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여쁜 자연과 이국적인 풍광으로 여행객의 마음을 흠뻑 사로잡는 땅이다. 그러나 제주를 동경하는 ‘이상’과 제주에 이주하는 ‘현실’은 다르다. 자신의 취향, 소통 문제, 경제적 득실 등 충분한 고려하지 않으면 제주이주는 온갖 고통만 양산할 수 있다.
사람들은 여행 중에 대개 “아! 아름답다. 또 와야지”라고 생각한다. 휴가철이나 휴일에 있는 틈 없는 틈 다 쪼개서 왔기 때문에 여행지에 대한 일종의 환상이 생기는 것이다. 그러나 행복 충만했던 추억은 얼마 지나면 잊어버린다. 그리고 다음엔 새로운 곳을 찾아간다. 한 곳에만 머무르지 않고 새로운 곳을 찾아 나서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기 때문이다.
필자도 이런 점에서 마찬기지여서 숙박업소를 예약하지 않고 여행을 즐긴다. 그래야 전혀 새로운 곳을 볼 수 있어서다. 특히 여행지에서 갈림길이 나오면 동쪽이든, 서쪽이든 차 덜 막히고 마음에 드는 곳으로 튼다. 복사기 같은 패키지여행은 절대 시도하지 않는다.
목적지가 없으니 급할 것도 없다. 발길 멈추는 곳이 쉼터요 숙소가 되었다. 길이 막힌다고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강가에서 텐트 치면 하루 숙박이 되고 버너에 불을 붙이면 식사 한 끼 해결은 문제가 없었다.
필자처럼 한곳 머무는 게 도무지 잼뱅이인 사람은 이런 점에서 제주이주를 생각하지 않는다.
제주는 최근에 관광과 투자가 활성화되고 있다. 숙박시설 단기 임대사업이 새롭게 떠오르고 있다. 산행, 사진, 낚시 동호인끼리 월 단위로 임차하여 교대로 사용하기도 한다. 제주에 꼭 이주하여야 할 이유가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친구와의 소통도 문제가 된다. 친구와 정담을 나누는 것이 노년의 건강을 지키는 제일 좋은 방법의 하나다. 그런데 아무리 통신문화가 발달하였더라도 친구는 맨투맨으로 얼굴 조우하지 않으면 남이나 매한가지다. 그래서 필자는 친구들과 거의 매일 만난다.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친구들과 멀리 떨어져 산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친구 잃고 이주할 아무런 이유도 찾기 어렵다.
전원에서 살다가 수개월, 길게는 몇 년 사이에 도회지로 되돌아온 이웃을 종종 보았다. 이들은 한결같이 “어릴 적 추억 속의 전원과 현실이 100% 다르고, 친구가 그리워 견디기 어려웠다”고 역 귀향 사연을 말하였다.
제주이주를 장기투자 목적에서 하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남은 수명이 그리 길지 않은 시니어에는 남는 게 없는 ‘허망한 장사’’다. 제주 땅값이 얼마나 오를지 몰라도 투자 금액을 자기 남은 수명 안에 회수한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가장 우려되는 건 제주 땅값이 폭락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사실 정보가 어두운 시니어는 이게 오르막인지, 내리막인지 판단할 능력이 없다. 만회할 수 없는 함정에 빠져들지 않도록 냉정하여야 한다.
시니어에는 무엇보다 현금자산이 필요하다. 건강 문제 등으로 한 번에 엄청난 몫돈이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제주로 이주하면 투자금, 이자, 관리비, 제세공과금 등 ‘소유비용'이 엄청날 것이다. 이 돈 들이지 말고 살면 전국 방방곡곡을 여행할 수 있을 것이다. 장거리 여행을 할 수 있는 여유도 생긴다.
복잡한 문제를 안고 있는 제주이주보다 편리한 ‘제주 이용’이 그 대안이다. 제주가 마음에 들면 때때로 여행하면 된다.
제주를 은퇴지로 삼고 살기 시작한 것이 엊그제 같은데 이미 10년이 훅 가버렸다.
은퇴 후의 남은 생을 의탁할 곳을 찾는 일은 중요하고도 심각한 문제인데도 필자는 너무 쉽게 즉흥적이고 감상적인 모티브로 결정했다고 주변에서 걱정한다. 그러나 이 경솔한 선택의 결과는 대박이다. 1992년 몸 쌩쌩한 어머니의 90회 생일을 자녀들만 모여 조촐한 파티로 치렀다. 이게 뒤가 좀 켕겨 생일파티 후에 어머니를 모시고 제주도 여행을 하였다. 마침 여행했던 그날은 제주에서 그리 흔하게 만날 수 없는 아름다운 날씨였다. 그것이 필자가 제주에 눌러살기로 한 이유다. 물론 제주의 악천후가 유명한 것을 알지만 산도 있고, 들도 있고, 농촌도 있고, 어촌도 있는 데다 관광지라 도회의 맛도 곁들일 수 있어 도회에서만 살아온 필자의 ‘도회 취향’ 정서에도 권태감을 주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주위 사람들이 우려하는 것은 이뿐 아니다. 미국 갔다가 역이민이란 스토리가 있다는 것과 연고지와 전혀 딴 세상을 선택하였다는 것이다. 은퇴란 말이 필자 귀에 들어오기 시작한 뒤 이를 준비하고 고민한 시간을 필자는 미국서 살았다. 은퇴 후의 생활에 대한 경험담이나 전문가의 은퇴설계 정보도 미국에 있었으니 당연히 그들의 방식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미국의 방식은 바로 65세 은퇴 후에는 지금까지 살아온 환경과 아주 다른 삶을 살아보는 것이다. 가령 도회에서 직장생활을 한 사람은 농ㆍ어촌의 자연을 가까이하는 은퇴 형태를 권장한다. 완전히 다른 새로움에 대한 도전은 조금씩 나태해진 삶을 혁명적으로 재활성화할 수 있는 조건이기 때문이다.
이 조건에 딱 맞는 곳이 제주다. 이곳은 농촌, 어촌에 산과 바다, 신선한 바닷바람이 만드는 자연의 아름다움이 있다. 텃밭과 너른 정원은 일 년 내내 노동을 기다린다. 그리고 필자는 쉬며 일하며 그럭저럭 남의 손 빌리지 않고 일하는 게 좋다.
젊은이들의 액티비티가 활발한 곳이란 점도 무척 매력적이다. 젊은이들의 활동을 보면서 에너지를 받을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역이민이고 연고지가 아닌 고장이어서 적응에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필자 의식 속에는 이국에서 살면서 한국의 언어, 전통, 습관, 의식 등 문화에 대한 그리움이 있었다. 고국이었기 때문이다. 하늘의 별이 작게 보이는 것과 같은 이유이다.
제주는 건강 유지의 최고 조건인 물과 공기가 세계 으뜸이라 암처럼 장기 투병해야 하는 환자가 이주해 오는데 대부분 효과를 보고 쾌유하는 모습을 본다. 물론 악천후에 섬이 고립될 수 있다는 점과 병원시설이 마땅치 않다는 점이 건강 위협요소가 될 수 있으나 제주같이 물 맑고 공기 좋은 데서 살면 병원 갈 일도 없다.
그동안 이웃에 육지의 도회에서 은퇴한 시니어들이 있었는데 정착한 사람도 있고, 돌아간 사람도 있다. 필자가 보기엔 낚시, 골프, 등산, 정원 가꾸기 같은 야외활동을 즐기는 사람이 빠르게 정착하고 만족도가 높다. 아웃도어 액티비티가 없는 사람들은 불만이 쌓인다는 말도 많이 듣는다.
아울러 대중교통이 제공되며, 모든 생활에서 타인에게 쉽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주거환경이라는 점도 장점이다.
이런 의미에서 필자는 제주 은퇴에 대만족이다. 완전은 아니지만 선택으로는 최고였다. 다른 분들도 제주로 와 필자처럼 만족감에 빠졌으면 한다.
와인의 레이블은 우리의 주민등록증과 비슷한 것이다.
와인의 출생을 비롯한 정체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들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주민등록증을 마음대로 위조하거나 변경할 수 없듯이, 레이블에 기입하는 사항들은 엄격한 법적 규제를 받는다.
단지 차이가 있다면 주민등록증의 경우 한 번 기입된 내용에 대해서는 임의로 고치거나 가감을 할 수 없지만, 와인 레이블의 경우는 시음 조건이나 음식 매칭에 관한 내용과 같은 법적 규제를 받지 않는 사항에 대해서는 생산자나 네고시앙들이 임의로 첨가할 수 있다.
레이블은 1760년경 보르도에 최초로 등장했다. 당시는 병목에다 끈으로 묶은 것이었다. 이전 시대에는 레이블도 존재하지 않았지만, 오늘날 보는 것과 같은 병도 없어, 오크통째로 판매를 하든지, 아니면 소비자가 2~3ℓ짜리 작은 나무통을 들고 와 양조장이나 매장에서 와인을 받아갔다. 우리 어린 시절 주전자를 들고 술도가에 가서 막걸리를 사오던 것과 흡사하다. 레이블은 1818년 보르도에서 처음으로 인쇄되었으며, 지금처럼 병에다 직접 붙이는 것도 이와 비슷한 시기에 시작되었다. 그리고 레이블에 반드시 명시해야 하는 법적 의무규정이 실시된 것은 20세기 후반에나 들어서이다.
