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최성환의 똑똑한 은퇴] 재미있는 영화와 망중락(忙中樂)
- 바쁠수록 시간이 빨리 간다고 한다. 바쁘답시고 1분 1초를 다투다 보면 몇 시간, 며칠이 어느새 지나가기 때문이다. 이 대목에서 질문 하나. 바쁜 것 말고 우리의 시간을 빠르게 가도록 만드는 것이 하나 더 있다. 무엇일까? 재미가 아닐까? 재미있을 때도 바쁠 때 못지않게 시간이 후딱 가기 때문이다. “나이를 먹을수록 좋은 게 네 가지 있답니다. 첫째는 오래되어 잘 마른 장작이고요, 두 번째는 마시기 좋은 오래된 와인이지요. 세 번째는 서로 믿고 따르는 오래된 친구, 마지막 네 번째는 내가 읽기 좋은 책을 쓰는 나이 든 작가랍니다.” 16세기의 철학자 프란시스 베이컨이 한 말이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가까이에 친구가 많아야 한다. 배우자와 가족 등 친구뿐 아니라 추운 날 나를 따뜻하게 덥혀줄 장작, 함께 나눌 술 한 병, 혼자서 심심할 때 들춰볼 책도 가까이에 있어야 할 친구들이다. 두 번째 질문. 장작과 와인, 친구, 책 등으로부터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그냥 남는 시간을 때우는 게 아니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시간을 보내는 재미가 아닐까? 불타는 장작에다 고구마와 밤을 구우면서 가족이나 친구와 술잔을 나누는 장면은 생각만 해도 정겨운 그림이다. 지난 이야기를 해도, 다가올 이야기를 해도 다들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아니, 조금 전에 했던 말을 또 해도 처음 듣는 양 들어줄 것이다. 했던 말을 또 할 정도가 되면 어느새 와인은 새로운 병일 터이고 장작 또한 새로운 장작일 터이다. 이제 세 번째 질문. 영국의 한 신문이 영국 끝에서 런던까지 가장 빨리 가는 방법을 현상공모한 적이 있다. 이 사람 저 사람이 어디어디까지 비행기를 타고, 기차를 타고, 차를 타고 가면 된다고 응모했다. 그런데 1등으로 뽑힌 답은 ‘좋은 친구와 함께 간다’였다. 좋은 친구와 함께 재미있게 이야기하면서 가다 보면 금세 도착할 것이므로 긴 여행도 짧게 여겨지기 때문이다. 영국계 글로벌 은행 HSBC가 전 세계 17개국 30~60세의 1만7000여 명을 대상으로 은퇴와 관련한 설문조사(2011년)를 실시했다. “은퇴라는 단어로부터 무엇을 떠올리느냐?”고 물었더니 대다수 선진국에서는 ‘자유, 만족, 행복’이라는 긍정적인 대답이 나왔다. 반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경제적 어려움’이 가장 많은 대답을 차지했고 이어서 나온 것이 ‘두려움, 외로움, 지루함’이었다. 왜 우리나라 사람들은 은퇴하면 경제적 어려움을 먼저 떠올릴까? 은퇴 후 노후의 삶에 대한 준비가 부족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다 보니 은퇴 후가 두려울 뿐 아니라 외롭고 지루할 것 같은 부정적 생각만 드는 것이다. 경제적으로 어렵고 그래서 두렵고 외롭고 지루한 삶이 과연 재미있을까? 반대로 자유, 만족, 행복이 떠올려지는 삶이라면 그 삶은 설레고 기다려지지 않을까?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일에 쫓기고 있지만 일을 벗어나 자유롭고 만족스럽고 행복한 시간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면 지금 하는 일까지도 재미있지 않을까? 근엄하기만 할 것 같은 공자님도 재미없는 인생을 멀리했다. 에 ‘지지자불여호지자 호지자불여낙지자(知之者不如好之者 好之者不如樂之者)’라는 말이 나온다. 아는 사람은 좋아하는 사람만 못하고, 좋아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만 못하다는 것이다. 아는 것과 좋아하는 것을 넘어 즐기는 재미가 있어야 그 인생이 행복하다는 것이다. “자식들이 죽어 슬픔으로 얼룩진 영화이지만 지루하지 않고 ‘재미있게’ 만들어 주십시오.” 김학순 감독이 영화 을 만들면서 유가족들로부터 받은 당부는 딱 이 한 가지였다고 한다. 유가족들은 어떠한 픽션도 상관없다면서 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보게 하는 것이 연평해전을 알리고 아들들의 명예를 높이는 일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사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다큐멘터리를 넘어 관객들이 보고 즐길 수 있는 영화다운 영화, 재미있는 영화를 만들어달라는 부탁이었다. 참으로 대단한 유가족들이다. 공짜 영화라도 재미가 없으면 보고 싶지 않은 게 인지상정 아닌가? 작품성 시비와 정치적 논란 속에서도 흥행에 성공한 것은 재미와 감동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자칫 밋밋하기 쉬운 전쟁영화지만 여기저기 숨어 있는 재미들이 감동을 더해준다는 입소문이 관객들을 극장으로 이끈 것이다. 재미있는 영화의 특징은 나도 모르게 빨려들어 시간 가는 줄 모른다는 것이다. 보다 보면 어느새 엔딩 타이틀이 올라오는 것이다. 재미에 더해 감동적인 영화라면 다 끝날 때까지도 자리를 뜨지 못하고 있을 것이다. 반면 재미없는 영화는 처음부터 지루하기 짝이 없어서 엉덩이가 아프기 시작할 뿐 아니라 시계가 야광이 아닌 것에 짜증이 날 정도일 것이다. 특히 영화가 끝날 때까지 자다가 좌우에서 웅성거려서야 깰 정도라면 돈과 시간이 아까운 것을 넘어 그 허무함이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것이다. 재미없는 인생은 재미없는 영화 이상으로 지루하기만 할 것이다. 무엇이 그리 바쁘답시고 재미있는 영화 한 편 못 보는 인생을 재미있는 인생이라고 할 수 있을까? 노자, 장자와 함께 대표적인 도가(道家) 사상가로 알려진 열자(列子)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십 년 만에 죽어도 죽음이요, 백 년 만에 죽어도 역시 죽음이다. 어진 이와 성인도 역시 죽고 흉악한 자와 어리석은 자도 역시 죽는다. 썩은 뼈는 한가지인데 누가 그 다른 점을 알겠는가? 그러니 현재의 삶을 즐겨야지 어찌 죽은 뒤를 걱정할 겨를이 있겠는가?” 무려 2400년 전에 한 말이지만 현재를 사는 우리에게도 딱 들어맞는 말이다. 90세, 100세까지 살아야 하는 인생을 재미있는 인생으로 만드는 것은 누구인가? 재미있는 인생도 재미있는 영화처럼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은퇴 후 또는 다음으로 미루지 말고 지금 바로 즐거움을 찾는 재미, 재미를 찾는 재미를 찾아나서야 한다. 바쁜 중에도 한가함을 찾는다는 ‘망중한(忙中閑)’을 넘어 바쁜 중에도 재미를 찾는 ‘망중락(忙中樂)’이 필요하다. 내 인생, 내 영화의 감독은 바로 나 자신이다. 최성환 한화생명 은퇴연구소장·고려대 국제대학원 겸임교수
- 2015-12-29 17:51
-
- [명사와 함께하는 북人북] 인생의 행복을 이끄는 마법 <신념의 마력>
- 서울대 법학과를 졸업해 검사로 활동하며 서울고등검찰청 검사장, 법무연수원 원장 등을 거쳐 10년 전부터는 변호사로 살고 있는 법무법인 대륙아주의 정진규(鄭鎭圭·69) 대표변호사. 탄탄대로의 그의 삶에는 분명 나름의 비법이 있을 터. 만족스러운 삶을 살았노라고 말하는 정 변호사에게 은 인생에 중요한 밑거름이 되어준 책이다. 글 이지혜 기자 jyelee@etoday.co.kr 인터뷰에 앞서, 추천 도서 선정에 신중함을 잃지 않았던 그다. 한때 낭만을 가득 품고 읽었던 러시아 문학, 나폴레옹의 전기나 헬렌 켈러의 수필 등 많은 책이 그의 생각에 머물렀다. 학창시절 도서관에 있는 책들을 다 읽을 정도로 독서에 심취했던 정 변호사는 그때 읽었던 책들이 삶의 자양분이라고 말한다. 그런 그가 오랜 고민 끝에 선정한 책은 이다. 책에 대한 기억은 50여 년 전 처음 읽었던 그때가 전부라고 했다. 반세기 만에 꺼내든 책이지만 머리보다는 가슴에 새겼기에 그 메시지만큼은 또렷이 남아 있었다. “고등학교 시절 입시를 코앞에 두고 목표는 서울대 법대였는데 성적이 많이 떨어져 있었어요. 모의고사를 보고 담임선생님이 어머니께 지금 성적으로는 원하는 대학은 어림도 없다고 하셨죠. 남다른 의지가 필요했던 그때, 우연히 을 발견했어요. 마력이라는 단어에 끌려서 정말 순식간에 읽어냈죠. 사실 그때 이후로는 한 번도 읽지 않았지만 그때의 감정과 메시지는 매사 잊지 않고 지내왔어요.” 정확한 목표를 갖고 그것을 이뤄낼 수 있다는 강한 신념과 열망으로 최선을 다하면 원하는 바를 성취할 수 있다는 메시지가 주를 이루는 이 책은 정 변호사의 인생관과도 흡사했다. 본래 낙천적인 성격을 지녔지만, 행동에 적극적이지는 못했던 그였다. 책은 수줍음이 많았던 그에게 자신감을 심어줬고, 그 자신감은 곧 행동에 힘을 실어주었다. ‘행동이 따르지 않는 신념은 죽은 것이다’라는 책의 한 구절처럼 신념에 자신감 넘치는 행동이 더해지자 그의 인생은 더욱 만족스러운 모습으로 나아갔다. “잠재하고 있던 능력들이 자신감을 통해 발현됐다고 생각해요. 그런 점에서 누구에게나 이 책을 권하고 싶어요. 사람이 사는 방법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죠. 좋은 것을 믿고 받아들이는 자세로 사는 것과 매사에 의심하고 회의적인 자세로 사는 것인데, 기왕이면 좋은 것을 취하고 장점을 부각할 줄 아는 사람이 무언가를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해요. 꼭 무언가를 이뤄야만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마음가짐으로 사는 것이 삶에 만족도 주고, 행복이나 가치 추구에 굉장히 도움이 돼요. 또, 잘 안 되더라도 그 결과를 좋게 받아들일 수 있는 자세가 생기고, 과정이 즐겁게 남겠죠.” 마음속 그림대로 끌려온다 열망하는 대로 이루어진다는 신념의 마력. 그의 신념은 정말로 마력을 발휘했을까? 정 변호사가 열망해온 삶이 궁금했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 하잖아요. 마음먹기 따라 달라지고, 믿는 만큼 이뤄낼 수 있어요. 