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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엇을 물려줄지 고민하며 상속과 증여에 대비하자
- 부모는 주는 존재, 자식은 받는 존재 김미나 동년기자 ‘내 몫은 얼마나 될까’, ‘언제쯤 주실까?’ 그러나 짜다는 소리 들으며 부를 축적하신 부모님께 성화를 부릴 수는 없었다. 그래서 투잡을 뛰고 하얀 밤 지새우며 일했지만, 누구는 연봉 3억이란 말에 손을 떨궜다. 언젠가는 주시겠지 하는 느긋한 마음도 아이들이 자라고 사교육에 등골이 휠 때마다 절심함으로 밀려왔다. 그렇게 기다림에 지쳐가던 사촌 언니의 넋두리에 드디어 종지부가 찍혔다. 부모 도움 없이 성공하는 일이 정말 힘든 세상이라며, 내 자식 뒤처질까 증여를 해주셨다는 것이다. 환한 목소리로 곧 이사를 해야 한다며 전화를 끊는 언니는, 가뿐하게 부모님이 만들어주신 꽃밭으로 들어갔다. 부모에게 물려받은 유산으로 아들 유학도 보냈다. 만만치 않은 등록금 폭탄에도 한숨이 터지지 않았다. 중년 이후에 절대로 해서는 안 될 일이 노후자금 끌어다 자녀 유학비 대는 것이라지만 언니 마음은 늘 아들에게로 향했다. 남편과 부딪혀도 위로를 해주는 건 아들이고, 엄마 스테이크를 한입 크기로 잘라서 먹기 좋은 쪽에 놓아주는 사람도 아들이었다. 할 수만 있다면 다 가진 아이로 키우고 싶었다. 자녀들은 나만큼 살기 어려울 것이라는 현실에 직면하니 더 안쓰러웠다. 부모 잘 만나는 것도 능력이라는 자조가 씁쓸해도, 받은 것이 있으니 주기가 한결 수월했다. 인생에서 돈이 다는 아니지만 돈만 한 것이 없고 그 맛을 봤으니 어쩌랴. 유학을 마치고 모두들 어렵다는 취업 허들도 가뿐히 넘은 아들이 여자 친구를 데려왔다. 둘이 결혼 말이 오간 모양인데 외동딸인 여자 친구 앞으로 번듯한 아파트가 있다고 했다. 게다가 그 집에서 신혼살림을 하기로 했다니 돌아서 빙그레 웃었다. 그러던 중 문제가 생겼다. 신혼살림을 하려던 그 집이 살고 있는 세입자와 이사 날짜가 맞지 않아 입주가 안 된다는 것이었다. 쌉싸래한 기분을 내색할 수도 없어 아들 가진 쪽에서 적잖은 전세금을 내줬다. 얼마 후 며느리의 임신 소식에 그간의 속상함은 어디론가 내빼고 애정이 솟았다. 연이은 한파가 휘몰아쳐 뼈마디가 시큰거리고 마음까지 곤두박질치던 어느 겨울날이었다. 짧은 추위에도 내의를 챙겨주던 아들이 전화를 했다. 그러나 이번은 달랐다. 장장한 대화 중에 엄마의 단락은 없었다. 장모님께서, 매서운 추위에 사위 감기라도 걸릴까 두툼한 패딩 사 입으라 50만 원을 보내셨다는 감동 소감만이 물결쳤다. 엄마도 거기에 공감하라는 메시지를 폭풍 전송하고 있는 남자가 아들이었다. 사돈댁 지원에 제스처를 취해야 할 것 같아 상응하는 임신 축하금을 보냈다. 아들은 오래된 집이라 아기 키우기에 춥고 불편해 이사를 해야 할 것 같다는 말을 흘렸다. 찌르르하면서 멍함이 파고들었다. 아들은 잊고 있나보다. 막대한 유학비와 조건 없는 억대의 전세자금이 흘러 들어간 벅찬 사정을. 그때 감사 표현을 지금 감동의 조각만큼이라도 했던가. 제 돈 가져가는 것처럼 당당했지. 크고 작은 결제를 할 때도 머뭇거림 없었지. 주저 없이 카드를 썼지. 손 벌려 받은 것이니 그렇게 써도 되는 돈이라 생각했겠지. 부모가 영원한 봉이냐고 말하려다 사촌 언니 스스로 말문을 닫았다. 마치 자기가 들어야 할 말처럼 뜨끔해했다. 애써 모은 내 돈 쓸 때는 가슴이 벌렁거리고, 부모님이 고생하며 번 돈 쓸 때는 아무렇지 않았다. 어느 날 뚝 떨어진 돈, 쓰는 재미가 쏠쏠했고 잘 먹고 잘 사니 어깨가 가벼웠다. 울적한 마음 달래보려 남편 앞세워 여행을 기획했다. 그런 사촌 언니에게 아들은 말했다. 3~4년 후에 아이 크면 그때 함께 가자고. “어이쿠, 이게 바로 친구들이 뜯어말렸던 ‘육아 도우미’ 패키지 여행이로구나.” 손주와 가는 여행에 따라나섰다가는, 독박 육아에 여행 경비 떠맡을 돈줄로 내몰려 여행은커녕 스트레스만 뒤집어쓰고 돌아오게 된다 하지 않았던가. 사촌 언니는 소리 소문 없이 빠르게 여행을 떠났다. 답 없는 질문을 변명으로 툭 던지면서. 애초에 부모는 주는 존재, 자식은 받는 존재로 태어난 것일까. 자연으로 돌려주고 싶은 유산 백외섭 동년기자 지난 여름휴가 때 지인으로부터 제주도 초대를 받았다. 정확히 말하면 자산관리사인 내가 이번 그의 여행에 동행해 상속재산 ‘제주 땅’을 찾고 그 활용 방안 자문에 도움을 주기 위해서다. 휴가를 겸해서 떠난 상속재산 찾기 여행. 이른 아침 거북바위에서 바라보는 제주도의 풍광은 한 폭의 그림 같았다. 그는 자신이 손으로 가리키는 방향에 그 땅이 있을 것이라 했다. 모친에게 상속등기를 해놓은 땅인데, 성산일출봉에서 가깝다는 ‘제주 땅’을 아직 본 일은 없다 했다. 아직 젊은 그는 재능기부 창업상담 활동을 하면서 나와 만났고 가끔 산행을 같이하면서 교류하는 사이다. 상속은 멀리 그의 외조부로부터 시작됐다. 옛날에는 상속지분이 지금처럼 ‘남녀평등’하지 않았다. 아들과 딸, 호주상속자 차별이 심했다. 제사를 모시는 장자에게는 듬뿍 주고, 출가한 딸의 몫은 거의 없었다. 그것이 당연하게 여겨지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데도 오늘날처럼 상속분쟁으로 패가망신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그의 외조부는 아들 하나와 딸 셋을 두었다. 집과 선산, 문전옥답은 아들 몫이 될 터였다. 외조부는 임종이 가까워지자 세 딸도 생각했다. 농토의 일부를 정리한 뒤 현금을 마련해 딸들에게도 재산을 똑같이 나눠줬다. 이는 상속과 구분하기 어려운 증여였다. 그의 어머니와 이모들은 생각지도 않은 돈을 받고 생활 여건에 따라 긴요하게 사용했다. 어렸을 때 그가 부모로부터 전해 들은 이야기였다. 큰 회사 제주지사에 근무했던 그의 부친은 장인에게서 받은 돈이므로 땅에 묻어두는 게 좋겠다는 생각을 한 것인지 장래에 집 지을 생각으로 적당한 곳의 임야를 샀다. 개발전망이나 투자가치 같은 건 생각지도 못했던 옛날이야기다. 그런데 얼마 안 있어 서울로 발령이 났고, 그 후로는 제주도에서 살지 않았다. 수십 년 동안 그의 가족은 그 땅을 보지도 않았고 아예 관심조차 없었다. 성산일출봉이 바라보이는 곳인데도 누구 하나 찾는 사람도 없었다. 이번 여행의 목적은 그 땅에 있었다. 우선 얼마만큼의 가치가 있는지 분석하는 일이 중요했다. 그는 창작예술 사업가였는데, 카메라를 어깨에 메고 차를 운전하면서 콧노래를 불렀다. 뭔가 창작소재를 찾고 싶은 눈치였다. 얼마 후 내비게이션을 따라가던 그는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다”면서 고개를 흔들었다. 주소대로 안내를 받은 곳은 해안의 반듯한 도로와는 전혀 다른 비포장도로였다. 한참 더 들어가서야 차가 멈췄다. 우리가 찾는 ‘임야’였다. 하지만 도로보다 조금 낮게 야트막한 늪이 펼쳐져 있었다. 물오리 몇 마리가 수영을 즐길 정도로 물이 있었다. 상당한 넓이의 임야 중 절반이 그랬다. 경사진 땅으로 가려면 늪에 배를 띄워야 할 형편이었다. 이른바 맹지였다. “허허! 이게 뭐야?” 그의 헛웃음이 주변으로 메아리쳤다. 가까운 곳에 몇 가구가 사는 조그만 마을이 있었다. 마침 ‘토박이 부동산’ 어르신을 만났다. “옛날에는 모두 땅이었는데, 웬일인지 지반이 점점 내려앉아 물이 고였다”고 설명해줬다. 토지로 활용하려면 늪을 메워야 하는데 지반이 약한 제주에서는 장래를 기약하기 어렵다는 내용이었다. 일출봉 앞 백사장에서 우린 맥주를 들고 마주 앉았다. 낮에 봤던 물오리 몇 마리가 눈에 어른거렸다. 인공이 전혀 가미되지 않은 풍경, 물오리가 사는 늪이 좋았다. 그러니 그 ‘제주 땅’을 자연으로 돌려주자! 그렇게 말하고 싶었다. 공평한 나눔에 대한 생각 박종섭 동년기자 공평한 나눔이란 어떤 것일까? 어느 집이든 이런 물음을 한 번쯤 해봤을 것이다. 크든 작든 돈과 연관이 되면 하나의 답을 내기가 어렵다. 그리고 상속은 한 사람이 아니라 여러 명이 걸려 있다. 핏줄을 나눈 형제도 있고 배우자도 있다. 아무리 우애가 좋은 형제라도 부모님이 물려주신 유산 때문에 사이가 벌어지기도 한다. 나는 다행스럽게도 그런 일은 겪지 않았다.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시며 6남매를 키우신 우리 부모님은 부지런히 일해 돈이 생길 때마다 근처의 땅을 사들이셨다. 부자는 아니었지만 시골에서는 논마지기깨나 있는 집안이 된 것이다. 어릴 때는 몰랐지만, 부모님이 땅을 살 때마다 명의를 자식들 앞으로 하나둘 해놓으셨다는 걸 알게 됐다. 집 앞 논은 큰아들, 고개 넘어 서 마지기는 작은아들, 그리고 주산골 밭 한 뙈기는 막내아들, 이런 식이었다. 그때는 그게 별거 아닌 것 같았고 큰 관심도 두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날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나니 그 유산이 자식들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알게 됐다. 무엇보다 자식들이 서로 마음 상하지 않고 감사해하며 부모님 제사를 지낼 수 있어 좋았다. 나는 아들에게 부모님이 물려주신 땅을 보여주며 이렇게 말했다. “아빠가 이 땅은 팔지 않고 네게 물려줄 거다. 그러니 너도 팔지 말고 훗날 네 아들에게 물려줘라. 저 건너 밭은 네 사촌형 밭이니 사촌끼리도 잘 지내도록 하라.” 내 처가도 형제간 우애가 정말 좋다. 부모님이 아직 생존해 계셔서 얼마 전까지만 해도 형제들은 시골에 자주 모여 즐겁게 지냈다. 가을이면 텃밭의 배추를 뽑아 온 가족들이 모여 김치를 담그고 맛있는 보쌈김치도 만들어 두툼한 돼지고기와 막걸리를 곁들이며 축제를 열었다. 남은 텃밭에는 형제들이 나눠 먹자고 건강에 좋다는 ‘아로니아’ 나무를 심었다. 형제들이 모여 거름 주고 김매고, 열매가 까맣게 익으면 함께 수확을 하곤 했다. 어느 가족 못지않게 형제들 사이가 좋았다. 그런데 작년에 장인어른이 돌아가셨다. 옛날 어른이라 그런지 덩치가 가장 큰 뒷산은 장남에게 벌써 명의이전을 해놓으셨다. 나머지 논밭 그리고 집이 있는 대지는 아직 정리되지 않은 채 있다. 분배 과정에서 서운함이 있었고 결국 형제들은 옛날 같지 않은 감정을 갖게 되었다. 물론 법이 있기는 하지만 형제간 문제는 법적으로 처리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살아 계실 때 어느 정도 정리하시고 가셨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렇지 않은 상황이라면 ‘특별수익’을 챙긴 손윗사람이 먼저 마음을 비우고 아랫사람을 품어야 한다. 공평한 나눔이란 어떤 것일까? 내가 나눠놓고 선택 우선권은 상대에게 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럴 경우 남의 떡이 커 보이는 상황은 거의 없다.