그렇다면 어떤 내용들이 기입해야 하는 의무규정에 포함되는가? 여기서는 와인 레이블의 원조국이자 그 밖의 모든 와인 생산 국가에서 기본 모델로 받아들인 프랑스 와인의 레이블을 살펴본다. 레이블에 의무적으로 기입해야 하는 항목은 총 8가지다, 그중 하나(납세필증)는 우리에게 익숙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조만간 등급에서 사라질 우등 한정 와인(AOVDQS)에만 적용되니, 7개 조항이라 하는 게 더 현실적이라 하겠다.
▶ 프랑스 와인의 레이블
① 병입한 사람이나 양조장 이름과 주소
② 알코올 도수(%)
③ 양(ml)
④ 와인의 법적등급(AOC, 뱅 드 페이, 테이블 와인)
⑤ 생산국가
⑥ 생산 일련번호(No du Lot)
⑦ 보건과 위생관련 사항(아황산함유 여부나 임신부에 대한 경고 등)
모두가 와인의 내용을 파악하는 데 유용한 정보들이다. 특히 ①은 문제가 발생했을 경우 법적 책임의 소재를 밝히고 있다는 점에서 대단히 중요하다.
이 밖에도 레이블에는 법적 의무규정이 아닌 다른 많은 내용들이 적혀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가장 흔한 것으로 생산년도(빈티지: 포도수확 년도 기준), 샤토, 도멘느, 크뤼, 세빠주 등의 명칭과 메달 수상 내용 등이다. 모두가 와인의 특성을 가늠할 수 있는 직·간접적인 정보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와인을 구매하기 전에 꼼꼼히 살펴볼 가치가 있다. 사용한 세빠주의 경우는 향, 맛, 산도, 타닌 등 그 와인의 특성을 가늠하는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빈티지는 그 해 생산한 와인의 일부 특성과 보관기간 등에 대한 암묵적인 정보를 담고 있다. 샤토, 도멘느, 크뤼 등도 와인에 대해 보다 세부적인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단서가 된다. 예를 들어 보르도보다는 메독이, 메독보다는 뽀이약이, 그리고 뽀이약보다는 샤토 라투르가 보다 구체적이고 세부적인 와인의 특성과 등급을 일러준다.
그러나 레이블에는 소비자를 현혹하는 내용도 많으니 읽을 때 특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특히 메달의 경우가 그러하다. 올림픽이나 세계대회에서 수상하는 메달과는 확연히 다르기 때문이다. 와인 경연대회에 출품한 30% 이상의 와인에 메달을 수여하는 것이 관례이므로 파리 와인 경연대회, 마콩 와인 경연대회, 세계 리슬링 경연대회 정도에서 획득한 것이 아니라면 특별한 의미를 둘 필요는 없다. 참고로 와인 경연대회는 그 수도 많고 종류도 많다.
또한 ‘상급의’(supérieur), ‘예약된’(réservé) 등에다 ‘특별한’(spécial)이란 화려한 수식어가 붙기도 하는데, 대부분 상업적 미사여구에 지나지 않으니 무시해도 된다. 자신이 생산한 와인에다 좋지 않은 문구를 붙일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단지 병입에 대한 정보는 주조에서 숙성은 물론 병입까지 동일한 와이너리에서 했다는 것을 밝히고 있다는 점에서 와인의 질, 특히 원생산지를 가늠할 수 있는 하나의 기준이 될 수 있다. 그만큼 책임감을 갖고 정성을 들여 만들었다고 해석해도 무방하다. 그 밖에도 와인의 특성, 즉 향과 맛 등에 대한 내용을 하나같이 미사여구로 설명해 놓은 두 번째 레이블을 병 뒷면에 붙이는 것도 최근 들어 유행하고 있는데, 마시기에 적정한 온도나 매칭이 잘되는 음식 그리고 마시기에 적절한 시기 정도를 제외하면 거의 소설이나 다름없다고 보면 된다.
와인에서 레이블은 얼굴이다. 화장을 잔뜩 하고 사람을 현혹하는 것도 있고, 수수한 맨얼굴을 지닌 것도 있다. 최근 들어서는 와인의 레이블에도 일대 혁신이 일어나고 있다. 특히 브랜드 와인이 등장하면서 레이블의 내용은 물론 디자인에도 큰 변화가 생겼다. 원산지를 최우선으로 하는 주로 수수한 레이블을 붙이고 있는 떼루아 와인에 비해, 브랜드 와인은 와인의 특성을 드러내는 독특한 디자인과 화려한 색상으로 소비자의 눈을 사로잡는 데 주력하고 있다. 예를 들어 ‘So Fruity’, ‘부드러우며 꽃 향이 나는’ 등의 문구를 레이블에 눈에 띄게 크게 넣어 소비자로 하여금 와인의 맛이나 향에 대한 선택을 쉽게 하도록 도와준다. 심지어는 팩이나 알루미늄 캔에 담아 판매하는 와인도 등장하고 있으며, 이들 와인은 팩이나 캔 위에 우유나 맥주처럼 화려한 레이블을 직접 인쇄하기도 한다. 미국에서 커다란 성공을 거두고 있는 부르고뉴의 다이내믹한 네고시앙인 장-클로드 부와세(Jean-Claude Boisset)는 ‘French Rabbit’이란 상표 와인을 다분히 희화적인 디자인을 한 팩에다 담아 판매해서 성공한 경우다. 여성들의 와인 구매가 급증하면서, 당연히 여성들 취향에 맞춘 병이나 레이블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무통-로칠드의 레이블은 그것 자체를 수집하는 사람들이 생길 만큼 하나의 예술 작품이다. 해마다 세계적인 유명 화가의 그림을 레이블에 붙이는 호사를 누리기 때문이다.
레이블은 와인의 얼굴이고 ID다. 그래서 와인의 수만큼이나 다양하고 많다. 소비자의 변화하는 취향에 맞춰 새로운 와인이 탄생하는 것처럼, 새로운 레이블도 탄생한다. 조금 깊이 음미하면서 레이블을 쳐다보면, ‘와인이 가득찬 병 위에서는 비자처럼 희망적이고, 텅 빈 병 위에서는 유공자 기념비에 새겨진 비문처럼 비장’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와인의 레이블은 마시기 전에, 즉 ‘구두시험을 통과하기 전에 치러야 하는 필기시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글 장홍와인누리 대표
성균관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프랑스에서 국제관계학으로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프랑스 알자르 소믈리에협회 준회원이며, 등 다수의 저서를 펴냈다.
사회학적 측면에서 살펴본 와인, 인류역사 속 와인의 의미와 파워, 예술 인문학을 통해 본
와인 등에 대해 강의도 진행하고 있다.
성인이 된 자녀가 부모 집에 얹혀살면서 어린이처럼 처신하는 현상이 미국에서도 새로운 문화로 자리를 잡았다. 캥거루족, 키덜트(Kidult), 어덜테슨트(Adultescent) 같은 신조어에도 익숙해졌다. 제 앞가림을 못하는 자녀 때문에 베이비붐 세대의 속앓이가 심해지고 있지만 여전히 애지중지하는 부모도 적지 않다. 이런 현상에 대한 학계의 연구와 언론 보도가 봇물을 이루고 전문가들의 논쟁도 끊이지 않고 있다. AARP(미국은퇴자협회)가 5월호에 게재한 ‘끔찍한 22세들(The Terrible 22s)’이란 제목의 특집 내용을 소개한다.
베이비붐 세대의 시각 : 우리가 그렇게 만들었다
요즘 20~30대인 밀레니얼 세대는 애지중지 키웠더니 제 구실을 못한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하지만 그건 한쪽에 치우친 말이다. 정말 문제는 부모인 베이비붐 세대다. 원인을 제공했고 날개까지 달아줬다. 줄리 리스코트-하임스 스탠포드대학 교수는 그의 저서 에서 “많은 부모가 자녀를 지나치게 보호하고 간섭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힘든 경험을 해보지 않은 밀레니얼 세대는 온실의 난처럼 현실 적응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베이비붐 세대가 20대일 때는 해외여행이나 연수를 가도 부모가 일정을 세세히 알려고 하지 않았다. 해외에서 엽서나 편지 한 장 보내면 그것으로 끝이었다. 그 당시 부모는 자녀가 20세가 되면 성인으로 인정하고 자신의 일을 알아서 하도록 내버려 뒀다. 자녀가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해 첫 봉급을 받을 때까지 생필품과 방값을 지원해 주면 부모의 책임을 다했다고 여겼다.
이런 경험을 한 베이비붐 세대가 자신들의 자녀를 대하는 태도는 전혀 딴판이다. 성인이 된 자녀를 여전히 품안에 끼고 있다. 자녀와 함께 지내면서 내밀한 생활까지 공유하려는 욕심 때문일 수도 있다. 소셜미디어와 같은 현대기술 덕분에 이런 현상은 더 심해지고 있다. 베이비부머는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트위터 등을 이용해 자녀의 일상생활과 고민을 낱낱이 파악하고 간여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자녀의 연예나 결혼에도 깊숙이 개입하고 있다. 결혼할 생각이 없는 청년과 몇 년째 교제를 하고 있는 딸에게 시간 낭비니 단교하라고 종용하는가 하면 중매 사이트에 자녀의 세세한 이력과 취향까지 올려 배필을 물색하는 일도 서슴지 않는다.