명예롭고 정의로운 검사가 되고자 마음먹었었죠. 그게 목표였고, 국가와 사회, 이웃에 보탬이 되는 모든 일에 최선을 다했어요. 최선을 다하면 이루어질 테니 그것을 통해 행복하게 살아보자. 그렇게 검사로서는 서울 고검장, 법무연수원장까지 했으니 할 수 있는 만큼 한 셈이죠. 그 뒤로는 총장이나 장관이 돼야 하는데 그건 내 맘대로 되는 게 아니니까요. 하지만 충분히 만족하고 행복한 삶을 살았다고 생각해요.” 긍정적인 자세로 최선을 다해온 덕분에 만족스러운 지난날을 회상하는 정 변호사에게도 위기는 존재했다. 하지만 그런 날도 강한 신념과 노력으로 해결해 나갈 수 있었다. “1980년대 말, 마산지방검찰청 충무지청장으로 있었는데 대우조선에서 1만여 명에 달하는 노조가 열흘 넘게 파업하는 심각한 사건이 벌어졌죠. 그맘때 울산에서 현대 파업 사태가 난항을 겪어 분위기는 절망적이었어요.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라는 말을 떠올렸죠. 사용자와 노조의 문제점을 면밀히 분석하고 분명히 해결되리라는 강한 신념으로 최선을 다했어요. 당시 공권력이 1만4000여 명 투입되기로 예정돼 있었는데, 실제는 경찰이 3000여 명밖에 없었는데도 파업문제를 원만히 해결할 수 있었죠. 그렇게 굉장히 크다고 여겨지는 문제에도 해결의 길은 있기 마련이거든요. 어려움에 닥치면 좌절하거나 꺾이지 말고 ‘어! 왔어? 한번 해보자’ 하는 마음으로 부딪혀보고 열심히 방법을 찾다 보면 분명 해결할 수 있다고 믿어요.” 열망하는 삶, 다채로운 삶 늘 호기심 어린 눈으로 세상을 바라본다는 그는 아직도 해보고 싶은 일들이 무척 많다고 했다. 그렇다면 그가 열망하는 인생 이모작은 어떤 모습일까? “실은 검사직을 그만두고 학계로 가거나 다른 일을 해볼까 생각했는데 이런저런 인연으로 변호사를 하게 됐죠. 외국 기업으로부터 특허침해소송을 받은 우리 기업을 구제한 적이 있는데 그런 일들이 참 보람 있더라고요. 기업이나 개인을 도우면 사회에 보탬이 되고 제게도 보람이 있으니 얼마나 행복해요. 그렇게 지금은 법인의 대표 변호사로서 주어진 일에 전념해야겠고, 후배들을 잘 격려해 훌륭한 삶을 살 수 있도록 인도하고 싶어요. 일로는 그렇고 궁극적으로는 다채로운 삶을 사는 것이 목표예요. 도둑질이나 남 해치는 것 빼고는 다 해보자는 마음으로 살아왔죠. 가령 취미 생활을 해도 대충 하는 법이 없었어요. 바둑도 아마 5~6단 정도 될 때까지 했고, 테니스도 테니스 전문 잡지에 선수로 나갈 만큼 치열하게 했죠. 요즘은 클라리넷에 관심이 있는데 일이 바빠서 시작은 못 하고 있어요.” 이야기를 나누는 내내 그에게선 삶의 만족과 행복이 느껴졌다. 너그러운 미소에서는 인생의 즐거움이 묻어났고, 반짝이는 눈빛에는 강한 자신감이 맺혀 있었다. ‘열망, 노력, 자신감’ 이 세 가지가 선순환하며 행복한 그의 삶을 이끌어 가는 듯했다. “빌 게이츠가 매일 뭘 하는지 아세요? 그도 신념의 마력을 아는 사람 같아요. 매일 아침 주문처럼 외우는 게 ‘아브라카다브라(말하는 대로 이루어진다)’, ‘오늘은 왠지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아’, ‘나는 할 수 있어’ 이 세 가지라고 해요. 그처럼 기왕이면 하는 일에 즐거운 상상을 하고 자신감을 느끼는 것이 긍정적 영향을 주죠. 무언가를 간절히 희망하면 열심히 하게 되고, 열심히 하면 이룰 수 있는 것이 많아지고, 그 성공이 다시 자신감으로 축적되죠. 그렇게 쌓인 자신감이 제 삶의 활력이자 원동력 아닐까요?”
- 2015-11-19 07:31
-
- [손주와 함께1] 손자바보의 행복
- ‘행복한 노후’ 즉 은퇴 이후 시작되는 ‘시니어 라이프’를 행복하게 영위하기 위한 조건으로는 수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얘기들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인의 의식 구조 속에서는 노후 생활의 행복은 자식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 특히 자신의 분신인 손자들을 자주 만날 수 있고, 즐거운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특별히 중요한 조건이라는 사실을 언급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 나의 분신, 현우와 승우 제게는 지금부터 4년 여 전, 거의 비슷한 시기에 두 손자가 태어났습니다. 녀석들이야 서로 4촌 간이지만, 저로서는 마치 쌍둥이 손자를 안은 느낌이었습니다. 두 아들 집을 왔다갔다 하며 녀석들을 어르기도 하고, 사진도 찍어주고 하던 어느 날, 마침내 대오각성(大悟覺醒)의 순간이 다가오더군요. “두 손자 현우(炫宇)와 승우(承宇)는 내 피를 받아 세상에 나온 나의 분신들이며, 앞으로의 내 인생에서는 이 녀석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중대한 의미를 가지게 될 것”이라는 사실에 대한 깨달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밤 안으로, ‘앞으로 살면서 손자들과 함께 하고 싶은 일’의 리스트를 작성했습니다. 두 손자들은 제가 앞으로 많은 시간과 정성과 마음을 쏟아서 사랑해 주어야 할 제 인생의 소중한 열매들이니까요. 나중에 아들, 며느리들과도 협의를 거쳐 완성한 리스트 가운데는 ‘두 손자들과 몽골의 초원에 누워 밤하늘의 별 바라보기’ ‘유치원 시절부터 두 손자들에게 한자 가르치기’ ‘사진을 바탕으로 한 손자들의 육아일기 쓰기’와 같은 항목들이 포함돼 있습니다. 그 뒤로 손자들에게 가급적 많은 시간을 할애하면서 ‘손자바보’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두 녀석도 유달리 할아버지를 좋아해 주었으며, 특히 먼저 태어난 현우는 집도 가깝고 해서 두 돌이 되기 전부터 종종 제 곁에서 자고 가기도 했지요. ◇ 블로그에 올리는 두 손자의 육아일기 요즘도 변함없이 수시로 손자들의 사진을 찍고 간단한 글을 써서 블로그에 올리는 일을 지속하고 있는데, 앞으로 2년 쯤 후에 만약 여건이 된다면 ‘바보할배의 육아일기’라는 제목으로 책을 내볼까 생각중입니다. 이 목표가 성사된다면 아마도 손자들에게 남겨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손자들이 가슴 속에 아름다운 꿈을 간직할 수 있게 도와주는 일, 그리고 손자들을 정서적인 사람으로, 또 배려심을 갖춘 사람으로 키우는 일에 특히 노력을 해 왔습니다. 어린이집을 거쳐 금년에 유치원에 들어간 손자 녀석들이 지난 7월 말에 난생 처음으로 방학이란 걸 했습니다. ◇ 농가주택에서 두 손자를 위한 캠핑 두 손자의 아비, 어미들이 한참 전부터 두 아이의 방학을 어떻게 보내야 할 것인지를 두고 많은 생각들을 하기에, 제가 아이들에게 춘천 농가주택에다 여름캠프를 만들어서 일주일쯤 데리고 있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얘기했지요. 일단 두 손자 녀석들은 서로 무지하게 좋아하는 사촌 형제와 일주일 동안을 같이 지낸다는 사실에 잔뜩 흥분을 해서 어쩔 줄 모르더군요. 그리고 녀석들을 보내는 입장의, 최근에 둘째 아이를 낳아서 육아에 여념이 없는 둘째 며느리 현우어미도, 직장생활을 하는 큰며느리 승우어미도 큰 걱정을 하나 덜어낸 홀가분한 표정이었습니다. 그래서 미리미리 손자들을 즐겁게 해주기 위한 다양한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 나무 그네와 수영장 텃밭에다 벤치형 나무 그네를 사다가 설치했고, 한쪽으로는 텐트를 치고 그 안에서 놀 수도, 잘 수도 있도록 평상을 만든 다음 평상 위에 두꺼운 비닐 장판을 깔았습니다. 또 전기선을 끌어다 텐트 안에 예쁜 전구와 함께, 모기나 나방을 잡는 ‘블랙홀’이라는 기구도 설치했습니다. 또 장난감 가게에 가서 전시용으로 사용하던 미니 플라스틱 수영장을 사다가 낮은 평상 위에 설치를 끝냈습니다. 물론 아이들이 중간에 무료하지 않도록 수영은 물론 물총, 비눗방울 기구, 그리고 종이찰흙 등 자질구레한 장난감 소품들도 몇 가지를 사다 놓았지요. 마침내 7월 24일(금), 두 손자를 데리고 춘천으로 와 아내와 같이 상당 기간 연구를 하고 정성을 다해 준비한 여름방학 캠프를 녀석들에게 선보였습니다. 녀석들의 반응이 어땠냐고요? 상상 이상이었지요. 아이들 말로 ‘뿅!’ 가는 수준이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시작된 캠프 생활에 녀석들은 잘도 적응해 주었습니다. 해주는 대로 밥도 척척 잘 먹었습니다. 특히 야채 종류는 입에 대기도 싫어하던 승우 녀석이 사나흘 지나더니 밥상 앞에 앉으면 스스로 손바닥에 상추 한 잎 올려놓고, 그 위에 밥과 삼겹살 한 점, 쌈장을 얹은 다음 입속으로 밀어넣고 우걱우걱 씹는 모습이란… 세상에 그보다 더 할아버지, 할머니를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모습이 또 있을까요. 밤이면 두 녀석이 제 양 옆을 차지하고는 제 팔을 베고 누워서, 제가 들려주는 옛날 이야기를 들으며 서서히 꿈나라로 빠져 들어가는 그 사랑스러운 모습들… 그보다 더 행복한 순간이 앞으로 또 있겠습니까? 이렇게 해서 8월 1일 저녁까지, 8박9일에 걸친 손자들의 여름캠프는 성공적으로 끝이 났습니다. 일주일을 목표로 하기는 했지만, 일주일을 넘어 9일 동안을 할아버지, 할머니와 잘 지내주었습니다. 집에 갈 때도 얼마나 서운해하며 돌아갔는지 모릅니다. 손자들이 집으로 돌아가고 나니 이틀 정도는 몸이 물 먹은 솜처럼 늘어지더군요. 그러나 참으로 즐겁고 행복한 피로였습니다. 그 모습을 SNS를 통해서 본 어떤 분이 “손자를 위해 희생하는 건 바보 같은 짓이다. 그래 봐야 학교 들어가고 나면 할아버지, 할머니를 찾는 건 그걸로 끝인데, 왜 그렇게 애를 쓰느냐”고 물으시더군요. 삶의 행복이 무엇인지를 모르는 참 이기적인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상에 투자하지 않고, 수고하지 않고 얻어지는 행복이란 게 과연 있을까요? 아이들이 학교에 들어가고, 할아버지, 할머니를 자주 못 본다고 해서, ‘9일 간의 캠프생활’이란 그 아름다운 기억마저 녀석들의 머릿속에서 지워져 버리는 건 아니잖아요? 저는 그분의 글에 이렇게 답글을 남겼습니다. “세상에 투자 없이 얻어지는 건 아무 것도 없을 겁니다. 저는 손자들과 함께하는 행복이란 할아버지, 할머니의 수고에 대한 훈장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손자들이 어린 시절에 대한, 그리고 할아버지, 할머니에 대한 아름다운 기억을 바탕으로 바른 인성을 가진 사람으로 자랄 수 있다면 지금보다 더한 어떤 투자도 다할 생각입니다. 그렇게 하면 제가 행복하니까요.” >>>글·사진 조용경 전 포스코엔지니어링 부회장
