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임이 있는 날은 늘 그랬던 것처럼 저녁 술자리가 끝나고 가는 곳이 정해져 있다. 저녁 자리까지는 의무에 속한다. 식사 겸 술 한잔 하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이 의례적 행사가 끝나야 비로소 옵션이 풀리는 셈이다. 집에 일찍 갈 사람은 가고 각자 흩어진다. 뜻이 맞는 몇몇 친구들은 한잔 더 하기 위해 자리를 옮긴다. 맥줏집을 찾기도 하고 요즘은 실내 스크린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무작정 서울로 상경했던 촌놈은 모진 고생을 감내하면서 학업을 이어갔다. 고향에서 14년을 살고 타향인 서울에서는 무려 50여 년 이상을 지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머릿속은 늘 정년퇴직 후의 귀향 생각으로 가득했다. 혼탁한 환경과 인심 사납고 삭막한 서울 생활을 접고 공기 맑고 인심 좋은 귀촌이나 귀향을 늘 염두에 두고 있었다. 적어도
흔히 중풍으로 불리는 뇌졸중은 중장년의 대표적 혈관질환 중 하나. 특히 겨울철만 되면 더욱 속을 썩인다. 보이지 않는 뇌 속에서 언제 어떻게 일어날지 모르는 시한폭탄인 데다, 후유증에 고생하는 주변의 사례를 보면 불안감은 배가된다. 게다가 ‘골든타임’, 즉 발병 후 적당한 치료시기를 놓치면 낭패라는 사실은 더욱 시니어를 옥죈다. 그렇다면 방법은 없을까.
“신이시여 저를 죽음이 바로 옆에 있는 이곳에서 무사히 작업을 끝내고 내려가게 해주십시오. 저를 위해서가 아닙니다. 사랑하는 식구들이 나의 슬픈 소식을 전하여 듣고 괴로워하지 않았으면 하기 때문입니다.”
나는 젊은 시절 전기에 관련된 일을 했던 사람이다. 직접 고압송전탑에 올라가 보지는 않았으나 말만 들어도 작업환경의 상황이 생생히 느껴졌다. ‘윙
한국 포크 블루스의 살아 있는 전설, 이정선의 음악 인생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그에게 오랜 활동의 원동력을 물으니 “다른 걸 할 줄 모르니까”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그렇게 그는 거의 모든 질문에 무심하고도 간단하게 답한다. 자신의 음악적 삶에 대해서조차도 “그냥 오래한 것뿐”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1974년에 데뷔한 이후 그가 대중음악사에서 이룬 것
한 번쯤은 들어보고, 한 번쯤은 이뤄야겠다고 다짐하는 버킷리스트. 그러나 막상 실천으로 옮기기는 쉽지 않다. 애써 버킷리스트를 작성하고도 어떻게 이뤄가야 할지 막막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매달 버킷리스트 주제 한 가지를 골라 실천 방법을 담고자 한다. 이번 호에는 앞서 ‘브라보 마이 라이프’가 시니어를 대상으로 진행한 버킷리스트 서베
난 아직 새내기 작가다. 작가가 된 계기는 지인의 추천 때문이었다. 퇴직 후 강사로 활동하는데, 지인으로부터 “유능한 강사가 되려면 자신만의 콘텐츠를 개발해야 하고, 자신의 책이 있어야 한다”는 조언을 받았다.
조언이 깊이 와 닿았다. 곧바로 ‘작가 탄생 프로젝트’, 문화센터의 ‘작가도전’ 과정, ‘CEO 책 쓰기 포럼’ 등의 모임에 참가했다. 그렇게
시어머니는 처음 뵈었을 때부터 쪽진 머리였다. 동그스름하고 몽똑하게 붙은 뒷머리 가운데로 은빛 비녀가 반짝였다. 농사일로 두 손을 호미 삼아 거의 평생을 사신 어머니. 그 시절 부녀자들에게 달리 돈이 될 유일한 게 머리카락을 파는 거였다. 젊은 시절엔 당신의 삼단 같은 머리카락을 내주고 항아리나 그릇 등을 장만했다.
어느 날, 어머니가 만든 바늘꽂이
이전과 달리 요즘은 소위 적당한 시기라는 게 따로 없는 세상이다. 일 년 사시사철 계절과 상관없이 무엇이든 대부분 할 수 있고, 먹을 수 있고, 떠날 수 있다. 특히 언제든 떠날 수 있는 여건을 가진 사람 중에 시니어가 있다. 은퇴 후의 시간적 여유로움과 공허함을 채워줄 가장 좋은 도구가 여행이다. 그동안 치열하게 사느라 미루어 두었던 세상 나들이를 언
미사리 카페 ‘쏭아’에서의 밤 11시, 전설적인 포크 가수이자 대한민국 가수 송창식은 막 공연을 끝내고 인터뷰를 진행하기 위해 남양주 작업실로 이동했다. 새벽 5시에 잠들어 오후 2시에 깨는 생활을 수십 년째 하고 있는 그에게 있어 이 늦은 시간은 보통 사람들로 치면 저녁식사 시간쯤 된다. 국내에 단 두 대 있다는 1억 원짜리 스튜디오 모니터 스피커,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