자녀의 직장 생활에까지 발 벗고 나서는 부모도 적지 않다. 회사에 전화를 걸어 자녀의 취업인터뷰 절차를 알아보는 것은 기본이고 연봉 계약과 승진 문제로 직장 상사와 직접 상담을 하고, 자녀의 업무 성과까지 평가하는 웃지 못할 상황도 벌어지고 있다. 자녀가 어린이일 때보다 부모의 역할이 더 커진 셈이다.
미국 부모의 과보호 현상은 지난 1979년, 당시 여섯 살이던 에단 파츠가 학교버스를 타러 가다가 행방불명되면서 미국 전체가 공포에 빠진 사건에 뿌리를 두고 있다. 여기에 1980년대 초 미국 어린이의 학력이 세계 수준에 못 미쳐 국가의 미래가 암울하다는 내용의 대통령 보고서가 발간되면서 ‘헬리콥터 맘’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대학생 6명 중 1명이 불안증세로 진단을 받았거나 치료를 받은 경력이 있을 정도로 정신력이 약해졌다.
부모가 병원 예약에서부터 선물 구입에 이르기까지 일상의 일을 대신해주니 자녀는 성인이 되어도 사소한 일조차도 제대로 못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부모는 아들딸이 도움 없이도 잘 지내게 되면 자신은 쓸모없는 늙은이가 되지 않을까 걱정하는 듯한 분위기다.
네브래스카의 임상심리학자 제인 워렌은 “좋은 가정에서 곱게 자란 자녀들의 자립심이 더 낮은 것은 아이러니한 현상”이라고 지적했다. 부모와 함께 있을 때 심리적 안정감을 느끼니 독립할 이유가 없어진다. 부모들도 고분고분 잘 따라주는 자녀와 함께 살고 싶으니 독립이 반가울 리 없다. 맨해튼의 심리치료사 제리 애게이트는 “자녀가 독립하면 부모는 책임을 다했다는 생각이 우선 들지만 자녀로부터 소외된 느낌도 들기 때문에 균형을 잡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오리건주립대학 리처드 세터스턴 교수와 작가인 바바라 레이는 공동 저서 에서 “요즘 젊은이들은 부모, 특히 어머니에게 조언과 자문을 받을 뿐 아니라 동료애와 위안도 느끼고 있다”고 밝혔다. 이 덕분에 세대 차이가 많이 좁혀지고 있다. 1970년대나 1980년대와는 달리 자녀의 생각이 부모와 닮아가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베이비붐 세대는 자녀의 주위를 빙빙 돌면서 스스로 자유로운 생활을 접고 있는지도 모른다.
여러 가지 면을 감안할 때 이제는 자녀들이 21세기에 직면할 문제를 스스로 해결토록 하는 공동 목표를 세우고 최선의 방법을 찾아야 한다. 다음 세대가 번영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할 시점이다.
자녀인 밀레니얼 세대의 시각 : 부모님은 몰라요
베이비붐 세대는 헌신적인 노력에도 자녀들이 무기력하고 생활을 꾸려갈 준비도 안 됐다고 낙담하고 있는 것 같다. 공포와 수치심이 뒤섞인 숨 막힐듯한 태도로 자녀를 대하는 느낌마저 준다. 밀레니얼 세대를 평가절하하는 근거없는 이야기도 많이 나돈다.
입사 면접에까지 부모와 함께 간다는 소문이 단적인 예다. 이 이야기는 2013년 9월 월스트리트저널에 ‘면접장까지 부모와 함께 가야 하나?’라는 제목의 기사로 소개됐다. 인력관리회사인 아데코가 대학 졸업생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를 근거로 한 이 기사는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응답자의 8%가 입사 면접에 부모와 함께 갔고 3%는 자리를 같이했다는 내용이다. 사실을 제대로 파악해 보면 황당해진다. 차가 없는 자녀를 면접장까지 차로 데려다 주고 면접장 주위에 앉아 기다린 부모의 비율을 집계한 통계를 왜곡해 큰 제목으로 기사화한 것이다. 대중교통이 불편한 미국에서는 부모가 어디든 차로 데려다 주는 것은 자연스런 일상이다.
밀레니얼 세대는 경제력이 떨어진다는 분석도 왜곡된 점이 없지 않다. 2013년, 25~34세인 남성의 수입은 1980년 그 또래의 남성에 비해 물가상승률을 감안했을 때 18.5%나 감소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 기간 젊은 여성의 수입은 40.5%나 증가해 전체적으로 보면 그 전 세대와 수입 차이가 별로 없다.
경제정책연구센터(CEPR)에 따르면 밀레니얼 세대의 하위 60%는 부모세대 때보다 재정상태가 훨씬 열악하다. 1989년, 18~34세의 젊은 성인들은 평균 3300달러의 순자산을 보유했으나 2013년의 그 또래는 7700달러의 빚을 지고 있다. 학자금 융자가 빚 증가의 주요인이다.
그렇다면 밀레니얼 세대가 과거 부모세대에 비해 더 많이 파산했냐 하면 그건 상황에 따라 다르다. 대학을 졸업한 경우 베이비붐 세대보다 형편이 더 낫고 고등학교 이하 학력의 경우는 부모세대 때보다 수입이 훨씬 떨어지는 상반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베이비붐 세대는 이런 자녀를 위해 옹호자, 친구, 상담사 등 다양한 역할을 하고 있다. 더 나아가 소셜미디어를 통해 자녀와 좀 더 가까워지려 하고 있다. 하지만 자녀의 생각은 좀 다르다. 부모가 자신만의 소셜미디어 영역에 깊숙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안전장치를 하고 있다. 부모 집에 같이 사는 것도 밀레니얼 세대만의 현상은 아니다. 1911~1924년에 태어난 가장 위대한 세대 때는 대공항의 여파로 직업을 구하지 못해 부모와 함께 지낸 캥거루족이 더 많았다. 고용여건이 악화되고 임대료 부담이 가중되면 언제라도 나타날 수 있는 현상이다.
요즘 직장 상사들은 “밀레니얼 세대들이 문자를 주고받느라 근무를 태만히 하지만 일일이 나무랄 수 없어 포기하고 만다”고 말한다. 하지만 근무 태만은 밀레니얼 세대만의 문제가 아니다. 징계를 하거나 해고를 하면 될 일을 밀레니얼 세대의 특성으로 치부하는 것은 옳지 않다. 밀레니얼 세대는 아직 젊다. 앞으로 수십 년을 살아가면서 미흡한 생활능력을 키우고 재산도 모으며 자녀도 낳아 기를 것이다. 균형 잡힌 시각에서 보면 밀레니얼 세대도 다른 세대와 별 차이가 없다. 더 예민한 부모가 있을 뿐이다.
필자는 해외여행이 자유화하기 이전에 젊은 시절을 보냈고 치열하게 먹고 사는 것만도 버거워 여행은 오직 꿈으로 고이고이 접어 품고, 여유 생기면, 시간 나면 하면서 미루고 또 미루며 살아왔다. 이제 막상 약간의 여유가 생기고 고이 접어 두었던 여행의 꿈을 펼치려 하니 두렵고 훌쩍 떠난다는 것이 만만치가 않다. 그러다 보니 대부분의 시니어들이 단체 패키지 여행상품을 이용하여 잘 짜인 일정대로 가이드를 따라다니거나, 가족 중 젊은이에게 여행의 처음과 끝 모든 걸 다 맡기고 편하게 따라만 다니기만 하는 여행을 하게 된다.
그러나 영어도 못하고, 길눈까지 어둡고, 겁 많고 소심한 성격까지 혼자 여행하기엔 최악의 조건인 필자는 손안에 세상 스마트폰 안에 여행 관련 앱 들을 다운 받아 따로 모으며 배짱 좋게 10일간의 발칸 지역 자유여행을 결행하였다.
제일 먼저 여러 블로그와 배낭여행 카페 등에서 여행에 정보를 구하여 그 내용을 폰에 바로바로 저장하고, 일정이 정해진 대로 항공권 가격 비교 앱을 통하여 원하는 날짜의 항공권을 예약하는 거부터 여행은 시작된다.
그 다음 숙소 예약하기. 나는 여행할 때 고급스런 호텔에 묵기 보다는 레지던스 나 게스트하우스에서 머물며 다른 여행객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그 나라 시장이나 마트에서 구입한 재료로 음식도 해서 때론 나눠 먹기도 하는 것을 좋아한다.
요즘 TV 광고에도 많이 나오는 호텔 부킹 앱을 이용해 이런 취향을 조건에 다 넣어서 레지던스 위주로 예약을 해 두었다.
이 탁월한 선택으로 발칸지역의 시골 가정집 같은 레지던스에 묵으며 친절한 주인이 직접 구운 쿠키와 케이크도 얻어먹고 와인도 함께 마시며 따뜻하고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아침 저녁으로는 유럽의 시골 마을의 뜰과 마을을 산책하면서 늘 꿈꿔왔던 내 스타일을 제대로 취향 저격한 여행의 추억을 만들 수 있었다.