- 2015-09-30 15:29
-
- [2세 결혼 알아봅시다①] 자녀 결혼을 위해 버려야 할 것
- 커플매니저 김희경 신한은행 WM사업부 팀장은 부모의 욕심 때문에 자녀의 혼기를 놓친 경우를 많이 접한다. 집안 환경이 맞지 않는다, 학벌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등 그 이유도 다양하다. 그러나 이렇게 비교하다가 혼기를 놓치면 결혼에 이르기 어렵다고 김 팀장은 이야기한다. 자녀 성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혼기’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혼기’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부모들이 몇 가지 포기해야 할 것들이 있다. 부모의 취향이나 욕심을 버리지 못해 실패한 사례는 있나요. 서울대를 졸업한 사업가 B고객에게 36세 된 아들이 있었어요. 운동을 좋아하던 아들은 지방의 체대를 졸업한 뒤 골프선수가 되겠다며 유학을 갔죠. 그러나 골프로 성공하지 못했고, 가업을 잇기 위해 귀국한 후 선을 보러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부친은 사업을 잇기 위해 현명한 며느리가 들어와야 한다며 학벌 좋은 며느리를 원했고, 경제력도 비슷한 집안이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타입의 여성은 본인과 비슷하거나 더 좋은 학벌의 남성을 희망하기 때문에 미팅이 쉽지 않습니다. 이런 경우에는 여성의 가정환경은 포기해야 합니다. 여성도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 줄 수 있는 상대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가정환경이 좋은 PB고객 중에서 추천 가능한 상대는 아들과 비슷한 학벌을 지닌 여성인데, 지방대 출신의 여성은 없었을 뿐만 아니라 부친도 내켜 하지 않아 결국 미팅 한 번 못해 여전히 노총각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렇다면 당사자인 자녀가 버려야 할 것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남성과 여성을 따로 구분해서 설명할 게요. 남성의 경우 99%가 자신보다 2~4세 정도 어리고 예쁜 여성을 소개해 달라고 합니다. 거기에 성격까지 좋은 여성을 원하죠. 그런데 이 세상에 예쁘고 성격까지 좋은 여성이 얼마나 될까요? 선택의 폭을 넓힐수록 내가 원하는 상대를 만날 수 있는 확률도 높아지는 법입니다. 외모와 나이에 집착하지 말고 성격이 맞으면 더 만나보면서 상대를 알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함께 지내다 보면 외모는 보이지 않고 성격이 최고라는 말을 많이 하기 때문입니다. 다년간 경험으로 터득한 것이라 명심해야 합니다. 반대로 여성은 경제력을 중시합니다. 거기에 분위기를 리드할 수 있는 유머 감각과 적극적인 성격을 가진 남성을 선호하죠. 남성은 예쁘고 성격 좋은 여성을 좋아하겠지만, 그것을 모두 갖춘 여성은 찾기 쉽지 않다는 걸 명심해야 합니다. 여성은 내가 좋아하는 타입보다는 나를 더 만나보고 싶어 하는 사람 중에서 선택하기를 추천합니다. 성실하고 책임감 있는 사람이라는 느낌이 든다면 계속 만나보길 바랍니다. 나를 거들떠보지도 않는 남성을 이상형으로 삼으면 결혼은 조금 힘들어요. 부모가 자녀의 성혼을 위해 버려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자녀에 대한 콩깍지입니다. 물론 자기 자녀가 가장 멋있고, 예쁜 것은 당연하지만 이것은 자녀에 대한 객관적 평가를 방해합니다. 보다 객관적으로 자녀를 평가해서 그 기준에 맞게 배우자를 선택할 수 있어야 합니다. 누구에게 추천해도 거절당하지 않을 만큼 자기 자녀가 모든 조건을 갖추었다면 조금 골라도 상관은 없습니다만 누구나 한두 가지는 부족하기 마련입니다. 그 부분을 인정하고 그에 걸맞은 상대를 찾으면 무난하게 결혼할 수 있습니다. 부족한 부분을 채워줄 상대를 찾으려고만 한다면 결혼은 어려워집니다. 커플매칭에 실패하는 경우는 얼마나 되나요. 커플매칭 서비스를 실시한 이후 매달 10~15명 정도는 꾸준히 접수되는데 이 중 한두 명은 기대치가 높아 성사되지 않습니다. 부모의 학력은 높지만 아들은 그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 아들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 줄 현명한 며느리. 즉, 학벌 좋고 예쁜 여성을 원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집안 환경이 좋고, 학벌도 좋은 여성은 본인보다 낮은 학력의 남성을 희망하지 않기 때문에 미팅이 성사되는 경우는 드뭅니다. 또는 학력, 외모 등 어느 것 하나 부각할 수 없는 평범한 딸을 둔 집에서 전문직 사위만 희망하는 경우도 있는데, 인기가 많은 전문직 남성은 기대치도 높기 때문에 이런 경우 미팅이 성사되기 어렵습니다. 자녀 성혼을 위해 부모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 결혼은 무엇보다 자녀의 행복이 우선돼야 합니다. 얼마 전 상담한 35세의 K고객은 “부모와 자식은 하늘이 주지만, 가족 중 유일하게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은 배우자”라며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서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말을 했습니다. 가끔은 때가 되면 부모가 주선한 상대와 선을 봐서 결혼하면 된다며 자녀의 연애를 막는 경우가 있는데, 나이에 맞는 연애는 자신을 성숙하게 하고 이성을 보는 안목을 넓혀줍니다. 자녀를 믿고 자녀가 선택한 상대를 인정하고 지지해 줄 때, 자녀는 행복한 결혼을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부모가 취향이나 욕심을 버려 성혼에 이른 사례는요. 중견기업을 운영하는 A고객은 아들이 있는데, 아버지 사업체를 물려받은 재력가였어요. A고객은 35세인 아들이 사귀던 여성과 궁합이 좋지 않아 헤어지게 됐다며, 궁합을 먼저 본 후 진행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의 요구에 따라 우선 생년월일을 알려주었죠. 이 같은 경우 궁합이 좋게 나오지 않으면 승낙하는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이 고객도 결국 추천하는 여성을 연신 거절해 1년에 고작 2번의 만남밖에 가질 수 없었어요. 문제는 그렇게 만남을 주선한다 하더라도 아들이 상대를 마음에 들지 않아 했다는 것이죠. 그렇게 아들은 35세를 훌쩍 넘겨 버렸습니다. 문제점을 파악하기 위해 아들과 이야기를 나눠보았어요. 아들은 30세 무렵부터 부모의 주선으로 선을 봤는데 대부분 맞선 상대가 호감 가는 외모가 아니었고, 성격도 강해 본인과 잘 맞지 않는 부분이 많았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던 중 친구 소개로 만난 여성과 1년을 교제 한 후 부모에게 인사시켰는데, 집안도 평범하고 궁합도 안 좋다며 반대해 결국 헤어지게 됐다고 하더군요. 그 후 누구를 만나도 그 여성과 비교가 돼 맘에 드는 여성을 쉽게 만날 수 없었다고 합니다. 본인은 부모의 뜻과 달리 집안 환경이나 조건보다는 착하고 예쁜 여성을 만나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부친에게 궁합을 보면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너무 적고, 그러다 보면 아들 나이만 먹게 되니 일단 먼저 만나보고 아들이 괜찮다고 하면 궁합을 보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습니다. 또 아들 집안과 수준을 맞추기 어려우니 많이 낮추어서 찾아보겠다고까지 하고요. 몇 번의 만남이 있은 후 아들이 첫눈에 반한 상대가 나타났는데, 아나운서를 준비하는 6세 연하의 여성이었습니다. 세련된 외모에 마음씨도 착해 누구나 좋아할 만한 여성이었습니다. 부친은 아들이 이렇게 좋아하는 건 처음 봤다며 궁합도 보지 않고 결혼을 승낙했고, 지금 둘은 행복하게 잘 살고 있습니다. 도움말 김희경 신한은행 WM사업부 팀장
- 2015-09-26 06:16
-
- [BML 칼럼] 음식에 대하여