- 2018-10-16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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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들어는 봤는가, 국민연금공단 노후준비 프로그램!
- 대체로 사람들은 국민연금공단(이사장 김성주, 이하 ‘공단’)을 국민연금만을 관리하는 기관으로 알고 있다. 60이 되고부터 연금을 받는 나 또한 그렇게 생각했다. 올해로 31주년을 맞은 국민연금은 가입자 수가 2153만 명으로 전체 인구의 절반에 이른다. 연금수급자 431만 명, 기금도 601조 원에 이르는 세계 3대 연기금으로 성장한 종합복지서비스 기관이다. 국민연금의 궁극적 목표는 ‘노후의 행복한 삶’이라는 사회적 가치 실현이다. 노후준비 서비스는 어쩌면 공단의 당연한 업무. 공단은 100세 장수 시대를 맞아 연금을 중심으로 신중장년과 시니어를 위한 노후준비서비스팀을 운영하고 있다. 공단의 각 지역본부에서는 국민연금 관리에 덧붙여 국민의 노후준비를 위한 “NPS 아카데미”를 2017년부터 개설했다. 첫 프로그램으로 작년 7월 한 달여 간 ‘작가탄생프로젝트’ 진행한 바 있다. 이를 비롯해 ‘신중년 글쓰기 마라톤’, ‘1인 크리에이터 과정’, ‘비행(飛行) 신중년 프로젝트’ 등 흥미로운 프로그램으로 은퇴자의 구미를 잡아끌었다. 적당한 놀이터가 없는 신중년들에게 문화 플랫폼을 제공함으로써 즐겁고 보람과 의미를 함께 할 수 있는 삶을 만들어 갈 수 있는 놀이터 역할을 하고 있다. 신중년을 위한 문화 플랫폼 특화 서비스 국민연금관리공단 서울북부지역본부 백수현 본부장(이하 북부본부)은 ‘노후준비 서비스가 공단의 소명 같은 것’이라고 밝혔다. “공단 사업의 기본은 연금관리입니다. 더 큰 틀에서 봤을 때 국민들의 안정된 미래 노후 생활에 기여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런 의미에서 북부본부에서 ‘신중년 특화서비스’를 2017년부터 시작했습니다. 개인뿐만 아니라 사회에도 기여하는 참신한 노후준비 롤모델로 발전함에 미래의 희망이 보였습니다.” 중단 없는 핵심 사업으로 추진할 것이라고 백 본부장은 덧붙였다. 공단 업무의 블루오션으로 나아가 글로벌한 교육프로그램으로 성장시킬 것이라고 했다. “국민연금 관리의 근본 취지를 살리는 광의의 사업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구체적 목적은 첫째, 역량 있는 시니어가 노후를 스스로 준비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둘째, 수요자 중심의 프로그램 기획으로 자발적 노후 준비 서비스 희망 고객을 발굴하여 사업 추진 효과를 높인다. 셋째, 국정과제의 하나인 ‘신중년 일자리 보장 및 사회 안전망 구축’을 위한 신중년 노후준비 교육 특화 사업으로 일자리 및 커뮤니티 활동 지원 서비스를 연계 추진한다. 지금까지 ‘작가탄생프로젝트’와 ‘글쓰기 마라톤’ 등의 프로그램을 진행해 왔다. 한 달에 한 권의 책을 쓰게 하는 작가탄생프로젝트 첫 번째 아카데미 프로그램이 바로 작년 여름내 진행된 ‘작가탄생프로젝트’였다. 방법과 내용이 신선하고 파격적이었다. 많은 사람이 프로그램의 성공 여부를 의아해하거나 불가한 일로 단정 짓거나 반신반의했다. 일주일에 2회 강좌와 글쓰기 지도를 통하여 한 달 동안에 참석자 모두가 각자 1권의 책을 쓰는 프로그램이었다. 참여자 40명 중 37명이 그 기간 안에 집필을 마치고 37권의 책을 출간했다. 한 달 안에 한 사람이 한 권의 책을 출간하는 참으로 어려운 일로 신중년의 가능성을 보여준 프로그램이 됐다. 그러한 성과를 안고 뒤이어 2018년도에 2기 작가탄생프로젝트를 출범시켜 가능성을 재차 확인했다. 1기와 마찬가지로 한 달에 한 사람이 한 권의 책을 쓰는 프로그램으로 43명이 참가하였고 그중 36명이 총 6,352페이지의 책 38권을 만들었다. 수강생 김도영 씨의 “은퇴 그리고 아름다운 삶”, 곽정숙 씨의 ”나를 위한 여행” 황선호 씨의 “황 첨지의 독일 유랑기” 등이 있다. 수강생들의 참가 소회에서 프로그램의 뜨거운 열기를 느낄 수 있다. 강정석 씨는 “인생 2막을 시작하는 시점에 만난 “작가탄생프로젝트”는 새로운 도전의 출발”로 표현했다. 신영균 씨는 이렇게 소회의 글을 남겼다. “이 변화의 와중에 덤으로 성찰의 기회까지 주어졌다. 새로운 에너지를 얻었다”고 말이다. 다양한 신중년 문화 플랫폼 성공리에 안착 이러한 여세를 몰아 공단의 북부본부는 지난 5월 5일 일정으로 책 한 권을 쓰는 “글쓰기 마라톤 과정”을 새로 열었다. 2018년 5월 28일부터 6월 1일까지 마라톤 거리와 같은 총 42.25시간에 걸쳐 글을 온종일 집중적으로 쓰게 했다. 33명이 참가하여 23권의 책을 완성됐다. 권수연 씨의 ‘마르지 않은 그리움과 사랑이 담긴 화수분’, 장의영 씨의 ‘더 곱게 살즈아’, 조왕래 씨의 ‘브라보마이라이프’, 김종억 씨의 ‘별 하나 꿈 하나’ 등이다. 시니어에 불가능은 없음을 실천으로 보여주었다. 그 뿐만 아니라 북부본부는 여행을 콘텐츠로 하는 ‘비행(飛行) 신중년 프로젝트’를 2017년 11월 20일부터 11월 24일까지 37명이 참가한 가운데 진행해 여행 커뮤니티로 자리 잡아 가고 있다. 도보 여행가 황안나 씨가 함께해 ‘여행하고 일하며 나이 들기’가 주요 과제다. 매달 한 번 국내외 도보와 여행 모임을 이어가고 있다. 또한 동영상 시대에 발맞춰 1인 크리에이터을 위한 과정을 열기도 했다. 2018년 2월 2일부터 4월 13일까지 매주 금요일에 총 30시간 일정으로 23명이 참가하여 인기리에 진행됐다. 유튜브 채널 기획, 촬영, 편집 과정이었다. 동영상을 통한 새로운 후반생 활기찬 활동을 지원하기 위한 프로그램의 하나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은퇴자 1000만 명 시대다. 변화무쌍한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살아가야 하는 신중년들에게 삶의 보람과 가치를 창출해갈 수 있는 신중년 문화 플랫폼 구축은 크게 기대되는 사업으로 보인다. 특히 고령 사회에 접어든 시점에서 희망의 빛으로 다가옴은 기자만의 생각일까? 소일거리가 없어 고민하는 시니어에 적당한 놀이터 플랫폼으로 여겨진다. 보람 있는 후반생을 꿈꾸는 시니어가 함께하면 좋은 프로그램이 아닐까 싶다.