이런 모든 여행 이야기를 실시간으로 카톡으로 걱정하는 가족에게 안부도 전하고, 사진과 화상 통화로 여행을 생중계 하며 다녔고 저녁에 숙소에서 하루 일정을 마치고는 그날의 여행 이야기를 정리하여 SNS 올림으로서 친구들과 여행의 느낌을 공유하고 여행 기록도 남기며 하루하루를 마감하였다.
자유여행을 꺼리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인 언어, 영어 문제일 것이다. 이 문제도 번역 앱을 잘 이용하면 외국인 친구와 유창하게 영어로 소통할 정도는 아니더라도 다니는데 불편함이 없고 급하면 번역된 내용의 핸드폰을 상대에게 보여 주면 상대도 이 스마트한 소통방법에 즐겁게 응대해 준다.
외국에서 한국말로 길 안내를 받는 것을 상상해 보라. 구글의 지도 앱을 다운 받아서 여행 떠나기 전 미리 주요 도시 볼거리 장소와 예약된 숙소를 즐겨 찾기로 지정해 두고, 네비게이션 기능을 작동시키면 오른쪽으로 가시오, 왼쪽으로 가시오. 하는 지시를 한국말로 받으면서 길을 찾을 때의 기분이란 신기하기도 하고 신통하기도 하면서 이 편해진 여행 환경에 격세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렇게 스마트폰 하나에 유용한 앱 들만 잘 다운 받아서 활용해도 특별히 문제없이 가이드의 도움 없이도 자유롭게 내가 원하는 스타일로 나만의 자유로운 해외여행도 거뜬히 다녀올 수 있을 것이다. 자~ 내 손안에 가이드를 믿고 첫 발의 두려움을 버리고 스마트하게 자유롭게 한 발 내딛어 보자.
요즘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의 힐튼 헤드 섬(Hilton Head Island)이 은퇴자의 천국으로 떠오르고 있다. 골프 애호가라면 PGA투어 RBC 헤리티지대회가 매년 열리는 아름다운 하버타운 링크스코스를 먼저 떠올릴 것이다. 힐튼 헤드 섬은 미국의 은퇴자들이 좋아할 요소를 거의 다 갖추고 있다. 겨울에도 영하로 떨어지지 않고 눈이 거의 오지 않는 온화한 기후는 한파에 시달리는 뉴욕, 보스턴 등 도회지의 은퇴자들에게는 큰 매력이다. 30도를 넘는 여름 더위가 9월까지 이어지기는 하지만 수온은 수상 스포츠에 최적이다. 저녁이면 선선해지니 휴식과 숙면을 취하기에 안성맞춤이다.
고즈넉한 대서양 해변과 하얀 요트가 즐비하게 정박된 마리나와 야자수가 어우러진 항구의 전경은 숨 막히게 아름답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넓게 펼쳐진 바다, 하얀 모래와 맑고 깨끗한 습지 그리고 이끼로 뒤덮인 울창한 떡갈나무 숲은 대자연이 주는 은퇴기념 선물이며, 넉넉한 남부 인심은 은퇴자들에게 기를 불러 넣어주는 활력소다. 눈부신 햇살 아래 짭짤한 갯바람을 맞으며 160㎞에 달하는 자전거 도로를 달리고, 30여 개 골프 코스에서 라운딩을 하다보면 인생 후반기의 허무감은 어느새 충만감으로 바뀐다.
카약, 승마, 테니스, 낚시 등 갖가지 스포츠와 취미활동은 힐튼 헤드 섬의 주요 일과다. 19㎞에 걸쳐 펼쳐진 해안을 따라 무리지어 유영하는 돌고래를 유람선을 타고 관찰하며 달도 없는 깜깜한 밤에 붉은바다거북의 산란을 위해 해변의 조명을 모두 끌 때면 자연과의 일체감을 맛보게 된다. 저지대 늪지에서는 새우와 게를 쫓아다니는 푸른 왜가리와 큰 입을 딱 벌리고 햇볕을 쬐는 악어를 만나는 놀라움도 있다.
맨해튼(여의도의 30배)만한 넓이의 힐튼 헤드 섬에서는 4만여 주민이 오순도순 지내지만 해마다 250만 명의 외지인이 찾아와 한가하고 여유로운 기분이 전혀 들지 않는다. 쇼핑 환경도 맨해튼 수준이다.
특가 상품에서부터 디자이너 브랜드와 특별한 사람에게 선물할 독특한 기념품에 이르기까지 무엇이든 구할 수 있는 200여 개의 아웃렛과 상점, 그리고 6곳의 마리나 빌리지 상가는 주민뿐 아니라 관광객의 눈길과 발길을 끌고 있다.
조지아주 애틀랜타에서 자동차로 5시간, 사바나에서 45분(57㎞) 거리에 있는 힐튼 헤드 섬은 큰 다리로 내륙과 연결되어 있어 여객선이 다니지 않는 섬이다. 노스캐롤라이나주 샬럿이나 사바나국제공항에서 항공편을 이용하면 이동시간을 줄일 수 있다. 미국 동부 연안에서 두 번째로 큰 섬인 힐튼 헤드 섬은 원래 아메리칸 인디언들이 따뜻한 기후와 야자열매, 풍부한 해산물을 즐기던 곳으로 1663년 영국의 윌리엄 힐튼 선장이 처음 이 섬을 발견하고 자신의 이름을 따 ‘힐튼 헤드’라고 명명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섬의 73%가 은퇴자를 위한 주택단지
힐튼 헤드 섬의 73%는 10개의 대단위 리조트형 주택단지가 차지하고 있다. 이 주택단지 가운데 상당수는 매입 자격을 55세 이상의 신중년으로 제한하고 있다. 대부분 단지에는 관리사무소를 중심으로 실내외 수영장, 피트니스센터, 테니스장, 연회장, 식당 등이 갖추어져 있고 호수와 숲, 골프 코스와 마리나가 인접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 섬에 정착한 은퇴자들은 평균 6차례 이상 방문하여 생활환경을 체험한 후 주택을 매입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웃과 격이 없이 지내는 이 섬의 분위기를 느끼고 썰물 때면 90m나 밀려나 숨겼던 민낯을 드러내는 갯벌을 산책하면서 돌고래가 수영하는 모습을 보노라면 살아보고 싶다는 마음이 저절로 들게 된다.
이 섬의 지난해 주택매매 가격은 단독주택의 경우 52만달러, 타운하우스와 아파트는 20만달러 수준. 침실과 화장실이 각 2개인 아파트는 20만~40만달러, 단독주택은 25만~45만달러, 그리고 침실과 화장실이 각 3개인 주택은 40만~70만달러를 호가한다. 바다 경치가 아주 좋은 주택은 150만달러를 훌쩍 넘고 700만달러를 호가하는 그림 같은 주택도 여기저기서 볼 수 있다.
6개월 정도만 빌려 살아볼 수 있는 아파트도 구하기 어렵지 않다. 스튜디오형은 월 평균 600달러, 침실 1개짜리는 800달러, 침실 2개짜리는 900달러 수준이다. 성수기인 여름철에는 며칠만 빌릴 경우에도 임대료가 치솟는다. 침실 1개인 주택이나 아파트도 전망이 좋으면 1주에 1200~1800달러, 해변을 걸어서 갈 수 있는 위치면 1000~1200달러 정도다. 봄과 가을에는 20% 정도 할인되고 겨울에는 50%나 싸진다. 2억달러 넘게 투입해 새 단장을 한 리조트의 하루 방 값은 일반형 기준으로 130~340달러 수준이다.
주거비가 웬만한 휴양지나 은퇴자 생활지보다 비싸지만 주거비를 포함한 생활비 총지출은 맨해튼의 50%, 워싱턴이나 보스턴의 75% 수준을 넘지 않는다. 재산세가 다른 지역의 25% 수준인 데다 소득세, 소비세 등 각종 세율이 낮고 85세 이상의 주민에게는 더 낮은 세율이 적용되기 때문이다. 자동차보험과 휘발유 값이 저렴한 것도 수월찮게 도움이 된다. 이 지역 주민들 가운데는 현역 시절 주택을 구입해 별장처럼 이용하다가 은퇴 후 눌러앉은 사람도 적지 않다. 세컨드 주택을 구입하면 세제 및 금융 혜택이 있는 데다 에어앤비를 비롯한 휴가용 주택 알선 사이트가 붐을 이루면서 목 좋은 곳의 별장은 재테크 수단이 되었다.
미국 남부 사람들이 테러보다 더 무서워하는 것이 허리케인이다. 힐튼 헤드 섬 주민들은 1850년 이후 섬 주변 반경 80㎞ 이내로 81차례의 허리케인이 지나갔지만 큰 피해를 입은 경우는 한 번도 없었다는 전설을 믿고 있다. 천혜의 지형 덕분인지 주민들의 후덕한 인심과 간절한 소망 덕분인지 알 수가 없다.