- 역모 혐의로 능지처참을 당한 허균(1569~1618)은 수많은 조선조 인물 가운데 여러 모로 특이한 사람입니다. 고리타분한 유교질서에 염증을 냈던 허균은 어머니 상중에도 기생을 끼고 놀아 비난을 받은 바 있습니다. 광해군일기에는 ‘천지간의 괴물’이라고 기록된 인물입니다. 그가 광해군 3년(1611)에 귀양지인 전북 함열에서 엮은 ‘성소부부고(惺所覆?藁)’에 ‘도문대작(屠門大爵)’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8도의 명물 토산품과 별미를 소개한 음식 안내서입니다. 귀양살이를 하다 보니 지난날에 먹었던 음식 생각에 견딜 수 없어 종류별로 기록해 놓고 때때로 보아가며 한번 맛보는 것처럼 한다는 게 집필 동기였습니다. 허균이 참 가엾습니다. 처형 직전에 “잠깐 할 말이 있다”고 소리쳤지만 무시당한 채 처참하게 죽은 그는 마지막으로 무슨 음식을 먹고 갔을까? 사육신의 한 사람인 성삼문이 처형장에서 지은 절명시(絶命詩)에는 “황천길엔 주막 하나 없다는데 오늘 밤은 뉘 집에서 잘까?”[黃泉無一店 今夜宿誰家]라는 대목이 있습니다. 곧 죽을 사람들이 왜 먹는 생각을 할까? 음식이란 몸을 살찌우거나 생존을 이어주는 영양소만이 아니며 정신의 허기를 달래고 불안을 덜어주는 그 무엇입니다. 생존의지에 관한 행위와 관련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문자 그대로 음식은 마시고[飮] 먹는[食] 것입니다. 먹고 마시고 저작(詛嚼)하는 행위를 통해 우리는 심신을 기르고, 세상과 함께 하면서 사람들과 정을 다지고, 그 시대와 사회를 섭취합니다. 음식남녀 인지대욕존언(飮食男女 人之大慾存焉), 예기(禮記)가 갈파한 대로 음식과 남녀의 정, 쉽게 말해 먹는 것과 섹스는 인간의 가장 큰 욕망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이 원초적 본능을 다스려 사회질서와 양속(良俗)을 유지하기 위해 온갖 제도와 절차를 만들고 규제와 금지 장치를 마련해왔습니다. 음식은 예절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숟가락 젓가락 포크는 어떻게 쥐고 어른 앞에서 어떻게 먹어야 하는지 배운 뒤 식사공동체의 일원으로 편입됩니다. 밥상머리교육은 인간의 품성을 결정하는 원초적 교육기제입니다. 쌀을 뜻하는 글자 ‘米’를 파자(破字)하면 八十八이 됩니다. 옛 어른들은 쌀 한 톨을 얻기 위해서는 88번이나 농부의 손길이 가야 하는 걸 알라며 이 글자 이야기를 하곤 했습니다. 예절은 먹는 방법에만 있는 게 아닙니다. 음식 자체에 대해 지켜야 할 예의가 있습니다. 먹을 게 귀하고 쌀이 모자라던 시절에는 밥풀을 남기면 꾸중을 들었고, 맛있는 것만 먹거나 같은 반찬을 두 번 떠가는 것도 남을 배려하지 않는 행동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최근 번역된 댄 주래프스키 교수(미 스탠퍼드대·언어학)의 ‘음식의 언어’(The language of food)에 의하면 고급한 식사일수록 에티켓을 따집니다. 요리의 이름이 길수록, 식재료의 출처를 거론하는 횟수가 많을수록 음식 값이 비싸집니다. 음식은 정입니다. 온 가족이 모여서 밥 한 끼를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복인가요? “음식 끝에 의 상한다”는 말, “콩 한 쪽도 나눠먹는다”는 말에서는 상부상조하며 살아가는 인심과, 누구에게나 똑같은 고통인 가난을 읽을 수 있습니다. 내가 아는 술꾼 3형제는 명절에 모이면 소주를 궤짝으로 갖다 놓고 마시면서 암으로 돌아가신 아버지 이야기를 하며 웁니다. 어차피 가실 분인데, 병상에 누워 “한 잔만, 한 잔만” 하는데도 끝내 술을 드리지 않았던 불효를 그들은 지금 후회하고 있습니다. 어머니는, 또는 주부는, 또는 아내는 가족을 위해서 정으로 다듬고 무치고 사랑 양념을 넣어 음식을 만듭니다. “세상에서 제일 듣기 좋은 소리는 제 논에 물 들어가는 소리와 내 새끼 입에 밥 들어가는 소리”라고 하지 않습니까? 어려서 어머니가 해주었던 반찬이나 요리가 맛이 없어지면, 그때는 죽을 때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과학적 근거는 모르겠지만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말입니다. 음식은 소통입니다. 왕조시대에 기근이 들고 흉년이 심하면 왕은 부덕의 소치라고 자성하며 하늘에 빌면서 반찬 가짓수를 줄였습니다. 이른바 감선(減膳)의 소통정치라고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서로 자기만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손님 접대랍시고 내놓은 두루미와 여우의 우화는 달리 해석하면 서로 다른 음식을 통한 소통의 시도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음식은 배려입니다. 우리는 요리를 잔뜩 빚어 내놓고도 “차린 건 없지만 많이 드십시오” 하고 인사를 합니다. 예전에 중국인들은 “이미 익힌 걸 날것으로 되돌릴 수 없지요”[熟不還生]라고 말하며 식사를 권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지금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고 있고(장 지글러 저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세계의 절반은 먹거나 더 먹거나 또 먹고 있습니다. 음식을 먹으면서 기아의 진실, 과식과 체증의 진실을 알 수 있어야 합니다. 중국 북송시대의 명재상 범중엄(范仲淹·980~1052)은 ‘강상어자(江上漁者)’라는 시에서 이렇게 읊었습니다. “강 위를 오가는 사람들/농어 맛을 즐길 줄만 아는데/그대들 보시게나 작은 배 하나/풍파 속에 출렁거리는 것을.”[江上往來人 但愛?魚美 君看一葉舟 出沒風波裏] 농어만 즐기지 말고 농어를 잡는 이들의 고생도 알라는 뜻입니다. 굶주리는 이들도 많고, ‘혼밥’이나 불기 없는 1회식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가족과 따뜻한 음식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입니다. 나는 이걸 좋아한다고 내세울 만한 음식이 없는 사람, 함께 먹자고 남에게 권할 만한 메뉴나 음식점에 무지하거나 무신경한 사람, 무엇이든 한 가지라도 남을 위해 만들어 먹일 수 있는 음식이 없는 사람의 삶은 끝내 불행합니다. 구차하고 용렬합니다. 이어령 전 문화부장관은 어느 책에서 “여성이 매일같이 요리를 하는 것은 작은 기적을 만들어 내는 일상의 기도와도 같은 것”이라고 썼습니다. 이제는 남자들도 나를 위해, 남을 위해 요리를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요즘 TV화면을 점령하다시피 한 먹방, 쿡방은 거스를 수 없는 시대의 조류입니다. 요리는 본질적으로 살아 있는 것을 죽여서 먹을 것으로 만드는 행위입니다. 살아 있는 것을 죽여서 생명을 살게 합니다. 그러니까 역설적이지만 음식은 삶입니다. 그리고 살림입니다. 이 경우의 살림은 생계를 꾸려가는 일이나 세간이 아니라 생명이 있는 것들이 목숨을 이어가게 해주는 행위를 말합니다. 그런데 살아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움직이는 것, 푸른 것, 부드러운 것, 따뜻한 것, 촉촉한 것, 선한 것, 맛있는 것입니다. 일용(日用)하고 장복(長服)하는 음식을 통해 삶과 살림의 길을 찾아가는 일이 늘 즐거움과 행복이 되기 바랍니다.
- 2015-09-07 14:19
-
- [추천 공연] 기구한 삶 속 애달픈 사랑 이야기, 연극 <홍도>의 주인공 배우 양영미 인터뷰
- 지난해 연극성과 작품성을 모두 인정받으며 극공작소 마방진의 신파극 레퍼토리 중 대표작으로 자리 잡은 연극 가 돌아왔다. 화류비련극 는 1930년대 젊은이들의 사랑과 삶의 모습을 다룬 신파극 를 재해석한 작품으로, 기생 홍도의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를 담고 있다. 미련해 보일 정도로 의리와 순정을 지켜내는 홍도를 통해 진정한 사랑의 의미가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한다. 지난해 연극 를 통해 2014 동아연극상 여자 연기상을 받은 배우 양영미를 비롯해 배우 예지원 등 초연에 참여했던 배우들이 올해에도 합류해 극의 완성도를 더했다. 일정 8월 5일부터 23일까지 장소 예술의전당 CJ토월 극장 연출 고선웅 출연 양영미, 예지원, 김철리, 최주연 등 INTERVIEW:: 연극 의 주인공 홍도役 양영미 배우 비련의 여주인공 홍도를 연기하면서 가장 고민했던 점은 무엇인가요? (지난해) 초연 때는 대사와 동선을 외우는 데 온통 정신이 팔려 있었어요. 제가 늦게 투입되는 바람에 시간에 쫓겼거든요. 이번엔 더욱 신경 써서 잘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하지만 그 생각과 부담이 오히려 독이 된다는 걸 깨달았죠. 그래서 다시 비웠어요. 다른 배우들을 믿고 더 사랑하기로 마음먹었죠. 홍도를 연기하면서 무엇보다 가장 깊이 고민한 것은 사랑이에요. 오빠를 사랑하고 광호와 가족을 사랑했던, 그리고 그 사랑에 당당했고 모든 걸 던졌던 홍도처럼 저 역시 사랑에 대해 고민하고 있어요. ‘홍도’는 어떤 인물인가요? 자신과 비슷한 점이 있나요? 앞서 말했지만 극 중 홍도는 사랑에 당당한 인물이에요. 물론 ‘화류비련극’이라는 타이틀처럼 슬프고 가련한 모습으로 비치지만 사실은 오빠를 위해 기생이 되고 사랑을 지키기 위해 갖은 수모를 당당히 참아내죠. 그런 모습을 보면 저와는 굉장히 달라요. 저는 아직 철부지에 욕심쟁이예요. 요즘은 네살짜리 아들과도 매일 말다툼을 하는 걸요. 연극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많은 관객이 마지막에 붉은 꽃잎이 흩날리는 장면을 기억하고 좋아하세요. 하지만 저는 짧지만, 어찌 보면 짧아서 더욱 애틋하게 느껴지는 극 초반의 한 장면을 가장 좋아해요. 홍도가 오빠 철수와 애인 광호가 친구인 사실을 알게 되고 사랑하는 두 남자의 팔짱을 끼고 나가는 장면이죠. 100분짜리 공연 중 그 장면은 겨우 20~30초 정도예요. 1분도 채 되지 않지만, 그 장면은 홍도의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으로 남게 되죠. 홍도의 행복이 그렇게나 짧아요. 그래서일까요? 저는 그 장면이 가장 안타깝고 기억에 남아요. 관객들이 이 연극에서 얻어갈 수 있는 메시지는 무엇일까요? 연극 는 거창한 메시지를 얻어가는 공연이 아니에요. 그저 연극을 보며 함께 느끼고 공감하는 공연이지요. 요즘 말로 ‘시월드(시댁을 이르는 신조어)’라고 하죠? 시어머니 입장에서는 홍도 같지 않은 며느리를 흉보기도 하고, 며느리는 시어머니나 시누이 흉을 보기도 하면서 함께 울고 웃고 공감할 수 있는 공연이에요. 그게 화류비련극 홍도가 바라는 대중과의 소통이 아닐까 생각해요. 연극 의 관람 포인트에 대해 조언 부탁드립니다. 극중에 홍도가 무대 바깥을 계속 도는 장면이 있어요. 지인(할머니)께서 공연을 보러 오셨는데 “왜 저렇게 계속 뺑뺑 도냐?”고 질문하시고는 본인 무릎을 탁 치시며 “아이고, 그래, 시집살이가 저렇다”고 하셨대요. 홍도는 텅 빈 하얀 무대예요. 모던한 무대이지만 이야기의 흐름과 함께 어우러지는 조명과 음악뿐만 아니라, 연출 기법을 적극 발휘해 배우들의 대사나 동선 곳곳에 상징적인 요소들을 숨겨놓았죠. 공연을 보시면서 숨겨진 것들을 찾아내고 그것에 상상력을 더한다면 더 풍성하고 재미있게 관람하실 수 있을 거예요.
