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미국에서 돌아온 이유 중에 가장 첫 번째가 건강 문제였다. 갱년기가 오면서 좋아하지 않는 일을 한다는 것은 건강을 급격히 무너트렸다. 세탁소에서 바느질 만을 한다는 것이 영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오랜 세월, 수고한 덕분에 목과 허리에 약간의 디스크도 얻었다. 그로 인해 가끔씩은 머리 병을 호되게 앓는다. 머리가 아프면 구토도 한다. 결국 몸은 녹초가 된다.
다행히도 건강을 다 잃기 직전에, 주변 사람들이 쓰러져 가는 깊은 체험이 있었기에 현명한 판단을 내릴 수가 있었다. 점점 더 악화되는 정신건강은 몸을 상하게 만들었고, 드디어 어느 날에는 부나 명예보다는 건강만이 이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는 위대한 결론을 내리게 된 것이다.
필자도 어제는 또 머리가 아프기 시작한 것이 영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책상에 오래 앉아 너무 무리를 했나 싶었다. 마침 일요일이라, 큰딸이 처방해 준 항생제 덕분에 조금 덜 한 것 같기도 했다. 조금 살 것 같아 꼼지락거렸더니 다시 구토를 시작했다. 구토가 시작되면 남편은 초긴장을 한다. 그러나 다행히도 점심 먹은 것이 안 좋았던 모양이다.
결국 병원을 찾아 수액을 맞고 두어 시간을 낭비한 끝에 호전이 되기 시작했다. 여전히 후유증으로 잠시 휴식을 취했다. 불과 몇 시간 전만 해도 죽을 것만 같았는데 조금 살만하다. 가만히 눈을 감고 생각해보니, 곁에 붙어서 안절부절못하는 남편이 있으니 너무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필자가 아프다니 절절매며 옆에서 간호를 해주는 것이, 그저 미안하고 고맙다는 생각에 또 눈시울이 젖어왔다.
평상시에는 귀찮기만 하던 남편이, 몸이 아파 나약해지니 그저 세상에 최고라는 생각이 들어 조용히 남편의 두 손을 잡아 보았다. 미국에서 살 때의 이야기이다. 미국은 병원비가 상당히 비쌌지만, 어느 날인가 몸이 너무 안 좋아 병원을 찾아갔다. 우울증 시초라며 약을 지어준다. 우울증이라는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때부터 남편은 필자와 함께 등산 다니기를 시작했다.
다른 세탁소들은 아침 7시면 정확하게 문을 열었지만, 남편은 조금 늦게 8시에 가게 문을 열었다. 왜냐하면 아침마다 필자와 산에 다니는 것이 더 소중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등산을 고집한 남편이 더없이 필자를 배려하는 마음이었다는 것에 가슴이 뭉클해진다.
필자는 한국에 돌아와, 아직도 아침 일찍 눈을 뜨면 깜짝 깜 짝 놀래곤 한다. 미국이 아닌 한국에 와 있다는 것이 실감이 안 난다. 미국에서의 삶은 오랜 세월을 지내 온, 제2의 고향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아침마다 눈을 뜨면, 아파트 베란다 앞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고국의 눈부신 햇살과 불어오는 싱그러운 바람은 또 하나의 행복이었다.
더구나 내 나라에 돌아와 자식들과 함께하는 것은 얼마나 커다란 기쁨인지 모른다. 마음먹고 생각하기에 따라 행복은 지천에 깔려있었다. 또한 글쓰기로 필자의 마음을 쏟아내니 그 시간에 행복은 넘쳐흐른다. 지나간 일들의 부질없는 욕심으로 집착하기보다는, 지금 주변의 사소한 것들에 깊은 감사를 하니 부자가 따로 없는 것 같았다.
엊그제는 잘 아는 형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필자를 위해 김치를 담아놓으셨다고 했다. 돌아가신 어머님을 대신하는 것 같아 또 다 살기 마련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김치를 담아 보지 않아, 방법을 모르는 필자를 위해 형님은 늘 마음을 베풀어주신다. 그날따라 몸이 많이 무거웠지만, 형님의 마음에 비하면 견딜만하다는 생각에, 경기도 수원으로 달려가는 길은 감사함으로 가득하다. 물론 한번 다녀오면 경비는 더 들고 마켓에서 사 먹는 것보다 훨씬 많이 나간다.
한국으로 돌아와 살다 보니, 얼마나 좋은 일이 많은지, 모든 것들은 생각하기에 따라 달라진다. 하나 하 나 사소한 것들에 고마움으로 가득하다. 욕심보다는 감사함으로 채워진 긍정의 마음은 필자의 얼굴을 밝게 해준다. 어쩌면 건강을 지키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마음가짐의 표정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제 또 욕심은 건강만 해칠뿐, 허망함 밖에 없다는 초심을 늘 간직해야만 한다.
살아가면서 늘, 아주 작은 것들에도 깊이 감사를 느끼며, 항상 그 마음을 잊지 말고 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