- 2018-10-11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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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을남자 “김목경은 김목경이다”
- “살면서 나를 케어해준 사람은, 나 자신밖에 없어요.” 소탈하게 웃으면서 말했지만 뼈가 있는 한마디였다. 아마 기자가 만난 사람들 중 가장 자신의 삶에 만족하고 자신의 업에 대해 한 치의 흐트러짐 없는 확신을 가진 자유인이 아닐까 싶다. 싱어송라이터이자 대한민국 최고의 블루스 기타리스트로 불리는 김목경(60)이 바로 그 사람이다. 오롯이 홀로 서서 자신의 일가를 이뤄냈고 여전히 자신의 길을 묵묵하게 걸어가는 남자, 김목경의 이야기는 고독하지만 당당한 인생찬가였다. 그를 통해 신중년 시대 ‘브라보 마이 라이프’의 또 다른 모습을 확인해봤다. 촬영 협조 청파동 블루스소사이어티 우리나라에서 블루스는 ‘부르스’라는 이름으로, 성인 나이트클럽에서 빠른 리듬의 노래들이 끝나고 잠시 쉬는 시간에 느린 템포로 나오는 사교댄스에 가까운 음악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정통파 블루스란 현대 록 음악의 기원이며 다양한 장르에 강렬한 영감을 준, 사실상 팝을 중심으로 하는 현대 음악의 근원이라 할 수 있는 장르다. 한국에서 정통파 블루스 뮤지션을 말할 때 첫 손가락에 꼽히는 사람이 바로 김목경이다. 올해 나이 예순. 그러나 그는 여전히 무대에서 말 그대로 ‘살고 있는’ 현역 음악인이다. “한국의 에릭 클랩튼이란 말은 듣기 싫네요. 그냥 김목경으로 불러주는 게 좋아요. 젊었을 때는 에릭 클랩튼을 많이 연구했으니까 기타 플레이가 비슷했을 텐데 그게 벌써 30여 년 전이니 지금은 에릭 클랩튼과 비슷하지도 않아요.” 블루스의 성지에 서다 김목경은 천생 음악인이다. 그는 음악을 하며 산 인생에 대해 후회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고 말한다. “너무너무 즐거운 시간들이니까. 돈이 되든 안 되든 매순간을 즐기며 사니까요. 그래서 다른 사람보다 행복하다고 생각해요. 또래 친구들 중에 돈 많이 번 사람들,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들도 있는데 다들 저를 제일 부러워해요.” 그가 인생에서 가장 기뻤던 일도 음악이었다. 그는 2003년 엘비스 프레슬리의 고향이자 블루스의 성지인 미국 멤피스에서 열리는 페스티벌에 초청되었다. 그때 조 카커, 쉐릴 크로 등 당대 최고 가수들과 함께 무대에 섰다. 우리나라에서는 단 한 명만 초청된 자리였다. 이후 그는 대한민국 대표 블루스 기타리스트로서의 입지를 더 확고하게 굳혔다. “제 인생 최고 보람이었죠. 그 무대에 서고 난 뒤 일본, 인도네시아 등에서 초청이 계속 이어져서 공연을 다녔어요.” 블루스는 감정이자 반추상화 사실 우리나라에서 정통 블루스 음악을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블루스의 최고 대가가 생각하는 블루스론이 궁금했다. “블루스는 감정으로 해야지 테크닉이나 손재주로 하는 게 아니에요 재즈는 테크닉과 음‘학’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재즈는 그림으로 말하면 추상화예요. 반면 블루스는 반추상화. 약간 정형화되어 있으면서 추상의 느낌이 있는거죠. 임프로비제이션(즉흥연주)에 있어 재즈는 무한대에 가까워요. 음을 벗어나도 상관없다고 여기는 게 재즈죠. 그러나 블루스는 그 선을 넘을 듯 말 듯 하면서 안 넘어요.” 기타가 텐션이 살아 있어 쫄깃쫄깃한 음을 낸다고나 할까. 블루스는 마치 희롱하듯 말을 걸어오는 것 같은 맛이 난다. 아마 그가 말하는 ‘넘을 듯 말 듯 한다’는 게 그런 느낌이 아닐까 싶었다. “블루스는 Blues, 블루(Blue)에다 에스(S)를 붙인 거예요. 블루라는 단어가 가진 뜻이 외로움, 차가움, 쓸쓸함이죠. 블루스가 외롭고 쓸쓸하기만 한 건 아니지만, 처음에 이름이 그렇게 붙여졌기에 그런 인상이 있어요. 블루스는 17~18세기 미국 식민지로 건너온 아프리카 노예들이 만든 음악입니다. 아프리카 흑인들은 어떤 음악적 지식도 없었죠. 그런데 농사를 짓고 밤이 되면 읊조리듯 노래를 했어요. 그게 블루노트고 블루스의 음계죠. 백인들이 어느 날 그걸 들어봤는데 자기들이 쓰지 않는 음계였어요. 신기했겠죠. 그래서 그 음계를 훔쳐와, 미국의 전통음악인 컨트리 음악과 접목을 한 거죠. 록큰롤은 그렇게 탄생한 겁니다.” 청계천 ‘빽판’이 알려준 진실 그렇다면 아프리카 흑인 노예의 삶과는 한참 멀리 떨어진, 대한민국에 사는 김목경은 어떻게 블루스라는 영역에 매혹된 걸까? “어렸을 때는 통기타를 쳤어요. 그때는 롤링스톤스와 레드 제플린 흉내 좀 내보고 싶어도 어려워서 못하던 시절이었죠. 고등학교 다닐 때는 청계천에서 ‘빽판’을 사러 다니는 게 낙이었어요. 학교 가면 애들이 빽판을 가져와서 ‘너 이거 있냐?’는 식으로 겨루곤 했죠.(웃음)” 미군 부대에서 흘러나온 원반 레코드를 불법 복제해 만든 ‘청계천 빽판’ 수집은 음악 검열을 하던 시대에 제대로 된 음악을 듣고 싶었던 이들의 은밀한 취미이기도 했다. 불후의 팝 명곡으로 여겨지는 퀸의 ‘보헤미안 랩소디(Bohemian Rhapsody)’를 검열로 들을 수 없었던 시절, 청계천 빽판이라는 불법 유통망은 금지된 노래를 들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여러 명이 기타를 치고 있는 두 장짜리 앨범이 있더라고요. 그림이 멋있어서 샀지. 집에 와서 틀었는데, 그 앨범에 기타의 모든 비밀이 들어 있었어요. 레드 제플린이나 롤링스톤스나 다 그 음악을 베낀 거더라고요. 그게 바로 블루스 음악이었어요.” 3개월 가기로 한 영국, 6년을 살다 1984년, 김목경의 대학 시절 원래 전공은 일어였다. 군대를 제대하고 대학교에 복학해야 할 때였는데, 겨울에 제대하는 바람에 가을에 복학하기까지 6개월의 시간이 생겼다. 딱 3개월만 영어를 공부해야겠다고 다짐했다. “부모님께 얘기해서 3개월 지낼 비용만 받고 영국을 갔어요. 그런데 갔더니 너무 좋은 거야. 그래서 한참을 더 머물러 있다가 1990년도에 귀국하게 됐죠. 그런 이유로 난 데뷔가 되게 늦은 편이에요.” 3개월만 있다가 오겠다는 외동아들이 장장 6년 동안 영국에서 돌아오지 않았으니 부모님 속은 오죽했을까. 그가 자유로운 영혼을 지닌 사람임을 알 수 있게 해주는 대목이다. “그런 게 미안하지. 죄지. 너무너무 죄송해서 이제야 이번 앨범 신보에 음악을 만들어서 넣었어요. ‘엄마 생각’이라는 연주곡이에요.” 단 3개월 머물 비용만 갖고 가서 6년이나 있었으니 영국에서 어떻게 살았는지 당연히 궁금했다. 그는 생계를 해결하기 위해 하루에 4~5가지 일을 해야 했다. “내 인생에서 가장 많이 배운 시기였어요. 아침에 여행객이 오면 버스 태워서 호텔까지 바래다주고, 호텔에서 아침 먹은 후 일본 식당으로 가서 접시를 닦았죠. 점심은 그 식당에서 먹고, 네 시부터는 페인트칠을 했어요. 이게 벌이가 가장 짭짤했죠. 그리고 저녁 여덟 시부터는 클럽에서 연주를 했고요. 그러면서 돈을 좀 벌 수 있었죠. 쓸 시간이 없었으니.” ‘어느 60대 노부부의 이야기’는 원래 건전가요 영국에서도 당연히 블루스 밴드 활동을 했다. 그러다 1988년, 1989년 즈음에 앨범을 녹음했고, 마스터 테이프를 갖고 한국으로 귀국했다. 그 테이프는 서라벌레코드 사에서 발매된 그의 1집 앨범이 됐다. 나이를 생각하면 다소 늦은 데뷔였다. “그러고 다시 영국으로 돌아가려고 했어요. 그런데 앨범이 될 듯 말 듯 하는 게 있었어요. 에이, 그러면 한 장만 더 내고 가자 하고 한 장을 더 냈는데, 그다음에는 계속 한국에 있게 된 거죠.” 그렇게 낸 데뷔 앨범에 저 유명한 ‘어느 60대 노부부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고 김광석이 불러서 유명해진 그 노래를 작사 작곡하고 처음 노래 부른 이가 바로 김목경이다. “1집 맨 밑에 있던 곡이었죠. 넣을까 말까 하다가 넣은 건데, 그때만 해도 건전가요를 하나씩 넣어야 했던 시절이었어요. 그래서 그 노래는 건전가요로 쓸려고 넣은 거였죠. 그런데 그거 말고 건전가요를 따로 또 넣어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솔직히 저작권 덕분에 많이 도움이 돼요.(웃음)”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한 시간씩 연습 “기타는 나예요. 내가 하고 싶은 말을 기타로 하는 거야. 안 해본 사람은 몰라요. 연주할 때도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을 연주하는 거죠.” 김목경은 지금도 매일 배우며 산다고 말한다. 그가 아침에 일어나서 하는 일은 컴퓨터 틀어놓고 커피를 한 잔 마시며 한 시간 동안 하는 연습이다. 매일 지키는 그 시간이 그에게는 제일 즐거운 시간이라고 한다. “연습을 안 하면 금방 티가 나요. 무대에서 바로 드러나죠. 내가 원하는 플레이가 나와야 기분이 좋은 거예요.” 그는 말 그대로 무대에서 살고 있는 사람이다. 언젠가 그는 자신이 일주일에 한 번 무대에서 공연한다 가정했을 때 앞으로 얼마나 공연할 수 있을지를 계산해봤다. “내 남은 생애에 오백 번을 못 넘긴다고 나오더라고요. 숫자 오백 번이면 아무것도 아닌 거예요. 그걸 생각하니까 너무 슬퍼지더라고요. 에릭 클랩튼이나 비비 킹이 돈은 셀 수도 없이 많은데 왜 그렇게 계속 공연을 간절히 원했는지 이해가 됐어요. 그 순간이 좋은 거예요. 그래서 가능하면 어디든지 가요. 어디든지. 그렇게 해서 좋은 점은, 공연 횟수도 채울 수 있고(웃음) 내가 항상 준비될 수 있다는 거예요. 항상 무대 사운드에, 무드에 젖어 살 수 있는 거죠.” 그 대답만 들어도 그가 왜 행복한지 아주 잘 알 것 같았다. 그렇게 철저한 음악인으로 살아가고 있는 김목경은 최근 신보 녹음을 끝마쳤다. 그의 정규 앨범으로는 일곱 번째 앨범이다. “총 아홉 곡 중 일곱 곡은 내가 만든 거고 두 곡은 남의 곡이에요. 한대수 씨 거 하나와 옛날 록 그룹 무당의 노래 리메이크 하나. 타이틀곡은 고민 중인데 ‘산을 돌아’로 할까 ‘더 블루스 밴드’로 할까 고르고 있어요. 음악을 하는 사람이면 곡을 만들 줄 알아야 하고, 그 전에 그러고 싶은 욕구가 있어야 해요. 그래서 곡을 만들어서 부르는 것은 당연한 거예요. 둘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니까요.” 기타리스트 김목경, 무대에서 늙다 “인생의 목표? 그런 거 없는데? 건강관리? 담배 피고 술 먹고.” 소위 말하는 웰빙 라이프와는 거리가 한참 먼, 뭔가 자유로울 수밖에 없는 음악인다운 대답.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목경은 최근 자신이 나이가 들었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고 말했다. “음악에 대한 깊이는 젊었을 때와 큰 차이 없는데, 밴드하고 연습할 때 뭐가 잘못되면 예전에는 날카롭게 신경질적으로 대응했는데 요즘은 안 그래요. 잘못됐을 때 내가 평정심을 잃으면 안 되거든요. 그래서 둥글둥글 넘어가주죠. 이게 나이 먹으면서 좋은 점이기도 해요.” 브라보 공식 질문인, 어떻게 기억되고 싶으냐는 질문에 그는 우직하게 “기타리스트 김목경”이라고 대답했다. 초지일관 그다운 대답이었다. “앞에 ‘좋은’이 붙으면 더 좋고.(웃음)” 그는 이미 삶의 상당 부분을 확신하고 확정지었으며 이제 그곳에서 즐거움을 퍼 올릴 일만 남은 사람이다. 자신만의 답도 찾아냈고 그걸 실현시킬 능력도 갖춘 행복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도 얘기했지만 저는 지금 너무너무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어요. 그래서 무대에 서지 못할 때까지 하고 싶은 거죠.” 올해 60의 나이가 된 그가 부르는 ‘어느 60대 노부부의 이야기’ 노래 맛은 어떨지 오늘 밤에 소위 그의 ‘나와바리’인 논현동으로 노닐러 가볼까나. 헤이, 브라보 블루지 라이프!!