- 2015-08-19 19:26
-
- [착한 환자 좋은 의사되기]아내의 헌신과 의료진의 노력이 빚어낸 사랑
- 의사와 환자, 생명을 걸고 맡기는 관계, 둘 사이에 맺어지는 깊은 신뢰감을 라뽀(rapport)라고 말한다.당신의 의사는 당신에게 어떤 의미인가. 아내 신정아(申貞娥·44) 씨의 간을 이식받아 새 삶을 얻은 이경훈(李敬薰·48) 씨와 그를 살린 분당서울대병원 한호성(韓虎聲·56), 최영록(崔榮綠·40) 교수가 그들만의 따뜻한 이야기를 풀어냈다. 글 박근빈 기자 ray@etoday.co.kr 사진 이태인 기자 teinny@etoday.co.kr “감사합니다. 저는 너무나도 행복한 사람입니다. 이렇게 착하고 아름다운 아내를 만나서, 그리고 여기 좋은 교수님들과 함께해서 전 복 받았죠. 제가 새 삶을 얻은 것은 모두의 사랑 덕분입니다.” 이경훈씨에게서는 남다른 긍정적 에너지가 느껴졌다. 이씨를 바라보는 아내의 눈빛은 따뜻했고, 부부를 바라보는 교수들은 흐뭇한 미소로 화답했다. 아내의 간을 이식받은 남편, 이 부부의 새로운 삶에 동행하는 의료진은 한가족과 다름없어 보였다. 어느 날 찾아온 통증, 그리고… 이경훈씨는 2011년 11월 신정아씨와 화촉을 올렸다. 마흔 넘어 결혼했지만, 그렇기에 남들보다 즐겁고 소중한 신혼생활을 보내고 있었다. 평범한 직장인이었던 이씨는 아내에게 무슨 일이든 다 해주고 싶은 남편이었다. 결혼 후에는 더 열심히 일했다. 그런데 과로가 쌓이다보니 몸에 이상이 생기기 시작한다. 결혼 2년이 지난 시점부터 위가 쓰린 날이 많아졌다. 동네 병원에서 위궤양을 판정받고 입원과 퇴원을 반복했다. “선선하게 가을바람이 불던 일요일로 기억됩니다. 말로 못 할 정도로 통증이 심했어요. 결국 119를 불렀고 응급실에 실려갔습니다. 위궤양은 약 처방을 받으며 조금씩 호전되는 양상을 보였지만, 평소 앓던 B형 간염 증세가 악화되면서 간성혼수(肝性昏睡)가 생겼더라고요. 그때부터 응급실에 가야 하는 날이 많아졌어요.” 병원을 오가는 동안 그는 점점 지쳐갔다. 지난해 7월에는 응급실에 두 번이나 실려 가야 했다. 그 이후, 다니는 병원을 포천에 있는 종합병원에서 의정부에 있는 대학병원으로 옮겼다. 정밀검사결과는 간암이었다. 다행히 색전술은 받았으나 간기능 저하로 인해 간이식만이 유일한 방법이라는 말을 들었다. 하지만 당시 그 대학병원에서는 간이식 수술을 할 만한 의료진이 없었다. “처음에는 위궤양 판정을 받았으니까.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는데, 간암이라고 하니까 마음이 무너지더라고요. 간이식을 받아야 한다니 두렵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아내를 위해서 간이식을 받아 살아야겠다고 다짐했어요. 그때만 해도 아내의 간을 받을지는 몰랐었죠.” 이씨는 주변사람들에게 수소문해 간이식 명의로 알려진 한호성 교수 이야기를 들었다. 직접 한 교수의 말을 듣고 싶었다. 그래서 최종 목적지를 분당서울대병원으로 생각하고 2014년 가을 한 교수를 처음 만난다. 지난 3월 드디어 간이식 수술을 받았다. 아내의 사랑과 의료진의 헌신에 힘입어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현재 이씨는 빠른 속도로 건강을 회복하고 있다. 통상 간이식 환자들은 면역억제제를 장기복용해야 하기 때문에 부작용 등 어려운 부분이 존재하기도 하지만 열심히 극복하고 있다. 의료진의 말을 잠시 빌리면, 수술 후 3개월이 지난 시점이지만 관리가 되고 있어 약도 줄이고 있고 이상 징후를 보이는 검사결과도 없다. 아마도 아내와 의료진에게 받은 사랑 덕택이 아닐까? 다만, 병원에 입원하고 수술하는 과정동안 직장을 잃게 돼 경제적인 부분이 어려운 상태다. 그런데도 그는 긍정적인 마음으로 문제를 뛰어넘으리라 다짐한다. 그에게 지금은 건강을 회복하는 기간이면서도, 가장으로서 다시 뛸 준비를 하고 있는 중요한 시기다. 엄마에게 신장, 남편에게 간을 준 여자 신정아씨는 가족을 위해 두 번 장기 기증을 했다. 어머니에게는 신장을, 남편에게는 간을 떼어준 특별한 사람이다. 신씨의 어머니는 10년 동안 고혈압과 갑상선 질환을 앓다가 유행성출혈열의 합병증으로 신장 기능부전이 생겨 신장이식 수술이 필요하게 됐다. 신씨는 어머니를 위해 신장을 기증키로 했다. 이식 수술 후 어머니와 신씨 모두 건강하게 지냈다. 이씨와 결혼도 하고 행복이 무르익는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렇게 어머니께 신장을 떼어준 지 8년이 지났을 때, 남편이 간이식을 받아야 살 수 있다는 통보를 받았다. “제가 남들과 다른 건지, 이상한 건지 모르겠는데요. 간을 떼어주는 일, 그걸로 고민하지는 않았어요. 다만 신장이식을 했기 때문에 간이식도 가능할지 궁금했어요. 결국 적합판정을 받게 됐고, 남편을 위해 간을 떼어주는 일은 해야 할 일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니까요.” 신씨는 남편도, 의료진도 만류했지만 간을 떼어주고 싶다고 확고하게 말했다. 가능성이 있다면, 좋은 쪽으로 생각하는 게 그녀의 특기였다.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고, 다시 깨 볶는 소리가 들리는 가정으로 당당히 복귀했다. 현재 신씨는 퇴원 후 건강관리를 받으며 음식 조절과 가벼운 운동을 통해 건강을 회복하고 있다. 두 번이나 장기기증을 했지만, 남편의 사랑에 기운을 내고 있다. 그녀에게 장기기증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두 번의 장기 이식 수술을 경험하며 확고한 신념이 자리 잡게 되었어요. 장기이식은 건강한 신체를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든 할 수 있는 일이니 생명을 살리는 일에 많은 사람이 용기를 가졌으면 한다는 겁니다.” 참 따뜻하고 믿음직한 의료진 부부는 한목소리로 말했다. “참 따뜻한 선생님들이에요. 친절하다는 부분이요. 겉으로만 그러는지 진짜로 생각을 해주는 것인지, 금방 알 수 있잖아요. 이 선생님들은 ‘환자를 진심으로 살리고 싶다’는 마음을 몸소 보여주고 있죠. 그래서 참 감사합니다. 우린 많은 병원을 다녀봤기 때문에 잘 알아요.(웃음)” 특히 이씨는 수술 전후 상황이 아주 편했다고 회상한다. “자상하게 대해주시고 잘 될 거라고, 아내의 건강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말씀하시니까. 긴장되고 떨리기도 할 텐데 그런 게 전혀 없었어요. 수술 후에도 그냥 숙면한 것처럼 일어났죠. 중환자실에 있어도 되는 건지 미안할 정도였다니까요. 수술도 수술이지만 심적으로 편안하게 해주시니까. 두려움도 사라졌죠.” 전문의 3명의 긴박한 협동작전 2015년 3월, 부부의 간이식 수술은 분당서울대병원 암센터 간이식팀 한호성 교수(암·뇌신경진료부원장)와 조재영, 최영록 교수가 맡았다. 이들 3명은 팀을 이뤄 수술을 진행했다. 보다 신속하고 정교하게 수술을 하기 위해서였다. 기증자 수술팀, 수혜자 수술팀으로 나눠 각각 진행하고 다시 협력하는 방식이다. 10시간이나 걸린 수술은 성공적으로 마무리됐다. 최영록 교수에게 당시 가장 고민했던 부분과 남은 과제가 뭔지 물어봤다. “이식 수술에서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하는 것은 기증자의 안전입니다. 이미 신씨는 어머니께 신장이식을 한 상태이기 때문에 세심하게 신경 써야 할 부분이 많았죠. 부부는 우리들을 믿어주었습니다. 그래서 어렵지만 수월하게 수술을 할 수 있었죠. 다행히 부부 모두 빠르게 회복하고 있으니 감사한 일입니다. 사실 흔치 않은 상황인 만큼 특별한 수술이었어요. 앞으로도 부부가 더욱 건강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치료에 최선을 다하는 게 남은 과제입니다.” 의사는 항상 환자 중심으로 산다 또 다른 이야기지만, 메르스 공포가 한창이던 6월 20일 분당서울대병원에서는 잠정 의심환자에 대한 간이식 수술이 진행됐다. 사실 의료계에서 다들 쉬쉬했던 환자였다. 그런데 위험을 무릅쓰고 수술을 집도한 한호성 교수는 이른바 ‘노력하는 명의’로 통하고 있다. 부부의 이야기에서도 그렇듯 한 교수의 삶은 환자 중심으로 흘러간다. 그가 생각하는 의사로서의 신념을 듣고 싶었다. “학생들에게 항상 책보다 환자를 먼저 봐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제가 의사로서 살고 있는 중요한 가치이기도 합니다. ‘어느 책에 제시된 것처럼 이 정도면 포기하는 게 옳다’라는 판단 대신 어떤 상황이 오더라도 환자의 안녕을 위해 지속적인 노력을 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제가 잘났기 때문이 아닙니다. 대한민국의 많은 의사들은 이렇게 살아가고 헌신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한 교수에게 좋은 환자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어봤다. “본인의 의사를 믿어주세요. 그리고 잘 따라와 주시길 바랍니다. 외과의로서 말씀드리자면, 작은 수술이나 큰 수술이나 합병증을 조심하셔야 되는데요. 합병증으로 심각한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는 만큼 수술 후 관리가 중요합니다. 의사와의 관계가 깊을수록 그 관리가 더 수월해집니다.”