각양각색의 취미활동 그리고 평생교육도
힐튼 헤드 섬에서는 축제와 이벤트가 풍성하다. 해마다 열리는 다양한 뮤직 페스티벌, 해산물 축제, 고기잡이 경진대회, 카약과 보트 경주 등은 주민과 관광객의 마음이 하나가 되는 자리다.
멋을 살린 음악 카페, 길거리 밴드, 19세기와 20세기 초에 지어진 건물이 늘어선 메이 강변에 각종 포장마차와 공예품 전시판매점까지 어우러지면서 남부 특유의 분위기를 자아낸다.
16㎞ 떨어진 블러프턴의 소도심에서는 이국적인 정취를 느낄 수 있고 남북전쟁 때의 화재와 파괴를 견뎌낸 대농장주의 저택과 교회는 박물관과 관광안내소로 활용되고 있다. 수백 년 된 거대한 나무와 옛 건물은 그림엽서로도 간직되고 있다.
은퇴자들의 취향은 제각각이다. 요트, 카약, 낚시 등에 빠져 있는 ‘해양스포츠파’, 생태관찰 보존과 식물 재배에 몰입한 ‘에코파’, 골프, 사이클, 테니스와 달리기 등을 주로 하는 ‘육상스포츠파’, 공예품 만들기, 독서, 해변 일광욕, 흔들의자 등을 즐기는 ‘정중동파’ 등 각양각색이다. 하지만 봉사활동과 평생교육은 이곳 은퇴 생활자들의 공통된 일과다. 해안사구와 야생동물 서식지 보호에서부터 노약자 서비스, 도서관 운영 등에 이르기까지 여러 분야에서 자원봉사 활동이 이루어지고 있다.
사우스캐롤라이나대학과 협력관계를 맺은 오셔평생교육원은 1600명의 은퇴 생활자들을 대상으로 400여 강좌를 운영하고 있다.
1년 회비 40달러에, 수업료는 과목당 15달러. 모두 다 합쳐 연간 95달러를 넘지 않게 책정되어 있다. 선생과 학생이 따로 없다. 자신의 전공분야를 가르치고 관심 분야를 배운다. 학습을 하다가도 기분이 내키면 밖으로 나가 현장학습에 들어간다.
미국의 주요 언론과 관련 전문매체의 힐튼 헤드 섬 예찬도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 ‘2015년 최고의 은퇴 생활지’, ‘인생을 바꿀 건강한 봄철 휴가지’, ‘하계 모임을 위한 남부 최고의 장소’, ‘2016년 북미지역 최고의 골프 휴가지’, ‘캐롤라이나 남부 최고의 사이클 친화지역’, ‘미국 남부 5대 하계 가족휴가지’, ‘세계 50대 테니스 휴양지’, ‘미국 최고의 섬’, ‘인터넷 검색이 가장 많은 섬’, ‘사우스캐롤라이나 최고의 해변’, ‘2015년 세계 최고의 여행목적지’ 등등. 이런 찬사 덕분에 이 지역 은퇴 생활자들의 만족감은 더 커지고 있다.
인생 후반전의 삶은 보다 평화롭고 안전하며 심플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가장 먼저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바로 살 공간, 의식주(衣食住) 중에 주거 문제이다.
하지만 저마다 사는 취향이 각기 다르고, 형편이나 사정을 감안해야 하기 때문에 쉽게 결정을 내리기 어려울 것이다. 자신이 추구하는 라이프스타일과 건강상태, 재정상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주거공간을 신중하게 선택해야 늘어난 노후를 멋지게 그릴 수 있을것이다.
2013년 한국소비자원 발표에 따르면, 고령자의 생활 안전사고의 61.5%가 주로 가정에서 발생하며, 문턱이나 장판 등에 걸려 넘어져 머리를 다치는 경우가 가장 많다고 한다.
나이가 들수록 작은 문턱 하나 넘기도 버겁고, 화장실을 한 번 다녀오는 데에도 숨이 차오르게 되는 만큼 경제적 여력이 있는 60대에 노년에 생활하기 적합한 집 안 환경을 갖추어야 한다. 집 안 곳곳에 손잡이를 달고, 문턱이나 계단의 높낮이 차이를 줄이고, 화장실 센서기능, 바닥재는 코르크와 같은 충격을 흡수할 수 있는 소재로 바꾸는 것이 좋다.
현재 아파트를 리모델링하거나 이웃과 나누는 타운 하우스에서 살거나 보다 쾌적하고 편리하게 살 수 있는 시니어타운에 입소하거나 개인별 주거의 공간을 조건에 따라 선택할 수 있다. 보통 ‘은퇴=전원생활’이란 공식이 낯설지 않게 느껴진다. 직장생활을 접고 여유롭고 공기 좋은 곳에서의 전원생활을 택하는 은퇴자들이 많아서다.
그러나 현실을 감안하면 전원생활은 좀 더 신중히 결정해야 한다. 전원생활을 시작한 은퇴자 가운데 상당수가 얼마 가지 않아 다시 도시로 유턴한 사례가 많아지고 있다.
전원생활에 익숙하지 않으면서 현지 적응력이 낮은 고령자, 신체조건이 뒷받침되더라도 도심 기반의 사회적 네트워크에서 벗어나기 쉽지 않은 경우라면 전원생활에 실패할 가능성이 크다. 이럴 경우 도시 외곽에 전원형 주택을 지어 거주하거나, 임대수익을 얻을 수 있는 단독주택을 구입해 빌려주거나 주말농장이나 텃밭을 임차하는 이른바 ‘도심형 전원주택’생활을 하는 것이 대안이 될 수 있다.
상위 5% 은퇴자들이 선택한 최고의 주거공간
우리나라에서도 시니어타운이 새로운 대안으로 주목 받고 있다. 이미 오래 전 고령화 문제에 직면한 일본이나 호주, 독일, 중국, 핀란드 등 선진국에서는 실버타운이 하나의 문화이자 라이프스타일로 자리매김하며 노년의 삶의 질을 높이는 주거시설로 인식되고 있다.
미국, 일본, 영국, 호주 등 선진국에서는 다양한 은퇴자마을이 운영되고 있다. 은퇴자들 15%이상이 제2의 인생을 찾아 날씨 좋은 곳, 여가 활동이 자유로운 곳 등 상당히 활발한 이동패턴을 보인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역시 최근 독립적이고 쾌적한 삶을 추구하는 시니어층이 증가하면서 실버타운 및 유료주택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고 있다. 왜냐하면 편의,여가, 문화시설 등이 많고 그들만의 ‘주거커뮤니티’가 있기 때문이다.
경제적 상위 5% 시니어들은 심리적, 사회적, 환경적 요소에 따라 현재 거주하고 있는 집에서이동하고 싶어한다.이들의 이동 변수는 건강하냐, 안하냐에 따라 다양한 주거시설의 삶의 형태를 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시니어들은 편안하고 안락한 사생활을 보장받을 수 있는 주거공간을 찾는다. 앞으로 10~30년이상 살아야 할 주거시설을 안전하고 안락한 생활을 위해 무엇이든 아끼지 않는다.
실버산업 관련 모 대학 교수는 “앞으로 소득수준이 높아지고 강한 독립심을 가진 자산가들이 늘어나면, 미국이나 유럽처럼 새로운 곳으로 이사해서 살려는 은퇴자가 점차 늘어날 것”이라며 “해외여행 경험이 많고, 경제적으로 더 풍족하고, 문화예술욕구가 강한 베이비부머들이 그러한 1세대가 될 것”이라 말했다.
자식과 같이 산다고 생각하니 갈등이 생길 것 같다. 하지만 배우자와 둘만 살자니 뭔가 적적한 느낌이 올 때도 있다. 손주 녀석들이 보고 싶어 전화기를 들지만, 막상 보려고 하면 귀찮아 수화기를 내려놓기도 한다. 자식과 ‘함께 사는 것’이 망설여지는 것은 이러한 이유와도 맞물려 있다. 여유로운 황혼을 빼앗기고 싶지 않은 것. 거기에 자녀 내외와의 갈등이 생길 것에 대한 걱정과 ‘품 안의 자식이 나태해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더해지면서 지레 겁을 먹는 것이다.
가정경영연구소의 강학중 소장은 “자녀와 ‘함께 사는 것’은 해보지 않고 겁먹을 일이 아니다. ‘같이 사는 것’은 장점이 많아 도전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고 설명한다. 같이 사는 것에 대한 부정적인 이야기만 부각이 돼서 그렇지, 자식과 부모의 지혜를 모은다면 세대 간의 시너지 효과를 기대해도 좋다는 뜻이다.
함께 살기. 도전해보자. 그 전에 확실히 해둬야 할 것은 동거의 목적을 생각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동거 그 자체가 목적인지, 행복을 위한 선택인지 말이다. 그것이 후자라면 강 소장의 말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서로 합의하라
“같이 살면 어떤 갈등이 생길지 미리 예상을 해보세요. 그리고 그 예상 문제에 대한 모범 답안을 생각해본 후 동거를 시작하면 마음가짐부터 달라질 거예요.”
