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조각가 권진규(1922∼1973)는 ‘나의 자식들’이라 부르던 작품들만 덩그러니 남기고 52세의 젊은 나이에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그가 떠난 지 42년, ‘자식들’을 품은 곳이 강원도 춘천시 동면 월곡리에 문을 열었다.
권진규는 박수근, 이중섭과 함께 한국 근대미술의 3대 거장으로 불리던 조각가다. 1922년 함경남도 함흥에서 태어나 춘천고
애초에 엄두를 낼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일찌감치 올 여름 행선지는 ‘방콕’으로 정하고 서울에서 버틸 작정이었다. 그런데 딸애가 이미 자유여행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 여행에 필자를 끼워준다니 ‘불감청고소원(不敢請固所願)’이다. 그런데 자유여행은 돈이 많이 든다는 고정관념으로 살짝 걱정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리저리 절약할 구석을 찾아본다면 길이 없는 것은 아
건강한 가정이 모여 크고 작은 공동체를 이루고 이런 공동체가 모여 국가의 초석이 된다. 하지만 가정 해체가 심심찮게 일어나면서 아동학대, 노인 소외 등 심각한 사회문제로 이어지고 있는 게 현실이다. 허물어지는 가정 해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우리 사회의 대안으로는 어떤 것이 있을까. 전문가들은 바로 효(孝)라고 말한다. 이번 호에서는 효를 실천하는 3인이
백외섭 동년기자 bravopress@etoday.co.kr
손녀, 손자 쌍둥이와 외손자가 있다. 그중 태어난 지 10일 된 손녀에게 신종플루 증상이 나타났다. 노약자와 영유아는 별다른 대책 없이 공포에 떨고 있던 때였다. 병원마다 “치료가 어렵다”면서 손사래를 쳤다. 그러다 한 병원에서 천사 같은 의사가 지극정성으로 치료하여 이를 극복하였다. 세 손주
남편! 남의 편이라 남편이라는 말도 있다.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남편과 만나 사랑하고 그 결실로 결혼이라는 종착점에 도착, 하나의 가정을 이룬다 해도 영원히 남의 편이란 생각이 든다. 각기 다른 삶 속에서 몇 십 년을 살아온 개체들이 완벽한 하나가 된다는 것은 어쩌면 어불성설이다. 하지만 한편으로 함께 살아가면서 이런저런 다툼이 없다면 그것은 어쩌면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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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의 기복은 친구의 신뢰를 시험한다”고 로마 정치인 마르쿠스 키케로가 말했는데 필자가 바로 그 시험에 걸려 넘어졌다. 그 속죄를 하기 위해 어리석은 말로 상처를 주어 잃어버린 친구를 애타게 찾고 있다.
1980년 필자는 직장을 나가면서 대학을 다녔다. 그 친구도 같은 대학에 다니면서 가난을 벗 삼아 공부하는 동병상련
북한산, 도봉산. 관악산에는 빨강, 파랑, 노랑으로 차린 멋쟁이 등산객으로 붐빈다. 사회발전만큼 산행문화도 많이 변하였다. 수십 년 산을 찾으면서 느꼈던 산행문화의 변천사를 살펴본다.
복장이 화려해졌다.
예전에는 전문 산악인을 제외하고는 등산복을 따로 갖추지 않았다. 평소에 입던 셔츠와 바지, 운동화만 있으면 삼삼오오 산에 올랐다. 면바지, 셔츠에
아내는 시골서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는 서울서 다녔다. 사춘기이고 객지에서 외롭게 보내던 처지라 단짝처럼 친한 고등학교 친구가 있었다. 훗날 아내는 필자와 결혼하고 아내 친구는 은행원을 하다가 전직하여 건설회사 경리책임을 맡아보는 사람과 결혼했다.
아내 친구는 피아노를 잘 쳐서 필자 결혼식에 피아노 반주를 해주기도 했고 집에서 아이들 피아노 레슨도 했
필자는 고등학교 졸업 후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고등학교 졸업반 반창회 대표를 맡아왔다. 그동안 졸업 10주년, 20주년, 30주년, 35주년 행사를 치렀다. 그 행사 때마다 반 친구들에게서 회비를 걷고 행사 안내 확인 전화를 수차례씩 돌렸다.
그뿐 아니다. 매년 봄에 한 차례 반모임을 가졌고 연말에는 송년회를 했다. 그때마다 날짜와 장소를 잡고 회비
어느 날 친한 친구로부터 한 통의 문자가 왔다. “돈 00원만 좀 빌려줘라. 딱 1년만 쓰고 은행이자로 이자도 줄게‘.
액수가 적다면 적고 많다면 많은돈이었음에도 전후 사정 훅 빼고 그렇게 간결한 문자 한 통만 달랑 보낸 친구가 이해되지 않았지만 바로 송금해 주었다. 왜인지, 어디에 필요한지 묻지도 않고…. 그 깐깐한 성격상 아무리 상황이 나빠도 구차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