- 2015-08-07 08:17
-
- [혼자산다는 것 PART3] 혼자의 의미
- 침대 모서리에 무릎이라도 찧어 보면 알 일이다. 쓸쓸함이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지. 아침에 눈 비비며 일어나, 아무렇게나 던져둔 트레이닝복을 집어 들었다가, 바짓가랑이에 발을 잘못 끼운 탓에, 외발로 몇 걸음 콩콩거리고는, 볼썽사납게 풀썩 쓰러진다. 얼굴을 찡그리고 두 손으로 무릎이 닳도록 비비다 보면 어느새 진면목을 내밀고 있다. 외로움이라는 불청객. 곁에서 누군가 위로만 해줬어도 이렇게 아플까. 아니, 깔깔거리며 비웃기만 했어도 이처럼 서러울까. 일상에서 고독은 으레 고통과 더불어 사무친다. 글 김유준 프리랜서 dongbackproject@gmail.com 20년 넘도록 그렇게 살고 있다. 대학 졸업 후 직장에 들어가면서 시작했으니, 네 자리 숫자에 네 자리 숫자를 빼는 나름대로 힘겨운 작업을 마쳐보면, 올해로 정확히 25년째 혼자 살고 있음을 깨닫는다. 7000일이 넘는 짧지 않은 세월이다. 그 많은 나날 동안 대부분 홀로 잤고, 홀로 깨어났다. 주위 사람들은 부러워한다. 대학 졸업반인 딸아이가 연인에게 버림받고 일주일째 방에서 두문불출하고 있다고 말하는 친구도, 고 3인 아들이 그 유명한 ‘PC방 폐인’이라면서 땅이 꺼져라 한숨 쉬는 이웃도, 잘난 부인이 인사동 갤러리에서 전시회를 갖는다면서 초대장을 건네는 후배도…. 혼자라서 편하겠다고, 자유로워서 좋겠다고. 그때마다 씁쓸히 웃었다. 시퍼렇게 멍든 양 무릎을 보고도 그런 소릴 할까. 인생의 좌우명이 ‘무엇이든 물어보세요’이지만, 왜 혼자 사느냐는 질문만은 질색이다. 대답할 말이 없다. 어차피 그러고 싶어 그러는 것도 아닐진대 까닭이 어디 있고 곡절이 어디 있겠는가. 살다 보니 그리 됐다. 딴에는 최선을 다한 답변에도 집요한 누군가는 재차 묻는다. 달리 살 수 있었다면 그랬겠느냐고. 역사에 가정은 부질없다 했지, 아마. 개인사 또한 다르지 않다. “살면서 점을 세 번 봤거든요. 첫 번째 점쟁이는 ‘마흔 이전에 결혼하면 이혼한다’고 하더라고요. 두 번째는 ‘횃불처럼 홀로 타오르는 사주’라고 하고, 마지막 한 명은 ‘일생이 낙목공산’이라던가. 나뭇잎 다 떨어져 텅 빈 민둥산 팔자라는 거 아니겠습니까. 자, 뭐 더 있으세요?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팔자소관으로 돌려버리는 편이 차라리 낫다. 그쯤 되면 더 이상 내 삶의 방식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떠들지 않는다. 안타까움의 한마디로 대화는 종결된다. “여자라면 그나마 좀 나았을 텐데….” 곰곰 생각해보니 그런 듯도 하다. 실제로 여자들은 혀를 끌끌 찬다. 세탁기가 고장 나 손빨래를 하다가 스며드는 창문 햇살에 저도 모르게 울고 말았다는, 나의 구질구질한 경험담을 듣고 나면 말이다. 이야기 상대가 처지 비슷한 독신 여성이어도 안쓰러워하기는 마찬가지다. 자기 신세도 자랑스럽지는 않지만 적어도 그 정도는 아니라면서 숫제 내 어깨를 툭툭 두드린다. 가만 듣다 보면 위로하려는 것인지, 자신의 덜 불행함에 안도하는 것인지 구분도 가지 않는다. 인류학이나 동물학 전공자는 아니지만, 상대적으로 수컷이 혼자 살기에 적합하지 않은 것은 사실이지 않을까 싶다. 무엇보다, 수컷이 하고 싶어 하는 것 가운데에는 홀로서는 도저히 해낼 수 없는 것이 끼어 있다. 옛날이야 돈으로 어찌어찌 무마할 수 있었다고 쳐도, 요즘은 그조차 쉽지 않다. 그러고 싶지도 않고. 그러고 보면 세상에서 가장 외롭고 구저분하게 사는지 모른다. 자괴감에 잔뜩 빠져들었을 즈음, 고등학교 선배와 술을 한잔하다가 생애 가장 큰 격려를 들었다. 그날은 무릎 대신 입술을 다친 터였다. 칫솔질 도중 잠시 딴 생각에 빠졌다가 그만 오른손에 힘을 너무 줘버렸다. 살짝 부운 입술을 혀로 매만지며 쓰라리기보다 처량하다고 툴툴거렸더니 선배는 엄살떨지 말라면서 나무랐다. 너만 그런 줄 아느냐고. 여섯 가족이 모여 살아도 아픈 건 아프다고. 어여쁜 마누라가 연고에 밴드까지 발라줘도, 입술을 동그랗게 말고서 후후 불어줘도 쓰라리긴 매한가지라고. 그러면 저절로 또 서럽다고…. 하나부터 열까지 행복하기만 한 줄 알았던 선배의 신세타령이 하도 뜻밖이어서 아예 벌떡 일어나며 물었다. “진짜로?” 남의 불행은 진정 나의 행복이었다. 얻다 대고 반말이냐는 핀잔도 듣기 싫지 않을 만큼 위로가 됐다. 선배는 어느 책에서 읽었다며 이렇게 말했다. “삶은 완벽히 홀로 떠나는 여행이다.” 그리 참신하지는 않았지만 세상 어떤 비유보다 가슴에 와 닿았다. 흡사 머리에 띠 두른 응원단이 곁에서 큰북을 둥둥 울리며 지옥에서 천당까지 반동이라도 해주는 듯했다. ‘어느 책’이 무엇인지 인터넷과 서점을 뒤지기까지 했다. 읽고 싶어서였다. 나중에 사라 밴 브레스낙의 임을 알아내고는 문득 궁금해졌다. 어여쁜 부인에 토끼 같은 두 딸로 모자라 맏아들 부부까지 품에 끼고 살면서 제목이 그 모양(?)인 책을 왜 읽었을까? 전화라도 걸어 묻고 싶었지만 그냥 꾹 참았다. 나름대로 사정이 있겠지, 싶어서. 그럼에도 못내 선배가 부러운 것은, 그에게 있는 것이 내게는 없기 때문이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뻔하다. 사람이라는 존재 자체. 쉽게 말해, 나는 이야기 상대가 그립다. 텔레비전 뉴스나 오락프로그램을 보다 보면, 순간순간 떠오르는 저널리스트 특유의 유머러스하면서 예리하기까지 한 비평을 누군가에게 들려주고 싶어 미칠 지경이다. 상대가 “그게 지금 웃으라고 하는 소리냐?” 하고 비웃어도 상관없다. 어쨌든 그러고 싶다. 때마다 휴대전화 버튼을 누르거나 새삼스레 주위를 둘러보는 것은 그 때문이다. 물론 휴대전화는 한결같은 바탕화면이요, 곁에는 아무도 없다. 오직 나 하나라 크지도 않은 방이 그처럼 적막하고 휑뎅그렁할 수 없다. 마흔 넘어 혼자라는 어느 방송진행자는 방송프로그램에서 “오래간만에 사람들과 어울리니 정말 즐겁다”고 말하곤 했다. 나 또한 마찬가지다. 어쩌다 사람들 속에 뒤섞였다면 자리를 파하기가 그리도 싫다. “어디 가?”, “언제 와?”, “밥은?” 이 세 가지가 이른바 ‘나도족’ 또는 ‘젖은낙엽족’이 입에 달고 사는 3대 질문이라고 한다. ‘나도족’이나 ‘젖은낙엽족’은 젖은 낙엽이 빗자루에 엉겨 붙듯 “나도” “나도” 하면서 부인 뒤만 졸졸 따라다니는 남편들을 싸잡아 일컫는 신조어란다. 엉겨 붙을 부인은 없지만, 사람들과 만나면 엇비슷한 질문 세 가지를 자주 하기는 한다. “벌써 가려고?”, “한 잔만 더 하고 가지?”, “에이, 내가 낸다니까 왜 그래?” 극구 가려는 사람을 주저앉히려 안달이다. 옛날에는 그런 스스로가 창피했다. 요즘은 그렇지 않다. 되레 어엿하다. 같이 있자고 조른다고 해서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음을 깨달았다. 하나를 얻으면 다른 하나를 잃어야 한다는 평범한 진리를 어느 친구가 일깨워준 덕분이다. “말상대가 그립다고? 곁에 붙어 있어도 괴롭기는 똑같다. 너는 없어서 괴롭고 나는 있어서 괴롭고, 그 차이다.” 원효대사가 동굴에서 해골 물을 마셨을 때 정도는 아니어도, 그 말에 느낀 바가 자못 크다. 블레즈 파스칼이 에서 “끝없는 공간의 영원한 침묵은 공포를 가져다준다”고 했다가 다른 페이지에서는 “사람은 외톨이로 죽으므로 외톨이처럼 살아야 한다”고 적어놓은 것을 읽고 ‘이 사람, 거의 이랬다저랬다 장난꾸러기 수준이 아닌가?’ 하고 고개를 갸웃한 적이 있는데, 친구의 말을 듣고서야 그분이 왜 그랬는지 깨달았다. 고독이 비록 두려울망정 인간으로서 어쩌지 못할 운명인 동시에 평생 따라야 할 행동강령이라는 뜻 아니겠는가. 그러니 친구는 ‘있어도 괴롭다’고 투덜거리고, 선배는 ‘삶이란 홀로 떠나는 여행’이라고 주장하는 것 아니겠는가. 우주의 섭리가 뫼비우스의 띠처럼 배배 꼬여 있다면, 이런들 어떻고 저런들 어떤가. 남들 뒤를 졸졸 따라다니면 어떻고, 그 작업에 실패해 홀로 덩그러니 남으면 또 어떤가. 어딘가의 결핍은 다른 어딘가의 풍요로움을 잉태하는 법이니, 내 외로움이 남들의 단란함만 못하다고 낙망할 필요는 없다.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사는 게 인생이다. 그들도 힘들다지 않는가. 어차피 똑같다면 두려워도 괴로워도 말자. 나는 혼자 산다. 25년째 그러고 있다. 그 사실이 자랑스럽지 않지만 부끄럽지도 않다. 그렇게 살아서 때때로 외롭지만 마냥 불행하지만도 않다. 어떨 때는 더없이 좋다. 영화가 보고 싶으면 툭 털고 일어나 보러 가면 된다. 느닷없이 꽃구경이 당기더라도 문제없다. 훌쩍 떠나면 그뿐이다. 친구들이 모처럼 술 고플 때 가장 먼저 찾는 사람이 누구겠는가. 바로 나다. 자랑삼아 말하면 친구들 사이에서 요즘 내 별명이 ‘알비데’다. 부르기만 하면 언제든 “곧 갈게” 한다고 해서 그리 부른다.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는 절대 자유. 혼자 살지 않는 사람이 들었다면 혀를 내두르며 부러워할 삶을 나는 지금 한껏 누리며 살고 있다. 그런 생각도 한다. 아주 옛날 영화 ‘벤허’에서 노예 신세가 된 주인공이 그러는 것처럼, 삶이란 상심의 바다를 노 저어 가는 거친 뱃길이 아닐까. 천둥 치고 벼락 치는 와중에 주위를 둘러보면 노 젓는 이들이 수두룩 눈에 띈다. 대부분 나와 달리 한 배에 여럿이 타고 있다. 적게는 둘, 많게는 여섯. 그들이 노를 서로 나눠 저으며 파도를 헤치는 모습을 보면 흐뭇하기도 하고 부럽기도 하다. 나룻배에 홀로 탄 신세라 그만큼 쓸쓸하기도 하다. 그럼에도 만족하려 한다. 그렇게 해야 하는 이유는 명백하다. 남들이 사람을 태우려 내던져야 했던 기쁨과 행복이 내 배에는 제법 실려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홀로 노 젓는 고달픔이나 외로움 따위는 감내하려 한다. 공간의 침묵이 괴롭더라도, 크지도 않은 방이 무섭도록 휑해도 견디려 한다. 호강에 겨워서 어딘가에 뭐 싸는 놈이라는 비난을 듣지 않으려면, 나는 마땅히 그래야 한다.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는다. 하나를 잃었다면 다시 하나를 얻는다. 그것은 삶의 철옹성 같은 진리다. 누가 그랬던가. 목표의 7할만 이루는 것이 가장 좋다고. 다만 외톨박이일 뿐, 그것도 모를 만큼 바보는 아니다.