- 2018-10-01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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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국어 배우기, 아기 옹알이하듯 차근차근
- 한 번쯤은 들어보고, 한 번쯤은 이뤄야겠다고 다짐하는 버킷리스트. 그러나 막상 실천으로 옮기기는 쉽지 않다. 애써 버킷리스트를 작성하고도 어떻게 이뤄가야 할지 막막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매달 버킷리스트 주제 한 가지를 골라 실천 방법을 담고자 한다. 이번 호에는 앞서 ‘브라보 마이 라이프’가 시니어를 대상으로 진행한 버킷리스트 서베이에서 4위를 차지한 ‘외국어 배우기’에 대해 알아봤다. 도움말 박현영 수퍼맘북스·지니앤토비 대표 학생, 직장인 시절 외국어는 시험이나 취직을 위한 통과 의례였을 것이다. 그러나 입시와 취업 경쟁에서 벗어난 중장년의 경우, 취미 또는 도전으로 외국어를 배우는 이가 많다. 외국어 교육 전문가 박현영 수퍼맘북스·지니앤토비 대표는 “시니어가 젊은 시절 외국어를 배울 때는 주로 문법 위주였다. 때문에 중년 이후에는 생활 영어를 취미 삼아 하거나, 해외여행을 위한 실용 회화를 공부하는 이가 대부분이다. 또는 외국인을 상대로 장사를 준비하거나 학창 시절 배우지 못한 것에 한을 느끼시는 분들도 외국어를 배우고 싶어 한다”고 설명한다. 배우고 싶은 이유가 다양한 만큼, 그 실천 방법도 각양각색이다. 저마다 수준 차이가 있겠지만, 가장 어려움을 느끼고 있을 영어 초보자들을 위한 조언을 담아봤다. 독학보다는 맨투맨 회화가 효과적 박 대표는 “시대가 바뀌면서 인터넷 강의나 스마트폰 앱 등 외국어를 배우는 방법도 다양해졌지만, 아무래도 시니어는 아날로그 세대이기 때문에 그들에게 익숙한 방법대로 하는 게 좋다”고 말한다. 외국어를 배우기 전 스마트폰 앱 사용에 능숙해져야 하고, 컴퓨터나 휴대폰 화면을 오래 보면 눈과 몸이 쉽게 피로해져 시니어에게는 무리가 있다는 것. 아울러 문법보다는 회화를 목표로 공부하는 경우가 많아 소싯적 달달 외우듯 독학하는 것은 적합하지 않다고 덧붙인다. 박 대표가 적극 추천하는 것은 주민센터나 복지관 등 시니어만을 대상으로 한 강좌다. 일반 학원 강좌는 입시생이나 취업준비생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진도도 빠르고 공부량도 버거울 뿐더러 다른 학생과 수준 차이가 나면 위축되기도 한다. 반면 주민센터나 복지관 수업 등의 경우 가격도 저렴하고, 시니어의 패턴에 맞춰 수업 스케줄과 목표를 잡아 차근차근 편안한 마음으로 즐길 수 있다. 외국어 초급 딱지 떼기 단계 [step1] 필수단어 100개 익히기 아이들이 처음 말을 배울 때 그림 카드에 적힌 이미지를 보고 단어를 말하듯, 가장 많이 쓰이는 단어 100개를 그림과 함께 익혀보자. 이때 발음이나 스펠링 등은 신경 쓰지 않는다. 음식, 가족, 동물 등등 장르별 6~7개 정도 단어이면 충분하다. 먼저 100개의 단어가 친숙해졌다면 수준에 따라 200개, 300개까지 늘려간다. 너무 쉽지 않냐고 반문할지 모르지만, 쉬운 것부터 즐겁게, 꾸준히 그리고 익숙해지는 것을 외국어 배움의 목표로 여겨야 한다. step2] 필수표현 50개 익히기 박 대표는 다수의 외국어 관련 서적을 집필한 경험으로 볼 때 ‘안녕’, ‘고맙습니다’, ‘잘 가요’ 등 유용한 필수 표현은 50개 남짓으로 정리된다고 말한다. 앞서 기초 단어를 익히듯 글자나 발음보다는 표현 자체에 익숙해지는 것에 중점을 두고 공부한다. 한두 단어로 이뤄진 짧은 문장이라도 익숙하지 않은 표현이라면, 막상 써야 하는 순간에 잘 생각나지 않는다. ‘thank you’, ‘sorry’처럼 굳이 머리로 생각해내지 않고도 곧바로 입 밖으로 툭 튀어나올 정도로 익숙해지는 것이 중요하다. step3] 글자 익히기 아이들이 먼저 ‘엄마’라고 말하고, 나중에 ‘엄마’라는 글자를 배우는 것과 같은 과정이다. 입에서 익숙해진 단어와 표현을 글로 배웠을 때 더 재미있고 가속도가 붙는다. 영어라면 알파벳, 일어라면 히라가나 등을 익히는 게 이번 단계의 목표다. 앞서 두 단계가 없이 바로 글자 쓰는 법을 배우면 철자와 단어의 뜻을 한꺼번에 익혀야 한다. 먼저 단어와 표현이 익숙해지면, 직관적으로 그 의미를 파악하고 있기 때문에 글자를 익힐 때도 효율적이다. step4] 문장의 뼈대 익히기 마지막 단계는 문장의 패턴을 외우는 것이다. 예를 들어 ‘I want it’(나는 그것을 원한다), ‘I want coffee’(나는 커피를 원한다), ‘I want love’(나는 사랑을 원한다) 등 ‘I want ~’(나는 ~를 원한다)라는 기본적인 패턴을 외우고 그동안 외운 단어를 접목하는 단계다. 반복해서 응용하고 그것이 익숙해지면 말로 문장을 내뱉는 힘을 키울 수 있다. 여기까지가 초보자가 목표로 할 수 있는 단계이고, 약 1년 정도 시간을 두면 좋다. 영어가 아니라면? 일본어에 도전! 대부분 외국어를 배운다 하면 1순위로 영어를 떠올린다. 이미 영어가 어느 정도 익숙해진 상태라면 또 다른 언어에 도전하고 싶은 욕구가 생길 것이다. 중장년의 학창 시절에 남자는 독일어, 여자는 프랑스어를 배우는 경우가 많았다.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다시 익히는 것도 좋겠지만, 40~50년 전 이후로 전혀 공부하지 않았다면 새로 배우는 것과 마찬가지다. 또 언어는 익힌 뒤 자주 활용해야 입에 붙고 수준이 올라가는데, 아무래도 독일이나 프랑스 등은 여행하거나 언어를 접할 기회가 적은 편이다. 이에 박 대표는 비교적 활용도가 높은 일본어나 중국어를 추천한다. 특히 일본어의 경우 발음이나 어순, 문법 등이 비슷해 공부하기가 비교적 수월한 편이라고. 물론 일본어를 포함한 다른 외국어 역시 말부터 익히고 글로 쓰는 과정을 따를 것을 권한다. [Tip] 소리의 바다에 빠져라 외국어에 익숙해지려면 자주 그 나라 언어를 소리로 접하는 게 중요하다. 때문에 팝송을 듣거나 미국 드라마, 영화 등을 보며 공부하는 이들이 있다. 그러나 팝송의 경우 시적인 표현이나 슬랭(slang: 비속어, 은어)이 많고, 드라마와 영화 대사는 줄임말이나 유행어 등이 많아 초·중급 단계에서는 적합하지 않다. 그보다는 아이들을 위한 영어 동요를 불러보면 좋다. 따라 부르기도 쉽고, 거의 직역으로 뜻이 전달돼 노래를 통해 단어와 표현을 익히기에도 효과적이다. 어린 손주와 놀아주며 함께 영어 동요를 익혀보는 건 어떨까?
- 2018-08-20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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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중년,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에 참석하다
- 순창군과 국민연금공단이 함께 손을 잡고 국민연금제도 30주 기념 노후준비 특별행사를 했다. ‘신중년,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라는 주제로 지난 6월 25일부터 28일까지 3박 4일간 신중년 60명이 행사에 참여했다. 신중년이란 요즘 새롭게 등장하는 용어로 노후를 준비하는 세대인 50세에서 64세까지를 말한다. 이번 행사는 특히 곧 노후를 맞이해야 하는 신중년들에게 글쓰기를 통해 자신감으로 노후를 보낼 수 있도록 용기를 불어넣기 위함도 있다. 서울과 부산에서 출발하는 두 대의 버스에 신중년 60명이 승차해서 순창군 건강장수연구소에서 만났다. 첫째 날은 황숙주 군수의 순창이 발효와 장수의 고장임을 소개하고 이곳에 특화된 건강장수연구소를 개설하게 된 배경을 설명했다. 뒤이어 국민연금공단의 노후준비지원실 우제광실장이 노후준비지원법 제9조에 의거 지정된 국민연금공단이 내 삶을 책임지는 국가가 되기 위해 국민연금공단이 노력하고 있는 여러 가지를 설명했다. 이어서 변용도 강사의 사진취미가 돈과 건강을 안겨주었다는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했다. 다음에 79세의 도보 여행가 황안나 선생이 ‘가슴이 하고 싶었던 이야기’라는 주제로 글쓰기 강의를 했는데 메모를 많이 하고 남의 글을 많이 읽고 많이 써보라고 한다. 이계호 전 충남대학교 교수의 건강강좌가 있었다. 붉은색 기름기 있는 고기를 너무 많이 먹어서 탈이라고 한다. 소변 색깔을 보고 물 보충을 제때 해주고 웃음이 건강면역력에 좋으니 많이 웃으라고 충고한다. 음식으로 청국장이 좋은데 청국장의 발효균은 끓여도 죽지 않고 살아서 장에 들어가 활동하는 아주 좋은 유익균이라고 설명한다. 국민연금공단의 조현섭 차장을 포함한 노후준비 전문가와 교육생 3명이 함께하는 맞춤형 4대 영역 노후준비에 대한 집중 질의응답은 큰 호응을 불러왔다. 개인별 심층 체크리스틀 미리 작성토록 하고 이를 사전에 전문가가 집중적으로 분석해서 자료를 만들었다. 이를 토대로 진행한 프로그램이다 보니 군더더기 없는 개인별 노후준비 맞춤 진단이 되었다. 공단의 정태욱, 권우실 담당과장이 진행한 자신의 콘텐츠 갖기와 노년의 협업이 중요하다는 콜라보 강의는 많은 공감을 불러왔다. 일과 후에는 각자 알아서 글쓰기를 하도록 했다. 마지막 날 자신이 쓴 글을 제출하고 이를 모아서 책으로 편집하여 발간한다니 잠시도 글쓰기 생각을 멈출 수 없었다. 글의 제목도 장르도 없다. 분량도 없다, 하고 싶은 말을 글로 써보라는 것뿐이다. 도저히 못쓰겠으면 쓰지 않아도 좋다고 했지만, 모두가 엎드려 코를 박고 글을 쓴다. 순창고추장을 직접 만들어보고 떡메로 떡을 쳐서 인절미를 만들어 먹는 체험도 했다. 순창이 자랑하는 강천산의 휴양지를 맨발로 걸으며 동료들과 정을 나눈 것도 아름다운 추억이다. 27일 밤에는 우리나라와 독일과의 월드컵 경기를 강의장 대형 스크린으로 보면서 목이 터져라 대한민국을 응원했다. 함께하는 시간이 즐거웠고 무엇보다 승리해서 기쁨을 만끽했다.
