경력으로 인정해주는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다고.
아파트마다 주민 요구 경향 달라
아파트라는 직장의 소비자는 주민이다. 최근 사회적으로 이슈가 됐던 ‘주민 갑질 논란’의 대상은 주로 경비직이지만 관리직 역시 자유롭진 않다. 전구를 갈아달라는 요구부터 설비 수리까지 다양한 요구사항이 발생한다.
“몇 군데의 아파트를 경험해보니까 주민이 젊고 평수가 작을수록 요구사항이 많고, 높은 서비스 수준을 요구해요. 또 인터넷 카페를 통해 관련 정보를 공유하는 경우가 많아서 더 신경이 쓰입니다. 나이가 많거나 고급 아파트 주민은 아파트 관리 인력보다 상대적으로 기술 수준이 높은 전문가를 선호해요. 집을 아끼려는 경향이 강하거든요. 그래도 저희가 처리한 업무에 대해 감사인사도 건네고 잘 대해주셔서 지금 근무하는 아파트에서는 보람을 느끼며 일하고 있어요. 처음엔 친구들에게 아파트에서 일한다고 말하기 쑥스러웠지만 지금은 편하게 이야기해요. 되레 놀고 있는 친구들이 어떻게 하면 일할 수 있냐고 물을 정도예요.”
그는 또 하나의 목표가 생겼다. 자격증을 따고 새로운 업계를 접하면서 눈이 트인 것처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또 다른 길이 보였다. 경력을 쌓고 소방설비기사 자격증을 추가로 취득해 시설관리 프리랜서로 활동하는 것이다. 물론 이제 업계에 막 발을 들여놓은 ‘초짜’인 그에게 쉬운 목표는 아니다.
“제 나이쯤 되면 목표가 있다는 것 이 중요해요. 그래야 공부도 하고, 체력 보충을 위해 운동도 하고, 달성을 위한 다양한 일도 하게 되니까요. 제 목표가 언제 이뤄질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끝까지 도전을 멈추지 않을 겁니다.”
평생 현역시대다. 이런 경향은 통계로도 나타난다. 통계청이 발표한 2018년 10월 고용동향 발표를 살펴보면, 60세 이상 취업자 수는 2017년 같은 달에 비해 24만3000명이 늘었다. 중장년의 ‘일자리 찾기’가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은퇴 후 새 일자리를 찾는 ‘베이비붐 세대’의 진입 때문이다. 그렇다면 중장년은 성공적인 취업을 위해 무엇을 고려해야 할까? 노사발전재단 경기중장년일자리희망센터 임선화 소장을 통해 그 방법을 알아봤다.
1 진짜 원하는 것이 뭘까? ‘나를 알아야’
일자리 지원 기관의 실무자들은 “상당수 구직자는 본인이 무엇을 원하는지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고 입을 모은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고, 하고 싶은 일의 분야를 명확히 말하는 구직자를 만나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다는 것. 심지어는 “그냥 좋은 곳으로 하나 소개해 달라”며 떼를 쓰기도 한다.
이런 태도는 일자리로부터 멀어지게 만든다. 임선화 소장은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으니, 아무데나 괜찮은 자리로 취업시켜 달라”고 요구하기보다, 자신의 직무 경력을 상세히 설명하고 지원 가능한 일자리를 소개받는 것이 낫다”고 조언했다.
물론 원하는 일자리의 이상향을 구체화하는 것도 좋다. 업무 분야나 지역, 근무시간 등도 미리 생각해야 구직에 유리하고, 원하는 급여 수준도 어느 정도 정해놓아야 한다. 생계유지에 연연해하지 않아도 된다면 봉사활동이나 재능기부 형태의 일자리로 눈을 돌려보는 것도 방법이다.
2 취업시장에 경로우대는 없다 ‘나를 가꿔라’
“면접 보는 날 등산화에 등산복 차림으로 나타나시는 분도 적지 않아요.” 일자리 지원 기관 실무자들이 꼽는 가장 난감한 경우 중 대표적 사례다. 애써 면접까지 성사시켜놨더니 최소한의 예의도 보여주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말한다.
구직 행위는 기업에 나를 선보이는 일이다. 나를 선택할 수 있도록 좋은 인상을 보여줘야 한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다. 중장년 구직자 중 상당수가 어려워하는 부분 중 하나다. 그러나 기업의 구직자에 대한 평가는 대부분 이 종이 몇 장에 의해 판가름난다.