- 2015-07-15 11:09
-
- 7월에 혼자 떠나는 여행- 몸을 낮춘 나를 마주하는 '템플스테이'
- 마음에도 무게가 있을까. 대개 이상, 사회공헌, 자아실현, 사랑, 성공 등 몇몇 단어에 행복이 있다고 믿는다. 뒤도 안 보고 달린다. 돌아보면 이리 저리 치였고, 주름은 하나둘 늘었다. 지난 세월의 무게만큼 늘어진 몸, 마음에도 무게가 있을까. 측량해 볼 수도 없지만 마음속엔 늘 돌덩이 하나 앉아 있다, 중년이다. 잠깐, 돌덩이 내려놓을 휴식이 필요하다. 오전과 오후 일상을 이어주는 낮잠처럼 쉼표 하나 찍는 것으로 ‘충전’이 가능하다. 잠 깨면 다시 일상이지만 그와는 다른 힘을 주는 낮잠이 있다. ‘템플스테이’다. 전국에는 훌쩍 찾아가도 낮잠을 내주는 사찰이 많다. 사찰에서의 하룻밤은 평생 잊지 못할 기억을 선물한다. 나를 되돌아보는 성찰이다. 천혜의 자연은 덤으로 가져갈 수 있다. 그래서 떠난다. 글 최호승 법보신문 기자 0910time@naver.com 사진 한국불교문화산업단 제공 거북도 쉬어 가는 성주 심원사 거북도 쉬어 간다는 경북 성주 심원사는 지친 몸과 마음을 뉘일 수 있는 곳이다. 소백산맥 자락 가야산에 둥지를 틀고 있는 산사다. 일찍이 에 ‘가야산의 지세나 풍경이 천하에 뛰어나며 그 덕은 해동에 견줄 곳이 없으니 참으로 수도하기 좋은 곳’이라고 했으니, 심원사는 일상 속 쉼표를 찍기에 제격이다. 심원사는 등산객으로 비좁은 가야산 안에 있지만 관광객을 만나기 어렵다. 그만큼 다른 세상이라 조용한 시간을 보내기에는 여기만 한 곳이 없다. 가야산 등산로에서 벗어나 있어 거북이처럼 쉬어 갈 수 있다. 특히 심원사는 ‘푹 쉬다 가이소’라는 휴식 템플스테이가 주말과 평일에 운영된다. 기본적인 사찰예절과 108배 등을 빼면 간섭을 받지 않는다. 사찰에 도착하면 단아한 수련복을 제공받고 기본적인 일과 설명이 끝나면 자유다. 모처럼 혼자만의 시간을 충분히 가질 수 있다. 참가비가 아쉽다면 차담을 권한다. 스님과 차담이 자유로워 말 못할 고민들을 나눌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유필상 상상출판 대표는 한국불교문화사업단 도움으로 이곳을 찾아 스님을 만난 뒤 작은 깨달음을 얻었다. 그는 촌음을 다투며 워커홀릭으로 살았던 과거와 교통사고로 사랑하는 아내와 사별했던 아픔을 잠시 내려놓고 비로소 자신 안의 ‘나’와 마주하며 이야기할 수 있는 용기를 얻었다. 그는 “잘 살았는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스님이 답했다. “‘걸리버 여행기’에는 반짝이는 돌을 갖기 위해 싸우고 숨기는 이야기가 나오네. 자네가 가지려는 그 무엇이 반짝이는 돌과 무슨 차이가 있겠나. 잃어버리면 낙심하고 세상 다 끝난 것 같고 죄진 것도 아닌데 피하고 숨어 지내는 것 아니겠나. 돈이든, 자리든, 사랑하는 사람이든….” 밤엔 가야산 산줄기 따라 쏟아지는 별빛에 몸과 마음을 샤워하는 환상적인 시간이 참가자를 기다린다. www.simwonsa.kr 054)931-6887 내게 걸어 들어가는 길, 반야사 충북 영동 반야사도 혼자 가야 정취를 제대로 느낀다. 자신을 위한 여행의 로망을 풀어놓기에 영동 첩첩산중에 자리한 반야사가 안성맞춤이다. 반야사는 큰 물줄기를 끼고 있다. 소백산맥 줄기에 솟은 백화산에서 흘러내린 물줄기가 산허리를 감아 돌면서 만든 연꽃 모양 중심에 반야사가 있다. 반야사의 길은 특별하다. 숲에 난 오솔길을 한참 걸려야 산문에 다다르는데, 이 길의 고요함에 익숙해지면 자연스럽게 자신을 들여다보게 된다. 넓지 않은 도량에 문수전과 관음전이 적당히 떨어져 있어 오가는 길이 곧 산책로이자 사색의 길이다. 문수전을 돌아 푸른 대나무 숲을 지나 관음전으로 향하는 짧은 산책로는 맨발로 걸으며 흙의 기운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통로가 된다. 또 산마루에 있는 문수전까지 이르는 길은 사계절 내내 아름답기로 소문이 났다. 정묵당 뒤로 개천 따라 5분 정도 걸으면 계단이 나오는데, 물길 따라 걷는 이 길은 압권이다. 그리고 관음전 연못가는 자신을 반추하기에 최적의 장소다. 상시 운영 템플스테이 ‘난 나를 사랑해’와 특별 프로그램 ‘또 하나의 시작’에서 누구나 길을 만날 수 있다. 별빛 아래 산책은 반야사 템플스테이의 대표적 프로그램이다. 한낮의 산행과 다른 맛과 멋을 선사한다. 반야호수 주변에는 가로등 몇 개만 가물거린다. 달과 별을 위한 배려다. 한적한 이 호숫가를 거닐면서 스스로에게 위로를 건네며 자신과 대화를 나누면 무거웠던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반야호숫가, 관음전 오솔길, 편백나무숲, 수령 500년 된 배롱나무, 문수전 등 반야사 도량이 건네는 쉼표이기도 하다. 심원사에 이어 반야사도 찾았던 유필상 상상출판 대표는 “일상에서 지나치기 쉬웠던 자연의 소리에 기분 좋은 소름이 돋는 순간, 이 시간이 영원했으면 했다”고 회고했다. www.banyasa.com, 043)742-7722 지리산 천왕할미 품 속 산청 대원사 아픈 배를 쓰다듬어 주시던 할머니 약손처럼 위로가 필요할 땐 지리산 산청 대원사로 발길을 돌려보자. 대원사는 주차장에서 30분은 족히 걸어야 한다. 천왕봉에 이르는 완만한 등산로를 따라 하늘 아래 첫 동네라는 새재마을 아래에 일주문이 있다. 대원교에 올라서면 남한 제일이라는 시원한 계곡 경치가 맞이한다. 천왕봉에서부터 중봉, 하봉을 거쳐 쑥밭재와 새재, 왕등재 등을 지나온 실개울들이다. 수련복으로 갈아입고 나면 사찰예절과 합장, 절에 대한 의미를 배운다. 이어 지리산에 얽힌 이야기를 듣고 나면 저녁 공양시간이다. 마고할미가 산다는 지리산에 자리한 대원사는 비구니 스님이 거주하는 사찰이다. 여성 수행자들이 있다는 뜻이다. 해서 공양에는 어머니 손맛이 그득하다. 지리산에서 나는 갖가지 산나물이 지천이고, 비빔밥은 나물마다 독특한 향이 날것 그대로 몸과 마음을 적신다. 골짜기 주변으로 맹수들이 많이 살았다는 데서 유래한 맹세이골 숲 탐방을 나서면 지리산 생태를 관찰할 수 있다. 무심코 지나친 나무들이 새로운 이름과 이야기로 다가온다. 대원사에는 가야산 호랑이 성철 스님이 한 번도 바닥에 눕지 않고 42일 동안 수행했다는 전설이 남아 있는 좌선대가 있다. 흉내 낼 요량으로 앉으면 지리산 치마폭에 안긴 대원사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반야사에서 하룻밤을 묵은 프리랜서 카피라이터 김혜윰씨는 “어떤 모습이어도 있는 그대로 받아 줄 것만 같은 절집으로의 여행은 고향 할머니를 찾는 마음처럼 부담이 없다”며 “힘들다고 한바탕 한탄하고 어리광 부리면 ‘그래,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느냐’며 안아주고 고봉밥을 내주던 할머니 같다”고 했다. 대원사는 ‘몸생생’, ‘마음생생’ 2가지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계곡 포행(布行: 천천히 걸으며 선을 행함)이나 약초찜지라, 맹세이골 생태체험 등 휴식 템플스테이 ‘몸생생’은 매일 진행된다. 명상으로 자신을 돌아보고 싶다면 주말에 ‘마음생생’을 찾길 권한다. www.daewonsa.net, 055)974-1112 사람 향기 풍기는 땅끝마을 해남 미황사 땅끝마을, 그곳에도 절이 있다. 달마산 아래 해남 미황사다. 우거진 나무들 사이로 주차장에서 미황사로 오르는 돌계단이 무척 아름다운 곳이기도 하다. 우리나라 사찰 가운데 섬에 있는 곳을 제외하곤 가장 남쪽에 위치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천년 세월이 고스란히 담긴 대웅보전에는 거북이나 게 등 바다생물 문양이 새겨져 있다. 미황사는 서쪽을 바라보고 있다. 때문에 바다로 떨어지는 일몰이 장관이다. 석양이 물드는 시간, 대웅보전 앞마당에서 내려다보는 일몰은 보는 이들의 감탄을 자아낸다. 달마산에 해 지고 달이 찾아오면, 처마 끝으로 쏟아지는 별빛을 바라보는 밤풍경에 취하는 것이다. 김혜윰씨는 “달마산 정상의 백색 화강암 바위 봉우리가 낙조의 붉은 빛을 받아 더욱 금빛으로 반짝인다”며 “대웅보전 주춧돌에 조각돼 있는 게와 거북이 마치 연꽃 위로 기어 올라가고 있는 듯 보인다”고 상상의 나래를 폈다. 미황사 경내를 돌아보는 시간을 추천한다. 미황사가 품은 단 하나의 암자인 부도암은 왕복 20분 거리다. 여러 부도탑에는 게와 물고기, 거북 조각이 새겨져 있고, 조각의 소박함에서는 따스함이 묻어난다. 측백나무 숲길이 주는 싱그러움이 그립다면 돌 더미가 흘러내리는 너덜지대를 지나 ‘다르마 로드’에 발걸음을 옮기면 된다. 미황사는 ‘참 나’를 찾는 템플스테이가 인기다. ‘나를 챙기다’는 간단한 수행 프로그램이 있다. 특별 프로그램 중 ‘길 없는 길’을 택한다면 참선부터 다도, 묵언, 오후불식, 수행문답 등을 체험하면서 일상에 길들여진 ‘거짓 나’에서 ‘참 나’를 찾아보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 www.mihwangsa.com, 061)533-3521
- 2015-07-07 14:24
-
- [보람과 여유] 전원일기 17년