- 2018-07-06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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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걷기, 본원적 행동과 숭고한 철학의 결합이다-강동경희대학교병원 한방신경정신과 김종우 교수
- 애초부터 걷기와 가까울 수밖에 없었다. ‘고비’라는 말과 맞닿아 있던 삶. 다양한 운동 방법이 세상에 넘쳐나지만 걷는 게 그에게는 최적, 최상, 최고의 선택이었을 게다. 극복을 위한 아주 원초적 접근 방법. 한 발짝 한 발짝 내디뎌 무조건 길을 나선다. 걷는다. 여행한다. 궁극의 선택 안에서 자유를 찾고 행복한 인생을 살아가는 느낌은 어떤 것일까? “내가 목소리만 좋았으면 배우가 됐을 거예요!(웃음)” 사진을 찍는 동안 오십 넘은 중년의 얼굴이 어린 소년처럼 한껏 생기가 넘친다. 모델로서 이런 포토제닉 또한 오랜만이다. 기본적으로 재밌고 대화하는 상대를 편하게 해준다. 자신에 대한 사랑까지 충만하다. 삶의 중요한 부분이라는 걷기에 여행 이야기가 더해지니 함께하는 시간이 즐겁다. 최근 ‘마흔 넘어 걷기 여행’이라는 책을 낸 걷기 여행 전문가(?)이자 강동경희대학교병원 한방신경정신과 김종우(金鍾佑·53) 교수를 만났다. 대한민국은 물론이고 세계의 걷기 성지까지 두루두루 섭렵했다. “제 나름대로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 걷기 여행에 관한 책을 쓰게 됐습니다. 제 삶의 철학 중 하나죠. 여행을 가더라도 좀 걷자! 대학생인 딸도 그렇고 저보다 어린 직장인, 병원 내 레지던트들이 들려주는 여행 이야기도 그렇고. 좀처럼 재미가 없어요. 안타까워요. 어디를 가도 장소를 점처럼 찍어서 가요. 마치 사진작가처럼, 먹는 것을 찾아 떠난 셰프처럼 그렇게요.” 선을 연결해 영토를 확장하듯 면을 만들고 입체적인 그림을 그려가는 게 걷기 여행이다. 돈도 적게 들고 좋은 것도 많이 볼 수 있다. 여행자 자신의 관심사를 명확히 알게 해주기 때문에 걷기 여행이 매력적이라고.. “걷기는 인간의 본능적 행동이자 의도하는 바를 이루게 하는 행위이죠. 여행은 반복된 일상에서 벗어나서 진짜 나를 찾아가는 작업이라고 정의하고 싶어요. 걷기와 여행이 결합하면 떠나는 순간부터 마칠 때까지 여정 속에 푹 빠져서 자기 자신을 찾고 새로운 많은 것을 발견할 수 있게 됩니다.” 걷기에 의사의 해석이 더해지다 걷기 여행에 관해 이야기하기 전에 걷기가 뭔지 들어보기로 했다. 걷기에는 운동이라는 요소와 철학이라는 요소가 맞물려 있다고 김종우 교수는 말한다. 걷기를 통해 얻어지는 것이 육체적인 성취뿐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걸으면서 여행하고, 세상을 보고, 사람을 만나고, 문화를 가까이서 느낄 수 있다. 이 모든 것을 포함할 수 있는 단순하지만 놀라운 행위가 걷기다. “한 일간지에서 걷기 두 시간 해봤자 운동 효과 제로라는 제목의 기사를 본 적이 있어요. 그래서 제가 요즘 쓰고 있는 문화일보 고정 칼럼에 ‘걷기는 굉장히 중요한 인간이 가지고 있는 숭고한 철학이 담긴 활동’이라는 글을 쓰기도 했습니다. 걷기를 그냥 운동이라고만 생각하면 그건 걷기가 아니죠.” 스트레스와 화병 전문가인 김종우 교수는 오랜 기간 한 월간지에서 주최하는 건강캠프 등에서 상담과 주치의를 맡아왔다. 한의학을 하다 보니 스트레스 치료의 가장 좋은 조건이 자연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고 했다.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사람들 대부분 활동량이 많이 떨어집니다. 가장 큰 해결책이 어떻게 하면 활동량을 늘리느냐 하는 점이죠. 그런 사람들에게 있어 자연만 한 좋은 환경은 없죠. 물론 자연에서 어떤 방법을 쓸 것인가도 중요하겠지만 조용히 걷고 사색하는 것만으로도 심적 치유를 느낄 수 있습니다.” 걷기 여행이 주는 매력을 말하다 치유 프로그램이나 트레킹 스태프로 참여할 때마다 하나의 주제를 선정해 참여자들과 토론을 하고 강의도 한다. 선정된 주제에 관련한 책들을 먼저 많이 읽어두고 그 느낌을 걸으면서 계속 확인하는 과정을 거친다고 했다. “스태프로 참여할 때는 걷기와 관련해 훨씬 더 많은 철학적 의미를 부여하게 됩니다. 걷기 여행의 콘셉트을 제대로 가지고 가고 싶어서요.” 문득 걷기 여행을 예찬하는 김종우 교수가 이렇게 스스로 준비해 참가자들과 철학적 의미를 찾아 떠나는 여행이 부담 되지 않는지 물었다. 예전부터 자신도 비슷한 방식으로 여행을 해왔기 때문에 괜찮다고 했다. “그리고 나이 오십이 넘으면 내가 얻는 것이 아니라, 내가 얻은 것을 전해야죠. 선생의 즐거움은 가르침을 주는 것이잖아요. 가르침의 즐거움이 없으면 선생을 할 필요가 없죠.(웃음)” 김종우 교수는 일반인과 함께 참여하는 걷기 프로그램을 즐긴다. 아침 6시부터 밤 12시까지 걷고 명상하는 일을 반복하지만 행복한 시간이라고 했다. “저는 정말 굉장한 스태프예요.(웃음) 아침 6시부터 명상이나 새벽 산책을 해요. 이때는 주로 육칠십대 분들이 참여합니다. 그리고 두 시간 걷죠. 아침식사를 하고 한나절을 걷고 점심을 먹고 또 걸어요. 저녁식사 후에는 허리나 무릎에 침을 놔줘요. 물집도 다 따주고요. 그러고 나서 오후 8시, 9시쯤 되면 밤 산책을 나가요. 그때는 사오십대가 많이 가세요. 대신 이 사람들은 다음 날 새벽에 절대 안 나와요. 저는 다시 아침 6시부터 밤 12시까지 걷죠. 풀타임으로요.(웃음)” 그렇다면 하루 중 가장 걷기 좋은 시간은 언제일까? 김종우 교수는 이른 아침 통이 트기 시작할 때를 꼽았다. 도시건 자연이건 가장 근본적인 원초적 에너지를 만날 수 있는 시간이 바로 새벽이라는 것이다. “가장 큰 접점은 해 뜰 때거든요. 여명이 딱 깃들 때 도시와 자연은 정말 달라요. 자연은 특히 이탈리아의 돌로미티 같은 곳에 가면 지구가 돌아가는 소리가 들려요. 새벽에는 그 도시의 풋풋함이 느껴집니다. 자연의 기운을 그대로 내 몸에 받아들이는 것이 명상인데 새벽에는 장애 요소들이 없잖아요. 새벽 산책은 도시건 자연이건 각성, 깨달음을 느낄 수 있는 최적의 시간이에요. 만약 도시여행이라면 해가 뜨고 나서 호텔로 돌아가기 전에 카페에 들러 에스프레소와 크루아상 하나 딱 먹으면 최고죠. 그리고 새벽에 걸으면 두 배는 더 여행할 수 있고요.” 모두가 말린 히말라야에 오르다 걷기 프로그램 주치의로 활동하다 급기야 히말라야 트레킹에까지 참여하게 됐다. 히말라야는 김종우 교수가 가서는 안 될 장소였다. “저는 세 살, 일곱 살 때 심장병으로 수술을 받았습니다. 중·고등학교 때는 뛰지를 못하니까 체육시간에 맨날 낙오됐어요. 30대 중반에 부정맥 증상이 나타나서 반복적으로 응급실에 갔었고 중환자실에도 들어갔다 왔고요. 그런 저에게 히말라야가 다가왔습니다. 무조건 간 거죠.” 이런 제안이 없으면 언제 또 히말라야에 가보나 생각했다. 심장병 주치의가 말렸지만, 비아그라를 처방받아 네팔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아무 생각 없이 말이다. “도보 코스도 굉장히 좋았고 마지막에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모든 것이 너무 좋았어요. 1000m에서 2000m, 3000m 갈 때 힘들어지는데 산은 올라갈수록 에너지가 생겨요. 반복적인 리듬으로 계속 가다 보면 걷는 게 쉬워지거든요. 트레킹을 아주 재밌고 멋지게 다녀왔죠.” 웃으면서 얘기했지만 사지 보행을 하면서 힘들게 올라갔다는 고백(?)을 받아냈다. 그 후로 스페인 순례자의 길인 산티아고를 비롯해 이탈리아 아말피 해안도로와 터키의 리키안 웨이 등 세계 유수의 트레킹 코스를 다녀왔다. 그렇게 걸어 다니면서 꼭 지키는 법칙이 있는데 밤 12시에는 반드시 잔다는 것. “일과를 마치고 나면 마을 사람들이 다니는 선술집에 가요. 맥주 한 병 혹은 와인 두 잔이 딱 적당하죠. 그리고 함께 걸었던 사람들과 여행 이야기를 해요. 사람들이 똑같은 길을 온종일 걸었다고 칩시다. 그럼 다 똑같은 거만 볼까요? 얘기를 하다 보면 훨씬 더 다양한 느낌이 와요. 그러고는 밤 12시에 취침에 들어가는 거죠.” 가족과 함께 나서는 길 꼭 프로그램을 통해 걷기 여행을 하는 것은 아니다. 어렸을 때부터 걷기 여행 조기교육을 받은 대학생인 아이들과 아내가 함께 할 때도 있다. 작년에는 호주의 그레이트 오션 워크를, 올해는 일본 순례자의 길인 오헨로에 다녀왔다. “그레이트 오션 워크는 100km인데 3일 동안 60km를 걸었습니다. 어렸을 때도 아이들이 배낭 메고 10km, 20km 걸었거든요. 일본 시코쿠에 1400km의 오헨로 길이 있어요. 88개의 절을 지나는 순례길이죠. 한 번 갔을 때 다 걸으려면 45일은 걸립니다. 저는 직업도 있고 일을 하는 사람이니까 딱 10년 계획을 세웠어요. 1년에 일주일 정도 120km만 걷자. 아내하고 아이들 다 데리고 갔어요. 그런데 기특하게도 우리 애들은 걷자고 하면 걸어요.” 물론 가족들과 가면 타협점을 찾아야 한다. 계속 걷기보다는 도시 여행도 한다. 오헨로 길 여행 때는 이틀은 걷고 이틀 노는 방식으로 가족들과 시간을 보냈다. 다음 달에도 오헨로 길을 가는데 아내와 6일 내내 걷기로 했다. “아내가 날 좋아하니까요.(웃음) 나 혼자 즐기는 게 억울해서 가는 거겠죠. 그런데 아내가 대단한 것이 10년 동안 그 길을 걸을 계획이라니까 일본어를 공부하기 시작했어요. 떠날 때마다 제안하겠지만 아마도 아내랑 함께 걷게 될 거 같아요.” 생사를 넘나드는 삶 속에서 얻은 깨달음 “언제 죽어도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살면서 네 번의 전신마취를 했다. 그때 깨달았다. 수술대에 오르락내리락하면서 굴곡진 길 또한 쉼 없이 걸었다. 명상하고 마음을 다잡고 하는 건 벌써 오래전에 끝냈다는 김종우 교수. “삶에 대해 골똘히 생각해봤자 달라지지 않아요. 문득 떠오르는 생각 속에서 ‘내가 이렇게 살아왔구나!’ 하고 한두 번 씩 깨달으면 됩니다. 내면의 뭘 찾겠다고 해봤자 다 내 삶이거든요.(웃음)” 올 초에도 몇 번이나 힘든 일들을 겪었다. 1월에 맹장염이 복막염으로 번졌다. 수술 도중에 담석이 발견됐지만 곧바로 제거하지 못하고 다음으로 미뤄야 했다. 심장이 약해 전신마취가 쉽지 않았던 것. 결국 일본 오헨로 길 여행을 다녀온 후에 담석 제거를 했다. “간단한 수술이기는 한데 일본 트레킹 가서 아이들한테 그랬어요. 아빠는 언제 갈지 모른다고요. 너희들 대학교까지 보내고 잘 키워놨으니까 언제든 혼자 살 수 있겠다고 말했죠. 물론 술 먹으면서 잘 풀어서 대화했습니다. 우리가 걷는 이유는 기본적으로 자연과 교감을 하는 것이죠. 건강한 삶을 추구하지만, 또 언제든지 죽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니까요. 자연의 이치 같은.” 가보고 싶은 길이 있냐고 물었다. 어디를 가도 좋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학회 때문에 미국 미니애폴리스에 갔을 때도 3시간씩 걸었어요. 어디가 중요한 것이 아니죠. 걸을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좋습니다. 적당한 장소에 에스프레소와 크루와상이 있으면 정말 끝내주겠죠.”
