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무작정 서울로 상경했던 촌놈은 모진 고생을 감내하면서 학업을 이어갔다. 고향에서 14년을 살고 타향인 서울에서는 무려 50여 년 이상을 지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머릿속은 늘 정년퇴직 후의 귀향 생각으로 가득했다. 혼탁한 환경과 인심 사납고 삭막한 서울 생활을 접고 공기 맑고 인심 좋은 귀촌이나 귀향을 늘 염두에 두고 있었다. 적어도 자전거를 즐겨 타기 전까지의 일이다.
나는 자전거를 본격적으로 타기 시작하면서 서울의 구석구석을 달렸다. 특히 한강의 사계절은 정말 아름다웠다. 황혼에 물든 한강 가를 달리면서 본, 강물에 떠 있는 낙조는 그야말로 환상이었다. 이전에는 몰랐던 서울의 아름다움에 빠지면서 귀향, 귀촌 생각을 내려놓기 시작했다.
기회가 되면 장거리 라이딩을 해보리라 생각하던 중 어느 날 벼르고 별러 강화도 왕복 라이딩을 했다. 그런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했던가. 여름 소나기를 만나 다리 밑에서 하염없이 쏟아지는 비를 바라보며 시간을 보내야 했다. 대원 중 한 사람은 타이어 펑크로 1시간 이상 자전거를 끌고 가야 했다. 그렇게 무려 17시간을 자전거를 타게 되는 불상사(?)가 일어났다. 오락가락하는 소나기는 일행을 더 힘들게 했다. 그리고 어느덧 자정이 가까워진 시간, 나는 물먹은 솜이 되어 탄천 다리 밑을 지나다가 나무의자에서 잠시 쉬어가자 하고 누웠다. 피로 탓으로 그대로 깜박 잠이 들고 말았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잠깐이라 생각했는데 한 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더 이상 잠들면 안 되겠다 싶어 정신을 바짝 차리고 눈을 떠보니, 어느덧 맑게 갠 하늘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수만 개의 별들이 쏟아지고 있었다. 서울 하늘에서도 이렇게 많은 별이 쏟아지다니… 아름다웠다. 뻐근한 몸을 일으켜 마지막 힘을 냈다. 자전거에 올라타니 사타구니 양쪽에서 불이 난 듯 화끈화끈거리며 아파왔다. 장장 17시간이라는 긴 시간을 자전거에 의지한 채, 최악의 상황을 극복한 자전거 라이딩. 초인적인 체력의 한계를 시험한 날임에 틀림없었다.
그 후 출퇴근 때에도 자전거를 이용했다. 한 시간 정도의 출퇴근 거리는 아침 운동으로 제격이었다. 자전거 도로에서 바라보는 한강은 정말 아름다웠다. 계절에 따라 꽃도 피고 새도 울고, 함박눈도 펑펑 내렸다. 그 길을 자전거를 타고 달렸다! 자전거는 내 인생의 동반자였다.
2014년 말, 정년퇴직을 한 나는 본격적으로 라이딩을 시작했다. 고등학교 동기 모임에서 활동하며 장거리 라이딩도 마다하지 않았다. 동해안 최북단 통일전망대에서 정동진까지 2박 3일간의 라이딩은 그야말로 환상적인 코스였다. 검푸른 동해 바다를 조망하면서 시원하게 내달리던 그 시원함, 감히 뭐라고 표현할까? 그다음 해에는 큰맘 먹고 낙동강 700리 길에 도전했다. 쉽지 않은 코스였지만 모두가 인내하면서 4박 5일을 달리고 달려 부산 을숙도 종착지에 도착했을 때 동기들은 두 손을 번쩍 들고 일제히 환성을 지르며 입성했다.
정년퇴직을 가리켜 혹자는 인생 겨울이라고도 표현하지만 생각하기 나름이다. 가슴을 활짝 펴고 당당하게 살아야 건강할 수 있다는 사실. 자전거를 타면서 실감한 진리다. 자전거 라이딩이 쉽지는 않지만 무리하지만 않는다면 시니어가 즐길 수 있는 좋은 운동임에 틀림없다.