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국진(文國鎭·91) 박사는 우리나라 최초의 법의학자다. 1955년 설립된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창설멤버인 문 박사는 당시 국내에 생소했던 ‘법의학’이라는 분야를 뿌리내리고 기틀을 잡는 등 한국 법의학계의 큰 스승과 같은 인물이다. 그런 그가 말하는 인생의 스승은 바로 ‘죽음’이라고 한다. 수많은 주검을 부검했던 문 박사는 요즘도 부검을 하고 있다. 바로
현재의 삶에 만족하지 못 하는 사람이 과거를 그리워하는 거라는 말을 들은 적 있다. 꼭 그래서 그런 건 아니지만 어린 시절의 이야기는 언제나 그리움이다. 이제껏 살아오면서 어렸을 때의 일을 글로 한번 꼭 표현해 보고 싶다는 열망이 항상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고 있었다.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던 만큼 잘 표현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이제는 돌아가 볼 수 없는
새 학기를 맞아 환갑 띠 동갑 쌍둥이 손주와 외손자의 입학식이 열렸다. 60년 전 초등학교 입학식이 오늘과 비교되었다. 아이들의 손을 꼭 잡고 ‘친구 잘 사귀면서 건강하게 자라기’를 바랐다.
오전에 쌍둥이 손녀와 손자의 초등학교 입학식이 열렸다. 바로 집과 가까운 학교이지만 눈을 두리번거리면서 잔뜩 호기심에 차있다. 예나 지금이나 새로움에 대한 관심은 같
부동산의 가치 판단과 관련한 두 가지 질문에 대해 그 답을 알아보자. 첫 번째 질문이다. 경사가 있는 땅이 있다. 경사진 땅의 높은 곳을 ‘가’라고 하고 경사진 땅의 낮은 곳을 ‘나’라고 하자. 당신은 어디가 좋은 땅이라고 생각을 하나? 두 번째 질문이다. 커피숍이 있다. 그 가게 앞에 도로가 있다. 그 도로의 폭이 넓은 곳이 좋을까? 좁은 곳이 좋을까?
도시 생활에 지친 사람들이 모두 한 번 쯤 꿈꾸는 것 중 하나가 전원생활이다. 아침이면 지저귀는 새 소리에 눈 뜨고, 지나는 바람이 건네는 나뭇잎 스치는 소리에 귀 기울이고, 말하지 않아도 찾아오는 계절이 그린 그림에 취하고 ….
그래서 필자도 경치가 좋은 양평에 깨 밭을 사서 깨가 쏟아지게 농가주택을 지었다. 집을 설계하며 어디에 무엇을 둘까, 신바람
몽골은 봄이 아주 늦게 시작된다. 이토록 어렵게 온 봄인데도 그 기간이 아주 짧다. 그래서 이때는 사람들이 서로에 대한 안부보다 꽃에 대한 안부를 묻는다. “진달래가 어느 길목에 모여 피었다던데 보셨나요?” “보라색 할미꽃은 자이산 기슭에 있어요.” “거기엔 에델바이스가 한창 올라오던데 비가 한 번 더 내려주었으면 좋겠어요.”
거의 8개월의 거친 바람과
이재준(아호 송유재)
초정(艸丁) 김상옥(1920~2004) 시조시인과의 인연은 1980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의 처녀시집인 을 구하기가 어려워 혹여 선생께선 몇 부 갖고 계실 듯해서 어렵게 전화로 여쭈니, 당신께서도 국립중앙도서관에서 복사한 것만 갖고 있다며, 꼭 구했으면 하셨다.
1947년 ‘수향서헌’에서 1000부 한정판으로 발간한 이 책은
한 학자는 미(美), 즉 아름다움이란 각성(覺醒)이고 그것은 앎이라고 했다. 아는 것은 곧 깨닫는 것이며 사람이 아름다워지기 위해서는 인간, 사회, 삶에 대하여 각성하게 하는 노력이 필요하고 그것이 최고의 예술적인 미라고 표현했다.
얼굴의 옛말은 얼 골이라고 한다. 얼 골은 얼 꼴에서 왔고 얼의 꼴, 이 말은 영혼의 모습이라고 했다. 누구나 그 모습이
시니어를 대상으로 ‘어디서 살 것인가’라는 주제로 강의할 때마다 제주에서 살고 싶은 사람을 조사해 본다. 매번 느끼는 거지만 제주에서 살고 싶다고 선뜻 대답하는 사람이 뜻밖에 적은데 놀란다. 그때마다 왜 제주에 가서 살기를 꺼리는지 그 이유를 물어본다.
맛난 음식도 매일 먹으면 물리는 것처럼 제주도 그곳에 살면 감동이 반감할 거라는 논리가 그 하나다. 그
얼마 전 홍콩에서 10여 년간 거주하며 우리나라와 일본을 사업차 자주 방문한다는 ‘동양 전문가’인 캐나다인과 우연히 한·중·일 문화에 대해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다. 그 동양 전문가는 삼국의 문화에 무슨 차이가 있느냐는 듯 의아해하기까지 했다. 그래서 필자가 현대식 대형 건물이 아닌, 동양식 전통 건물에 한·중·일 삼국의 각기 다른 문화 코드가 녹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