- 2018-04-12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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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언과 위로가 화 부르는 우울증
- 개인 방송 중 진행자가 갑자기 8층 건물 아래로 뛰어내리고, 자신이 낳은 아이를 살해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무지막지한 호러 영화의 한 장면 같지만 우리 주위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일들이다. 이러한 사건의 근저에는 한국 사회를 옥죄고 있는 우울증이란 질환이 있다.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라는 오명에서 수년째 벗어나지 못하고 있지만, 항우울제 소비량은 꼴찌 수준일 만큼 우울증 치료에 인색하다. 2015년에 28개국 중 27위였다. 이런 상황을 가볍게 볼 일이 아니다. 우울증을 방치하면 중병만큼이나 무섭다. 한양대학교병원 정신의학과 노성원(盧聖元·46) 교수를 통해 우울증으로부터 건강한 삶을 지키는 방법을 알아보았다. 여성이 주의해야 할 질환 중 우울증이 꼽히는 이유는 단순하다. 기본적으로 여성의 발병률이 높기 때문이다. 남성의 2배 정도 된다. 노성원 교수는 남녀 간 우울증 발생의 차이가 나는 것을 이렇게 설명한다. “여성은 월경을 통해 매달 호르몬의 변화를 큰 폭으로 겪게 되니까요. 또 출산 역시 엄청난 호르몬 변화를 가져오고, 폐경 전후에도 마찬가지죠. 심각한 감정의 변화를 겪는 생리전 증후군이나 산후우울증, 갱년기우울증 모두 호르몬의 변화가 원인인 우울증 일종이라 보면 됩니다.” 노 교수는 여성이 삶에서 겪는 스트레스 역시 우울증이 원인으로 작용한다고 지목한다. 출산과 육아뿐만 아니라 가족 간의 갈등 중심에 서 있기도 하고, 오늘날에는 맞벌이 등으로 사회참여 폭까지 넓어지면서 스트레스의 종류와 양이 모두 늘었다는 것이다. 중년의 우울증에는 주목해야 할 키워드가 또 한가지 더 있다. 바로 상실이다. 상실로 인한 대표적인 우울증으로는 빈둥지증후군이 있다. 자녀가 모두 독립하고 집이 텅 비면 해야 할 일이 사라진 것 같은 상실감을 느끼게 된다는 것. 또 친구나 친지들이 아프거나 사망하기 시작하면서, 무릎이나 허리 등 활동에 제약을 받는 질환에 걸려도 상실감은 찾아온다. 은퇴로 인한 사회적 지위나 직장의 상실도 마찬가지. 어릴 적 부모를 잃은 영향이 성인이 되어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 최근 증가하고 있는 갑상선암 수술 후 갑상선기능저하증을 앓거나 뇌졸중 등 심혈관 질환이 뇌에 영향을 주면서 우울증이 나타날 수도 있다. 그만큼 우울증은 원인이 다양한 병이다. 치매와 우울증 구분 방법은? 전문의들은 우울증에 맞닥뜨릴 때 나타나는 증상을 크게 4가지로 구분한다. 가장 큰 증상은 기분의 변화다. 의욕이 사라지고 축 가라앉는 기분이 든다. 생리적으로도 변화가 나타난다. 잠을 제대로 못 자고 식욕도 사라진다. 그러다 사고의 변화까지 일으킨다. 모든 사안을 부정적으로 해석하고 필요 이상으로 걱정이 늘면서 죄책감에 시달리기도 한다. 심할 경우 허무망상이 심해지면서 자살에 이르기까지 한다. 마지막으로 나타나는 증상은 인지능력 저하다. 기억력과 집중력이 떨어지면서 흔히 말하는 ‘총기’가 사라진다. “기억력이 떨어지면 흔히 치매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우울증 치료를 잘하면 명의로 평가받기도 하죠. 치매가 치료된 것처럼 느껴지니까요. 그러나 치매로 인한 인지능력 장애와 우울증으로 인한 증상은 다소 다릅니다. 치매의 경우는 본인이 잘 받아들이지 못해요. 떠올리려고 노력하죠. 하지만 우울증 환자들은 그런 노력을 귀찮아하고 포기해버려요.” 우울증으로 인해 나타나는 또 하나의 변화는 느닷없이 나타나는 몸의 통증이다.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고 감정을 나타내는 데 적극적인 서구권 사람들에 비해 한국인들은 그렇지 못하다. 그래서 우울증 증상도 다소 다르게 나타난다는 것이 노 교수의 설명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표현에 서툴잖아요. 특히 남성들은 더하죠. 가면성 우울증은 겉은 멀쩡해 보이는데 실제로는 우울증 환자인 경우를 말해요.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어요. 감정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해 마음의 이상이 몸의 통증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몸이 아픈데 이런저런 검사를 다 해봐도 도통 원인을 알 수 없는 경우가 있어요. 그럴 때는 우울증을 의심해봐야 합니다.” 그렇다면 내가 우울증일 수 있다고 의심해봐야 할 때는 언제일까. 노 교수는 평소에 비해 모든 것이 귀찮고, 우울하고, 입맛도 떨어진 것 같으면 의심해봐야 한다고 설명한다. 또 재미있게 보던 TV 드라마가 재미가 없고, 코미디 프로그램을 봐도 웃기지 않고, 평소 관심 있어 하던 주제에도 흥미를 잃어버렸다면 우울증일 가능성이 있다고 조언한다. 우울증은 외형적인 변화도 일으킨다. 즉 행동이 느려지고, 외출을 꺼리게 된다는 것이다. 심지어는 예정되어 있던 약속까지 취소하면서 두문불출하기도 한다. 대부분의 경우 며칠 그러다 말지만, 2주 이상 이와 같은 증상이 지속되면 발병을 의심해봐야 한다. 치료는 인내심을 갖고 임해야 그러면 치료는 어떻게 할까. 잘 알려진 것처럼 우울증의 대표적인 치료 방법은 약물 치료다. 세로토닌이나 노르에피네프린과 같은 신경전달물질을 보충해주면 우울증 증상이 개선된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약물을 통해 보충해준다. 약물 치료를 받을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약물 성분도 아니고 복용 방법도 아니다. 바로 끈기와 인내다. “우울증 치료제는 약효가 나타나기 시작하려면 2~3주 정도 지나야 하고, 치료를 위해서는 적어도 3개월 이상 복용해야 해요. 또 치료가 되었다고 판단이 되더라도 재발을 막기 위해서는 6개월 이상 드셔야 합니다. 치료 중간에 약을 끊어도 변화가 아주 서서히 나타나기 때문에 치료 전에 이런 부분을 반드시 강조합니다.” 약물 치료 외에 전기나 자기로 뇌를 자극해서 치료하는 방법도 있다. 우울증이 심해 당장 극단적 선택을 할 우려가 있는 환자, 약물 치료가 어려운 임산부 혹은 고령의 환자들에게 사용한다. 일주일에 2~3회씩 2~3개월 동안 병원에 방문해야 하는 번거로움은 있지만, 치료 효과는 높은 편이다. 마취 후 시술하기 때문에 통증 염려도 없다. 우울증을 예방하려면 “자주 걸어라” 우울증처럼 환자들이 의학적인 치료 외의 방법에 매달리는 병은 많지 않다. 그만큼 병에 대한 부정적 인식도 크고, 주변에 알리기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 교수는 굉장히 위험한 선택이라고 말한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위험합니다. 예를 들어 여행이 도움될 것 같지만 우울증 환자에겐 오히려 위험할 수 있어요. 이렇게 좋은 곳에서 나만 비참하다 생각되면 증세만 심해질 뿐이니까요. 술과 담배 역시 중독으로 인한 부작용만 나타날 뿐입니다. 치료 없는 상담도 큰 도움이 안 돼요.” 가장 위험한 것 중 하나는 주변의 조언이다. 의지가 문제라거나 정신 차리라는 등의 충고는 병을 키우는 원인이 된다. 섣부른 위로도 마찬가지. 우울증 환자가 주변에 있다면 그저 들어주는 것이 가장 좋다고 노 교수는 조언한다. 우울증을 예방하거나 우울감을 이겨내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빛이다. 아침에 일어나 창문을 활짝 열고 창가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만으로도 도움이 된다. 여기에 걷기가 더해진다면 금상첨화다. 걷기는 가벼운 우울증에 좋다. 의료계에서 인정한 거의 유일한 자가치료 방법이다. 또 시중에 나와 있는 우울증 관련 서적을 읽어본다면 스스로의 증상에 대한 이해가 넓어지면서 도움이 된다.