- ※봄이 되면 만개한 꽃구경을 하고, 저녁이 되면 남한강 강물 위에 떠 있는 달빛을 보며 사색에 잠긴다. 가을이 되면 남한강변에 시장을 열어 사람들과 소통하고, 반상회를 열어 마을의 대소사를 결정한다. 경기도 양평의 미래마을이다. 자신이 정한 이름 ‘감사하우스’의 안남섭(61)씨가 사는 법이다. 외로움에 사무칠 줄 알았던 그의 전원생활. 이제는 더불어 사는 전원생활이라 인생이 즐겁다. 10년의 독일 주재원 생활을 청산하고, 17년 전에 시작된 그의 행복한 전원생활에 대해 들어본다. 서울에서 남한강을 따라 액셀을 밟는다. 회색의 높은 빌딩은 사라지고 시야가 탁 트일 때 즈음 상쾌한 바람을 맞은 자동차 창문도 하얗게 변한다. 서울에서 전투태세로 무장돼 있던 몸과 마음도 이곳 경기도 양평에 이르자 이내 무장해제되는 기분이다. 양평의 두물머리를 지나 청국장의 구수한 향이 풍기는 음식점들 사이의 좁은 길을 따라 들어간다. 그 길의 초입에서 히치하이킹을 하는 아낙네를 보니 미래마을은 그 길에서 꽤나 멀리 있는 듯하다. 그러나 그 예상을 깨고 언덕 하나를 넘자 이국적인 풍경의 마을이 나타났다. 안데르센 하우스, 대박이네, 라일락집, 감사하우스 등 집집마다 붙어 있는 집 이름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햇빛에 반사해 금빛을 발산하는 남한강, 깔끔하게 정비된 조경과 전원주택이 조화를 이룬 마을. 미래 마을이다. 지금이야 유럽의 한 마을에 온 것과 같이 이국적인 정취를 뽐내는 곳이지만, 안씨가 이곳에 터를 잡았던 17년 전에는 상상도 할 수가 없었다. 그저 한 시골마을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그가 집을 짓고, 꽃을 심고 마을에 공을 들이기 시작하자 점점 전원마을의 모습을 갖춰가기 시작했다. 이제는 꽃과 사람 그리고 자연이 어우러져 한 폭의 동화 마을이 됐다. 안씨의 삶의 질과 행복도도 자연스럽게 올라갔다. ◇전원생활을 택한 이유 34세에 시작한 독일 주재원 생활. 10년간 이어진 그 생활 속에서 여권에 찍힌 국가의 도장만 해도 수십 개가 넘는다. 세계 74개국을 돌아다니며 다양한 삶의 콘텐츠를 경험한 안씨는 인생은 혼자 사는 것이 아니라 더불어 사는 것이라는 것을 일찍이 깨달았다. 그래서 한국에 돌아가면 이웃과 단절된 도시 생활이 아닌 함께하는 전원생활을 하기로 한 것이다. 다양한 삶과 문화를 경험한 덕분인지 꽃이 많은 마을의 풍경과 주택의 모습은 유난히 외국의 어떤 모습들과 닮아 있었다. “유럽이 아름다운 이유는 꽃이었다고 생각해요. 여러 사람이 공유하는 꽃이 많았기 때문이죠. 그래서 저는 마을을 네덜란드의 한 마을처럼 만들고 싶었어요. 마을 사람들과 즐거움을 공유하고 싶었거든요. 뿐만 아니에요. 뭔가 자연친화적인 집을 만들기 위해 새집을 모티브로 집을 지었어요. 자연은 손대지 않고, 경사지에 집을 지어 붕 떠 있는 집을 만들었어요. 하늘과 땅이 만나는 곳이고, 자연과 인간이 만나도록 말입니다.” 안씨가 전원생활을 택한 또 하나의 이유는 잃어버린 자신을 찾자는 것이었다. 도시 생활, 직장 생활에 젖어 자신을 돌아볼 수 없게 돼 무엇을 하고 싶은지 까맣게 잊어버렸기 때문이다. 바쁜 일상에 쫓겨 자신을 돌아볼 시간이 없으니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맞는지, 삶에서 정말 행복한 일인 것인지 몰랐던 것이다. 즉, 내 삶이 아닌 남의 삶을 살고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안씨는 나홀로 사색할 수 있는 공간과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온전히 자신의 마음에만 집중할 수 있는 곳 말이다. “직장 생활을 하다 보니 어느새 저는 사회가 요구하는 경쟁과 소유의 패러다임에 갇혀 있더라고요. 그런데 그 속에서 성취를 이뤄냈는데도 행복하지 않은 겁니다. 남이 원하는 삶을 살고 있었던 것이죠. 그래서 전원생활을 하면서 사색하고, 실천해보고, 제 마음에 집중하니 행복한 삶을 위한 길이 보이더군요.” ◇아내를 위한 카푸치노와 전원생활의 맛 매일 아침 안씨는 아내 이화경(60)씨에게 손수 만든 카푸치노를 대접(?)한다. 행복은 멀리 있지 않고 항상 주위에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일상에서 또 주위에서 그것들을 채우는 날들이 늘어나면 자동적으로 행복해진다는 것. 그래서 아내를 위한 카푸치노는 그에게 소소하지만 중요한 일상이 됐다. 누가 커피 한 잔의 여유라 했던가? 카푸치노로 하나 된 부부의 대화는 여유롭지만 그 무엇보다 진지하고, 미래지향적이다. 그들의 전원생활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있다. 바로 이웃이다. 이 부부의 전원생활에서 이웃은 그들의 행복을 결정짓는 가장 큰 요소 중 하나다. 그들이 더욱 이웃에게 투자하고, 공을 들이는 이유다. 그렇다고 이웃이 무엇을 해주는 것이 아니다. 이웃이 주는 행복은 거창하지 않고 꽤나 소박하다. 함께하는 것. 이야기하는 것. 삶을 공유하는 것. 그것이 전부다. 1년에 4번 열리는 반상회를 통해 마을의 대소사를 결정하거나, 포트락(Potluck: 각자 음식을 조금씩 가져와 나눠 먹는 것)파티를 열어 일상을 충만하게 하는 것 말이다. 이곳 미래마을에서는 품앗이도 하나의 일상이다. 산귀래 문학상 시상을 하는 수필가 박수주씨의 행사를 도와주면, 박씨는 안씨 아내가 운영하는 가게에 직접 심은 꽃을 대주기도 한다. 마을 한 곳에 모여 한 달에 두 번 차 모임을 갖는 화정다락회도 벌써 10년이나 됐다. 대한민국 다도의 원로격인 신운학 선생의 다실 화심정은 차도를 배우려는 미래마을 이웃들로 북새통이다. 가을 남한강변은 끼와 재능 발산의 장이다. 문호리 리버 마켓이 열리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피자를 만들어 팔기도 하고, 팔도의 사람들을 만나 소통하면서 웃음꽃을 만개시키는 것. 그 구수하고 사람 냄새나는 전원생활의 맛에 17년째 중독되고 있는 안씨 부부다. 안씨는 이제 이웃을 빼 놓고는 양평 생활을 논할 수 없다고 말한다. “저번에는 옆집에서 급하게 전화가 오는 거예요. 아저씨가 쓰러졌다면서 말이죠. 자식들은 멀리 있고 도움을 청할 때 가장 먼저 생각난 곳이 저희 집이라고 하더군요. 이제는 정말 이웃이 사촌인 이웃사촌이 된 것이죠.” ◇전원생활을 꿈꾸는 이에게 안씨는 전원생활을 통해 정신적인 것과 대인관계의 부분에서 자신이 투자한 것보다 더 많은 혜택을 누리고 있다고 얘기한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한순간에 이뤄진 것은 아니었다. 세상에 공짜는 없고, 좋은 것을 얻으려면 그만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것이 그의 전원생활 신조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이웃에 대한 투자는 성공적인 전원생활의 필수 조건이라고 말한다. “아마 전원생활을 꿈꾸는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외로움일 거예요. 저 또한 그랬으니까요. 하지만 이곳에는 집집마다 담이 낮다보니 사소한 것부터 나누고, 얘기하고, 상의하니까 외로움이 점점 사라지게 됐어요. 사소한 것부터 주변과 나누니, 그 행복이 고스란히 저에게 돌아오더라고요.” 전원생활을 꿈꾼다면 가장 먼저 홀로되기에 익숙해져야 한다고 조언한다. 전원생활을 꿈꾸는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외로움’이라는 근심을 피하려 하지 말고 맞서라는 뜻이다. 안씨는 자신이 전원생활을 하면서 터득한 즐거운 홀로서기 방법에 대해서 설명했다. 혼자 생각하는 시간을 가질 때 즐겁게 지내기 위한 사색을 많이 한다는 것이다. 앞서 말한 아내에게 카푸치노 타주기도 그 일환이었다. 사색의 시간을 통해 하고 싶은 것을 바로 실행하는 것. 그것이 홀로서면서 행복해지기 위한 첫걸음이라고 생각했다. “이제는 남이 무엇을 해주기 전에 제가 무엇을 해줄 것인가를 생각해야 돼요. 남을 통해 행복해지는 것 보단 홀로 생각하며 행복해지는 것이죠. 사람이라는 게 주면 바로 오는 게 있잖아요. 물질적인 것이든 안 그렇든 말이에요. 제가 하고 싶은 일 중 ‘사랑에 붕 뜬 장학회’라고 해서 주위에 해외로 가는 아이들에게 100달러씩 장학금을 줬는데요. 이것이 꽤 보람 있더라고요. 이 돈을 쓸 때 제 생각하면서 고맙게 느끼겠죠. 그 마음이면 충분해요.” ◇‘후두염’엔 ‘감기주사’ 안씨는 미래마을에 들어오기 전에 후두염을 앓고 있었다고 했다. 아! 여기서 후두염은 후두에 염증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다. 안씨가 말하는 ‘후두염’은 후회, 두려움, 염려를 줄인 것이다. 하루가 바쁘고, 돈에 쫓기다 보니 엄습하는 ‘후두염’에 자신을 제어할 수 없었다는 것. 그는 전원생활을 통한 ‘감기주사’처방이 ‘후두염’을 다스리는 특효약이라고 말했다. 감사할 줄 알고, 기뻐할 줄 알고, 주는 것에 인색하지 않고, 사랑하는 마음. 그것이 안씨가 말하는 감기주사다. “여기에서 평정심을 찾으니 여유가 생기면서 제 마음을 다스릴 방법이 보이더군요. 그것이 전원생활이 준 선물인 거죠.”
- 2015-02-06 09: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