사실 자식뿐만 아니라 어떤 누구와 같이 산다고 해도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다. 수십 년 같이 산 배우자와도 가끔은 다툼이 생기는데 세대 차이가 나는 자식이나 사위·며느리는 두말할 것도 없는 것이다. 같이 살면서 이런 갈등을 피하려고만 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갈등이라는 것은 가족 구성원에게 문제가 있어서 생기는 것이 아니고, 구조적으로 한 집에 살다보면 자연스럽게 생기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예상 문제들을 미리 준비해놓는다면 갈등은 가벼운 문제가 되고, 해결은 쉬워진다.
생활비 분담과 같은 경제적인 것부터 육아와 집안일의 분담 등 예상 문제들을 생각해보고, 대화와 타협을 통해 합의를 이끌어내야 한다. 같이 살다보면 가사는 여자가 담당하기 때문에 이 부분에서도 합의가 필요하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가 수평적으로 변하고 있는 요즘은 어느 한쪽의 주도나 강요에 따른 분담은 바람직하지 않을 수 있다고 강 소장은 설명했다.
“구성원 모두의 대화를 통해 만든 규칙을 A4 용지 분량으로 작성해 잘 보이는 곳에 붙여놓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가령 ‘아침밥은 어머니가, 저녁밥은 며느리가 한다’ 등 간단한 것 말입니다. 연초에 이것을 만들었다면 분기별로 가족회의를 통해 개정해도 좋겠죠.”
강 소장은 갈등이 없어 좋은 시기인 동거 초기에 미리 어려운 이야기를 터놓고 이야기해보라고 조언한다. 예를 들면, 지금은 함께 살지만 누구나 그것을 원치 않을 때엔 서로 감정 상하지 않고 나가서 사는 것이 있다. 이것을 미리 말해둔다면, 이와 같은 상황이 발생했을 때 갈등이 생겨 따로 살고 싶어졌다는 오해가 생기지 않을 것이다.
아름다운 거리를 지켜라
“신랑과 신부가 결혼을 했으니, 양가 부모들은 ‘자식이 아니라 남이라고 생각하라’고 말합니다. 인생의 또 다른 출발점인 만큼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자식과의 거리를 유지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강 소장은 우리나라의 부모, 자식 간의 관계를 망치는 가장 큰 이유는 지나친 밀착 관계 탓이라고 설명했다. 자식이 성인이 됐거나, 결혼을 했으면 부모도 자식을 정서적으로 내보내고, 자식도 부모 품을 떠나 자립을 해야 하는데 우리 사회는 아직 그렇지 못한 경향이 있다는 것. 그는 ‘함께 살기’ 위한 올바른 방법은 심리적·정서적으로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라고 조언한다. 이것을 ‘아름다운 거리’라고 표현했는데, 이것에 실패하면 상호 의존적이 되거나, 한쪽의 영향력이 커져 갈등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다.
“어릴 때의 자식과 성인이 된 자식은 다르다는 것을 인식해야 합니다. 성인 자식의 행동양식이 다른 것이지 틀린 것이 아닐 수가 있거든요. 이러한 차이를 이해하고 존중해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것이 부모에게만 요구되는 사항은 당연히 아닙니다. 자식들도 부모를 부모이기 전에 한 남자와 여성으로서 존중하는 게 당연하죠. 가끔은 부모가 자식 방에 들어오면 잘못됐다고 하는 사람이 있는데, 반대로 그런 경우에는 자식도 부모 방에 마음대로 드나들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요즘은 같이 살면서, 서로의 독립적인 생활을 보장하는 형태의 동거가 늘고 있다. 간섭이나 강요는 없다. 대화와 타협, 그리고 존중이 존재한다. 이근후 이화여대 명예교수는 다섯 자녀의 내외와 한 건물에서 함께 사는 것으로 유명하다. 한 건물에 살지만, 각각 집으로 들어가는 입구는 모두 다르다. 한곳에 살지만, 독립적인 환경을 보장하는 것이다.
“같이는 살지만, 서로의 독립적인 생활과 취향을 존중해야 하는 것이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 생활권 안에서 각자가 잘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같이 살면서도 자식이 부모에게 손 벌리지 않고, 부모도 자식에게 짐이 되지 않도록 노후 준비를 차근히 하는 것이 좋은 동거입니다.”
같이 살기? 장점이 많다
“요즘은 자식과 같이 살지 않는 것이 쿨한 것처럼 말하는 사람이 많아요. 사실 두려워서 회피하는 것이면서 말이죠. 자식과 같이 살면, 즉 대가족이 되면 좋은 점은 많습니다.”
강 소장은 같이 살기의 가장 큰 장점 중 첫 번째가 역할 분담이라고 했다. 부모가 가진 경륜이 자식 내외와 손주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것. 실제로 조부모와 함께 사는 가정의 아이들은 생활부터 다르다고 그는 말한다. 사람과 만나 소통하는 데 있어 구사하는 어휘의 범위도 커지고, 어른들을 대하는 방식이나 생각하는 것이 더욱 깊다는 것이다. 가사 분담하는 것도 힘든 일의 부담을 줄일 수 있어 좋다.
두 번째로는 중년에 느끼는 외로움을 없애준다는 것이다. 손주의 육아를 일부분 담당하면 자식들에게도 큰 혜택이 되겠지만, 반대로 부모에게도 좋은 영향을 준다. 손주들에게 느끼는 생동감이 삶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어줘 외로움을 달래주기 때문이다. 손주들의 학습을 도와줄 수도 있지만, 반대로 컴퓨터나 스마트폰 조작법 등이 익숙하지 않을 때 그들에게서 배울 수도 있다. 상호 보완적인 관계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생활비를 절약할 수 있다는 것이다. 동거를 시작할 때 회의를 통해 생활비를 합리적으로 분담한다면 부모와 자식 모두 경제적인 부담을 반으로 줄일 수 있다. 때에 따라서는 공동 경비를 모아 가족들에게 필요한 물품을 산다든지 여행을 간다든지 할 수 있어 가족의 화목을 다질 수 있는 기회로 삼을 수도 있다.
용문사 가는 도로변,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가 도로 양 편으로 길게도 이어진다. 우수수 낙엽이 떨어져 만추의 여정이 가득한, 휘어진 길. 그 뒤로 아스라이 옛 추억 한 자락이 떨어지는 낙엽 위로 오버랩된다. 형형색색으로 변한 산야 속에 유난히 노란 단풍잎이 눈을 시리게 한다. 이렇게 도로변에 은행나무를 심어 놓은 것은 용문사에 노거수 은행나무가 성성하게 버티고 있음을 알려주려 함이었으리라.
◇ 단풍 든 한적한 산길에서 만난 정지국사부도
용문사의 가을은 화려하다. 해마다 이곳의 아름다운 가을을 만나기 위해 많은 행락객들이 찾아든다. 주차비(소형 3000원)와 입장료(성인 2000원)를 내고부터는 누구나 걸어야 한다. 입구 쪽에 단풍 든 공원 앞으로 2007년에 개관한 양평 친환경 농업박물관(용문면 신점리 508-10, 070-7715-3796, http://sam.go.kr)이 있다. 옛 성루를 연상케 하는 한옥 모양의 박물관 앞으로 분수가 솟구친다. 유치원생들은 그 모습을 보고 즐거운 비명을 지른다. 아이들 눈 속에는 감성이 많이도 묻어 있는 듯하다. 실내에는 양평역사실과 친환경농업실이 있고 사찰요리를 만들어보는 체험 등을 할 수 있다. 주변의 공원에는 아이들 취향인, 귀여운 조형물과 시비 등이 많이 눈에 띈다. 사자상 양 귀 쪽으로 수도꼭지를 달아 놓은 모습도 해학적이다.
다리를 건너면 일주문이지만 이번 여행길에는 곧추 정지(正智)국사부도 팻말(0.5㎞)을 따라 걸음을 옮긴다. 산길은 큰 도로와는 달리 한적하다. 아직 걸음이 서투른 유치원생들과의 눈높이 대화가 싱그럽다. 부도까지 올라가야 하는 길목은 붉은 단풍이 에워싸고 있다.
우선 정지국사탑비를 만난다. 비문은 권근이 지은 것이라지만 글자가 거의 마모되어 버렸다. 80m 정도 오르면 정지국사부도(보물 제531호)가 홀로 있다. 정지국사(1324∼1395)는 황해도 재령에서 태어나 고려 충숙왕 복위 1년(1332), 8세 때 장수산 현암사로 동진출가(童眞出家)했다. 바로 선을 닦다가 능엄경을 배워 깊은 뜻을 깨달았다고 한다. 공민왕 2년(1353)에는 무학과 함께 원나라로 가서 지공을 스승으로 한 나옹의 제자가 되었다. 1356년, 귀국해서는 은둔하면서 수행에만 힘썼다고 한다. 천마산 적멸암에서 “나는 간다”는 말을 남기고 법랍 54세로 입적했다. 제자 조안이 이곳에 부도와 비를 세웠고, 나라에서는 ‘정지국사’라는 시호를 내렸다. 생전에 개풍 영천사의 대장경을 용문사로 옮겨 봉안했다고 한다.
사찰 쪽으로 내려오는 길목에는 무수한 돌탑이 있다. 넓은 터에는 ‘산사무공(山寺武功)’이라는 손 글씨가 쓰여 있다. 무공 템플스테이가 펼쳐지는 곳이며 108탑을 조성하는 듯하다.