- 2018-04-09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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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월의 문화행사
- 벚꽃이 만발하는 4월, 이달의 추천 전시·공연·행사를 소개한다. 진해군항제 일정 4월 1~10일 장소 중원로터리 및 진해 일대 국내 최대의 벚꽃축제로 손꼽히는 ‘진해군항제’가 개최된다. 벚꽃 명소인 여좌천, 경화역, 진해탑 등에선 36만 그루의 아름다운 왕벚나무를 감상할 수 있다. 축제 동안에는 평소 출입이 어려운 해군사관학교, 해군진해기지사령부의 영내 출입이 가능하며 해군복 입기, 요트크루즈 승선 등 다양한 체험 행사가 열린다. 특히 금요일 저녁과 주말에 개최되는 군악의장페스티벌은 진해군항제에서만 볼 수 있다. 당신은 지금 바비레따에 살고 있군요 일정 4월 3~8일 장소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당신은 지금 바비레따에 살고 있군요’는 출연진과 관객이 함께 노래하고 춤추는 공연으로 객석과 무대의 경계를 없앴다는 점이 특징이다. 자신의 삶을 잃어버린 중년 여성들에게 아직도 아름답고 열정을 내뿜을 수 있다는 용기를 주기 위해 만들어진 작품이다. 지난 6년 동안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시민참여형예술프로젝트, 한국문화예술회관연합회 신나는 예술여행 등의 사업에 선정됐다. 돌아온다 일정 4월 5일~5월 6일 장소 드림아트센터 2관 더블케이씨어터 출연 강성진, 정상훈, 김수로, 김곽경희 등 포스터에 ‘그리운 사람이 돌아옵니다’라는 문구가 눈에 띈다. 연극 ‘돌아온다’는 군대 간 아들을 기다리는 초등학교 여교사, 집 나간 필리핀 아내를 기다리는 청년, 욕쟁이 할머니 등 후회와 미련이 많은 주인공들의 사연을 통해 기다림과 그리움에 대해 이야기한다. 배우 김수로와 강성진을 필두로 다양한 연극무대에서 경험을 쌓은 정상훈, 김로사, 김사울 등이 참여한다. 아드만 애니메이션 – 월레스&그로밋과 친구들 일정 4월 13일~7월 12일 장소 동대문디자인플라자 ‘아드만 스튜디오’는 영국의 유명한 클레이 애니메이션 제작사다. 이번 전시에서는 아드만 스튜디오의 대표작 ‘윌레스와 그로밋’, ‘숀더쉽’, ‘치킨런’ 속의 주인공들을 만나볼 수 있다. 2018 앙상블마티네 개막 4월 21일 장소 세종문화회관 체임버홀 지휘 윤승업 연주 서울시유스오케스트라단 모차르트 시리즈를 목관, 현악, 금관, 심포니 총 4가지 테마로 나눴다. 이번 첫 번째 시리즈에서는 모차르트 작품 중 유일한 클라리넷 협주곡인 ‘클라리넷 협주곡 A장조 1악장’이 연주될 예정이다. 사랑해요, 당신 일정 4월 28일~6월 3일 장소 KT&G상상마당 대치아트홀 출연 이순재, 장용, 정영숙, 오미연 등 연기 베테랑 이순재, 장용이 남편 '한상우' 역을, 정영숙, 오미연이 아내 '주윤애' 역을 맡았다. 연극 '상랑해요, 당신"은 평범했던 부부에게 치매라는 불청객이 찾아오면서 이별을 준비하는 과정을 그렸다.
- 2018-03-29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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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뛰는 사람 위에 노는 사람, 노는 사람 당해낼 사람은 없지요”
- 삶에서 행복을 충전하는 최고의 방법은? 좋은 사람들과 여행을 가서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이라 한다. 그것을 다하며 사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 있다면? 중견 여행사 ‘베스트래블’을 경영하는 음식·여행 칼럼니스트 주영욱 대표(57)가 그이다. 이외에도 사진가, 팟캐스트 DJ를 비롯해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며 노는 게 일이다. 그의 별명은 문화 유목민, 호모 루덴스(유희하는 인간)다. 한마디로 노는 사람이다. 마케팅 리서치 분야에서 25년을 일해온 그는 2013년 52세의 나이에 여행사를 창업, 인생 2막을 ‘문화유목민’으로 살고 있다. 뛰는 사람에서 ‘튀는 사람, 노는 사람’으로 변하게 된 그의 인생 2막 이야기를 들어보자. 주영욱 대표는 여행, 음식은 물론이고 미술, 음악, 사진 모두 전문가 수준의 취미를 갖고 있다. 57세, 보통 사람은 이제 버킷리스트를 쓰기 시작할 때다. 그는 하나씩 실행해나가며 지워나가느라 오히려 홀쭉하다. 고교 시절부터 꿈꿨던 DJ의 꿈은 팟캐스트 활동으로, 음식 칼럼을 쓰고 싶다는 꿈은 중앙일간지 연재를 통해 실현했다. 이외에도 가상역사소설, 공상과학소설로 저술을 준비하는 등, 그의 꿈은 산지사방 전 분야에 걸쳐 뻗쳐 있고 진행 중이다. 얼마 전 그는 왼쪽 팔목에 ‘매버릭’(Maverick, 개성이 강한 사람)이란 문신을 새겼다. 이순(耳順)을 바라보는 나이에 20대 젊은이들처럼 멋부리기 유행을 타서도, 폭력배처럼 위협을 주기 위해서도 아니다. 매버릭, 말 그대로 개성이 강한 사람으로 편견과 습관에 갇혀 살지 않겠다는 자기다짐이고 자유선언이다. 그는 “세상의 터부 내지 스스로의 금기를 깬 느낌 때문인지 시원했다”며 “세상에 길들여져 탈색되지 않는 자유인으로 살겠다는 의미에서 했다”고 말했다. 그가 정기적으로 단식과 명상을 하며 몸과 마음을 함께 비우는 것도 본질과 개성을 찾기 위한 일환이다. 그는 비우고 내려놓고 편견의 곁가지를 쳐내야 핵심에 집중해 생생해진다고 말한다. 삶이나 몸이나 생각이나, 심지어 음식의 맛도…. 마케팅 리서치 분야에서 25년간 일하며 미국, 일본, 프랑스 글로벌리서치 사의 한국법인 CEO를 두루 역임하셨습니다. 52세의 나이에 이종 분야 창업을 하신 게 특이합니다. “경영상 이견으로 외국 회사 한국법인 CEO를 그만두고 됐어요. 20대 때부터 몸담아온 마케팅 리서치 일을 다시 할까도 생각했어요. 마케팅 리서치는 최적의 대안을 찾아내 본질에 집중하는 일이거든요. 제 성격의 완벽주의랑 맞아 신나게 일했어요. 25년 가까이 해오다 보니 스스로 타성이 느껴지더군요. 현재의 삶에 그럭저럭 안주하는 내 모습이 싫어졌습니다. 아직 젊은데 작은 성공에 취해서 한 달에 보름씩 골프를 쳐가며, 이렇게 살아도 되나 불안하기도 했고요. 재미가 제 삶의 중요 요소예요. 좋게 말하면 글로벌 마인드, 나쁘게 말하면 역마살이라고나 할까요. 익숙한 길보다 가지 않은 길, 새롭게 흥분할 수 있는 것에 도전하고 싶었습니다. 더 늦기 전에 내가 하고 싶은 일에 나를 던지고 싶었어요.” 주 대표께서 생각하는 여행의 재미와 의미는 무엇인가요. “여행의 가장 큰 의미는 사람을 성장시키는 것입니다. 사고를 유연하게 해줘요. 이분법적 사고에서 절로 벗어나게 한다고나 할까. 여행 가면 늘 낯선 환경에서 벗어나 새로운 룰을 따르고 새롭게 생각해야 하잖아요. 그런 게 제 성격에 맞아요. 철이 안 들어서 그런가봐요. 추하다vs아름답다, 옳다vs그르다의 이분법적 사고를 벗어나게 해줘요. 편견을 깨야 한다는 걸 자연스럽게 배우게 되지요.” 그는 인도 여행을 갔을 때 겪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어떤 초라한 행색의 인도인이 자기 배를 타달라고 호객 행위를 심하게 하더란 것. 다음 날 아침 숙소 앞에서 넘어져 잠깐 쉬고 있을 때였다. 그가 다가오기에 또 호객 행위를 하러 온다고 생각해 자신도 모르게 짜증을 냈다고. 알고 보니 약을 주려고 온 것이었다. 그는 “겉만 보고 판단하지 말아야 한다, 열린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여행지에서 매번 시시각각 깨닫는다고 털어놓았다. 여행을 좋아하는 것과 여행 사업을 하는 것은 별개인데요. 창업을 하신 특별한 이유가 있었는지요. “크게 세 가지 이유가 있었어요. 첫 번째는 고품격 여행 상품을 개발하고 싶었어요. 집 나가면 개고생이라 하잖아요. 저는 그게 여행 자체가 아니라 프로그램의 문제라고 생각했어요. 제가 400회 이상 해외 여행한 경험이 있으니 그런 기획을 잘할 거라고 생각했지요. 여행 계획을 짜면 모두들 즐거워하며 ‘이런 프로그램은 여행사도 못 짠다. 너, 나중에 여행사 차려라’ 하고 농담할 정도였거든요. 두 번째는 국민소득 3만 달러 시대에 여행업은 미래 산업으로 성장 가능성이 있다고 나름 판단했지요. 세 번째는 인맥에 대한 자신감이었지요. 제가 온갖 모임의 총무, 회장을 맡아 마당발이었거든요. 아는 VIP들만 모객해도 걱정 없겠다 생각했지요. 금방 착각임을 깨달았습니다만….” 즐기던 여행을 막상 사업으로 해보니 어떻던가요. “일과 취미는 전혀 달라요. 지금까지 여행사를 하며 실제 고객은 모르는 분들을 개척한 거예요. 아는 사람과 도와주는 사람은 전혀 별개예요. 처음엔 섭섭하기도 했는데요. 그게 인지상정이에요. 나도 중요한 결정을 할 때 친분보다 전문성을 갖고 냉정하게 판단하거든요. 인생 2막, 새로 도전하면서 과거 인맥을 바탕으로 뭘 해보겠다는 사람을 보면 적극 말려요. 