내가 쓴 이력서와 자기소개서가 자신 없다면 관련 기관 서비스를 이용해보는 것도 좋다. 노사발전재단 중장년일자리희망센터의 전직지원서비스가 대표적이다. 재취업 상담을 통해 작성을 도와주기도 하고, 구직서류클리닉에선 작성된 서류를 점검한 후 모의면접을 통해 면접 성공 가능성을 높여준다.
3 나를 위한 ‘꿀’직장은 없다 ‘눈높이를 낮춰라’
중장년 구직자 선호도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가 있다. 재취업 시장에서는 잘나가는 대기업 출신 퇴직자가 ‘기피대상’에 오를 가능성이 의외로 크다는 것이다. 의외다. 가장 체계적이고 선진화한 시스템의 첨병에 있던 인재라면 사람을 취업시켜야 하는 입장에선 가장 좋은 상품 아닐까? 하지만 전 직장보다 주먹구구식인 시스템에 불만만 쌓일 가능성이 높다.
대기업 출신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중장년을 받아주는 일자리는 대부분 척박하다. ‘왕년에’ 근무했던 일자리와도 대부분 거리가 멀다. 통계청이 지난 10월 발표한 2018년 상반기 지역별 고용조사 취업자의 산업 및 직업별 특성 자료에 따르면, 올 상반기 취업한 50세 이상 취업자 고용 분야 중에서 가장 높은 비중은 농축산 숙련직이 차지했다. 청소 및 경비 관련 단순 노무직이 뒤를 이었다. 이와 비슷한 통계가 있다. 바로 교육 정도별 취업자 통계다. 중졸 이하 취업자의 분야별 규모 역시 1, 2위가 농축산, 청소 및 경비 관련 순이다. 50세 이상 취업자 통계와 같다. 이는 결국 50세 이상이 얻은 일자리가 흔히 말하는 ‘양질의 일자리’와는 거리가 있다고 해석해도 되지 않을까. 때문에 현실을 직시하고 눈높이를 낮춰 내게 맞는 일자리를 찾는 것이 유리하다.
4 퇴직 후는 늦다 ‘경력 관리는 미리 준비하라’
정년퇴직 후 인생 2모작을 준비하는 중장년 중 상당수는 자격증을 돌파구로 삼는다. 퇴직 후 자격증 획득, 그리고 취업의 순서를 꿈꾼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퇴직 후 준비는 늦다”고 입을 모은다.
퇴직 후 자격증 취득 등을 위한 구직 준비기간이 길어지면 이력서를 받아보는 기업 입장에선 경력 공백이 길어진 이유를 의심하기 쉽다는 것. 또 자격증 취득 후 해당 분야로 취직이 되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준비기간은 말 그대로 허송세월이 될 뿐이다. 자격증이 들이대면 구직 문제가 술술 풀리는 ‘마패’ 같은 존재는 아니기 때문. 현장 전문가들이 “자격증 장사에 현혹되면 안 된다”고 입을 모으는 것도 이 때문이다.
임 소장은 “퇴직 전 본인의 평판이나 경력, 인맥 등 경쟁력을 키울 수 있도록 생애경력설계서비스 등을 통해 미리 준비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말하면서 “내가 취득하고자 하는 자격증의 전망 등 정보가 궁금하다면 중장년 취업에 대한 많은 정보를 갖고 있는 중장년일자리희망센터 같은 기관을 통해 정보를 접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했다.
5 선입견은 금물 ‘공공기관의 구직지원 서비스를 이용하라’
정부부처 산하의 기관이나 지차체 등에서 다양한 구직지원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
구직 경험자들이 꼽는 공공기관 구직지원 서비스의 장점은 크게 3가지다. 우선 대부분 별도의 비용이 필요하지 않다. 사설기관에선 교재나 경력설계, 자격증 취득 등을 미끼로 돈을 요구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선별된 구직정보도 장점이다. 물론 공공기관이라고 모든 일자리에 대한 검증을 진행하진 않지만, 문제가 될 만한 다단계 등 불량 기업은 어느 정도 선별된다.
마지막으로는 기관의 네트워킹에 있다. 중장년에게 필요한 도움을 줄 수 있는 유관기관과 연계하여 더 많은 서비스를 제공한다. “형식적일 것”이라는 선입견을 버리고 이용해보기를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