◇ 국내에서 가장 큰 용문사 은행나무는 단풍 들기도 더뎌
조금 더 내려오면 용문사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언덕이다. 경내의 건축물과 함께 단풍 든 용문산(1,157m)이 한눈에 조망되는데, 무엇보다 커다란 은행나무(천연기념물 제30호, 높이 50m, 둘레 12.3m)에 눈길이 머문다. 신라의 마의태자가 나라를 잃은 설움을 안고 금강산으로 가던 도중 심은 것이라고도 하고 의상대사의 지팡이가 뿌리가 내려 이처럼 성장한 것이라고 전해오는 국내에서 가장 큰 은행나무다. 수령이 대략 1100여 년에서 1500여 년으로 추정된다. 정미의병 때 톱을 댔더니 피가 났고, 불을 질렀을 때도 이 은행나무만 타지 않았던 신목(神木). 노익장을 과시하듯 잎이 무성하고 주변 나무들보다 단풍도 더디 든다.
경내 약수에 목을 축이고 잠시 둘러본다. 이 사찰은 진덕여왕 3년(649)에 원효대사가 창건한 천년고찰. 진성여왕 6년(892)에는 도선국사가, 고려 공민왕 때는 나옹선사가 여러 차례 중수를 거듭했다. 세종 29년(1447)에는 수양대군이 어머니 소헌왕후 심씨의 원찰로 삼으면서 대대적으로 중건했다. 조선 초기에는 절집이 304칸이나 들어서고 300명이 넘는 승려들이 모일 만큼 번성했다고 한다. 그 후 왜군이 전소시켰고 6·25 때도 파괴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사찰을 비켜날 즈음, 찻집 솔내음, 다래향에서 맛있는 대추약차의 그윽한 향내에 취해보거나 용문산 정상까지 산행을 해도 된다.
◇ 상원사에 오르면 속세의 번뇌가 한순간에 사라지는 듯
굳이 산행을 안 해도 된다. 찻길이 잘 나 있기 때문. 상원사 입구임을 알려주는 거대한 석불부터는 민가가 사라진다. 울창한 숲 사이로 차 한 대가 갈 수 있는 임도 운전이 아슬아슬하지만 잠시 차를 멈출 수 있는 공간이 반갑다. 시원한 물줄기가 하염없이 흘러내리는 그곳에도 아름답게 단풍이 들었다. 물소리, 새소리, 단풍 숲까지 어우러져 사랑스러운 길이다. ‘무릉도원’이 여기구나 싶을 생각이 절로 드는 곳. 찻길이 끊어지는 곳에서 누군가 정성스레 가꿔 놓은 텃밭, 작은 연못, 깎아지른 듯한 언덕에 잘 쌓은 돌담이 해사한 웃음으로 반긴다.
돌계단을 따라 경내에 들어서면 마당 한가운데 3층석탑을 에둘러 대웅전, 선방으로 이용되는 청운당, 요사채인 제월당이 있다. 대웅전 뒤쪽으로는 삼성각이다. 절 마당, 트인 공간 저 멀리 용문산 능선이 파도처럼 일렁인다. 상원사는 창건 시기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유물로 미루어 고려시대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된다. 고려 때 보우선사(1301∼1382)가 여기 머물며 정진했다고 전해온다. 조선 태조 7년(1398)에 조안선사가 중창했으며 무학대사(1327~1405)가 왕사에서 물러나 이곳에서 수행했다.
또 효령대군(1396~1486)은 원찰로 삼았다. 세조 8년(1462)에는 세조가 피부병을 고치러 찾아왔다가 중창불사를 했다고 에 기록되어 있다. 그러다 순종 원년(1907)에 왜병이 이 지역에 집결해 있던 의병을 소탕하기 위해 불을 질러 법당만 남겨놓고 모두 타 버렸다가 1918년에 복원했으나 6·25 때 모두 불타 버렸다. 이후 1969년이 되어서야 주지 덕송이 초막삼간을 짓고 복원에 착수, 1970년에 주지 경한니가 복원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상원사에서 눈길을 끄는 것이 있다. 사자석상을 닮았지만, 정확한 형태가 아닌, 예사롭지 않은 조형물이다. 땅속에서 나온 유물들을 한데 조합해서 만들어 놓은 것이란다. 또 사찰 내에는 철조 여래좌상(경기문화재자료 제119호)이 있다. 상원사 가까이 있는 윤필암은 고려 중엽 모덕이 창건했으나 한국전쟁 때 소실되어 터만 남아 있다.
◇ 보릿고개 연수리 정보화 체험마을의 돌담 따라 걷기
상원사에서 내려오면 ‘연수리 보릿고개 정보화 체험마을’을 만난다. 연수리는 연안마을과 장수마을을 합해서 만들어진 지명이다. 예로부터 장수하는 사람이 많아 ‘장수골’이라고 불렸다. 현재 보릿고개마을은 성공한 정보화마을이다. 다양한 체험거리는 계절에 맞추어진다. 봄에는 산나물 채취, 냉이 캐기를 하고 여름에는 계곡에서 물놀이를 즐긴다. 가을에는 밤 줍기와 등산을, 겨울에는 청국장 만들기 등의 체험을 한다. 담벼락에 벽화를 그리고, 돌담장에 형형색색으로 색칠해 볼거리를 준다. 사계절 체험객들이 줄을 잇는다. 특히 슬로푸드 음식체험이 인기다. 보리떡 직접 만들어보기, 지천에 난 쑥을 직접 뜯어 쑥떡 만들기, 농민들이 재배한 국산 콩으로 두부 만들기, 잘 익은 호박으로 호박밥 지어 먹기 등. 체험객들이 늘 찾는, 성공한 체험마을이다.
마을을 비켜 용문으로 오는 동안에도 눈이 시리다. 곳곳에 멋지게 지은 전원주택들이 구슬처럼 박혀 이국적인 모습을 자아낸다. 그리고 경기도 영어마을 양평캠프도 있다. 실제 미국 버지니아의 마을을 재현한 이국적인 캠퍼스다. 그래서 와 등 드라마 촬영지로도 이용되었다. 학습 목적이 아닌 관광객들은 6000원이라는 입장료를 감수해야 한다.
용문면에도 할 거리가 있다. 레일바이크(031-775-9911, http://www.yprailbike.com)를 탈 수 있다. 용문면 삼성리∼양평읍 원덕리까지 왕복 6.4㎞ 구간이다. 또 용문장날(5일, 10일)도 볼만하다. 국철이 생기면서 장날은 제법 구색을 갖춰가고 있다. 지역에서 나오는 가을 특산물을 파는 할머니들의 모습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 Travel Tip
- 주소
용문사 경기 양평군 용문면 신점리 625, 문의 : 031-773-3797, http://www.yongmunsa.org
상원사 양평군 용문면 연수리 220-5, 문의 : 031-773-4634
보리울체험마을 문의 031-774-7786, http://borigoge.invil.org
기타 문의 양평군청 문화관광과 : 031-773-5101
- 찾아가는 방법
자가용 서울 → 6번국도 이용 → 마룡교차로에서 341지방도로로 좌회전 → 덕촌삼거리에서 직진 → 용문산 관광단지 주차장
대중교통 수도권전철 중앙선이 용문까지 운행(2009년 12월 개통)되고 있다. 용산역~용문역(05:20~22:58) 약 1시간 30분 소요. 용문시외버스 터미널에서 용문사, 연수리행 등 각 방향 농어촌버스를 이용하면 된다. 문의 용문시외버스터미널 : 031-773-3100, 용문역 : 031-773-7788
- 추천 맛집
용문산 입구에 중앙식당(031-773-3422), 한마당식당(031-773-5678), 용문산식당(031-773-3434) 등 산채요리 음식점이 있다. 그외 용문에서 다소 떨어져 있지만 무쇠솥에 오랫동안 달여 낸, 국물 진하고 고기 넉넉한 고바우집(031-771-0702, 설렁탕)을 비롯하여, 이북식 만두가 맛있는 회령만두국(031-775-2955)이 괜찮다. 용문읍에 있는 강원식당(031-773-4459, 막국수, 묵채밥 등)도 괜찮다.
- 주변 볼거리
용문산에는 용계, 조계골(신점1리)이 있다. 또 용문면에서는 레일바이크(031-775-9911, http://www.yprailbike.com)를 탈 수 있다. 2010년 5월 3일 개장되었고 용문면 삼성리에서 양평읍 원덕리까지 왕복 6.4㎞ 구간이다.
>> 이신화 여행작가
이립(而立)에 여행작가로 시작해 어언 지천명(知天命)에 다다랐다.
그동안 ‘걸어서 상쾌한 사계절 트레킹’, ‘대한민국 100배 즐기기’, ‘on the camino’ 등
여행서 총 14권을 출간했다. ‘인생이 짧다’는 것을 현실적으로 받아들여 지난해 홀로 197일간 30개국의 유럽 배낭 여행을 했다. ‘살아 있을 때 떠나자’가 삶의 모토다.
뇌 사용량이 많으면 천재가 된다는 말이 사실일까? 결론부터 내리자면 인간은 뇌 전 영역을 골고루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사용량과 천재의 상관관계는 없다는 것이 21세기 학계의 정설이다. 그렇다면 천재라 불리는 이들은 무엇이 달랐던 것일까?