사업은 아는 사람 믿고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충분한 준비와 자금력을 바탕으로 해야 합니다. 기본인데도 잊기 쉬워요.” 그는 “내가 여행상품 기획은 잘하니 호텔, 항공료 절감 등 원가 관련 문제 같은 부족한 실무 요소는 남을 통해 보완하면 되겠지 하고 안이하게 생각한 것도 실수였다”며 “사장이 큰 그림 보며 해야 할 일을 직원이 대신 해줄 수는 없더라”고 말했다. 만일 창업 초기로 돌아간다면 여행 가이드를 하든, 자격증을 따든, 직원을 하든 현장에서 밑바닥 경험을 1~2년 반드시 해보겠다고 털어놓았다. 그나마 자신은 충분한 투자금을 확보해놓고 시작해서 버틸 수 있어 다행이었다는 고백이었다. 그가 히트를 친 것은 고품격 테마여행 중국 장강삼협 크루즈 관광상품 출시다. 동종 상품의 3~4배 가격으로 고품격의 명품패키지를 기획한 게 먹힌 것이다. 2016년 그는 여행 서비스를 필요로 하는 해외여행자와 서비스 제공자(여행사/랜드사/가이드/해외교민/유학생 등)를 직접 연결시키는 맞춤형 여행 도움 플랫폼 ‘티비스켓’을 창업해 사업 영역을 넓혔다. 주 대표는 “얼핏 마케팅 리서치 경력이 여행업과 상관없어 보이지만 결국은 도움이 되었다”고 말한다. 그는 “마케팅 리서치의 본질은 옥석을 가려 최고의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라며 “이는 여행업에도 똑같이 적용된다”고 설명했다. 직관적으로 ‘좋다, 나쁘다’로 끌리기보다 호기심의 본질과 원인을 분석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주 대표와 대화를 하며 특이한 모습을 발견했다. 인생의 우선순위로 재미를 이야기하고, 본인도 재미있게 살지만, 이야기를 재미있게 하거나 유머가 넘치는 편은 아니었다. 첫째, 둘째, 셋째 하는 식으로 정리를 해서 설명하고 단어의 정의를 내린 후 논리를 전개해나가는 방법으로 대화를 했다. 알고 보니 그는 우리나라 상위 2%의 지능지수를 가진 사람들의 모임인 멘사 회장을 지냈다. 음식 칼럼니스트로도 활동하시지요. 일간지에 연재도 하셨고 ‘이야기가 있는 맛집’이라는 책까지 내셨습니다. 일반 음식 칼럼과는 달리 식당 셰프, 사장의 인생 사연을 곁들이는 게 특색이더군요. 잘되는 식당의 비결은 무엇이던가요. 간단히 말하면 기본에 충실한 식당입니다. 말은 쉬운데 오래 유지하긴 어려워요. 이런저런 핑곗거리와 유혹 때문에 넘어가기 쉽거든요. 유명한 집과 맛 좋은 집은 달라요. 진정한 맛집의 음식에선 주인의 정성과 열정이 느껴져요. 손님을 지갑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음식 자체에 자부심을 가진… 결국 음식은 재료맛, 손맛, 칼맛의 조합이거든요. 주인의 정성이 깃든 음식은 첫맛, 중간맛, 끝맛이 일관되게 같아요. 단맛이나 자극적 조미료로 맛을 낸 음식은 첫입엔 당기지만 끝맛이 좋지 않아요.” 주 대표는 ‘맛집을 고르는 비결’로 2가지를 귀띔해줬다. 사장이 직접 요리하는 곳, 오랜 전통을 가진 곳, 이 두 기준으로 고르면 틀림없다는 것. 요즘 상(上)남자는 상(床)남자, 상 차리는 남자란 농담도 있더군요. 집에서 요리를 잘 하십니까. “한동안 열심히 배웠지요. 내 손으로 메뉴에 따라 음식을 만드는 게 신기하더라고요. 의욕이 넘쳐 비싼 칼이랑 파스타 냄비만 잔뜩 사놓고선 그만뒀어요. 손이 입을 못 따라가 중년 남자의 작심삼일 셰프놀이에 그쳤지요.(웃음) 애들이 먹지 않으니 요리할 마음이 없어지더군요. 그냥저냥 요리는 재미있는데 뒷정리 설거지하는 게 너무 힘들어요. 아내의 고마움을 뒤늦게 깨달았답니다. 요리를 배우겠다는 동년 친구들에게 충고해주는 게 있습니다. 음식 맛은 고가의 장비랑 상관없으니 비싼 그릇과 도구는 사지 말라고요. 고급 골프채를 새로 샀다고 골프 스코어가 바뀌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말해주지요.” 음식 칼럼니스트가 꼽는 최고의 음식은 무엇일지 궁금합니다. “제가 세상에서 제일 맛있어 하는 음식은 아내가 해준 김치찌개입니다. 힘들고 지쳤다가도 돼지고기 넉넉하게 넣고 끓인 김치찌개만 먹으면 마음이 순식간에 풀려요. 나의 소울 푸드라고나 할까요. 밖에서 일하느라 바쁘고 지친 와중에서 집밥 해주는 정성을 알기에 일절 불평 없습니다. 저는 이제까지 반찬투정이라고는 해본 적이 없답니다. 음식은 입보다 마음으로 먹는 것입니다. 어머니께서 해주셨던 소박한 집밥 한 끼가 어느 산해진미보다 더 맛있게 기억되는 것도 그 때문이지요.” 최근 아프리카 여행 때는 가수 휘성 씨 뮤직비디오 촬영도 하셨다면서요. 산악자전거 타기, 사진가, 종횡무진 다양한 활동을 하시는데요. 앞으로의 꿈은 무엇인가요. “여행 관련 콘텐츠를 만들어 여행 전문 케이블 TV를 만들고 싶어요. 경영자로서 저는 수치에 그렇게 밝은 편이 아닙니다. 선한 영향,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것에 관심이 있습니다. 사업이 자리가 잡히면 직원들을 소사장으로 만들어 파트너 관계로 경영하고 싶어요. 좋은 음식이 그렇듯 뒷맛이 좋고 오래가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어머니의 김치찌개같이 질리지 않고 따뜻한 사람으로요.” 인터뷰를 마치고 일어서려는데 그가 핸드폰을 꺼내 자신이 DJ로 활동하는 맛집탐방 팟캐스트를 들려주었다. 촉촉한 7080의 감성 어린 목소리로 사연을 곁들여 맛집을 소개하고 있었다. ‘꿈이 있는 자는 늙지 않는다’고 했던가. 다음에 만날 때 그가 얼마나 더 ‘홀쭉해진’ 버킷리스트를 갖고 나타날지 궁금해졌다. 그때 같이 먹을 추천 식당도….
- 2018-02-28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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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맛있는 인생(Second Half)’
- 이런 영화가 있는 줄 몰랐다. 그리 대단한 흥행을 한 것도 아니고 마케팅도 열심히 한 것 같지 않다. 저예산 영화라서 그랬을지 모른다. 그런데 묘한 여운을 남기는 영화다. 많이 알려지지 않은 배우들의 자연스런 연기와 함께 마치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처럼 편안하게 볼 수 있는 영화다. 조성규 감독 작품이다. 주인공인 영화제작자 조 대표 역으로 류승우, 젊은 여대생 민아 역으로 신인 배우 이솜이 나온다. 한때는 잘나가던 40대 영화제작자 조 대표는 최근 만드는 영화마다 망한다. 거래처 전화에 시달리다가 훌쩍 바다가 보고 싶어 차를 몰고 강릉으로 혼자 향한다. 무작정 떠난 것이다. 호텔을 정하고 레스토랑에서 차 한잔 하려는데 서빙하는 한 아르바이트 여대생에게 전류가 흐르듯 시선이 꽂힌다. 긴 생머리에 청순한 얼굴, 날씬한 몸매의 어디선가 본 듯한 얼굴이다. 그런데 여대생이 조 대표가 유명한 영화제작자라는 것을 먼저 알아본다. 더구나 팬이라고 한다. 그리고 다음 날 쉬는 날이라며 강릉 가이드를 자청한다. 돌이켜보니 20년 전 친구들과 강릉에 왔을 때 묵었던 민박집에 또래의 딸이 있었다. 당시 친구들과 누가 그녀와 잘 수 있는지 내기를 했고, 조 대표가 그녀를 유혹해 하룻밤 정사를 나누곤 다음 날 새벽 서울로 도망쳤던 기억이 있다. 둘은 강릉 일대를 다니며 편안하고 즐거운 시간을 갖는다. 아름다운 여대생과 중년 남자의 꿈같은 여행이었다. 유명한 명소와 맛집, 커피숍 등을 다니며 둘은 많은 대화를 나눈다. 조 대표는 민아에게 묘한 떨림과 끌림을 느낀다. 20년 전 하룻밤을 나눈 그녀의 딸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게 한다. 조 대표는 민아가 만나는 사람들을 통해 점점 민아가 자기 딸이라는 심증을 굳힌다. 그리고 자책감에 시달린다. 드디어 여행 마지막 날, 둘은 어두운 바닷가에 앉아 서로 고백할 일이 있다고 말한다. 조 대표는 20년 전 일을 고백하려고 했지만 민아가 먼저 고백하겠다고 했다.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는데 그가 바로 조 대표라고 말한다. 충격적인 그녀의 고백에 잠시 당황하던 조 대표는 돌아서서 그 길로 차를 몰고 서울로 돌아온다. 남자들에게는 조 대표와 비슷한 죄책감이 있다. 젊은 시절은 이성보다는 본능이 더 강할 때다. 여자들은 혹시 이 남자는 뭔가 다를까 하고 받아들이지만 결국에는 남자들은 다 똑같다는 말을 한다. 민아도 얼마 전까지 사귀던 또래 남자가 있었지만 헤어지고 보니 역시 똑같더라는 말을 한다. 영화 제목을 왜 ‘맛있는 인생’으로 지었을까 의아했다. 영어로 번역한 ‘Second Half'는 ’후반전‘이란 의미다. 40대에 인생 후반전을 이야기하기에는 이르다. 그러나 인생 후반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를 곰곰 생각해볼 나이다.
- 2018-01-08 15: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