글 박근빈 기자 ray@etoday.co.kr 참고 뇌과학여행자(김종성 저), 공부의 기쁨이란 무엇인가(김병환 저), 천재들의 뇌(로베르 클라르크 저)
우리는 지금까지 이렇게 생각해왔다. 아인슈타인쯤 되는 사람이 뇌의 10% 정도를 사용했고, 보통 사람은 10% 미만의 뇌를 사용하고 있다고 말이다. 그래서 천재는 뇌를 쓰는 영역이 뭔가 다를 것 같다는 생각을 해왔다.
이것은 속설에 불과하다고 한다. 카이스트 정재승 교수는 “뇌를 구성하는 신경 세포는 늘 작동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나 그렇다고 쉬고 있는 것도 아니다. 특정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일정 부위가 특별히 활성화되는데 그 신경 세포의 비율이 5% 정도다. 다음 순간에는 다른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다른 부위가 활성화되며 이는 순간마다 바뀌므로 뇌는 전체적으로 늘 움직인다”고 주장한다. 유튜브에 에이셉사이언스(ASAPScience)를 연재 중인 미첼 모피트(Mitchell Moffit) 역시 “대부분의 영화와 SF소설은 인간이 뇌 기능의 단 10% 정도만 사용한다고 우리를 믿게 만들죠. 완전히 거짓입니다”라고 말한다.
이렇듯 뇌 10% 사용설은 근거가 부족했던 과거의 이야기 정도로만 파악하면 될 듯싶다. 우리는 우리도 모르게 뇌를 잘 쓰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며 다시 아인슈타인으로 돌아가 보자.
어린 시절 아인슈타인은 발육이 더디고 말도 늦었다. 그의 부모는 지진아가 아닐까 하는 걱정을 했다. 그래서 이 부분을 ‘아인슈타인증후군’이라고 지칭하기도 한다. 지능이 일찍 발달한 아이들의 말하는 능력이 늦게 발달하는 것. 아인슈타인의 뇌를 연구한 신경과학자들은 그가 말하는 것이 늦었던 것은 뇌의 비정상적인 발달 때문이었다는 사실을 해부 결과 밝혀냈다. 분석적 사고 기능이 집중된 아인슈타인의 뇌 부위가 정상적인 영역을 크게 벗어나 있었는데, 이 같은 침범을 받은 영역 가운데 하나가 일반적으로 언어기능을 통제하는 부위였다. 하지만 주목할 부분은 아인슈타인의 뇌 속에서 평범한 사람의 머리 안에는 없는 특별한 조직이 발견되지 않았을 뿐더러 천재나 보통 사람 모두 문제를 해결할 때 동일한 과정을 밟는다는 것이다.
결핍과 질환으로 파생된 천재들
탁월한 창작활동 덕택에 후세에도 여전히 이름을 떨치고 있는 이들에게는 유독 정신 질환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일련의 연구들을 살펴보면 천재와 정신병 환자의 뇌는 비슷하다고 한다. 다른 점이 있다면 천재는 수많은 정보를 자유롭게 엮어 새로운 아이디어를 만들 수 있지만, 정신병 환자는 그 정보를 소화하지 못하고 혼돈 속에 산다는 점이다. 서울아산병원 김종성 교수와 함께 알아보는 결핍과 질환으로 탄생된 천재의 이야기.
글쓰기에 미친 측두엽 간질환자 ‘셰익스피어, 도스토예프스키’
도스토예프스키와 셰익스피어는 글쓰기에 집착하는 형태를 보이는 측두엽 간질을 앓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또 작품을 통해 본인의 간질과 비슷한 증상을 써내려 간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백치’, ‘악령’ 속에서 간질을 앓고 있는 인물을 묘사했고, 셰익스피어는 ‘오셀로’, ‘맥베드’ 등의 작품 속에서 간질을 표현하고 있다.
측두엽 간질을 앓는 사람들은 몇 가지 성격적인 특징이 있다. 도덕적이거나, 종교적인 관심이 높고 사람들과 끈끈한 관계를 갖지만 간혹 안절부절못하거나 공격적으로 변하며, 지나치게 글을 많이 쓴다는 것이다. 이렇게 글을 많이 쓰는 현상을 ‘하이퍼그라피아’라고 하는데 측두엽 간질환자가 왜 글쓰기에 집착하는지는 명확한 규명이 되지 않은 상태다. 다만 기억력이 저하돼 이를 보충하기 위해 쓰는 것이라고 본다.
전두엽이 덜 떨어진 낙제생 ‘피카소’
피카소는 아주 어릴 적부터 타고난 그림의 천재였다. 말도 배우기 전에 먼저 그림을 그렸다. 이미 숙달된 어른 솜씨로 말이다. 그가 맨 처음 한 말은 ‘피’였는데 연필을 뜻하는 ‘라피즈(lapiz)’를 그렇게 발음한 것이다. 그런데 피카소는 미술을 제외한 거의 모든 과목이 낙제 수준이었다. “학교에서 배운 것은 하나도 없다”고 자랑스레 말하고 다닌 그는 미술이외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는, 공부를 지지리도 못했던 학생으로 기록된다. 왜 그랬을까? 전두엽의 기능이 다소 떨어져 공부는 못했지만, 오히려 후두엽의 시각중추가 발달돼 탁월한 작품을 내놓을 수 있었다고 한다. 특히 피카소는 사실화로부터 추상화로 그림을 발전시켰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데 이는 시각 중추는 물론 뇌의 광범위한 영역을 사용해 새로운 지평을 열게 된 것이라고 한다.
열등감과 청력손실 그러나 들끓는 열정 ‘베토벤’
베토벤의 청력손실 문제도 의학적으로 논쟁이 되고 있다. 두개골의 두께가 평균 0.5인치로 기록됐다는 부검 소견에 따라 파젯병의 가능성, 대뇌매독 등의 가설이 제기되고 있다. 이밖에도 결핵과 장티푸스, 피부병, 간경화, 위장병 등 수많은 질환을 가지고 살았다고 알려져 있다. 또 베토벤은 가난했다. 게다가 외모조차 별로였다. 심한 곱슬머리에 얼굴은 천연두를 앓아 곰보였다. 당시 음악가들은 귀족들의 경제적 후원으로 살아가야 했기에 그들의 취향을 포기한 채 궁정음악을 작곡해야만 했다. 그의 들끓는 열정은 자신의 개인적인 목소리를 내기를 원했다. 베토벤은 수많은 병과 열등감을 토대로 천재 음악가로 성장하게 됐다.
후천적 천재, 노력의 산물을 쏟아낸다
프랑스 과학저술가 로베르 클라르크(Robert Clarke)의 ‘천재들의 뇌’에 따르면 차이코프스키는 25세에 첫 작품을 내놨고, 고흐는 27세에 처음 그림을 배웠다. 고갱은 39세에 화가로 입문했으며, 프로이트는 40세가 돼서야 심리학을 접했다. 평균수명을 기준으로 그 당시와 지금을 비교해보면, 이들은 굉장히 늦은 나이에 창작활동을 시작했다.
말년에 본인의 대표작을 완성한 인물들도 주목해볼만하다. 하이든은 66세에 ‘천지창조’를 작곡했고, 소포클레스는 75세에 ‘오이디푸스 왕’을 집필했다. 괴테는 81세에 ‘파우스트’를 탈고했으며, 앵그르는 82세가 돼서야 ‘터키탕’을 그렸다.
미국 심리학자 앤더스 에릭슨(Anders Ericksen)이 펴낸 ‘케임브리지 편람’을 보면, 천재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한다. 여기서 천재가 만들어지는 비법은 ‘70%의 땀과 29%의 좋은 환경과 가르침, 그리고 나머지 1%는 영감’이라고 말한다.
과학이나 예술분야에서 크게 성공한 인물들의 지능지수는 보통 사람보다 약간 높은 115~130 정도라고 한다. 이는 전체 인구의 약 14%에 해당하지만 실제 천재들은 이 수치에 비해 훨씬 적다. 대략 열 명중에 한두 명은 지능지수로 봤을 때 천재가 될 수 있는 조건을 갖췄지만 실상은 못 미친다는 것이다.
천재들의 특성은 지능지수와 무관하게 누구나 가능성과 잠재력을 갖고 있다는 결론이다. 천재는 반드시 남보다 뛰어난 머리를 갖고 태어나야 하는 게 아니라 노력에 의해 얼마든지 될 수 있는 것이다. 노력하지 않는 천재는 없다.
이 말에 의문이 생긴다면 마지막으로 음악신동으로 불리는 모차르트를 생각해보자. 모차르트가 과연 태어날 때부터 영재였을까? 절대 아니다. 오히려 일반 사람들보다 지독히 매달렸던 노력파였다. 35년이라는 짧은 생애 동안 600여 편이라는 걸작을 썼다. 천재라서 단숨에 성공적으로 작곡을 했을 거라는 소문과는 달리 그 역시 초작에는 고친 흔적이 많이 있다. 수많은 연습과 노력의 시간을 쏟아 부어 천재로 재탄생한 인물이었던 것. “일은 나의 주된 즐거움이다”라는 그의 고백에는 열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